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하양 걷는사람 시인선 101
안현미 지음 / 걷는사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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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보러 부여에 가서
‘비가 온다’로 시작해 ‘비가 간다’로 끝맺는
<탐매>에서 화자는
“부여의 옛 지명은 사비였다
>모텔 사비에 든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왔다
>분명한 건
>나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바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이 지경이 되었다” 26쪽
고 했다. 그 ‘지경’이 궁금했다.

‘어떤 밤엔 술에 취해 잠들고 어떤 밤엔 술을 담그다 잠들었다 어떻게든 흘러가리라 그것이 딱 내수준이었지만 내 수준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고 부끄러워하며 죽지도 않을 계획이다’ 15쪽 <사과술>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처음처럼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참이슬을 마신다 소주 취향조차 없는 나는 …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산다’ 45쪽 <취향 없음>

앞집 주인이 병이 깊은지 따지 않아 가을이 깊어 가도록 대추나무가 달고 있는 빨간 대추를
‘어디로도 가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빛나는 대추’라고 생각하며
‘어디로도 갈 수 있으면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방범창 안 여자가
>대추들처럼 매달려 있다
>대롱대롱
>겨울이 오면 떨어질 대추들처럼
>매달려 있다
>삶에’ 60쪽 <대추>
라고 자신을 차갑고 쓸쓸하게 바라본다.

‘이판사판
>원없이 살다가
>해국 옆에 앉아 담배 피우는 여자가 됐다’ 74쪽 <구룡포>

그 지경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뭐 그럴 리는 없지만, 인연이 닿는다면 그 풍경 안에 머물고 싶을 정도.

화자는 ‘헛소리 같지만’이라고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절대로 찬동해 마지않는 말인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는다 그것밖에 없다’ 13쪽 <탁구>
라고 하면서

‘(더 이상)
>새도 노래하지 않고
꽃도 피어나지 않아도
>(끝끝내)
>돌아와 라켓을 잡듯
사랑을 붙잡겠다고’ 84쪽 <(나의) 탁구론>

한다.
그의 스매싱을 받고, 드라이브라 배웠으나 이제 탑스핀이라 부르는 공격을 매기며 핑퐁핑퐁 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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