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마리오 리딩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150여개의 장면(scene)으로 이루어져 급격히 빠른 전환과 전개가 우선 독자를 강하게 흡입한다. 또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계적 권위자가 쓴 소설로서 전문성과 디테일의 탁월함은 물론 유럽사회의 국외자인 집시사회의 묘사를 통한 차원 높은 사회의식이 더해지고, 등장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은 마법처럼 이야기 속으로 매혹한다.
중세 기독교와 관련하여 비밀결사들과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거나 영원히 숨기기 위한 속세와의 대결은 사실 진부한 소재가 될 정도로 흔한 스토리다. 여기에 그 흔해빠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까지 가세하면 진부함의 네제곱쯤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내심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첫 장을 열자마자 광기와 욕망이 가득하고 영혼까지 시려오는 공포를 마주하게 되면서 예사롭지 않은 작품임을 바로 간파하게 된다.

섬뜩한 죽음의 예고 같은 흰자가 없는 눈을 가진 사내, 그리고 알 수없는 두려움의 전율로 도망가는 집시, 느닷없이 달려와서는 피를 뿌리고 몇 마디 암호 같은 말을 전달하고는 황급히 달려가는 집시와 작가의 황망한 장면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 1000편중 유실된 58편에 대한 행방을 안다는 집시 바벨의 섣부른 행동은 죽음을 부른다. 집시의 죽음으로 작가인‘애덤 사비르’는 살인용의자로 공개 수배되고, 적그리스도의 보호를 의무로 하는 비밀결사인‘코퍼스 말레피쿠스’의 일원인‘에이커 베일’은 예언시를 찾기위해 죽은 바벨의 집단인 집시마을로 숨어든다.

1566년 6월 17일, 잔혹한 막후 권력자인‘드발 백작’이 가해 올 위험을 피하기 위한 노스트라다무스의 다급한 시편의 은밀한 숨김이 있은 지 500여년이란 시간을 훌쩍 넘어 21세기 프랑스와 스페인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숨 막히는 서스펜스의 질주는 호흡이 멎을 정도로, 아니 눈빛이 책장을 뚫어버릴 정도로 몰입되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집시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사비르’를 통해 주류사회의 곱지 않은 편견과 왜곡된 시선으로 그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마누슈 집시’의 세계를 통해 그네들의 풍습, 신앙, 사랑의 방식 등을 애정 가득히 담아 보여줌으로써 주류와 국외자의 융합을 도모하기도 한다. 살해된 집시, 바벨의 누이‘욜라’의 영혼적인 오빠가 된 사비르와 욜라의 헌신적인 남자‘알렉시’ 세 사람이 쫓는 잃어버린 예언시편의 추적과 비밀결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광포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에이커 베일’의 쫓고 쫒기는 긴장과 공포가 어우러진 아슬아슬한 스릴은 지금도 침을 꿀꺽하고 삼키게 할 정도가 된다.

고딕문학의 향취가 나는가하면 순간 지적인 민완형사‘칼크 경감’이 등장하면서 정교한 크라임 스릴러로, 그리곤 중세 기독교와 비밀결사의 흔적을 따르고, 종말을 경고하는 요한계시록의 암시와 집시들의 세계가 어울려 그 지성적 다채로움에 흠뻑 빠지게 한다. 눈앞에서 미세한 호흡의 떨림과 세밀한 움직임이 포착될 정도의 오감으로 전해지는 묘사는 여느 액션 스릴러 작품의 치밀함도 넘어선다.
‘재림’을 방해하고, ‘적그리스도’를 보호하려는 비밀결사와 적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전멸을 피할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지키려는 작가와 집시, 공권력의 대결은 풍요로운 지적향기와 진정한 비밀의 정수를 찾아내려는 역사의 호기심과 함께 고도의 흥미를 시종 자극한다.

아나그램, 카발라, 거울문자 등 암호의 해독과 ‘생트 말리 드라메르’의 ‘사라 에 칼리(검은 사라)’등 성상에 얽힌 신비, 마침내 드러나는 1960년 이후 52년간 일어날 사건을 경고하는 52편의 사행시의 발견은 마야력에 따른 2012년 12월 21일의 지구 대변혁과 조우하며, 인간사회의 종말을 암시한다. 잊을 만하면 다시금 수면으로 떠오르는 종말론은 사실 인류사회에 대한 도덕적인 불감증과 수그러들지 모르는 생태계에 대한 무지한 횡포가 극성을 부리면 떠오르는 현재의 반영일 것이다. 이 소설이 종말론을 내세워 단말마의 고통을 상기시켜 사람들을 위협하려는 그런 유치함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각성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말하고, 무자비하고 강박적으로 권력을 욕망하는‘엄청난 탕녀’의 실체를 암시함으로서 인류의 지속가능한 길을 안내하려는 소박한 의지로 이해될 수 있다.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 사악한 살인자와 정의의 세력이 대결하는 이 신비로움으로 무장한 소설은 올 여름 휴가철 여가를 풍족하게 해 줄 안성맞춤의 작품이 아닐까. 지적 즐거움과 스릴러를 초월하는 수준 높은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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