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천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11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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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아는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 시가 누군가의 입맛을 잃게 해서.” 77

자기가 지독하게 어둡고 무거운 것을.

“생은 선택된 적이 없다. .. 엉겁결에 생에 들어서고, 생의 한가운데 놓인다. 생은 시달리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깨달음이 있는 것 같지만 생판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지금 이 생이 무덤이다. 생은 우리들의 무덤이다. 생무덤이다.” 76

세상이 생무덤이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이렇게 되어버린 인생은 원래 이렇게 되게끔 정해져 있었다는 듯.” 25
그 절망은 숙명인 것이고. 시집 곳곳에 낭자하다.

하지만,
“인생에는 지리멸렬한 요소가 있다. 깔끔하게 털지 못하는 그 무엇. 질척거리는 헛소리 같은 게 있다. 가늘고 긴 인생들에게 불꽃 몇 개가 날아든다. 찬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헛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80
이 정도의 냉소면 충분하지 않나. 허망해도 계속되는 ‘헛소리’ 나불대는 것. 함께면 더 좋고.
터덜터덜 가는 것.
이렇게

시정잡배의 사랑


시정잡배에겐 분노가 많으니 용서도 많다.
서늘한 바위 절벽에 매달려 있는 빨갛게 녹슨 철제계단 같은 놈들.

제대로 매달리지도,
끊어져 떨어지지도 못하는 그런 사랑이나 하는 놈들.
사연 많은 놈들은 또 왜들 그런지.

소주 몇 병에 비 오는 날 육교 밑에 주저앉는 놈들.
그렁그렁한 눈물 한 번 비추고 돌아서서 침 뱉는 놈들.
그러고도 실실 웃을 수 있는 놈들.
그들만의 깨달음이 있다.
시정잡배의 깨달음.

술국 먹다 말고 울컥 누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물가물하지만 무지 아팠다. 죽을 만큼 아팠다.
그 술국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또 웃는다.

잊어버리는 건 쉽지만
다시 떠오르는 건 막을 수가 없다.
그게 시정잡배의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십팔번 딱 한 번만 부르고 죽자.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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