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세의 베네치아 작가가 사랑한 도시 6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이찬규.이주현 옮김 / 그린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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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욕망의 나라는 그리 일찍 깨어나지 않는다.” - 티치아노의 아들에서

 

 

이 관능적 문장은 젊은 시인 뮈세가 연인 조르주 상드에게 기대했던 열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뮈세 사후 2년 뒤에 출간된 상드의 소설 그녀와 그(Elle et Lui)에서 뮈세로 추정되는 주인공 로랑이 기대하는 여인상,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아이는 성녀 테레즈의 숨결로 되살아난 비너스같은 사람을 애인으로 원한다고 상드는 쓰고 있다. 신성한 모성애와 밤의 열정을 지닌 여인, 자신의 갈망만을 가지고 세상의 온갖 도취를 끌어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이기적 인물이 당사자로서 상드와 함께한 그 유명한 스캔들을 낳은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책의 표제는 뮈세의 베네치아로 하고 있지만 그 실제는 뮈세의 단편 소설 티치아노의 아들이다. ‘작가가 사랑한 도시라는 기획 하에 편집된 시리즈의 하나로서 소설의 무대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이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오직 베네치아에 매혹된 내 취향이 이끈 것으로, 주인공들이 거닐고 이동하던 장소를 그려보며, 운하에 떠있는 곤돌라와 바닷물에 잠긴 광장, 바닷물이 계단에 철썩이는 현관, 새벽안개 자욱한 미로같은 골목길의 영상이다.

 

소설 티치아노의 아들속으로

 

이 작품은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르네상스 황금기를 대표하는 회화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천상과 세속의 사랑(Sacred and profane love)>으로 잘 알려진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의 둘째 아들 폼포니오 필리포 베첼리오(일명 피포)’와 베네치아 최고행정기관인 10인 위원회의 피에르 로레단의 딸이자, 행정장관 도나토의 미망인인 스물네 살의 과부이며 명문가의 상속녀인 베아트리체 도나토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선친 티치아노와 형이 같은 시기에 사망하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피포는 베네치아의 젊은이들을 몰락시키는 일을 하는 오르시니 공작부인의 집에서도박과 여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놀아나는 방탕아라 할 수 있다. 이 인물은 뮈세 자신이 투영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상드와 함께한 베네치아 여행에서 그녀는 소설 집필에 몰두하며 연인인 뮈세의 시작(詩作) 활동을 독려하고 있었다. 젊은 연인의 사랑의 갈망을 열의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드에 대한 배반감으로 뮈세는 그 상황에 대한 바람과 자신의 열정을 이 소설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성(理性)을 모두 저당 잡힌 채 쾌락에 허우적거리는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피포에게 그윽한 섬세함이 배어 있는금자수가 수놓인 벨벳으로 된 주머니가 선물처럼 전달된다. 그곳에는 이 주머니가 간직하게 될 것을 허투루 낭비하지 마세요. 집을 나설 때, 금화 한 닢만을 주머니에 넣으세요. 그날 하루가 괜찮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남아 있거든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가난한 자를 찾아보세요.”라는 서신과 함께. 피포는 베네치아의 귀족 여인들을 그려보며, 주머니를 만든 여인을 찾아보려는 열정으로 끓어오른다. 피포는 자신의 대모인 행정관 파리칼리고의 아내인 도로테아 부인을 찾아 혹여 주머니의 주인에 대한 행방을 알 수 있는지 묻게 되고, 그녀로부터 하나의 제안을 받는다. 당사자를 알려 줄 수는 없으나 소네타를 써보라는 단서를 붙인다. 몇 차례 썼다 버렸다를 반복한 끝에 미지의 여인을 위한 소네타를 완성하고 넌지시 도로테아 부인의 치마폭에 밀어 놓는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어릴 적 페트라르카를 읽었을 때

나는 시의 영광을 나누고 싶어 했다네.

그는 시인으로 사랑하였고 연인으로 노래하였다네.

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들의 언어로.

 

.....(中略).....

 

저 아래서 나를 부르는, 나를 사랑하는 그분께

스치는 길에서라도 내 손을, 내 삶을 드릴 수밖에.

 

이 유치한 소네타는 곧 효력을 나타내는데, 주머니에 대한 긍정적인 사랑의 고백으로 받아들인 미지의 여인은 하녀를 시켜 모든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비밀의 만남을 약속받는다. 이 꽃에 입맞춤을 하세요. 이것은 제 여주인의 입맞춤을 담고 있답니다.” 이 행위에서 발견되듯 피포는 실물성(實物性)’이라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이 사랑이라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실물성에 대한 주장은 반복되고 있는데, 베아트리체의 기대와 피포의 행위가 어긋나는 것의 상징적 비유일 것이다.

 

피포의 방탕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신성한 불꽃이 잠재해 있을 것이라 믿으며, 베아트리체는 자신이 그의 화가로서의 재능을 살려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상드가 뮈세에게 기대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그와 함께하는 조건으로 매일 화폭 앞에서 2시간의 그림 작업을 할 것을 제안하고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줄 것을 제안한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존경과 감사, 신비와 사랑에 휘감겨 있는 피포로서는 제안을 수락하지만, 이 젊은이의 강렬한 정념과 탕아적 기질은 이런 규칙적 일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항변한다.

 

이 초상이 아름답다 한들(진정 내말을 믿으라)

연인의 입맞춤 한 번만도 못하기 때문이니!

 

피포가 남긴 소네트의 마지막 절의 이 문장처럼 그는 실물이 아닌 제아무리 아름다운 걸작이라 하더라도 살아있는 여인의 입맞춤에 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베아트리체의 인내와 피포의 화가로서의 재능의 발현에 대한 기대는 왜 사랑에 몰입하지 않고 일(회화작업)의 병행을 요구하는가라는, 다음과 같은 피포의 자기 정당화와 마주치게 된다.

 

사랑과 영광은 형제자매 같아요, 왜 그것을 나누려고 하시는 거죠? ... 사람들은 결코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없습니다. ()과 시()를 동시에 상인이 할 수 없듯...”

 

소설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이 작품에 수놓인 베네치아의 거리와 사랑의 순간에 대한 기막힌 문장들의 거리를 거닐어 봐야 할 것 같다. 베아트리체와 피포의 은밀한 첫 만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린 채 이렇다 할 화가로서의 재능도 보이지 않는 남자의 사랑에 몸을 낮추는 여인의 모습이다. 그녀의 눈은 사랑과 더불어 혼란과 용기가 가득했으며, 에로스 신은 그 순간 초자연적인 명작을 더욱 미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은빛 꽃들이 수놓인 그녀의 벨벳 드레스가 바닥을 덮고” “우아하고 슬픔이 어린 모습으로 대리석 여신처럼 아름답고 창백한 그녀는 운명에 몸을 맡겼다.” 19세기 낭만주의 문장의 절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연인의 데이트 장소인 운하 옆 퀸타빌레 거리 궁륭아래, 도시와 리도 섬 사이, 달 밝은 밤이면 베네치아식 사랑을 나누라고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장소로 피포가 말하는 이 장소에 독자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과연 이곳을 찾아 볼 기회가 있을까하며 머리를 저어보기도 한다. 16세기에도 쇄락하는 도시로 묘사되었던 해수면 아래로 매일 조금씩 가라앉는 안개와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예술의 세기말적 상상의 이 작품은 시간과 몰입, 인내, 천재성과 같은 예술적 지향과 맞닿으면서 특별한 문학적 여행을 만끽하게 한다.

 

()은 여자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 베아트리체 도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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