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윤식이 어느 글에서 이승우의 소설을 한국에서 보기 드문 관념소설이라고 했다.썰을 넘어 이론에 가까울 정도로 파고드는 치밀한 생각들.그럴 법한 이야기보다 인물의 치열한 생각이 이승우 소설의 중심이다.이 소설집은 아주 짧은 관념소설들의 모음이다.작가의 말에서 ‘카프카적 질문과 톨스토이적 대답’에 이르지는 못해도 그들의 성실한 태도를 지향했다고 밝혔다.카프카와 톨스토이를 잘 몰라 이 소설집이 작가의 의도에 부합했는지는 모르겠다.다만 이야기가 끝나고 가만히 그 속에 머문 적이 몇 번 있었다.소설이 어차피 픽션인데 작위적이라는 비판 따위는 하지 않는다. 사랑과 연애 그 비슷한 것들을 얘기할 때 흥미로웠다.
자극적이지 않아도 재밌을 수 있다.그야말로 큭큭대며 읽는다.사람 좋은 마치다군.
원종태, 시로 쓴 생물도감시인이 자연을 읊을 때, 시가 우선일까 자연이 먼저일까. 대체로 시인이 읊는 모든 것은 시의 대상일 뿐. 시인은 시가 최우선인 경우가 태반이다.푸나무를 사랑하며, 푸나무를 대상으로 하는 시를 수집하는 버릇이 있는 입장에서 늘 아쉬운 것이 바로 시가 우선이라 푸나무를 그저 대상으로 소재로 동원하는 점이었다.그런데 원종태는 시가 우선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주변 생물을 소재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우선 그들과 소통하거나 그들에게 귀 기울이거나 그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머문다. 관찰자가 아니다. 그냥 그들 생태계의 완전한 일원이다. 새에서 짐승, 푸나무, 인간으로 나뉜 4부가 다 그렇다. 가만가만 읊조린다. 방해하지 않는다. 소리 소문 없이 있다가 없다. 시 따위 중요하지 않다.멋진 사람이다.
여섯 살부터“사는 게 나을지 죽는 게 나을 지를 생각했다”니그의 우울은 깊고 길다.구순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칫솔로 성모상을 깎고 자족의 세계로 가버렸고,다리를 절던 어머니는 30년 전에 가셨으며 최근에 “타버렸다”그런데 그의 우울은 매혹적이다.침잠하여 허우적대지 않고직시하고 끌어안고 요리조리 드러내기 때문에 다채롭기까지 하다.“절반은 눈물 절반은 스텝”이라서 경쾌한 느낌마저든다. “슬프고 수줍어서 한층 더 작약”이듯 그의 시가 이어지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