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 문학의전당 시인선 81
김명기 지음 / 문학의전당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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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이 없으니 같은 삶도 없고, 그러니 시도 다 다르다.
그러나 분류 가능한 범주 안에 다들 있다.
시대나 지향이나 학벌, 고향, 성 등.
김명기는 일반적인 특정이 어렵다. 이런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러시아 선적 대게잡이 배에 조업감독관이’ 되어 ‘수평선 보이지 않는 바다에 간 적이 있’고,
‘목숨 없는 붉은 고깃덩어리에 가해지는 칼질’을 하느라 ‘오른손 검지 끝마디에 콩알만 한 굳은살이 박인’ 사람이다.
그렇다. 잉여로 사는 예술가인 양하는 시인이 아니고, 노동의 의미를 번뇌하는 노동자도 아닌,
‘시작과 끝이 모호한, 아슬한 한 생’을 살고 있다.
대개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시의 대상이 되었던, 소외받는 삶이 자기를 읊는다.
매우 놀랍고 새롭다.
2부까지만 읽었다.
몇 편 밑줄긋기에 남긴다.

문짝 떨어진 통시 속 움츠린 햇살마저도
푸석하게 낡아버린 오후
그래도 때가 되면 저 혼자 피었다 지는
백일홍 나무가 서러워 다가서는 발걸음을
한사코 잡아채는 환삼덩굴이여
긴장한 고양이들 낮은 울음소리여
살아 움직이는 낯선 부재의 모든 슬픔들이여 - P23

숱하게 지나간 시간 속
무수한 각오들은
저 붉은 꽃의 한 호흡 같은 것이라
다만 그 순간만 지독했을 뿐이네
그까짓 혁명성을 버리고
이까짓 시를 택하고서야
비로소 터져 나오던 눈물처럼
채 여물지 않은 봄날
창부타령 같은 옅은 비 한 자락 사이



꽃 떨어지는 소리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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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1 - 방랑하는 자연주의자, 늑대왕 로보 시튼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이마이즈미 요시하루 스토리 / 애니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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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왕 로보는 역시 시튼 동물기의 백미다.
자연주의자이자 집요한 사냥꾼인 시튼이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늑대왕 로보와 대결하는 얘기는
그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서산데
그것을 다니구치 지로의 정밀한 그림과 함께 보니 더할 나위 없다.


도굴꾼이 문화유산 전문가이듯
자연주의자를 자처하는 이가 최고의 사냥꾼이 되는 것은
웃기게도 아이러니가 아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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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 인조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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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교육을 받아도 좋은 임금 되기가 어려운데, 현실과 동떨어진, 한족 중심 중국만 따르겠다는 기치와 자기도 뒷날 친아들과 며느리, 손자를 죽이니 도찐개찐 되는, 광해군이 패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반정을 일으켰으나 자질 없이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
그와 광해군 시기 집권 당파 북인을 절멸시키고 권력을 잡은 서인들의 합작품인 병자호란. 백성들만 죽어 나갔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인조가 거의 최악이 왕이었다고 평가한다. 왕 묘호에 ‘어질 인’자를 넣은 것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 어쩌면 그의 잔혹함을 조롱하기 위해 신하들이 택한 역설은 아닐까”라고 평한다.
김상용의 죽음을 순절로 단정한 것은 의문. 강화도가 함락되자 화약을 일부러 터뜨려 순절했다고 표창, 숭앙하고 그의 자손들이 노론의 핵심이 되어 떵떵거리고 나라를 주무르며 살게 되는데, 당시 사건의 최초 보고자인 강도유수 윤이지는 단순 사고사로 보고했었다. 병자호란 이후 간신히 돌아온 환향녀 중 정절을 잃었다는 명목으로 제일 먼저 이혼당한 윤씨가 윤이지의 조카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습하지 못해 나라를 결딴낸 것들이 지들 때문에 고통 받고 간신히 돌아온 여인들을 모욕하고 배척한 것은 참으로 끔찍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부분을 조금 익살스럽고도 짧게 다뤄 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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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이숙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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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이 터지고 울분에 차 자꾸 책을 놓는다.

<환향녀 윤씨>
‘당시 정치인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준 사건’

병자호란 뒤 인조가 왕 노릇 할 때의 일.

뒷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장인인 장유가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제 며느리의 정절이 의심되므로 자기네 집안 제사를 맡길 수 없으니 아들과 이혼시켜 달라는 요구를 조정에 함.

최명길만이 그에 반대
“최명길의 ‘한 사람의 소원이 백 집의 원망이 된다’는 표현은 정승을 지낸 데다 봉림대군의 장인으로 ‘나라 어른’의 자리에 있는 장유의 사회의식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속환 부녀의 보호를 주장한 최명길은 그녀들이 적에게 정조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구체적 예를 들며 재삼 강조한다. 사실 생존의 문제가 더 긴박했던 상황을 목도한 최명길에게 정조를 잃었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정조를 강조하는 사대부들의 논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었을 뿐이다. 명분론자들은 돌아온 부녀의 이혼을 국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최명길에게 ‘나라를 오랑캐로 만들 사람’이라는 비난을 쏟아내었다.”

그 와중에 장유가 죽고, 그의 아내가 상소를 올린다. “죽은 사람의 소원이라며 떼를 쓰는 안사돈에게 왕은 훈신의 독자임을 감안하여 장유의 아들, 장선징의 이혼을 특례로 허락하고 그 외 어떤 이혼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영을 내렸다. ‘오염된’ 며느리에게 조상 제사를 맡길 수 없다던 부모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장선징이 선례가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대부의 가풍’에 누가 될까 환향한 부인과 갈라섰다.”

윤씨가 호란으로 끌려가기 전에 나은 아들은 후처에 입양하여 살리는 듯했으나,
“정축년 변란 초에 실절한 부인을 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실절을 가르친 것입니다. 법을 의롭게 제정해도 악용될까 걱정인데 이런 식으로 법을 만드니 어찌 백성을 단속할 수 있겠습니까. 듣건대 장선징의 집에 실절한 부인의 소생이 있는데 상신相臣이 그와 혼인을 의논했다 하니 추잡함이 막심합니다.” _송시열, 〈기축봉사己丑封事>
그 아들까지 추잡하다며 연좌하여 대놓고 사회에서 매장시켰다.

추잡한 자들! 부끄러움 없는 것들. ‘존주대의’라며 이미 망한 명나라를 추종한답시고, 막 중국의 패자가 된 청나라를 오랑캐라 업신여기는, 지랄발광에 가까운 오만을 일삼다 결국, 자기들이 일으키고 약해서 막지 못한 대환란의 무고한 피해자들을 그놈의 얼토당토않은 윤리로 재단하여 핍박하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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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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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악 가득한 80년대 사람을 보는 듯하다.
무슨 애인이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많이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아내도 있고, 삶의 고단함도 있는데.
느닷없는 똥폼도 잡고.
그런데 묘하게 끌리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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