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와 신비로운 이야기 - 삼국유사의 인물, 신령, 괴물들
최희수 외 지음 / 바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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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와 신비로운 이야기

 : 최희수

 : 바오

읽은기간 : 2023/07/02 -2023/07/06


유명한 책이긴 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삼국유사.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리라 하고 이 책을 빌려서 읽었다. 

삼국유사의 원본을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은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해석한 책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를 해석하고, 현대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원전을 읽고 싶었던 지라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일연은 우리나라의 스토리텔러라고 최태성 선생님이 이야기했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느낌이 든다. 

즐겁게 읽었다..  


p36 탈해이사금 대 백제와의 관계가 이렇듯 치열했던 것은 백제는 이미 영역 국가로서 영역 확장을 대대적으로 이루저고 했던 시기였고, 신라는 소국에서 점차 그 영향력을 주변 소국으로 확대해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p49 무왕의 무덤은 익산에 있는 쌍릉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 이미 도굴이 되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사비시대 능산리 고분의 무덤 양식과 일치한다고 한다. 최근 실시된 정밀 발굴조사에서 인골이 출토되어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p54 일종의 미스터리이다. 선화공주가 백제의 대성인 사택씨 가문에 입적이 되었을까? 선화공주와 사택황후는 전혀 다른 인물일까? 그렇다면 서동설화는 지어낸 이야기인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선화공주가 백제에 와서 무왕의 왕비로 있었으나 사망 등의 사유로 왕비에서 물러나고, 이어 백제 유력가문인 사택왕후와 혼인을 했을 가능성, 아니면 선화공주와 사택왕후가 동시에 무왕의 왕비로 존재했을 가능성 등 여러 가능성이 존재한다. 고대의 경우 여러 명의 왕비가 동시에 있는 것이 전혀 없었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가능성 또한 남아 있다.

p71 혜공왕은 신라 중대를 마감하고 신라 하대가 시작되는 시기의 왕이다. 신라 중대가 전성기라면 신라 하대는 쇠퇴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대를 연 왕이 바로 혜공왕이다. 기록에도 나오듯이 “정사가 다르셔지지 못하고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는 표현처럼 신라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p93 신문왕은 재위기간 내내 삼국을 통일하여 영토가 크게 확장된 국가의 통치체제를 재정비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즉위 직후에 장인인 김흠돌이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하고, 이를 계기로 귀족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즉 왕권 도전세력을 과감하게 처단한 것이다. 왕비 또한 폐비되었고, 당시 상대등이었던 김군관은 김흠돌의 난을 사전에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는 이른바 불고지죄로 처형되었다

p105 물계자가 참전한 포상팔국 전쟁은 3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전쟁이었다.

p106 물계자는 남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을 잊고 목숨을 다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자신을 탓하며 끝내 조정에서 물러나 산으로 들어가 칩거하게 된다.

p119 위 설화에서 극랑왕생하는 데 인간의 성욕이 금기로 제시되고 있어서 색욕이 수도 생활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도 알려주고 있다.

p130 김주원은 하슬라로 피신을 했고, 거기에 머물렀다. 2년 후에 김주원은 하서주 도독에 임명되고, 명주군왕에 책봉되었다. 원성왕도 김주원의 강릉 지역 세력에 대해 인정을 하고 김주원을 제후로 책봉을 했던 것이다.

p135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선덕여왕은 최초의 여왕이었기 때문에 신라 내 많은 진골 귀족들의 도전을 받았으며, 국제적으로도 이웃나라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다.

p139 명랑이 중국에서 배워온 밀교는 비밀의 가르침이란 뜻이다. 즉 경전 중심의 사상이 아니라 이를 초월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진언종이라고도 한다. 밀교는 금강승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티베트 불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p144 그런데 거타지가 활로서 그 늙은 여우를 제압하였다. 거타지가 늙은 여우를 처리하자 서해의 신은 자신의 딸과 혼인을 해달라고 청하고,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었다.

