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평점 :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먹는 것이 아닐까 한다. 수면, 사람들과의 대화와 함께 기본적인 생존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만남과 이야기에 바로 식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군가와 만나자고 할때, 또 어디에 여행가자고 할때 항상 등장하는 주제는 바로 먹을 곳이다. 오늘은 어딜 가볼까, 어느 가게가 맛있다더라, 밥이나 같이 먹자 와 같은 말들 말이다.
인간이 먹는 것들이 바로 내 몸을 이룬다는 생태학적 설명도 "먹는 것"의 중요성을 한번 더 상기시킨다. 매일 죽은 세포들이 떨어져나가고 새로운 세포들이 생겨나듯이, 그리고 새로운 피로 내 혈관이 채워지듯이, 우리가 먹은 음식과 그 속에 담긴 자연의 이치가 우리 몸을 매일 매일 새로이 채워 나간다. 그러기에 우리가 먹은 것들은 지금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또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한다.
*
이 책은 노어노문학 교수님이신 석영중 교수의 책이다. 러시아 문학을 음식의 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한번쯤은 들어봤고, 또 접해보았을 톨스토이, 푸슈킨,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의 맛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음식을 통해 러시아 문학의 세가지 코드를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남의 것과 나의 것의 대립.
2. 종교와 관련된 음식의 기호적 의미
3. 1917 혁명을 뒤로한 옛 음식과 구 음식간의 갈등
특히, 책에서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1번과 3번을 묶은 양자간의 대립과 조화가 주요 코드로 등장한다. 이는 러시아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인데, 이는 근현대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사실, 러시아(모스크바)는 18세기 전까지는 유럽에서 제외되었던 공간이었다.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영향아래에서 그리스정교를 국교로 채택하였고, 몇백년간은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중동 지역의 수많은 제국들과 교류하고 영향을 받은 탓에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혼재된 상태였다.
하지만, 표토르 대제의 상테페테르부르크로 천도 이후 러시아에는 유럽(프랑스,독일 등)의 문화가 급속히 전파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옛 러시아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갈등, 유럽의 문화와 기존 러시아 문화와의 갈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많은 작가들은 이러한 갈등, 특히 그 중에서도 음식에 대한 것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푸슈킨은 대문호답게 진정한 러시아문화의 사랑은 외국의 것을 버리는게 아니라 끌어안는데 있다고 보았다.(54페이지) 즉, 자신의 것을 풍요롭게 하는데 있어서 타자의 것을 수용하고 관대하게 대하는데 인색하지 않는다는 것을 푸슈킨은 보여주고 있었다. 책에서는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에게 있어서 러시아 음식과 프랑스 음식은 갈등의 대상이자, 반감을 가질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이 들의 - 자연스런 - 조화,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수식어도 없고, 모호한 부분도 없고, 그러면서도 생생하다. 분명하고 단순하고 간결하다. 그래증이 나지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고골은 이와는 반대로 엄청난 대식가였다고 한다. 하긴 예전에 읽었던 고골의 단편인 "외투"와 "코"를 떠올리자면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영양실조로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영혼의 양식을 위해 육체의 양식을 완전히 버린 결과(153페이지)라는 저자의 설명이 와닿는다.
또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서는 러시아 혁명과 빈곤함, 그리고 빵이 상징적인 소재로 등장한다. 소박한 식사와 어려운 농민들의 생활은 마치 일제치하의 한반도와 만주의 우리 민족들의 빈곤한 삶을 연상케 하는데, 그래서인지 근현대 러시아 문학은 마치 남일 같진 않다. 묘한 정서적 동질감을 항상 느끼곤 한다.
*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 그 것을 알기 쉽게 풀이하고 설명해 주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 것을 다른 분야의 소재에 빗대어서 이야기해 준다는 건, 깊은 학문적 식견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책이 아닐까 하고 - 감히 - 말해 본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 더 깊게, 그리고 더 넓게 생각하게 해준 좋은 책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학교 노어노문학 관련 교양 강좌에서 교재로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