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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 양심을 지닌 아킬레스 ㅣ 주제들(THEMEN) 시리즈 5
폴 A. 캔터 지음, 권오숙 옮김 / 에디투스 / 2018년 6월
평점 :
“자네들은 그렇게 복음화 되었는가? (Are you so gospell'd)" - 3막 1장 85행
이 문장은 왕을 시해하고 다시금 왕권에 위협이 되는 동료 귀족 ‘뱅쿠오(Banguo)’를 살해하기위한 암살단을 앞에 두고 '맥베스(Macbeth)'가 묻는 말이다. 셰익스피어를 집중 연구해 온 문학비평가인 버지니아大 영문학 교수인 ‘폴 A. 켄터’는 이 장면을 작품 전체를 이끄는 정신세계라 주장한다.
이 극은 위대한 전사들의 사회가 기독교화 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들, 즉 복음화된 스코틀랜드라는 엄청난 ‘역사적 변화의 와중에 있는 나라의 인간정신의 비극적 갈등’에 주목했던 셰익스피어의 역사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반란군을 제압하고 의기양양하게 귀환하던 맥베스와 뱅쿠오는 불현 듯 나타난 마녀들의 예언을 듣게 되는데, 뱅쿠오를 향한 다음과 같은 예언이 맥베스를 괴롭힌 것이다. “왕이 되지는 못하나 후손이 왕이 되리.(1막 3장 67행)” 바로 이 지점이 오늘 이 작품을 소환하여 읽게 되는 동기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 또한 국제 지정학적 위협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직면한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라는 역사적 대전환의 시기에 놓여있지 않은가?
찬탈한 왕위를 불안정하게 할 요소인 뱅코를 제거하기위해 암살단원들에게 온유와 자애로움의 기독교 정신이 혹여 이들의 행동을 저해하는 일이 발생할까를 우려하여 새로운 정신에 대한 경멸을 보내는 것이다. 암살자들은 이에 대해 “저희들도 인간(사내)입니다”라고 답하지만 맥베스는 인간을 개에 비유하여 서열화한다. “하운드, 그레이하운드, 잡종개, 스파니엘, 똥개, 늑대개가 모두 개라는 이름으로 불리듯이 말일세.(3막 1장 95행)” 옛 전사들의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잔인한 폭력성을 고결한 영웅적 가치로서, 인내와 평화를 가르치는 기독교는 천한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비극 『맥베스』는 이처럼 “영웅적 전사의 가치관과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 사이에서 갈등(16쪽)”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에 낀 인간들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도입부라 할 수 있는 1막 3장의 마녀들과 맥베스의 조우는 한 인간의 영혼을 적시는 결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맥베스를 환영하라! 왕이 되실 분이시다.(1막 3장 50행)” 이 예언적 계시(啓示)는 맥베스의 모든 행위의 기초가 된다. 이미 왕 던컨을 살해하여 왕이 되었으니 예언은 실행된 것이다. 그런데 이 인물의 정신세계를 자극하는 것은 기독교의 절대주의 정신이다. 완벽함을 이루고 불멸 영생하는 삶의 성취다. 맥베스가 이해하는 기독교는 지극히 피상적이며 예전과 새로운 것의 나쁜 결합 총체라 할 수 있다.
왕을 살해하였을 때 시종들의 기도와 함께 마지막 아멘을 말할 때 맥베스는 이를 이교도의 주문정도로 여기는 것인데, 기독교에서 취할 수 있는 은혜만을 얻고 부과되는 도덕적 요구는 이해하지 못한다. “한 놈이 하나님, 우리를 굽어 살피소서라고 하니 다른 놈이 아멘 하더군. (...) 나는 아멘이라고 말하지 못했소.(2막 2장 24행)” 새로운 정신으로서 기독교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이 장면은 자신이 주최한 궁정연회에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뱅쿠오의 유령을 보았을 때, 전사들의 야만적 영웅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기독교 정신에 대한 혐오의 방백을 주절거린다. 사람이 죽으면 죽은 채로 품위를 지녔던 이교도 시절과 달리 “그것들이 다시 일어나 나를 내 의자에서 밀쳐 내는구나.(3막4장 81행)”
이교도의 영웅적 허영심이라는 가치를 놓지 않으면서 한편으론 이를 경멸한다. 기독교에서 배운 영원성에 대한 찬양이다. 맥베스에게 새로운 정신세계의 통합이 굴절되어 내면화되는 것인데, 바람직한 결합의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교도의 일시성이라는 가치에 경멸을 보내면서 자기 안위와 안전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이는 영웅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기독교 환경이 그에게 이미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왕을 살해하고 난 후의 독백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그의 서거로 성공을 낚을 수만 있다면, 이 한방이 전부이고 (...) 내세의 삶은 신경 쓰지 않겠다(1막 7장 7행)”. 역설적이게도 내세에 대한 삶을 배제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에 이미 반(反)기독교적이긴 하지만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 이것은 한 인간의 정신적 분열을 의미한다, 기독교를 경멸하면서 기독교도처럼 생각하는 인간을 생각해보라.