p152 설총은 고려시대 일연이 한국 유교의 시조라 일컬었던 인물이다. 기존 불교계에서 승려가 계를 어기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그러나 원효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p160 환웅의 아들 단군은 태백산 신시를 떠나 평양에서 조선을 세웠다. 바로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훗날 도읍을 구월산으로 옮겼고 무려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은나라의 기자가 조선에 들어오자 그에게 나라를 맡기고 자신은 구월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

p170 김대성의 이야기에서도 곰은 흉폭하고 잔인한 존재이다. 곰은 김대성을 씸어먹겠다고 했고, 이에 놀란 김대성이 곰을 위해 절을 세우게 된 것이다. 결과는 좋았지만 그 결과로 인도하는 길은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p170 아르테미스의 수하인 칼리스토가 곰이 된 부분이 흥미롭다.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은 인도유럽어의 hart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뜻은 곰 여인, 즉 웅녀이기 때문이다.

p183 일시적으로 인간과 결합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호녀는 다음 생에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고 김현에게 절을 세워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이다.

p193 마한은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달아나서 세운 나라이다.

p199 하백이 준 술을 마시고 취하면 7일이 지나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데,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인지라 바로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하지만 하백이 만든 가죽 가마를 뚫고 나올 수는 없었다. 이때 해모수를 안타깝게 여긴 유화가 자신의 황금 비녀를 빌려주어 해모수가 가죽을 뚫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해모수는 유화는 버려두고 혼자 하늘로 돌아갔다.

p219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당대에는 별 의문 없이 이해되던 것이 세월이 지나서 무슨 의미인지 상실해버린 경우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이렇게 간략히 이야기가 남은 것도 이야기의 의미가 뭔지 잊어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다.

p245 이 이야기에서 산신이 불교의 신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마도 원래는 다른 이름이 있었을 것인데, 자신의 이름을 잃고 불교의 신 이름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여신이었다는 점뿐인 셈이다.

p252 김유신은 10여 일이 지나기 전에 병이 났고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유신이 수로왕의 후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음병이 보호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의미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p268 5층으로 된 석탑은 옅은 무늬의 돌로 기묘한 조각이 되어 있었다. 석탑을 싣고 바다로 나가자 수신이 더 이상 방해하지 못했다. 이 석탑은 금관가야 8대 질지왕 때 왕후사를 세우고 그곳에 두었다. 석탑은 왜의 침략을 방지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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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좋다 여행이 좋다 - 신화와 전설이 깃든 곳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여행이 좋다
세라 백스터 지음, 에이미 그라임스 그림, 조진경 옮김 / 올댓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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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가 좋다

 : 세라 백스터

 : 올댓북스

읽은기간 : 2023/06/28 -2023/07/02


문학, 음악에 이어 이번에는 신화다.

이 분 책이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나올때마다 읽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여행지가 실려 있고, 각 챕터들이 길지 않아 간단하게 지역과 그 지역에 속한 신화를 알기에 적합하다 

이번 책에는 우리나라의 마니산도 나온다. 맨날 남의 나라만 보다가 우리나라 이야기를 보니 반갑다. 우리나라 신화를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저자가 꽤 꼼꼼하게 자료를 수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장소는 많은데 모르는 곳이 많다 보니 머릿속에 많이 남지는 않는다. 이런 책은 집에 꽂아놓고 중간중간 읽으면서 가고 싶은 곳을 추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사진이 없다. 대신 그곳을 그린 일러스트가 있다. 사진이 있으면 더 강하게 그곳을 느꼈을 것 같은데 일런스트다 보니 강렬함은 좀 떨어진다. 대신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이번 책은 신화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기가 세다느니 귀신이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기가 센 곳이라고 하니 내가 가면 안될 것 같은 느낌..^^

재미있게 읽었다. 


p19 리드가 건설한 성의 그리이트 홀, 기우뚱한 철문, 원래는 벽에 둘러싸였겠지만 노출된 정원, 신비로운 지하 통로, 풀이 뒤덮여서 언덕처럼 보이는 중세 시대의 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현재 이 유적지의 전역에서 카멜롯 같은 성을 상상할 수 있다.

p32 그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노련한 선원에게 일행이 타고온 보트를 돌보라고 했지만, 그 선원은 혼자 남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도망가 버렸다.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이곳에서 혼자 지내느니 보트가 망가지는 위험을 택한 것이다.

p38 이 지역은 일반적으로 아이슬란드의 훌두포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알파보르그(엘프 바위라는 뜻)는 엘프 여왕의 고향이다.

