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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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남긴 족적의 뚜렷함으로 수없이 회자되던 인물들, 시대의 변화와 흥망의 현상을 상징지운 자취들, 그리고 그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의 기록들인 역사의 의미를 조각과 회화작품 속에 표현된 의미를 통해 해석하고 재조명한다.
미술은 시대를 담고 있다. 설혹 그 표현이 왜곡되어 있다할지라도 그 오류를 만들어 낸 인식 자체는 시대의 시선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인물의 초상화에서도 소박한 정물화에도, 나신의 조각상에도, 하물며 시대의 전경을 묘사한 역사화는 우리들에게 실로 수많은 의미를 전해준다.

영웅에서 폭군까지, 클레오파트라에서 왜곡의 절정인 오달리스크로, 피와 죽음의 시대를, 그리고 인류 정신의 변천사로 구분하여 전달하는 이 역사서이자 그림책은 인간 해석의 또 하나의 인문학적 통로를 제공한다. 문학이 그렇고 철학이 그렇듯이 미술 작품 속에 들끓는 시대의 인식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지성의 도구를 하나 더 구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익히 습득된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비평적 이해를 미술 작품들과 대비하여 그 진실을 다시금 탐사하는 재미는 흥미로운 지적 경험이다.

그림이 전하는 인간 내면의 역사들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의 관용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는 일견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시선을 매혹하는 그림이 있다. 「캄파스페를 그리는 아펠레스」라는 알렉산드로스의 정부(情婦)를 그리는 총애하는 화가와의 에피소드에 나타난 일화인데, 왕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 화가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리는 알렉산드로스의 관대함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그림 속 화가를 바라보는 알렉산드로스의 경이로운 시선이 일품이다. 그런가하면 수세기가 지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무덤을 찾은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를 묘사한 17세기 화가‘부르동’의 그림은 알렉산드로스와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을 신격화하고 정치적 함의를 과시하려 한 아우구스투스와 시대적 환경을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회화는 인물의 내적 세계는 물론 시대의 정황을 한 폭에 압축적으로 담아 몇 권의 책으로 서술될 의미들을 토해내고 있다. 이러한 기능적 역할의 대표적인 그림인‘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의 위세초상(swagger portrait)은 왕이 지향하던 절대권력에 대한 열망을 더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 편의 초상화가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말해주는 작품도 없으리라. 절대군주의 이미지에 집착했던 루이 14세를 통해 17~8세기 절대주의 프랑스의 역사를 조명한다.

이에 버금가는‘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그야말로 역사화의 걸작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나폴레옹의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이 만들어 낸 절대걸작이라 추켜세우고 있는데, 인물들의 배치와 세밀한 작은 동작조차도 역사적 의미를 덧씌운 화가의 열정에서 당시 각 인물들의 자기 인식과 심리를 읽어 낼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직관이 살아나게 한다.
피투성이가 된 아들의 시신을 안고 황망한 눈을 하고 울부짖는 이반 뇌제의 그림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작인 노란 광명의 빛을 온전히 받으며 의연히 서있는 스탈린을 묘사한 「조국의 아침」같은 우상화, 여인의 품격을 한 없이 고귀하게 표현한 ‘리투르드’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사도 바울에서 히틀러, 케네디로 이어지는 카리스마의 개념 변천과 그에 따른 묘사들까지 인간의 내면과 정신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시대를 대변하는 그림들

시대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데, 중세를 상징하는 카톨릭의 위세가 시대를 고할 수밖에 없게 된 중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관점이다. 14세기 유럽대륙을 휩쓸었던 페스트의 창궐이다. 유럽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자연의 위력에 인간과 종교는 한 없이 취약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삶과 괴리되었던 죽음이 삶에 들러붙어 죽음이 일상의 인식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음은 계급도, 재산도, 성과 인종의 구분도 없는 무차별적인, 모든 인간에 평등하게 드리워진 것이라는 이해이다. 결국 평등한 죽음의 도래, 이 공포는 중세를 무너뜨렸으며, 종교개혁과 인간 평등과 같은 계몽의 시대로 이어지는 인류사의 대 전환점이 되었다는 시각이다.

이의 상징적 대표작으로서 당시 인간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죽음의 춤’이라는 모순된 이중적 태도는 죽음 앞의 참회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쾌락주의적 열정을 결합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홀바인’의 「죽음의 춤」시리즈는 교회의 타락과 죽음, 그리고 개혁의 비판적 이미지를 극히 선명하게 각인시켜준다. 이는 20세기에 들어 다시금 강렬한 이미지들을 남기는 1차 대전(Great war)의 참혹한 전쟁화들로 이어지는데, 잘 알려진‘사전트’나 ‘오토 딕스’의 전쟁의 기억, 죽음의 참상을 그린 회화들이 그것이다. 이 전쟁이 낳은 또 다른 대변혁, 전쟁근로자가 되어야 했던 여성들, 죽음으로 사라진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남긴 무수한 젊은 미망인들, 이것은 여성의 성적 개방과 지위의 향상, 여성 참정권의 부여로부터 이어진다. 이를 아마 가장 적확하게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리하르트 치글러’의 「젊은 미망인」은 전쟁의 상흔, 기존의 도덕적 관습과 성적 자유의 갈등과 공존, 욕망의 주체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한 여성상을 모두 함축하는 걸작으로 다가온다.

미술의 정신사적 탐사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어떤 부분보다 인문학적 서술이 돋보이는 장(chapter)으로 카리스마 개념의 역사학적 변천에 따른 지배 유형의 고찰을 ‘막스 베버’의 『경제와 사회』 ,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를 통해 회화작품에 표현된 이미지와 곁들여 인류의 정신사를 탐조하는 것이다. 특히 당대의 풍속화와 정물화에 나타난 속세의 금욕주의와 종교개혁, 근대 자본주의의 연계를 읽어내는 것인데, ‘얀트렉’의 「바니타스 정물」이나, ‘얀스테인’의「사치를 조심하라」같은 작품은 인류의 윤리의식이나 지성사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역사와 미술, 이 둘은 항상 우리들의 정신을 저 멀리 떨어진 과거의 시공(時空)으로 데려다 준다. 거기에는 우리들이 알고자하는 삶과 죽음의 기막힌 이해와 지혜들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지금에도 영감을 선사하는 사랑들은 어떤 모습인지, 인간의 본성과 그 사회적 발현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변주들의 시작과 종말은 어떠했는지 와 같은 경이로움으로 안내한다. 미술과 역사의 이야기를 결합하여 시각적 이미지와 인문학적 서술이 서로 교호하며 안내하는 인간 사상의 세계는 그야말로 화려하고 즐거운 지적 산책이 되어준다. 빼곡하게 인류의 전환적 역사의 서술이나 수백 컷에 이르는 그림과 조각 작품들의 이미지는 저자의 말처럼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채울 수 있는 유용한 인문교양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해내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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