행동을 주저하게 하는, 그리고 자기 행동의 결과를 마주하지 못하는, 즉 양심과 싸우는 이전의 영웅 전사는 사라지고 심리적 깊이가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내세를 부정하면서 내세의 영원한 삶, 완벽하고 무한한 만족적 삶을 그는 이승에서 누리고 싶어 한다. 이 새로운 감정에 터 잡은 소망은 절대행동이라는 사유 없는 즉각적 행동의 실천, 기계적 양상으로 치닫게 한다. 침해당하는 안전 욕구의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맥베스는 마녀를 찾아 나서 운명의 예언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는 어둠의 도구인 반(反)기독교적 존재인 마녀, 달리 표현하면 “지상의 일들은 더 높은 차원의 세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믿음(97쪽)”이 내면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자기 운명은 미리 정해진 바에 의하여 실행된다는 믿음은 지상의 도덕이나 양심, 연민과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만다. 손바닥의 왕(王)자처럼 초자연적 신비의 세계에 의존하는 순간, 자제력은 무용해지며 그 어떤 짓도 행할 수 있게 된다. 하늘의 뜻이 자기편이라는 이 맹목적 믿음(狂信)은 잔인성과 폭력성의 무한한 증가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선의의 가면을 쓰고 사악한 의도를 숨기며, 대리인들을 통해 작업하는 은밀한 행동(99쪽)“, 오늘의 말로하면 공작 정치를 통해 양심의 가책을 피하면서 악행을 반복하는 것이다. 양심으로 균열이 생긴 자신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한 이러한 무의식적 파렴치는 더욱 극단적인 욕망의 노예로 한 인간을 종속시킨다. 1막 4장의 방백은 이의 실체를 보여준다.
“별들이여 너의 빛을 감추어라! 그 빛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욕망을 보지 않도록 / 눈이여, 손이 하는 짓을 보지 말지어다. 그러지 아니하면 눈은 손이 행한 걸 보기 두려워 할 것이다.” - 1막 4장 50~53행
이것은 극단적 이기주의와 무절제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온 세상이 조각나 온 천지가 고통을 겪는 것(3막2장 16행)”이 낫겠다든가,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의명분도 다 양보할 것(3막4장 135행)”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자기 욕망에 제동을 거는 것은 모두 제압하고 제거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이미 초자연적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오만함은 지상의 모든 것이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잔인성과 포악함, 무관심과 부정, 부인, 외면으로 표출된다.
이를 치유하는 법에 대한 비상한 대사가 등장하는데, 몽유병에 시달리며 분열적 증세로 죽어가는 맥베스 부인을 본 전의(典醫)가 진단하는 말이다. “자연에 어긋난 행동은 비정상적인 고통을 낳는 법”이라며 “의사보다는 신(神)의 도움이 필요(5막 1장 74행)”하다는 것이다. 물론 맥베스는 이 같은 자연의 힘에 기초한 의사에게 경멸의 폭언을 내뱉는다. 자연의 힘 위에 있다고 믿는 자로서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에게 귀결될 것은 마녀들의 예언이다. 거대한 숲이 언덕 위까지 올라오는 사건이나 여인의 몸에서 출생하지 않은 이가 아니고서는 결코 맥베스는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예언을 자기 욕망의 귀로만 듣는 것이다. 이 예언의 본질을 생각지 못함으로써 파멸한다.
스코틀랜드의 이 전사의 비극은 오늘의 인간 사회에서 벌어질 비극을 예시한다. 역사적 전환기란 갈등, 충돌하는 정신세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시기이다. 지금 우리 사회 또한 수구 기득권과 새로운 민주적 가치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시민을 개로 표현하는 인물이 타인을 종속, 굴복시키는 힘으로서의 통치권만을 탐하려한다. 한껏 영웅주의의 포만감에 휩싸여 주변의 고통과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것은 곧 폭력과 잔인성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자기 파멸의 길이다. 맥베스란 인간을 통해 오늘 우리들이 직시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신중히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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