p50 평소에는 의자가 놓여서 성당 바닥이 가려진다. 하지만 사순절부터 만성절까지는 금요일마다 의자를 치우기 때문에 미궁이 드러나서 조용히 명상하며 그길을 걸을 수 있다. 물리적으로 이 길은 모든 순례자에게 동일하다. 구불구불한 그 길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며 하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p54 이 잔인한 술잔치는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등장하는데, 희곡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주인공 파우스트를 이 산으로 꾀어 흥청망청한 술잔치를 위해 날아온 마녀들의 모임에 합류시킨다.

p72 블레드섬의 분위기는 이 전설에서 연상되는 것보다 더 낭만적이다. 실제로 현재 이 섬에 있는 성모승천교회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기존의 교회가 지진으로 무너진 후 17세기에 바로크 양식과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된 것인데, 결혼식 장소로 인기 있는 곳이다.

p96 오디세우스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화난 키클롭스가 던진 현무암 덩어리는 떨어진 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상 폴리페모스와 에트나는 동일하기 때문에 이렇게 떨어진 돌들은 화산 활동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p108 세네감비아에 있는 환상열석은 아프리카의 스톤헨지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런 별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유적의 규모와 퍼져 있는 범위를 제대로 표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p132 텐진은 약 5백 년 전의 수도승으로, 방부 처리 없이 명상과 전략적인 식사, 단식을 통해 자기 몸을 보존하여 스스로를 미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까지도 그는 유리 상자 안에 똑바로 앉아 있으며, 이는 하얗게 빛나고 피부도 분해되지 않은 채 그대로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카락과 손톱이 계속해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p146 원주민 능가족은 피너클스를 웨레니티 데블 플레이스라고 불렀다. 이곳은 식량 구하기, 의식 치르기, 출산하기 등과 같은 여성의 임무를 하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이때문에 남성은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p162 배열된 돌이 별자리와 하지, 동지에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천문대 또는 태양 사원이었을 수도 있다. 평원에 펼쳐진 태양력처럼 말이다. 물론 그런 신비로운 지상화는 의계인을 위한 착륙지점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p191 일부 관광객은 이 신성한 언덕에 다가가면 어지럽고 몽롱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지역은 지금도 마법과 샤머니즘, 약용 식물과 허브로 유명하다.

p197 처음에는 엘도라도가 사람을 뜻했지만 마을 이름으로 바뀌었고, 금으로 뒤덮인 도시 전체로 바뀌었다. 그 전설을 들은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금으로 뒤덮인 도시를 찾아다녔다

p203 나스카 지상화는 모두 800개가 넘고, 그중에는 길이가 최대 몇 킬로미터인 것도 있다. 기하학적인 형상이 300개, 동식물 모티프는 70개나 된다. 고래, 개, 꼬리를 말아 올린 원숭이, 복잡한 벌새가 있고, 심지어 키가 35미터나 되고 눈이 접시 모양이며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남자도 있다. 이 남자는 우주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샤먼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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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세계사 - 세 대륙이 만나는 바다, 그 교류와 각축의 인류사
제러미 블랙 외 지음,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엮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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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해 세계사

 : 제러미 블랙

 : 책과 함께

읽은기간 : 2023/05/15 -2023/07/02


흥미로운 주제인데 읽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중간중간 다른 책도 읽다 보니 그런것 같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골랐는데 내용이 생각보다 딱딱했다.

스토리 중심이 아니고 역사적 사건 중심으로 책이 씌여있으니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주제를 나눠 책을 써서 그런지 한 권의 책을 읽는게 아니라 긴 논문 여러 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특이하게 1장이 지중해의 지리와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된다. 

고대, 중세를 거쳐 현대 국가들의 각축까지 다양한 내용을 커버한다.

세계사 개론만 읽다가 각론으로 들어가기에 적당한 내용과 난이도라고 생각한다. 

