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수에 담긴 얘기 중 가장 이채롭다.패전 직후 미군정 시기 유교수가 어느 건축에 만들어진 사립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그 건축에 얽힌 여러 얘기가 이어진다. 아마도 23권부터 얘기는 시작되었겠지만, 이 24권만으로도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충분하다.결국 깊은 골의 갈등이 풀리고 선량함이 버텼으며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만화를 본다.
그의 자리주체는커녕 관찰자로라도 한국 시에 이런 자리가 등장한 적이 있던가. 괴롭지만 비굴하지 않게 그가 머문 몇 자리를 적어본다.도축장“죽음 대수롭지 않은 여기 목 떨어지고 다리 잘린, 속내까지 다 파헤쳐진 핏빛 축생의 응고되지 않은 주검을 이리저리 끌고 밀며 다니는 내가 안녕하듯 저렇게 지는 꽃그늘 속 또 다른 생은 안녕하다” 16폐광지대“모든 영롱함이 몰락하기 전까지 다만 일용을 위해 악착같았던 날들을 안일한 낭만이 밟고 지나가는 봄날 오후 나 그 증오와 사랑 사이에서 나고 자랐음이 분명한데 저 언덕배기 어디쯤에선가 검은 화차 위로 팔매질하던 하얀 국돌처럼 먼 곳으로부터 그리움 하나 챙기지 못 하고최초의 불길로부터 도망치듯 이곳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다” 23무덤“더 이상 흉질 곳 없는 이를 위해 굴삭기가 작은 구덩이를 판다 딴에는 저이도 떠돌 만큼 떠돌다 제일 마지막에 돌아가는 것이리라 부랑의 육신은 봉인 된 채 또 어디를 향해 떠나갈까문득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그의 얼굴이 궁금해지는 건 우린 서로 땅속으로 스며들 유전자를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겠지“ 84원양어선“뱃머리에서 얼음 깨는 우즈백 사내의 긴 이름을 외우다 이름만큼이나 낯선 그의 고향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곳은 생의 항로에서 밀릴 대로 밀려버린 자들의 마지막 영토였으므로” 88
당연한 결과인데도편안하지 못한 나날을 보내느라책을 읽지 못했다.이제 진짜 봄이 왔다.용서니 관용이니 신중이니 하는 말로 또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국민을 계엄으로 옥죄고 억누르려 했던 자들을발본색원해서그간 그들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꽃길을‘화염길‘로 바꿔야 한다.시집 내용은 제목과 달리 담백하다.화염길은 실크로드 열사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