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의 시를 읽다 보면 그가 60대 후반이란 사실에 놀란다. 치열하고 날이 서 있기 때문이다. 정서도 시각도 유순하지 않고 날카롭기 그지없다. 60대가 청년인 시대인데 오해한 것일까. 그는 시에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법이 없다. 흐릿하게 툭 던질 뿐이다. 그래서 매번 시의 화자를 대할 뿐, 이규리라는 시인을 떠올리지 않고 읽는다. 화자는 매우 아팠고 어둡다.“머뭇거림과 갈등과 고립과 나는, 안 되는구나” 025“뭔가 하면 할수록 비천해갔다“ 026”때때로 병을 더 연장할까 싶을 만큼 생은 무료했고/통증도 초기는 아름다웠다/궤양처럼 뿌연 해가 번지고약이 알록달록해질수록 혈은 무거워갔는데/그때 약국을 나서다가 현기를 만났다” 052“나는 잘살지 않았으므로누가 알은체하면 두려움이 많았고…고립과 우울이 1+1” 070“어제는 아프고 아름다움은 위태롭고” 109“종일 말하지 않는 아이, 웃지 않는 아이, 세상을 너무 일찍 닫아거는 비애/나의 오랜 선생이었던 이것” 110“원인도 모르는 슬픔으로 격리되겠습니다” 130 그 바탕에는 ‘없음에 대한 일’이 있다. 삶이란 본래 허무한 것이라는 인식. “꽃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어” 029 그는 ‘첫눈’. ‘뭉쳐 고이 방에 두었던’. ‘유일하게 허락된 의미’인 ‘허공이라는 걸 가지고 싶었으’나 그가 고이 쥔 눈은 허공이었으며, 결국 ‘물기도 없이 흩어졌다’. 그러니, 이율배반으로 보이는 행로를 갈 수밖에 없다. 쥐었으나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모순이 아니다. 가능한 일이다. 삶이 그러하고 죽음이 그러하듯이. “돌아갈 수도 또나아갈 수도 없는 저 발가벗은 햇볕 속을/느리게 아주 느리게 기어가고 있는지상의 춤,/멀어라” 021“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불가능언제 어디서나 불가능한 가능/갈 수 없어요가고 싶어요” 028 이전 두 시집을 읽어 봐야겠다.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