다음번에 읽을 때는 좀 더 짧게 임팩트있게 읽어야겠다. 



p6 이집트 문명, 미노스 문명, 미케네 문명, 그리스 문명, 에트루리아 문명, 로마 문명 등이 대표적이다. 레반트 해안 쪽에서는 페니키아 상인들(그들의 문자에서 서양 언어들의 알파멧이 나왔다)이 퍼져 나왔을 뿐만 아니라, 유일신 신앙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서 나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핵심적이 요소가 됐다.

p27 일본의 항구 하카타(후쿠오카)는 한국 및 중국 무역을 활용했고, 심지어 중국 상인들의 거주를 유치하기도 했다. 이 교역로는 책과 종교사상도 실어 날라서 불교가 일본에 굳건하게 뿌리내는 기반을 제공했다. 이 일본 지중해와 원조 지중해 사이에 유사성이 많기 때문에 두 바다의 해양사의 접근법을 비교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p38 이슬람 세계는 또한 중세 동안 유럽으로 보내진 향신료 상당수의 공급지였다. 사실 이름난 향신료 가운데 지중해 지역에서 재배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p84 새로운 정치 구조는 네 개의 참조 짖점에서 관찰할 수 있고, 대략 십자가의 형태로 도식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그 네 개의 팔은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 파라오 이집트, 에게해의 미노스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들을 합쳐 일반적으로 청동기시대 제국들로 부른다.

p87 특히 미케테와 페니키아 교역망이다. 이들이 처음으로 지중해를 장악했고 이에 따라 그 문화적 외양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p92 미노스 문화에서 미케네 문화로의 이행은 세심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의 고고학 자료는 두 문화가 줄곧 서로 적대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기전 1450년 무렵에는 미케네가 우세했다)

p104 동지중해 지역의 삶은 초기와 특히 중기 청동기시대에 고질적인 전쟁으로 인한 거의 상시적인 긴장으로 점철돼 있었다. 땅과 자원과 사람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충돌과 정복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p112 현대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는 것이 적어도 한 가지는 있다. 청동기 시대 사회,경제 체제(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동지중해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서로 뒤얽힌)가 붕괴하고 거의 즉각 새로운 사회 질서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국가가 뒤로 물러서고 훨씬 개방적이며 기업 논리에 의한 경제가 들어섰다.

p114 히타이트가 철기 기술을 독점했다는 생각이 불합리한 것으로 입증됐고 철제춤들이 서기전 14-13세기에 이미 동지중해 지역에서 나타났다는 사실과 별개로, 키프로스가 이 시기에 철기 생산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였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들과 아울러 서기전 15세기 발칸 북부 유적지에서 주철이 만들어졌다는 증거도 있다.

p120 현대의 연구는 대개 기독교 성서의 이야기를 역사라기보다는 문학으로 취급하며, 고고학 기록은 아브라함, 모세와 기타 성서 속의 주요 인물들이 다녔던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p131 서기전 제1천년기 초의 특징은 미케네 시대의 굥역 연줄이 무너진 위에 새로운 연줄의 물결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 국면의 지배세력은 에게 및 에트루리아의 티레니아인, 에우보이아의 그리스인, 붉은 페니키아인이었다.

p132 이와 대조적으로 서지중해의 중,북부는 오랫동안 에트루리아 선단이 지배하게 된다. 에트루리아의 교역이 서기전 7세기에서 서기전 4세기 사이에 리루리아에서 프로방스로 뻗어나간 것은 고고학 기록에 잘 남아있다.

p147 포도주와 함께 그 소비와 관련된 의식, 특히 심포시온, 즉 향연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민족 사회에 포도주와 그 소비와 관련된 사교 행위가 들어오자 그에 수반되는 일이 일어났다.

p155 고전기는 서기전 6세이와 비교할 때 주로 교역망의 주인이 바뀐 것이고, 수송되는 상품의 산지와 배송지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지중해 교역의 핵심에 있던 이들 상품의 운송로와 생산 방식과 교환의 진정한 변화는 서기전 4세기 후반에 일어났다.

p156 에트루리아가 로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신들과 영웅들의 이름이 그리스어에서 에트루리아어를 거쳐 라틴어로 넘어가면서 변형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p263 기독교도들이 이슬람 치하의 이베리아를 정복하면서 인간 상품인 노예가 늘어났다. 레콩키스타가 한 단계씩 진전될 때마다 많은 수의 노예가 시장에 쏟아졌고, 바르셀로나와 제노바는 그 주요 매매장소였다.

