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인문학 - 역사의 땅, 중국 변방을 가다
윤태옥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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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다.
변방과 중원의 길항.
꾹꾹 밟은 답사와 역사 조망이 함께한다.
1장 신장•위구르 편을 읽었다.
고선지를 언급하며, 국뽕 없이 당나라의 열린 인재 등용을 주목한다.
무엇보다 압도하는 풍경이 많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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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노래 - 실천문학의 시집 50
신경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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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을 수 없는 시대
적이 또렷하던 시대가
끝나가던 1988년에 나온 시집이다.
그때의 적 독재를 간신히 물리친 줄 알았건만
점잖은 척 멀쩡한 척
살아남아 계엄을 시도하고 그것을 옹호한다.
시인의 분노가 여전히 유효하여 허탈하다.
그러나 시인의 말씀대로 횃불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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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2-1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따금 신경림 글모음을 되읽을 적마다,
이분이 그야말로
“가난한 집안에서 살림하는 작은 어버이(또는 아저씨)”로서
온하루를 집안일로 보내었다면
아주 다르게 노래를 읊었을 텐데 싶더군요.
툭하면 술 마시는 줄거리가 튀어나와서
읽다가 지치곤 했습니다.

dalgial 2025-02-20 18:42   좋아요 1 | URL
뭐 독재랑 싸우느라 바깥일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요.
다만, 옳은 길이라 해도 시가 선동과 구호에 전락할 때 아쉽습니다.
<민요 기행>을 쓰는 시절,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들이 좋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술도 많이 자셨겠습니다.
 
가난한 사랑노래 - 실천문학의 시집 50
신경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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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지향하면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을 품더라도
반드시 배제가 드러난다.
우리를 읊다보면 필연적으로 그들을 우리 밖으로 내몬다.
신경림의 시에도 또렷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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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유생의 대결 - 조선의 성상파괴와 종교개혁
한승훈 지음 / 사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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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지방에 간 유자들은 그야말로 무속을 때려잡는다. 사당과 신상을 불태우고 무당을 핍박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다.
그렇다면, 국가의례와 공식종교를 유교화한 그들이
민속종교마저 유교화한 것일까?
지방관의 권위로 귀신은 누르지만
일상에서 유자들은 무당과 지방 의례를 두고 각개 전투를 벌이다 망국할 때까지 승리하지 못한다.
애초에 유교 초기 경전인 <주역>, <예기>에 무당이 귀신과 소통하는 구절이 버젓이 있다. 유교 초기 제사는 시동이라고 어린 아이를 앉혀 놓고 거기에 제사 지낼 귀신을 불러 지냈다. 유교는 엄밀히 말해서 다신교이다. 수많은 귀신을 인정한다. 의례를 유교적으로 공식화하는 데 목표가 있을 뿐.
유자들은 과거의 무당은 참 무당인데 타락하여 당시의 하찮은 무당이 되었다고 설명했으나,
기독교가 마녀 사냥하듯 무당을 없앨 수는 없었다.
지금 유자를 자처하는 자들과 무당으로 성업 중인 자들의 수는?
결국 무당이 이겼다.
거니를 봐라. 민주주의 국가도 접수한다.
참 무당이 있을까. 김금화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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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유생의 대결 - 조선의 성상파괴와 종교개혁
한승훈 지음 / 사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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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무당과 싸운다.
성리학이라 부르기도 하는 신유학이 사회 전반을 유교화하면서 이단인 도교와 불교를 박살냈고, 드디어 무속을 결딴낼 차례.
그러나
왕실의 여인들부터 양반들도
이유를 알 수 없었을, 수많은 병치레에 간절한 기도를 담당하는 무속을 내치기는 어려웠다.
그 훌륭한 세종대왕도 어머니 원경왕후가 요청하자 재위 중에 굿에 참여한 적이 있을 정도.
대명률에 의거하면 혹세무민하는 무당의 죗값은 참형. 조선조 내내 무당이 그 벌을 받은 사례는 없다.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태웠던, 윤지충 등의 천주교인과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그 조항에 근거해 처단 당했을 뿐.
조선의 지배계층이 무당들에게 내린 처분은
19세기까지 쭉
한양에서 추방하는 것.
유교가 무속을 정복하는 최전선은 지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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