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으로 읽는 세계사 - 10가지 빵 속에 담긴 인류 역사 이야기
이영숙 지음 / 스몰빅인사이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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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으로 읽는 세계사

 : 이영숙

 : 스몰빅 인사이트

 : 2022/03/26 - 2022/03/31


요즘 이런 책이 유행인가?

비슷한 류의 책들이 많이 나왔다. 단순한 세계사가 아니라 질병, 빵 등 매개체를 통해 세계사를 풀어나가는 책.

나도 음악으로 읽어보는 세계사 이런책을 한번 내보고 싶었는데 출판사에서도 이런 류의 책들이 요즘 트렌드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빵으로 읽다보니 결국 유럽사가 되어 버렸다.

빵의 이름을 알려주고 그 빵을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이 붙고, 그 빵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의 역사가 이어진다.

루이 14세가 후추와 소금을 좋아해서 그것만 넣어서 음식을 먹어서 유럽의 음식문화에서 후추와 소금이 중요해졌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책에는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메디치가문의 딸들이 시집오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려준다.

프랑스가 외부의 음식문화를 잘 버무려 자신들만의 문화로 잘 수용해낸 것 같다.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책을 읽으니 새롭게 알게 된다.

좋다.


9% 빵은 역사가 길다. 세계 최초의 도시로 꼽히는 우르에도 기록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기존에는 빵이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에서 시작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더 이전에 빵을 먹은 흔적이 속속 발견되면서 언제부터 인간이 빵을 먹었는지는 미궁에 빠져있다

13% 플랫브레드 중 가장 대표적인 라바시는 땅에 묻어놓은 타니르라고 부르는 화덕 벽에 얇게 민 밀가루 반죽을 붙여 구워낸다

13% 너는 왜 빈둥거리고 있느냐? 학교에 가고 숙제를 외워라. 네가 (공부를) 마쳤으면 내게로 오너라. 길거리를 떠돌아다니지 말아라.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알아듣겠느냐? 거의 4,000년 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부하고 다그치는 말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촌음을 아껴 공부에 매진하라는 충고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는 잔소리와 꽤 닮았다

21% 이집트인들은 이 나일강의 범람 주기와 시기, 그 치수 기술을 위해서 달력과 천문학과 수학이 필요했고, 범람 후 원래의 농지를 구획 짓기 위해 기하학이 필요했다. 나일강이 이집트 문명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셈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티그리스와 유프라데스강이 중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23% 토리노 파피루스 문서가 발견된 이후, 람세스 3세가 재위한 지 27년째 되던 해(기원전 1152년)에 급료인 빵을 제때 받지 못한 100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 파업했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기존의 역사는 수정되었다. 급료를 받고 일하는 지위라면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가 되니 말이다

25% 넷플릭스의 문화 다큐멘터리 COOKED의 3부를 보면 빵과 관련된 영상이 나온다. 모로코의 한 마을에서는 수확한 밀을 가루로 빻을 때 빻은 곡물가루의 10퍼센트를 제분 삯으로 떼어주는 방식으로 마을의 제분소를 이용한다

26% 천연발효종을 이용한 샤워도우 빵은 소화도 쉽고 맛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엔 건강, 웰빙, 소확행 등과 같은 트렌드에 맞추어 제과 제빵소에서도 직접 연구하고 만든 샤워도우를 파는 빵집들도 있다

33% 식문화만 보더라도 유명한 셰프들이 공식 대화를 할 땐 프랑스어로 된 요리용어를 쓸 정도였다. 옛날,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를 동경하여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딸이었던 카트린을 며느리로 맞았고 그 결과 이탈리아 식문화가 프랑스의 식탁을 업그레이드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39% 클레멘스 7세의 실정으로 로마는 1527년 에스파냐 황제 카를 5세에게 점령된다. 세계사에서 흔히 로마 약탈로 언급되는 사건이다. 그 후 피렌체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클레멘스 7세 교황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40% 카트린은 이름뿐 왕비로 소외당하고 디안이 왕의 총애를 받으며 왕실을 흔드는 상황은 앙리 2세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카트린은 온갖 꼴을 다 보고 겪으면서도 26년간이나 남편과 디안 뒤에서 묵묵히 참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그의 정부에게 맞서거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남편의 관심을 끌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남편 사후에 카트린은 디안에게서 쉬농소 성을 빼앗고 왕으로부터 받은 보석들도 압수한 채 궁 밖으로 내쫓았다

44% 이탈리아만 프랑스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식문화 또한 프랑스에 깃들어 있다. 이 역시 스페인의 두 왕녀가 프랑스로 시집가면서 영향을 끼친 것이다.

