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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ㅣ 창비시선 238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4년 8월
평점 :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68
이 시집에 가득하다. 시인의 고향에서 길어낸 시들이다.
‘그믐이라 불리던’ 조모, 눈에 검불이 들어간 화자의 눈동자를 ‘핥아주시던’ 어머니,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화자의 ‘숨결이 꺼져가는 화톳불같이 아플 때 머위잎처럼 품어주던’ 화령 고모, ‘친정 왔다 돌아가는 눈물 많은’ 누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가는 절름발이 학수형님 등등의 사람들이 있다.
시인의 말에서 “꽃이랑 풀, 낯빛이 어두운 사람, 별과 여울, 미루나무를 만났다. 습지와 같은 그늘을 드리운, 낱낱이 오롯한 존재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대화가 이번 시집을 낳았다.”고 밝힌 바대로 온갖 푸나무와 짐승들과 벌레들이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 그 틈이자 아득한 그것이 가슴을 후빈다.
“무논에 써레가 지나간 다음 흙물이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
그는 한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을 본다
한 획 필체로 우레와 침묵 사이에 그는 있다” <황새의 멈추어진 발걸음> 27쪽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이 사이 이 사이를 오로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의 혀끝에서 뭉긋이 느껴지는 슬프도록 이상한 이 맛을 - P33
뜨락 위 한 켤레 신발
어두워지는 저녁에 뜨락 위 한 켤레 신발을 바라본다 언젠가 누이가 해종일 뒤뜰 그늘에 말리던 고사리 같다 굵은 모가지의 뜰! 다 쓴 여인네의 분첩 긴 세월 몸을 담아오느라 닳아진 한 켤레 신발이 있다 아, 길이 끝난 곳에서도 적멸은 없다 - P32
어리숙한 나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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