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허물을 벗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인 채 존재하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부분은 간직하는지...” - 59쪽
소리, 지우, 채운, 소설의 세 주인공이다. 아이들은 오직 자신만이 답할 수 있거나, 스스로가 깨고 나와야 하는, 제 각기 자신에게 던져진 물음에 묻혀 있다. 그것은 폭력 가장에 대한 분노이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이며,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원망이기도 하다. 마음에 버거운 물음들이란 그 정답이란 것이 애초에 있지도 않은 것이고, 어쩌면 생의 여정이라는 시간 속에서 여물게 되는 것일 게다.
지우는 뇌종양을 앓던 엄마가 실족사하고, 엄마의 남자 선호아저씨 집에 의탁하여 산다. 지우는 작은 도마뱀인 용식을 돌보며, 서로 의지하는 삶을 산다. 지우는 엄마의 실족사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엄마로부터의 버림받음과 희생이라는 원망과 안타까움의 감정을 오가게 한다. 소리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손이 닿은 사람들의 윤곽이 흐려지면 상대가 죽는다는 느낌을 갖게 됨에 따라 쾌활한 성품에서 사람들과 차츰 멀어지는 고립된 삶 속으로 들어간다. 소리는 오랜 투병을 하던 엄마를 잃었다.
채운은 지우와 소리가 있는 학급의 전학생이다. 그는 축구 선수의 삶을 의도된 부상으로 중단했다. 아버지의 무능과 폭력,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아버지의 살의에 대항하다 사고가 난다. 엄마는 채운을 대신하여 수감된다. 채운은 엄마의 수감, 그리고 사고의 불가피성과 응징하고 싶었던 욕망의 소용돌이에서 번민한다. 채운은 그의 반려견 뭉치에 의지하며 이모 내 신세를 진다.
소설은 그렇게 각자의 작은 재능과 타인의 시선을 반영하며 자기 이해를 넓혀나간다. “고사리 숲 사이로 노란 홍채가 고요히 빛나는” 용식이 여러 번 허물을 벗으면서 여전히 자신인 채 존재하듯, 세 사람은 그렇게 자신들 밖의 세계를 겪어내며, 동일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해 나간다. 지우가 연재하는 많은 지문을 지닌 만화 <내가 본 것>을 통해 채운이 자신과 타인의 번뇌를 읽어내고, 공사장 노동현장에서 “하루하루 악착같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로소 인식하며, 자신이 그리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다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결국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임을 깨닫는 것처럼,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변하는 세 사람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세상은 남의 불행을 바라는 저열함도 있으며, 상대적 약자를 무시하고 따돌리려는 유치하고 가혹한 놀이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부모님 병원비 마련을 위해 혹독한 노동을 감내하는 사람들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를 향한 따뜻한 손길도 존재하며, 순간의 비뚤어진 감정을 관대하게 용서하는 엄마와 같은 마음도 있다. 이 작품도 많은 성장소설들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세상의 편력을 거친 끝에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지위를 이루었네 하는 얘기는 아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냥 그래도 괜찮다고, 우리 안의 무언가 작은 변화를 깨달은 그 마음을 지니는 것 자체를 긍정하는 이야기다. 소설을 읽어나가며 어느 순간부터 지우, 소리, 채운이 자신들의 물음을 쫓아 내딛는 발걸음들을 숨죽이고 응원하게 되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어른들이 할 일이 아주 많다. 내부자의 시선은 많을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경계 너머의 타자의 세계를 생각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