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오아물 루 그림,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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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새해다. 어두웠던 원더 키디의 2020년도 이젠 과거가 되었다. 최근에 있었던 여러 가지 바쁜 일들 때문에, 1월 1일 새해를 느낄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된지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이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부동산 계약이 마무리되고, 눈도 정상을 되찾고, 회사 이동까지 완료되어야 겨우 21년의 계획(해가 갈수록 계획 대비 아웃풋은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지만...)을 짜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번에는 - 작년 말 사내 교육에서 배웠던 - 나를 알아가는 7단계 질문법과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사용했다는 사실로 유명해진 만다라트 계획표를 활용해 보는 걸로.

그래도 몇 개는 새로 받은 회사 다이어리(올해 건 작년보다 더 품질이 좋아졌다. 과장 좀 보태서 카페에서 나눠주는 레벨 정도라고 생각해도 될 듯. 굿이다...)에 간단히 기록해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아니 좋아했었던) 만화책과 소설, 경제경영도서들을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태블릿PC로 읽어보기, 20번째 자격증 취득하기(창업 보육전문 매니저 취득 후 거의 3년 만일 듯...), 저녁에는 노트북으로 치맥과 함께 드라마 연애시대 다시 완주하기, 등산과 트레일 러닝 그리고 마라톤 러닝 다시 시작하기, 턱걸이 10개 이상 해보기, 스페인어 계속 공부하기, 눈과 치아 그리고 피부 건강 챙기기 등등...

쉬는 동안 천천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 보았다. 이번에 열림원에서 새로 출간한 버전인데, 중국의 차세대 일러스트레이터 오아물 루가 그림을 그렸고, 특별히 프랑스 원서도 부록으로 실려있는 책이다. 옮긴이인 김석희 님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지를 번역한 유명하신 분이고. (참고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도 받으셨다고 한다...) 줄거리야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명작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번에도 과감히 새해의 첫 독서모임 도서로도 선정했었다. 물론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모임은 중단해야겠지만.

어렸을 때는 마냥 순수한 동화로 읽혔던 이야기가 어느새 삶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거대한 콘텍스트로 변한다. 고등학교 때, 그리고 대학생 때는 언어영역 준비를 위해, 그리고 수준 높은 대화를 위해 한 단계 깊게 들어간 성찰의 이미지들을 외운 채로 아는체했다면, 지금은 지나온 삶의 여정 속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무언가를 통해 체감하고 있다. 권위를 가장 중요시하는 임금님과 자기 일만 중요하다고 여기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고로 무장한 지리학자와 장사꾼,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허영꾼과 주정뱅이, 그리고 열심히 일하지만 자신이 그 일을 왜 하는지 모르는 체로 의미 없이 살아가는 점등원이 의미하는 바가 - 정확하게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 무엇인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또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생텍쥐페리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존재, 즉 외계인을 만난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더 높은 차원의 무언가와 접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또 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하는데 생텍쥐페리 역시 그런 경험을 한 게 아닐까. 현자들의 생각을 범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고차원의 무언가는 우리들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일 테니. 몇 년 후, 생텍쥐페리는 정말 미스터리하게도 사라져버린다. 그가 탔던 비행기의 잔해가 발견되었지만, 생사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잔해 속에서 발견된 미완성 원고 <성채>를 제외하면 <어린 왕자>가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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