p272 13세기 전반기 내내 이어진 지중해의 13세기 호시절은 인구학적 균형을 뒤흔든 진짜 재앙과 함께 끝났다. 바로 흑사병이었다. 크림반도 카파의 무역 기지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 엄청난 전염병은 지중해 전역에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p292 갤리선 전투는 무지막지하게 비싸졌다. 함대 하나가 아니라 갤리선 한 척만 전개하는 데도 군수품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이미 제한된 작전 범위가 더욱 좁아졌다. 16세기 중반이 되면 오스만은 튀니스 이서로 나가 겨울 폭풍우가 시작되기 전에 장기 포위전을 벌일 시간을 기대하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p313 메디치가는 또한 능숙하게 리보르노를 포르토 프랑코로 홍보했다. 통과무역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으며 외국 상인이 다른 어느 곳보다 세금을 덜 내고 도시에 정착할 수 있다고 말이다.

p360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북유럽 기관들이 지중해의 것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오려 했다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박물관, 베를린 박물관은 계속해서 자기네의 고전기 및 르네상스 미술품 수장을 늘렸다.

p397 그리스와 터키 모두 나토 회원국이 됐고 이론상으로는 동맹이지만, 그리스인과 튀르크인의 관계는 수백 년 동안 서로를 향한 의심 위에 형성됐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토 가입과 유럽연합 가입은 에게해 양쪽의 두 나라에게 모험주의에 대한 확실한 제동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p402 1900년 이전, 하인리히 슐리만은 트로이와 미케네를 발굴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헜지만, 지중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서 시간을 더 끌어올렸다.

p411 영국식 또는 독일식 술집, 밤샘 나이트클럽, 게이 바 등등 외국인 방문자들의 자극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시설의 개발은 지중해 해변 주민들의 가치관을 북유럽인의 기호에 즉석에서 맞추었다기보다는 상업적 고려에서 추진한 것이었다.

p419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는 유럽에 못지않은(어느 시기에는 더 수준이 높은) 문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세 지역은 역사 속에서 활발하게 교류했다. 이 세 지역에 공평한 눈길을 주면 새로운 모습의 세계사를 볼 수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실크로드 세계사의 지중해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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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세계사를 흔든 패전사 이야기 - 유튜브 채널 패전사가 들려주는 승리 뒤에 감춰진 25가지 전쟁 세계사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윤영범 지음 / 북스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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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를 흔든 패전사 이야기

 : 윤영범

 : 북스고

읽은기간 : 2023/06/22 -2023/06/27


이런 주제는 흥미롭다. 

이긴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들어왔다. 고대의 자마회전부터 시작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많은 영웅들의 신출귀몰한 전략은 많이 읽어봤다.

그러나 패전사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와 연관이 있는 현리전투이야기정도나 좀 들어본 패전사다.

그래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좀 아쉽다. 

우선 챕터가 너무 많다. 너무 많은 전투를 이야기하다보니 전투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기억할만한 패전사 10-12개 정도로 줄이고 각 전투의 분량을 늘렸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두번째는 패전사인데 패전의 요인이 불분명하다. 대부분이 정찰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오만한 판단을 했다라는 건데, 왜 그렇게 판단을 하게 됐으며, 정찰을 하지 못했던 원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더 자세히 풀어쓰면 더 좋을것 같다. 


우리가 실패사례를 공부하는 것은 실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실수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배워야 한다. 

패전사, 실수, 실패에 대한 책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p18 전운이 감돌던 당시 오스만 제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인기가 많던 영국의 젊은 해군성 장관 윈스턴 처칠은 오스만 제국에게서 의뢰받은 신형 전함 2척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거기에 한술 더 뜬 처칠은 어이없게도 이 전함들을 영국 해군에 배치하는 양아치 짓까지 하며, 국가 간의 거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p26 오스만군에게 계속해서 박살 나는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바보짓을 여덟 달이나 지속했다. 방어하는 오스만군의 정신력과 투지도 대단했지만, 연합군의 멍청함도 그에 못지않은 대단한 전투였다.

p28 많은 전투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전투를 꼽는다면 아마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솜 전투가 가장 먼저 후보로 거론될 것이다. 솜 전투는 1916년 7월부터 11월까지 프랑스의 솜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약 백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p35 죽어나간 병사의 수만큼 신병을 보충하였고, 이 병력이 다 죽으면 또 다른 신병을 밀어넣었다. 이런 솜 전투를 지휘한 양측 지휘관들은 애국을 앞장세워 학살을 저지른 전쟁 범죄자나 마다름없었다.