47% 마카오는 중국의 식자재로 광둥요리와 포르투갈요리를 퓨전한 매케니즈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50% 사그레스 성에는 항해에 필요한 정보와 지리 관련 지식이 각종 지도와 항해 관련 서적, 기행문 등과 함께 수집되었다. 자료가 축적되어가자 이 자료를 보기 위해 세계 도처의 전문가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나눈 대화와 연구가 다시 기록으로 남아 사그레스 섬에 보관되었다. 이러한 선순환으로 사그레스 성은 거대한 학교요 도서관이자 천문대로 항해를 준비하는 두뇌 역할을 하게 되었다.

52% 그는 평생 권력 욕심 없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탐함과 교육 사업에 헌신했다. 엔리케가 실지로 직접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 일은 없었지만 해양 탐험에 쏟은 공적들로 인해 그에겐 항해 왕자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그의 리더쉽과 용기, 도전은 오늘날에도 자주 언급되곤 한다

63% 일암 이기지가 북경을 방문하고 일암연기는 60년 뒤 연암이 쓴 열하일기의 본이 되었다. 이기지는 박지원, 홍대용, 등 북학파, 실학파들의 롤모델이었을 정도로 후대 북학파 지식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67% 마젤란의 최후는 끔찍했다. 최정예 병사 60명을 이끌고 포함외교가 무엇인지 보여 주려 했지만, 라푸라푸와 전투를 벌이던 중에 그는 필리핀 부족 병사들에게 머리엔 창, 다리에는 독화살이 박히는 등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이에 마젤란은 급히 배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결국 라푸라푸 병사들에게 끔찍하게 살육을 당했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74% 토르티야에 음식을 완전히 쌌는지, 반으로 접기만 했는지, 돌돌 말았는지, 아니면 부재료 없이 토르티야를 튀겼는지에 따라 케사디야, 타코, 부리또, 나초 등의 음식이 되니, 기승전 토르티야다

76% 콜럼버스와 코르테스, 피사로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겉으로는 십자가와 탐험 정신이었지만, 속으로는 향신료와 황금으로 대변되는 물욕이었다. 황금을 향한 욕심은 커다란 동기가 되어 침략과 약탈을 추진하게 했다

78% 말린체에게는 정복자를 위해 부역한 배신자라는 차가운 시선 한편으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운명에 순응했던 여인이란 동정적인 시선도 있다. 식민지 문화의 특성으로 꼽히는 숙명주의를 일컫는 스페인어 말리치스모라는 말도 그녀의 이름에 유래되었다

84% 이슬람법상 무슬림이 먹을 수 있게 허용된 음식인 할랄 식품이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도 율법에서 허용된 식품이 있는데, 그것이 코셔다. 유대인들은 유대교 율법에 따라 돼지고기나 조개류 등을 제한하는 코셔 식품을 꽤 까다롭게 지키다 보니 그것이 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86% 로스차일드 가문의 유대인 금융인 야콥시프는 러일전쟁 대 일본 국채의 절반을 사서 일본의 전쟁자금을 도왔다. 일본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러시아가 미워서였다. 그랬으니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는 러시아가 포그룸으로 유대인을 박해했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91%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위도가 높아서 추운 날씨가 오래 계속되다 보니 난로와 그 위에 뭉근히 끓이는 수프가 일상이다. 추운 날 뜨거운 수프에 흑빵을 부수어 넣어 먹으면 속이 확 풀리는 든든한 한 끼가 된다

95% 명칭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도시는 제정 러시아 때인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만들어진 이래 200년간 로마노프 왕종의 수도가 되면서,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구식 발전 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표트르 대제 덕에 시인 푸쉬킨은 이곳을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을 만큼 유럽의 건축 양식이나 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인 도시다

95%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당시 레닌그라드라는 작품을 작곡했는데, 우울하거나 비탄에 잠긴 선율이 아니다. 의외로 광기인지 결기인지 베짱인지 모를 힘이 느껴지는 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느낀 전쟁의 느낌을 그대로 선율로 옮겼다는 말과 함께, 레닌그라드인들을 기억해달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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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 - 신화가 아닌 보통 사람의 삶으로 본 그리스 로마 시대
개릿 라이언 지음, 최현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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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

 : 게릿 라이언

 : 다산초당

 : 2022/03/26 - 2022/04/04


예전에 읽었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생각하고 읽으면 안된다.

