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트 - 연쇄살인범 랜트를 추억하며
척 팔라닉 지음, 황보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척 팔라닉’이 집요하게 관찰하는 또 한편의 인류, 인간사회에 대한 비범하고 냉혹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랜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발표된 작품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데, 완벽한‘자기파괴’만이 나를 새롭게 세울 수 있을 뿐이라던 『파이트 클럽』의 ‘타일러’를, 어둡고 모호한 이미지의 퍼즐 맞추기, 그리고 뒤틀린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궁극에 쌓아 올릴 미래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 『질식』의 ‘빅터’, 인간에 대한 회의와 열패감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고, 소비지상주의의 폭력성으로 침몰해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처절하게 그려낸 『인비저블 몬스터』의 ‘셰넌’등을 모두 통합한 인물이며 몽타주, 플래시백, 등장인물 모두가 화자(話者)인 구술전기 방식 등, 기법 또한 망라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낯설고 이질적이며 혐오스러운‘광견병(rabies)’, ‘운전자 실황 교통방송’, ‘자동차 충돌 파티’라는 언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인류학자 '빅터 터너(Victor Turner)'의 '커뮤니타스(Communitas)'라는 순화공간으로 순환시키기 위한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랜트’의 의도적인 광견병 감염은 등장하는 구술자들의 입을 통하여 미쳐버린 현대사회이며, 겁내던 미래상이고, 자신을 재목격하는 환각의 통로이며, “축적된 불안을 해소하고 문명 전반을 보호하는”순간의 표상으로 표현된다.

또한 실시간으로 중개되는 운전자 실황 교통방송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음증적 자기기만을 폭로한‘수전 손택’의 다시 보기이며, 이 작품의 핵심 제재이자 소재인 자동차 충돌파티는 “카타르시스적 순화를 제공하는 리미널(liminal)공간”을 만들어 내는 이벤트로서 현대사회의 위계와 경쟁의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이상적 시공간이 된다. 작품 속에서도 열거되고 있지만, 작가의 전(前)작품들에서 등장한‘파이트 클럽’,‘로드트립 휴가’등이 바로 이러한 '리미노이드(liminoid)'행사들의 유사형태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오늘의 사회가 다름 아닌 디스토피아의 세계로 인식되는 것이다.

어둡고, 불안하고, 강렬하고 그리고 음울한, 그러나 진지하고 철학적이며 사색적인 이상향(理想鄕)을 그리는 작가의 시선은 이 작품에서도 변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삶과 세상의 모순을 혹독하고 기이하게 표현해 낼수록 더욱 그 진지하고 웅숭깊은 인간과 인류사회의 성찰은 예리하고 매혹적이다.
“어둠속에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요란해지는, 그 울부짖고 물어뜯는 소리. 수많은 이빨과 발톱이 물고 할퀴는”쓰레기 같고 추악한 현대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논평인 이 작품은 작가의 시선이 한층 성숙하여 인류 사회학적 비평서에 이른다고까지 할 수 있다.
질서와 무질서에서 다시 질서로,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인류의 문화현상을 색다른 것을 경험하게 되는 과도기적 시간, 또한 심화된 난장판의 시간으로 상징화한 탁월한 작품이다.  

자기 자신을 키우고 자기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그리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삼위일체론 등 “시간의 거대한 역행 고리들”을 이야기하는 환상적 시간여행, “트림을 할 때마다 분홍색 플라스틱 구세주들이 무더기로 마구 튀어"나오는 황당한 유머, 개처럼 예민한 후각을 지닌 인간 블러드하운드, 지문보다 100배는 더 특징적인 여성의 입술...등등 팔라닉 다운 상상력과 표현, 문장은 그의 매니아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영리한 사람이 자기는 단지 부패하고 타락한 제도의 산물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하나요?”아마 자기표현과 사회구조를 실험하고 개발 할 수 있는 장을 찾아 헤맬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살인마 랜트의 죽음을 진정 애도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