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존 업다이크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5년 1월
평점 :
절판


1994년 출간되자,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인종과 계층에 대한 인류의 고질적이고 케케묵은 병적 편견을 격정적인 사랑의 이야기에 담아낸 걸작중 걸작이다.업다이크의 작품을 펼치면 그의 겸허한 작가의 말을 접하게 되는데 이 작품 또한 예외 없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저작들과 작가들에 대한 존경을 보여준다.

작가는 죠제프 베디에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and Iseult)』에서 분위기와 기본골격을 가져왔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트리스탕’과 이사벨’로 그 차용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다만, 죠제프가 쓴 켈트족으로부터 구전되어온 사랑의 전설인 트리스탕과 이즈(Iseut)나 로미오와 줄리엣식 낭만적 비극류와는 주제의식을 비롯해 전편(全篇)을 통해 흐르는 인간본성으로서의 성애(性愛)에 대한 그 격렬함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사랑의 형식을 보게 된다.

 

윤기 흐르는 검정색피부의 부랑아인 흑인소년 트리스탕과 고위외교관의 외동딸인 금발의 백인 소녀 이사벨이란 흑백의 대비되는 인종의 설정에서부터 백인남성과 흑인여성이라는 유럽과 백인중심사회의 일반적 권위에 의한 남녀관계를 뒤엎는 성적임무의 부여와 같이 그 관능성의 자극 수위를 극단적으로 치달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또한, 주인공의 사회계층적 계급의 부여 역시 흑인 창녀의 아비를 모르는 거리의 최하층자로서 흑인을,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공식으로서 백인을 표현한 것은 다분히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상정하고 있다할 수 있다.

백색의 피부에 부여되는 권력의 사회적 무언의 합의와 같은 오랜 왜곡된 의식이 섹스에 있어 남성의 욕구를 존중하려는 여성의 열등적 행위로 가장되지만 그 실제에 있어서는 이사벨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고자 하는 잠재적 권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도피행각에서 호텔 벨 보이와의 3인의 변태적 성행위는 트리스탕의 흑인으로서의 약자이자 권위의 수용자로서의 불가피함을 암시한다.

 

성애의 묘사에 있어서 그 디테일을 통해 인간 본성에 감추어진 은밀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허위와 가식으로부터 탈피하여 육체와 정신의 일원성이란 본능의 현재화(顯在化)를 보여준다. 리우데자네이로의 뜨거운 햇살이 작열하는 해안에서 시작되어 상파울로의 산업 현장으로, 다시금 브라질리아, 그리고 고이아스, 브라질의 서쪽, 마투그로수 정글지대로 이어지는 사랑의 도피에서 보여주는 이 연인의 사랑은 음울할 정도로 깊어 외면키 어려운 야릇한 우울함에 빠지게 한다.

고이아스 금광촌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아내를 안을 겨를 없이 지쳐 잠드는 트리스탕,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이사벨, 사방 1.5M를 파내려가는 자신만의 금광 안에서 솟구치는 자신의 얌을 흔들어대는 트리스탕에서, 발견된 금덩어리, 그리고 살인으로 인해 다시금 정글로의 탈출로 이어지는 사건의 전환에서 다시금 흑인으로서의 피해의식과 보호자로서의 사회 기능적 보편성에 문제를 던진다.

 

작품의 기저에 뿌리내리고 있는 인종적 편견의 불식이라는 주제와 병행하여 남녀의 사랑과 섹스의 상호 불가분성에 대한 일관된 주장이 인간 본연성(本然性)의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다. 트리스탕의 창녀와의 섹스에서, 이사벨의 뭇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삼촌과 그의 가정부였던 두 번째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보여주는 그 모호한 이중성과 트리스탕과 이사벨에서의 불가분성이 사랑의 본질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그리고 작가가 도입한 환상적 주술의 설정은 연인의 피부색을 바꿔 놓고 그 흑백의 교묘한 관계를 추적해간다. 그럼에도 육체적, 특히 외형적 변화와는 달리 영혼의 본질적 변화로까지 이행하지는 않는다. 독특한 사랑의 방식과 인종과 계층에 대한 전복적인 이 시선은 결국 우리들의 일그러진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리라. 백인 트리스탕의 주검에 오열하는 흑색의 진주 이사벨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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