이 책의 컨셉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일상생활에 대한 역사책이다.

왕이나 영웅의 이야기가 주류인 그리스로마사에서 간만에 민중 또는 서민의 이야기로 채워진 책이 나왔다.

왕이나 귀족의 이야기는 기록도 많이 있지만 서민들의 이야기는 기록이 많지 않다보니 중간중간 추정과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은 당시 기록을 참조했기 때문에 터무니 없는 추정은 아닌것 같다.

검투사들이 보리 같은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이라든가, 그리스 사람들의 동성애의 모습에서 성적 주도권은 남,여가 아니라 자유민 또는 성인같은 계급에 따라 결정되다는 것, 마차가 생각보다 불편했다는 것 등은 새롭게 안 사실이다.

역사라는 게 어릴 때는 영웅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는데 나이가 들다보니 사람사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간다. 물론 그렇다고 영웅의 이야기에 흥미가 떨어졌다는 건 아니다.

단지, 영웅의 이야기 때문에 실제로 죽고 고통받았던 민중들에게도 이제는 눈길이 많이 간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한국사도 이런 백성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책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p33 황제들은 특히 사자를 좋아했다. 도미티아누스는 자기가 싫어하는 원로원 의원을 사자 중 가장 사나운 놈과 강제로 싸우게 했던 적도 있다.

p40 로마의 원형경기장의 야만성과 고내 노예 제도의 비정한 비인간성처럼 영아 유기도 고대인들과 현대인을 구분하는 간극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로마인들에게 인생은 투쟁이었으며 가족을 가지는 것은 힘든 선택을 요구했다.

p49 많은 그리스, 로마인은 자기 의사가 마침내 자기 의술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고 장의사가 되었다고 농담한 시인에게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p54 로마인들은 그리스를 정복했을 때 그리스인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좋은 음식을 먹고 산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로마의 상류층은 그리스의 요리사와 조리법을 들여오기 시작했고 요리사와 조리법 양쪽에 경쟁과 과시라는 로마인의 정신을 주입했다.

p63 포도주를 마시는 교양 있는 방법은 물에 섞는 것이었다.

p64 건강한 사람들에게 폭음은 사교적 의미가 컸다. 특정 종교행사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만취가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장되기도 했다.

p103 디오클레티아누스 최고 가격령에 따르면 제빵사는 농장 노동자보다 2배 더 많은 돈을 벌었고 벽화 화가는 3배, 작업 화가는 6배 더 많은 돈을 벌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p125 로마에서의 삶을 죽음으로 향하는 전주곡으로 만들었던 주역은 화재나 도둑이 아니라, 하수구에서 부화한 모기와 보이지 않는 병원균이었다

p130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없는 자들(다른 말로 야만인)은 본성적인 노예라고 주장했다.

p138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에 대한 연애 감정으로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거나 심지어 바람직한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p139 로마 속주 이집트에서 나온 파피루스 문서에 기술된 바에 따르면 성격 차이가 중산층의 흔한 이혼 사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p144 고대 세계에서 남성의 성 정체성은 욕구 대상에 의해 규정되지 않았고 성관계에서 맡은 역할에 의해 규정되었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남성은 섹스할 때 항상 주도적이며 삽입하는 역할을 맡게 되어 있었다. 상대가 여성인지 소년인지는 비교적 덜 중요했다. 여성과 소년 모두 사회적으로 열등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p158 그리스 로마 예술 작품에 나타나는 점잖게 성기를 단속한 신사들의 대척점에는 야만인과 괴물의 늘어진 큰 성기가 있었다.

p168 철학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로마제국 시대의 학식있는 그리스,로마인들은 신들에 대한 순수한 신앙과 신화의 부도덕성에 대한 혐오를 동시에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p223 부유하든 빈곤하든 모든 대형 도시의 신자들은 주교의 감독하에 있었고, 주교에 의한 관리는 규모에 상관없이 기독교 공동체들에 일종의 결속감을 주었다. 이는 전통적인 이교 신앙에서는 유례없는 것이었다.

