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뮈스 -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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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1800년대 후반, 네델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문학자이면서 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는데, 20세기초 유럽 역사의 격변속에서 살다간 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던 것은 이 책의 해설에 소개된 그의 마지막 말이다. "에라스무스를 존경하지만, 공감하진 않는다." 격변의 시대속에서 종교개혁의 광풍을 맞이하였던 에라스무스처럼 하위징아 역시 나치의 네델란드 침공 앞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였지만, 그 대응방식은 달라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책속의 문구가 떠오르는데, 어찌됐든, 역사의 중심부에 서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행동하고 후회했던 옛 현인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

 

에라스무스의 어린 시절은 그리 밝지많은 않았다. 야사에 의하면 사생아였다는 말도 있으니, 그의 어린 시절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된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이 그의 인생에 작용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친지들과 헤어지고 또 주교와의 갈등이 있었지만, 그는 계속 글을 썼고, 학문과 종교 생활을 병행해 나갔다. 문학과 신학의 만남은 아마 이때부터 이루어진듯 한데, 프랑스와 영국에서의 생활속에서 일어난 일들과 거기서 느꼈던 기쁨과 갈등, 우울함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을 듯 싶다.

 

저자는 그를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묘사하고 있다. 아래의 문구를 보면,

 

.....이 당시 휴머니스트들은 고전 문화의 보물을 독점하고 있었다. 일반 대중이 잘 모르는 지식을 과시함으로써 자신들이 놀라운 학식과 세련된 정신을 갖춘 귀재라는 것을 자랑하려 했다. 에라스뮈스에게는 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강한 의욕을 갖고 있었고, 또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반적인 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는 16세기의 기독교인들의 영혼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고전 정신을 소개하려 했다.....

 

라고 소개되어 있다. 약간의 신경질적인 면모와 약간의 우울증, 그리고 피해의식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물리친 것이 바로 진정한 신학자, 그리고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모가 아닐까 한다. 또한 종교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철학을 내세웠는데, 이는 당시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된 정신의 배경과도 일치하는 듯 하다. 물론 정작 당사자인 에라스무스는 그 종교개혁 앞에서 우유부단한 행동을 취했지만.

 

.....종교는 외면적 의례를 지속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유대주의적 의례주의이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 아무런 감흥 없이 시편 전편을 읽어 내려가는 것보다는, 단 한줄이라도 시편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며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례는 영혼을 새롭게 하지 못할 경우 아무 가치없고 오히려 해로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미사를 몇 번 참석했다고 회수를 헤아리면서 그 회수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사 도중에 그리스도의 사랑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미사가 끝나고 교회를 나서면 일상생활의 습관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매일 희생을 봉헌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오로지 당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간다. 당신은 성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유물을 만지고 싶어한다. 당신은 베드로와 바울의 은총을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베드로의 신앙과 바울의 자비를 모방하도록 하라. 이렇게 한다면 로마 숨례를 열 번 갔다 온 것보다 더 많은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평범하고 소박한 이상을 동경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몽테뉴의 수상록에 소개된 것들 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를 전원적 즐거움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일상속에서의 편안함, 정원의 정경과도 같은 안락함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는 싸움을 싫어했고, 순수함과 소심함이 공존했다. 그래서 조금은 자기중심적 성향과 함께 은둔자적 성향도 공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상적 순수함과 현실에서의 모호함, 그리고 때로는 이로인한 다른 사람들의 비난마저 감수해야 했던 에라스무스. 도덕적 감정과 현실에 대한 고민속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한 지식인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의 말년에 벌어진 종교개혁 열풍은 당시 세계사를 뒤흔들었던 큰 사건이자, 변혁이었다. 당시의 지식인이라면 그 열풍 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기에도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신을 지킨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의 일상속에서의 사소한 선택이나 연예 잡지나 드라마, 가십거리의 소신있는 누구누구 따위의 기사와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이다. 자신의 소신이 타인의 공격거리가 되고, 그로 인한 방어는 불필요하 소모전을 야기한다. 덕분에 변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의 위치는 더욱 견고해지고, 개혁의 방향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소신을 지키려는 자들의 서로를 물고 뜨는 혈투가 끝날때쯤에는 세상은 변해 있고, 더이상 그들이 설 자리는 없다. 로고는 바뀌었고, 건물도 새로이 단장했으며, 읽는 문구와 상징도 새로워졌다. 하지만, 결국 그대로였다. 모든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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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 대단한 - 책이었다. 종교개혁의 현장에서 살다간 한 석학의 삶을 1900년대 석학의 눈으로 바라본 글을 현대의 인문학자의 번역을 통해 접하게 되었는데, 그 느낌은 실로 오묘했다. 단순히 한 단어와 문장, 그리고 책을 통해서 온전히 느껴지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었다. 물론 책은 너무 편안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재미있었지만, 그 느낌을 읽는 독자가 완연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내공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접한 건, 학ㅊ창시절 역사 및 윤리 시간 이후로는 거의 처음인 듯 싶다. 기회가 된다면, 요한 하위징아의 또다른 저서들과 에라스무스의 책들도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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