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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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의 남자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보통’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전적 주석을 달면 부사적 용법으로는 흔한 일반적이라는 의미이고, 명사적으로는 뛰어나거나 열등하지 아니한 중간정도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사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추상적 언어인데, 기준이나 대상이 특정화되어 있지 않은 정의 때문에 난 항상 이 단어가 들어간 표현을 보거나 듣게 되면 난감함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러한 곤혹스런 느낌 때문에 ‘보통’이라고 주장하는 이 젊은이는 어떠한 의미에서 이러한 표현을 하였을까가 내심 호기심을 유발하였다는 것이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이유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랄 수 있다.

일기(日記) 전반에 걸쳐 되뇌는 사랑에 관한 단상들이 반복되어 등장하는데, 작자가 정의하는 사랑은 가슴이 설레고 불꽃이 튀는 그런 ‘열정적’인 감성의 세계인 듯하다.  그래서 3개월이면 식어버리는 사랑 때문에 3개월이란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사랑이란 거짓이고, “다시는 이런 기분을 느끼기 싫었는데...(中略) 한 줌 재만도 못한 허망한 신기루 따위 결코 맛보기는 싫었는데...”라고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에 절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연 작자처럼 사람들은 이러한 ‘에로스’로서의 사랑만을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스토르게, 크세니아, 필리아, 아가페처럼 우리들의 삶을 풍족하게 하여주고 행복을 느끼게 하여주는 사랑도 있다. 물론 창조성, 실험, 발견을 자극하고 고무하는 그 황홀하고 열정적인 욕망 그 자체의 고귀함과 고결성,  우리의 시야를 열어 인간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 혹은 차원을 보여주는 긍정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열정이 적절하게 흐르지 못하고 삶의 중심에 머문다면 일상의 관계에 투신할 여력과 의욕을 잃게 되고 자아는 심하게 병들게 될 것이다.

이러하다보니 “수많은 결혼들이 무책임하게, 호기심에서, 그저 남들 하니까...(中略) 별로 신중하지 못한 이유에서 행해진다.”라고 결혼에 대한 인식이 편협해지고,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저마다 찾아가는 행복의 다름을 부인하게 된다. 더구나 “어떻게 한 사람하고만 잘 수 있을까. 어떻게 한 사람하고만 평생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한 사람만을 평생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일부일처(一夫一妻)의 혼인제도를 부정하고, 급기야 “서로를 갉아먹는 햄스터”라고 결혼에 혐오의 시선을 보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작자의 이러한 극단적 시선 때문에 오히려 나는 가장 내밀한 소망과 욕구와 욕망을 알아내기 위해 지독하게 앓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것은 왜 일까?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회의와 노력을 쏟고서야 비로소 온전한 사랑, 무궁한 사랑을 세상에 흩뿌리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라고 해석해본다. 사랑은 인간정신의 가장 위대한 가치가 아닌가!

이와 같은 남녀간의 사랑, 결혼에 대한 작자의 시니컬한 회의론에 이어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친구에 대한 나름의 사유들이 지면의 도처에서 등장하는데, 이는 바로 개인이 자신답게 살게 하는 것, 그래서 자신에 내재한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을 위해 보다 확장된 사랑의 공감으로의 이행이 아닌가 하고 생각게 된다. 항상 고통을 수반했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인간 실존의 기본 상태로서의 배려’라는 스토르게(storge)로, 둘도 없던 친구 상문으로부터 시작되는 친구, 그리고 정들였던 고양이,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이미 필리아(Philia)와 크세니아(Xenia)를 발견케 되는 것은 작자, 이석원이 삶의 내면을 향해 외치는 본연의 목소리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하게 되는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작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재들로부터 비롯되는 관념의 진행이어서 우리들 누구나 겪었던 유사한 경험들을 보게 된다. 출근길의 도로체증을 피해, 돌아가는 길일지언정 저만의 길을 달려가는 모습에서, 정말 외로워서, 심심해서 누워 책을 읽는 모습에서 나와, 우리와 닮은꼴의 인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때론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까탈스런 사람으로, 또 때론 영혼의 정수란 무엇인지, “세상이 원래부터 이렇게 엿 같은 곳이었다면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하는 사춘기 소년 같은 질풍노도식 외침에서 건강한 청년정신에 미소 짓게도 된다. 사실 결코 ‘보통의 존재’로서 이해하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이의 내면의 일기이어서, 간혹 생경함과 외곬의 고집이 읽히지만 그 이상으로 닮은 형상을 훨씬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글이다. 가벼운 느낌으로 천천히 그의 시선을 쫒다보면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인지, 또한 우리들의 시야를 열어 인간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 혹은 차원을 보여주는 그 무엇을 생성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게 하는 시간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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