p252 단거리 달리기가 언제나 운동의 레퍼토리에 포함된 것과 반대로 장거리 달리기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리스, 로마의 남성들은 걷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고, (부유층의 경우) 운동을 위해 승마를 했다.

p260 마차는 이렇게 호화스럽더라도 충격 흡수 작용이 부족했으므로, 이 굴러다니는 궁전에 타면 덜커덩덜커덩 흔드릴 수밖에 없었다. 긴 방석이 깔리고 커튼이 있는 가마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훨씬 더 편안했다. 길 위에서 낮잠을 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도 있었다

p279 동물들을 포획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어려운 것은 포획한 동물들을 로마로 데리고 와서 시합이 있을 때까지 살려두는 것이었다.

p284 콜로세움에서 막바지 시합이 개최될 즈음 터키의 표범, 이란의 호랑이, 이집트의 하마, 북아프리카코끼리는 전부 사냥되었거나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 로마 제국주의에 희생된 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었다

p287 왜 검투사들만 보리와 콩을 먹었을까? 에페수스에서 발굴된 검투사의 뼈를 분석한 과학자들은 그 식단이 체중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다. 몇 cm에 달하는 피하 지방은 검투사들의 신체 장기를 보호했다. 즉, 검투사들은 전투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얕은 자상 정도는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p334 정해진 정확한 위치에 솥과 변소를 설치했고 깔끔하게 열을 지어 가죽 막사를 쳤다. 위압적인 질서 정연함은 마찬가지로 전투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p337 게르만인들은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갈리아인(오늘날의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서부, 그리고 라인강 서쪽의 독일을 포함하는 지방사람)과 다르고, 정착민이라는 점에서 동유럽의 유목 민족과 다르고, 특징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졌다는 점에서 동유럽의 유목 민족과 다르다는 인식이 있었다.

p339 토이토부르크 숲의 전투로 알려진 이 전투는 게르마니아에서 20여년 동안 끈기 있게 지속된 속주 건설을 파괴했다. 살아남은 로마군은 라인강으로 후퇴했다.

p346 순례자들과 교황의 권위만이 로마가 무명 도시로 추락하는 것을 막았다. 9세기 즈음, 로마 인구는 95% 감소하여 3-4만 명이 100만 명을 위해 건축된 도시의 폐허 속에 흩어져 살았다.

p367 비잔티움의 제국의 침략자, 십자군, 오스만 제국은 순서대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실 묘지들을 약탈하고 훼손하였으며 파괴했다.

p174 라틴어는 근대 초기까지도 진지한 학술 연구에 적합한 유일한 도구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확고하고도 완전한 화석 언어가 되었고 학구적인 담론에만 국한되어 사용되며 학생들의 악몽이 되었다.

p379 후손을 남겼다는 전제하에, 천 년 전에 살았던 유럽인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유럽인의 조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유전적 표본이 말해주고 있다.

p388 가장 원초적인 수준으로 답하자면 그들은 돈과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 전쟁 후 아테네이들은 에게해를 중심으로 하는, 작지만 돈이 되는 제국을 건설했어요

p391 여러 모험 중에서도 그의 우상이었던 아킬레우스의 무덤 주위를 벌거벗고 뛰어다녔고, 술에 취한 채 페르시아의 수도를 태워 잿더미로 만들었으면, 인도에서 화살을 폐에 정통으로 맞은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정이 모두 끝났을 때 31세의 알렉산드로스는 불가리아에서 파키스탄까지 펼쳐진 제국의 주인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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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
남종국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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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

 : 남종국

 : 서해문집

 : 2022/03/18 - 2022/03/23


르네상스가 읽을 것도 많고 재미있다.

현대 세계의 예술이나 기술, 문화의 출발점이다 보니 연관된 내용도 많고 상상하기도 쉽다.

반면 중세는 그냥 신비의 영역이다.

중세에는 거인이나 마법사가 있을 것 같고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 같다.

그림만 봐도 촌스러운 금박으로 종교화만 잔뜩 그려놔서 다 그게 그거 같은 느낌이다.

중세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그들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중세사람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칼럼으로 나왔던 내용이 책으로 엮여져서 통일감은 떨어진다. 

