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살다 허물처럼 벗어 두고 간, 저 빈집들—.잡풀 우거진 마당에는 이 시골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땀 흘려 일하던, 생의 족적들이 뒹굴고 있다그렇게 시장 경제 법칙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낯빛을 한, 마을의 공동화(空洞化)—.온갖 오물들의 불법 투기로, 마치 공포 영화의 촬영지처럼 변해 있는 폐가들—누군가가 미련 없이 벗어 두고 간 허물처럼 허공에 우두커니 걸려 있다그래, 이제 누가 연출하지 않아도 꼭 빈곤 포르노 같다“ 65~66.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7팔순의 노인이 됐으나,시인은 여전히 ‘울음에는 뿔이 있어야 한다고’‘되새김질의, 그 한없는 반추처럼 돋아나는 뿔’을 들고‘우직하게’세상을 들이받는다.
허유미를 읽고 싶어 들였다.그를 포함해 제주도에 사는 네 분의 시인이 함께 펴낸 시집이다.허유미는 매혹적이다. 끌린다. 찬찬히 읽는다.“이것은 새와 나 사이의 거리노트 속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둥글다는 다가오는 말일까멀어지는 말일까접시 위에 노른자 무리들이 군무를 펼치고 있다식탁 위 양념통과 그릇 말라 가는 과일이 숲을 이루고 난반사되는 지저귐 아래서포크로 노른자를 찌르면 새는 깨진다은유가 끝까지 다정했던 적이 있었는가 잠시 망설이면 타인이 된다부리처럼 식은 밥을 쪼아먹다고독과 무리 사이 불안한 거리에서 은유는 시작된 건 아닌지 골몰한다노트 속에 남은 새들의 발자국 무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고독” 32-33, <본래>
“정과 망치를 들고 새벽으로 가는 그림자들 한사코 나아가는 저 역사를 누가 말릴 것인가온전한 잠 이루지 못하고 중심을 일으켜 세우는 우리들 변방의 노래를” 29“가위눌려 허우적이는 목마른 새벽이면 한없이 추락하는 변두리 깊은 방으로 언제나 고향 가는 길이 나 있다” 105‘변방의 노래’와 ‘고향 가는 길’고영서 시의 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