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이숙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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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이 터지고 울분에 차 자꾸 책을 놓는다.

<환향녀 윤씨>
‘당시 정치인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준 사건’

병자호란 뒤 인조가 왕 노릇 할 때의 일.

뒷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장인인 장유가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제 며느리의 정절이 의심되므로 자기네 집안 제사를 맡길 수 없으니 아들과 이혼시켜 달라는 요구를 조정에 함.

최명길만이 그에 반대
“최명길의 ‘한 사람의 소원이 백 집의 원망이 된다’는 표현은 정승을 지낸 데다 봉림대군의 장인으로 ‘나라 어른’의 자리에 있는 장유의 사회의식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속환 부녀의 보호를 주장한 최명길은 그녀들이 적에게 정조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구체적 예를 들며 재삼 강조한다. 사실 생존의 문제가 더 긴박했던 상황을 목도한 최명길에게 정조를 잃었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정조를 강조하는 사대부들의 논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었을 뿐이다. 명분론자들은 돌아온 부녀의 이혼을 국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최명길에게 ‘나라를 오랑캐로 만들 사람’이라는 비난을 쏟아내었다.”

그 와중에 장유가 죽고, 그의 아내가 상소를 올린다. “죽은 사람의 소원이라며 떼를 쓰는 안사돈에게 왕은 훈신의 독자임을 감안하여 장유의 아들, 장선징의 이혼을 특례로 허락하고 그 외 어떤 이혼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영을 내렸다. ‘오염된’ 며느리에게 조상 제사를 맡길 수 없다던 부모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장선징이 선례가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대부의 가풍’에 누가 될까 환향한 부인과 갈라섰다.”

윤씨가 호란으로 끌려가기 전에 나은 아들은 후처에 입양하여 살리는 듯했으나,
“정축년 변란 초에 실절한 부인을 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실절을 가르친 것입니다. 법을 의롭게 제정해도 악용될까 걱정인데 이런 식으로 법을 만드니 어찌 백성을 단속할 수 있겠습니까. 듣건대 장선징의 집에 실절한 부인의 소생이 있는데 상신相臣이 그와 혼인을 의논했다 하니 추잡함이 막심합니다.” _송시열, 〈기축봉사己丑封事>
그 아들까지 추잡하다며 연좌하여 대놓고 사회에서 매장시켰다.

추잡한 자들! 부끄러움 없는 것들. ‘존주대의’라며 이미 망한 명나라를 추종한답시고, 막 중국의 패자가 된 청나라를 오랑캐라 업신여기는, 지랄발광에 가까운 오만을 일삼다 결국, 자기들이 일으키고 약해서 막지 못한 대환란의 무고한 피해자들을 그놈의 얼토당토않은 윤리로 재단하여 핍박하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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