대신 어느 부분부터 읽는다고 해도 부담이 없다. 

흑사병의 시작이라고 알려진 몽골의 세균전이 사실 근거있는 내용은 아니라는 말이 제일 인상깊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역사책은 꾸준히 신간을 읽어주지 않으면 새로운 사료의 발견으로 뒤집어진 역사적 사실들은 모른채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역시 계속 배워야 한다.

재미있는 책을 읽어서 좋다. 


p6 기독교적 관점을 가진 학자들은 유럽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그 덕분에 유럽 세계가 기독교 문명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중세 유럽 기독교 세계는 찬란한 종교예술을 꽃피웠고, 위대한 성직자와 신학자들이 눈부신 지적 성취를 이뤘다면서 중세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도 중세 후반 지중해 교역과 교류를 연구하면서 11세기 이후 서유럽 세계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음을 확인했다.

p22 오늘날에는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가 규형 잡힌 학문 생산을 어렵게 만든다면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종교적 편견이 학문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p29 흑사병에 걸린 제노바인들의 배가 흑해에서 시칠리아섬까지 항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해석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몽골과 제노바 간의 전투를 최초의 세균적이라고 부르고 전염병 확산 책임을 몽골인들에게 전가하는 유럽 중심적인 해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p47 교회는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날과 방식까지 규제했다. 축일과 금식일, 일요일, 월경과 임신기간, 수유기간, 출산후 40일 등의 기간에는 성행위가 금지되었다.

p63 다티니 부부의 불임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이들을 포함한 당시 이탈리아 도시민들이 불임을 신의 저주나 원죄의 결과, 악마의 소행이라는 비합리적이면서 종교적인 믿음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p72 계몽주의 시대가 되면서 왕의 손 대기 치료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볼테르는 풍속에 관한 시론에서 루이 14세가 자신의 정부 중 한 명이었던 수비즈 부인을 많이 만졌지만 치료하지 못했다라고 조롱했다.

p85 유럽 역사에서 교회가 불평등한 신분 질서를 만들고 유지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종교가 인간의 도덕적 진보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마이클 셔머의 신랄한 지적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p96 인간이 원죄의 고통을 짊어지고 낙원에서 추방된 것은 모두 이브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이다.

p99 악마와 계약을 맺고 악마의 연회에 참석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어떻게도 증명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마녀를 판정하는 최후 수단은 고문을 통한 자백이었다.

p111 유대인에 대한 낙인찍기는 무엇보다도 이들이 다른 종교를 믿는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p122 종교적 교리를 시대를 초월한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종교적 교리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확립되었고, 때로는 시대적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화하고 폐기되기도 했다.

p131 연옥은 불로써 자신의 죄를 정화하고 최종적으로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중간 단계의 공간이었다. 전적으로 의로운 사람은 바로 천국으로 가겠지만 가벼운 죄인들은 연옥으로 가서 불로 죄를 씻고 종국에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

p133 오랜 역사에서 인간의 과학 지식은 무한히 증가했지만, 사후 세계에 대한 지식은 티끌만큼도 발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학이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 계속해서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156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때로는 비합리적인 듯 보이는 인간의 상상력이다.

p174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던 로마의 초기 역사는 음모, 폭력, 친족 살인, 납치와 강탈 등 야만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p178 로마인들은 약탈하고 살해하고 강탈했다. 이를 제국이라 잘못 부르고 있다. 그들은 황폐화시켜 놓고 이를 평화라고 부른다라고 말한 타키투스의 비판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역사 평가일 것이다.

p184 문서를 위조한 사람은 주로 성직자들이었고 이들은 위조를 부끄럽게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신의 뜻을 따랐기에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p187 우리 모두는 죄가 있건 없건 또한 젊으나 늙으나 이 과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 과거의 결과를 넘겨받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라면서 과거 나치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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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지 탐방 가이드 - 유럽 종교개혁 역사 여행의 시작
황희상.정설 지음 / 세움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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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지 탐방가이드

 : 황희상

 : 세움북스

 : 2022/03/13 - 2022/03/17


제목 그대로다.

종교개혁당시 위대한 인물 및 지역을 여행하거나 탐방할 수 있는 루트를 소개한다.

여행안내책자라고 볼 수도 있고, 업에 종사하나는 사람의 참고서일 수도 있는 책이다. 

