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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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의 옛날이라 하더라도 옛날은 외국이나 다름없다. 어떤 문법책의 예문에 그런 말이 있었다. 물론 이 옛날은 3백 년 전이거나 천년 전의 옛날, 역사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그런 옛날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20년 전이나 30년 전, 내가 철들어 보고 느끼며 살았던 나날이라고 해서 다른 나라의 시간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문득 몸이 떨린다. 기억이 내 존재의 일관성을 보증해준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어느 시간 속으로 내가 찾아내려 간다면, 나는 거기서 다정하고 친숙한 물건들을 다시 만나기보다, "나는 여기서 산 적이 없다"고 말하게 될 것만 같다. - P145

사실은 공허하게, 움직일 수 없이 거기 있기에 다른 것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사실주의 예술의 뛰어난 미덕이다. - P163

덜 끔찍하다는 것은 사실 더 끔찍하다는 말이다. 봉천동의 마지막 작은 집이 허물어지고, 정릉의 고층 아파트들을 둘러싼 원주민촌이 이주를 마저 끝내기 전까지는, 저 빈집의 두터운 빗장이 다 삭기 전까지는, 우리가 제사상 앞에서 울리는 절이 아직 허망하지 않다. 그러나 없는 신에게 절을 하는 것보다 없어질 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 덜 끔찍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불안은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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