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시이게 하는 글자나 요소를 뜻하는 시안詩眼이 한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시에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을 모실 때도 점안點眼이 가장 중요하듯 시에는 시의 눈이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말이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한 편의 시로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바로 그 말 하나! 이것이야말로 한 작품의 빛나는 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말이 지닌 신비하고도 넉넉한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그냥 대충 소감이나 주장을 설파하는 시는 싱거워서 못 읽는다.” 133-134. 시작노트 모든 사라진 것들과의 해후 ‘하릅송아지’나 ‘엇송아지’처럼 농경문화와 함께 사라져버린 말들이 등장하여 벙벙해지기도 하지만, ‘손에 쥔 기차표 하뭇해하며’, ’엇송아지 한 마리가 강중강중 뛴다‘, ’낚시바늘 답삭 물고 몸부림하고 싶네‘,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등에서 볼 수 있듯 센말만 주로 써서 있는 줄도 몰랐던 여린말을 찾아내 알려주는데, 그 말결을 생각해 보면 참 딱 그 자리에 어울려 경탄한다. 생의 비의를 점잖게 읊을 수도 있으나,”소나무 가지에서 한댕한댕 흔들리는풍경 소리홋홋하고/낮곁 지나수련 잠드는 소리캄캄한 우주를 흔든다/오늘밤들고양이가떠돌이별처럼으앙으앙 울겠다“ 114, 무심사탱탱한 삶의 비루를 숨기지 않는다.“머리가 하얀 초등학생 셋은무중력 우주선을 타고저녁놀 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방학리에 왔으니 학 한 마리 잡아다가 안주로 구워먹자 씨벌!종택이와 종명이는 내 말에 장단을 맞췄다- 그럼 그렇고 말고지, 네미랄!광속보다 빠르게 블랙홀을 가로지르는 학을 쫒아가다가그만 나는 정신을 잃고종택이 경운기에 실려 돌아왔다” 124, 블랙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