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즐거운 산지니시인선 11
표성배 지음 / 산지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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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성배는 마산 어느 회사의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아니라, 본래 노동자 삶의 유연성을 위해 선진 자본주의사회에서 고안된 비정규직 노동자 제도는 아이엠에프 이후 이땅에 이식되고는 오로지 사용자 위주의 자유로운 노동자 해고 프리패스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서 안정성은 고사하고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이다.
시인은 정규직 노동자이므로 이수경 소설에 나오는 해고 노동자들의 풍전등화와는 다른, 안정된 삶을 바탕에 깔고 노동자의 현실과 미래를 고민할 수 있다.

“1층에 살다 11층으로 이사했다
/좀 더 하느님 가까이 가고자 아버지처럼 나도 청춘을 바쳤다
/사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지하로 떨어지지 않은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분명 지하에는 하느님이 없기 때문이다” 60

여전히
‘안전사고가 안전한 사고라는 모순’을 꼬집고, 92
‘제복을 칼같이 차려입은 용역들을 앞세우고’ 오는 ‘정리해고’(94)가 두려운 노동자이다.

3부에 집중적으로 공장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은 수백 톤의 중량물을 옮기는 운반용 기기인 트랜스포터가 비 맞으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가만있다
웅크리고 있다
겨울 곰 같다
폭풍전야 같다
거대한 옛 왕들의 무덤 같다
뚝 떨어지는 한 방울 눈물 같다
울컥한다
왜 울컥하는지 모르게 울컥한다” 87

“내 귀가 얇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새소리요 바람소리요 물소리라
/오히려 쟁쟁거리는 기계소리가 더 정다웁다 하면 누가 믿을쏘냐” 114
하는 천상 노동자.

“옥상에 망루를 짓고 십자가를 진 세입자들이나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며 노구를 던지는 주민들이나 쫓겨난 일터로 돌아가고자 신발 끈을 묶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달빛과 달맞이꽃 사이처럼 그런 아침과 저녁을 맞으면 좋겠다” 21
하는 순한 노동자.

그러나, 노동자건 아니건 우리 모두를
“내일 아침이 냉장고 안에서 신선하게 보관되어 있기를 바랄 뿐 이 밤은 책임져 주지 않는다” 25

“따지는 것도 사실 배가 부르면 입술이 날카롭지 않고 눈매가 새파랗지 않다” 53
다들 먹고 살 만큼 벌고 인상 안 쓰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맹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 하였다. 그 도덕 주창자도 민생의 안정을 도덕의 우선으로 꼽은 것이다.
공동체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저시급이라는 먹잇감을 던져 놓고 자영업자와 알바를 싸우게 만들고 저 높고 시원한 데서 팔짱 끼고 구경하는 자들이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놓고 ’투쟁‘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고 역시 구경하는 자들이
문제라는 것을. 임금이 아니라 지대가 문제라는 것을. 복리후생의 차이가 아니라 그 구조가 문제라는 것을.
시인은 “외치고 있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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