종교개혁지라고 하면 독일을 주로 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을 다 망라하고 있다. 

독일만 보면 재미없다고 하는데... 

난 독일을 재미있게 여행했었는데 왜 이런 평가가 나오는걸까?

조용한 여행지를 좋아하는 내 여행스타일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위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본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주제를 정해놓고 여행하는 건 또 다른 맛일 것 같다. 

이런 책을 보니 여행하고 싶네.


p55 재미있는 퍼포먼스지만, 생각할수록 우습고,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말씀이 밝히 드러나면 군더더기는 사라지는 법이다. 반대로 건물이 화려해질수록, 예식히 정교하고 복잡할수록, 교회는 본래의 순수성에서 멀어진다

p77 화려한 문명을 경험하고 자라난 우리 현대인들조차 앞도될 정도로 놀라운 로마 바티칸의 위세 앞에서, 그 속에 공교히 비치된 성상과 성화들 앞에서, 중세의 신자들이 느꼈을 그런 카타르시스를 은혜요 신앙이라고 속여왔던 중세 교회의 강력한 권세 앞에서, 오직 말씀을 가지고 저항한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 기꺼이 동참했던 수많은 신자들이 있었다.

p128 루터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인생 꼬였다. 모두가 루터는 이제 죽은 목숨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 시절, 교황청과 직접 대립한 시골 교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결국 제국의 황제가 루터를 호출한다. 바로 이곳 보룸스 의회로 말이다

p134 투어 팀이 어느 방에 들어가면 다음 방으로 먼저 나가지 못하도록 인솔자가 문을 잠그고, 다음 방으로 이동하면 다시 문을 잠가서 해당 해설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음 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다른 그룹과 섞이는 것을 통제한다.

p145 전문가의 참여로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곧바로 인정되어 프리드리히 3세의 영향권에 속한 모든 학교와 교회에서 청소년들의 의무 교육 교재로 사용되었으며, 주일 오후 장년에게도 설교되었다.

p159 극단적인 구교 세력들은 앙리 4세를 누엣가시처럼 여겨서 늘 그를 제거하고자 했고, 그는 무려 17차례의 암살 시도를 겪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 시내의 한 골목에서 첩보 작전 같은 활극이 벌어지고 앙리 4세는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p223 마지막 구원의 솔길까지 무산된 라로셀 시민들은 시장 장 기퉁의 지휘 아래 용감하면서도 처절하게 저항한다.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을까. 3만 2천 명의 시민이 5천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그들은 프랑스군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만다. 리슈리외 추기영의 라로셀 포위 및 위그노 섬멸 작전은 그렇게 성공했다. 잠재적 반란 세력을 제압한 루이 13세와 리슐리외는 이후 프랑스 절대 왕정의 기틀을 다진 왕과 재상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p292 이때 만들어진 문서들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교회 정치, 예배 모범, 그리고 대교리문답, 소교리문답 등이며, 이후 전 세계 모든 장로교회가 따라야 하는 헌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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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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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김새별

 : 청림출판

 : 2022/03/17 - 2022/03/20


나이가 들어서인지 죽음과 관련된 책을 주의깊게 읽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책중에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라는 책이 있었다. 

미국에서 시체처리하는 분의 에세이였는제 나라마다 장례문화가 참 많이 다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은 유품정리사가 쓴 책이다. 

보통 죽음 이후 유품은 유족들이 정리하는 걸로 알았는데 생각보다 유품정리사를 부르는 경우도 많은가보다.

고도사로 인해, 살해당해서, 또는 아무도 정리하기를 원하지 않아서 유품정리사가 투입된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고, 또 이 분들에게 많은 신세를 지면서도 결코 옆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 직업이라고 한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는데 없는듯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죽음 혐오의 모습이 그렇게 나타나나 보다.

웃으며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다보니 저절로 얼굴이 굳어진다.

예전에 축제라는 영화를 봤는데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모든 유가족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다.

그때 사진사가 "누가 죽었나? 좀 웃어요"하는 이야기에 모든 유가족이 웃음을 터뜨리고 사진을 찍었다. 장례를 치르는 게 슬픔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슬픈 죽음은 좀 적었으면 좋겠다. 


p32 언제인가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수습하러 간 날, 머리카락이 긴 것으로 보아 여자로 짐작할 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 앞에서 모두가 코를 막은 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뛰어들어오더니 사체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고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살아있든, 죽었든, 부패했든 아버지에겐 그저 소중한 딸이었던 것이다

p41 누군가는 해야할 일, 결코 기분 나쁘거나 불쾌할 이유가 없는 일. 그러나 누구한테도 환영받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해야 하는 일. 이것이 바로 이 직업의 모순이다

p53 할아버지, 내가 나이도 있고 여기서 살다 보면 저세상에 갈 수도 있는데... 나 여기서 죽어도 돼요? 우리 같은 늙은이는 다들 그렇거든. 이제나 죽을까, 저제나 죽을까 자다가 조용히 죽어야 할 텐데, 그러잖아. 그래서 별 뜻 없이 괜찮다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누가 알았누

p98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던 것일까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나 죽으면 쓸 만한 물건은 가져가라가 아니라 세탁기는 친구, 냉장고는 폐지 할아버지, 소형 가전이랑 겨울옷은 옆집 할머니, 구체적으로 정해 일러놓고 가셨다

p122 외부와 단절된 채 고독하게 죽어가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가지 되었을까. 문제는 있는데 답이 없다. 나로 시작해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p141 아이의 삶은 그의 소관이 아니다. 부모가 없이 때문에 아이가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오산이다. 자신만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부모 없는 아이는 모두 불행하다는 착각이다

p148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 말은 다시 거꾸러 뒤집으면 잘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살고 싶다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p158 고독사는 더 이상 홀로 사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돌봄 서비스 덕분에 노인 고독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젊은이들의 고도사다

p168 친절하고 예의 바른 가족이었다. 가식적인 느낌은 없었다. 다만 여느 유가족들처럼 슬프거나 침통해 보이지는 않았다. 집을 나오는데 마치 이사 청소를 해주고 온 느낌이었다

p171 누구에게도 당신의 이웃이었던 한 젊은이가 죽었다고 알릴 수 없었다. 청년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진 채 현장은 정리되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있지도 않은 개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고, 애도는 커녕 개를 버려 굶어죽게 만든 사람으로 고인을 비난받게 만들었다

p189 혼자 살면서 반찬은 사 먹어도 됐을 텐데 각종 장아찌며 간장, 고추장까지 직접 담가 먹고, 공짜로 얻어왔을 새 옷은 아까워서 꽁꽁 싸매놓고 입어보지도 못했다. 결국 모조리 폐기물 처리장으로 가게 될 것이다

p197 꽤 긴 시간, 아이는 혼자 울었다. 이모가 돌아와 박스를 전해주자 비로소 울음을 그치고 언제 울었냐는 듯 덤덤한 표정이 되었다. 묵묵히 짐을 다시 챙겼다.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혼자 울어야 할까. 언제까지 그 슬픔과 고통을 숨죽여 삼켜야 할까. 그날만 생각하면 엄마 옷에 얼굴을 묻고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p206 아버지는 지병으로 시한부의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편지에는 의례적인 건강상의 안부 인사 정도만 있었다. 아버지는 타국에 있는 딸이 걱정할까 봐 자신의 병을 숨겼던 것이다

p212 근데 참 희한한 게 봄만 되면 이 집 꽃들이 활짝활짝 잘도 피더라고.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는데 심어줬다고 곧잘 펴. 마당이 다 환했다니까. 꽃이 사람보다 낫지. 자식들은 애비도 나 몰라라, 죽어나가도 모르는 데 말이야

p218 아니 죽은 사람 집 청소하러 다니느 사람이 그것도 못해? 못 하겠으면 밖에 내다 버리든지, 아님 직접 데려다 키우든지. 고인에게는 소중한 가족이었지만 남에게는 버려도 되는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다

p225 장례지도사로 일할 때도 겪어본 일이었다. 무연고자인 줄로만 알았으나 유가족을 찾게 되어 연락을 취하면 가족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한다. 인수를 거부당한 시신은 의학해부용으로 쓰이거나 화장된다. 고인도 같은 경로를 거칠 것이다. 끝내 가족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p230 현장에서 나온 가구나 집기, 쓰레기 등은 즉시 폐기물 업체에 처분한다. 사무실로 가지고 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는 물론이고, 사무실이나 차량조차 근처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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