p104 대부ㄴ의 실패한 다른 작전들이 그렇듯이 기본적인 정보 수집이 너무 부실했다. 사전에 상륙 지점에 대한 충분한 정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전을 감행한 것이 큰 실수였다.

p109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큰 분수령이 된 성공적인 작전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지만, 그 성공의 뒤에는 캐나다군의 피로 쓰인 디에프 상륙 작전이 있었다.

p117 곧 유럽 전선에 도착할 P-38라이트닝, P-51 무스탕 같은 장거리 호위 전투기들을 기다리지 않고 조급하게 폭격을 실행한 것은 지휘부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p127 소사보우스키 장군은 처음부터 마켓 가든 작전을 무모한 작전이라며 반대했던 인물이었으며, 나중에 마켓 가든 작전 실패의 책임을 떠안게 되는 비운의 장군이기도 하다

p135 미하일 비트만은 티거 전차 1대로 영국군 제22 기갑여단과 전투를 벌여 약 25대의 기갑차량을 격파했다. 영국 제7 기갑사단의 선봉을 꺾은 미하일 비트만 덕에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던 영국군의 우회를 잠시나마 저지할 수 있었다

p164 더 큰 오판 운산 전투에서 이렇게 큰 피해를 보고도 맥아더 장군은 여전히 중공군의 본격적인 참전을 믿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을 명령하며 전쟁을 빨리 끝내려 했다는 것이다.

p172 현리 전투는 한국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전투로 불린다. 1개군단의 대병력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각자 도망가다가 증발해버린, 전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사건이었다.

p182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전투였기에 프랑스는 이제 남은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여러 천연자원을 공급하던 중요한 식민지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된다

p238 작전에 동원댄 해병대의 RH-53D는 원래 특수 작전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군에서 특수 작전용 헬기를 제안했지만 해병대에서 이를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부대 간의 이기주의가 작전 실패의 큰 원인이 되었다

p244 테러리스트들 사이에서 이집트 항공기는 절대 납치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전설이 된 이집트 777부대의 황당한 인질 구출 작전 이야기가 있다. 이 희대의 인질 구출 작전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자국 항공기의 인질을 구출하려다 납치범뿐만 아니라 인질까지도 모두 진압해 버린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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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관에 간다 - 전문가의 맞춤 해설로 내 방에서 즐기는 세계 10대 미술관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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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미술관에 간다

 : 김영애

 : 마로니에북스

읽은기간 : 2023/06/14 -2023/06/21


음악책을 읽었으니 미술책도 한 권 읽어줘야지.

10개의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미술관별로 정리해서 해설했다.

그림도 큼직하게 실려있고 책도 일반 제본보다 커서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많은 작품을 소개하고, 또 컬러로 되어 있다보니 책이 무겁다.

가지고 다니면서 읽느라 좀 고생했다. 그래도 그림을 보고 해설을 읽는 즐거움이 그 무거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 예쁘고 보기 좋은 그림들이 많이 실려있어 나처럼 그림초보자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책이다. 

여행을 가게 되어 미술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가기전에 한 번 읽어보고 가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예 미술관 위치도 넣어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러면 여행책자가 되겠지?


p17 존칭은 성에 붙이는 이 보통이고, 서양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편 성을 따르게 되니 프랑스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이 작품을 라 조콘드라고 부른다

p22 화려한 색채는 바로 이 그림의 백미다. 교역이 왕성하고 해외의 신기한 것들이 유입되던 베니스라는 환경 덕분에 베니스 화가들은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는 안료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형태보다도 색을 중요시했으며 캔버스에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정착시켰다.

p34 마리안느의 흉상은 프랑스 각 도시의 시청마다 놓여 있고, 프랑스 우표에도 등장했다. 매 10년마다 지혜롭고 용감한 마리안느를 상징하는 여성을 뽑는데 브리지트 바르도, 카트린 드뇌브, 레티시아 카스타, 소피 마르소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p55 작가는 87세까지 장수하며 660점의 초상화의 200점의 풍경화를 남겼다. 루브르 박물관 뿐 아니라 영국 내셔널 갤러리, 러시아의 에르미티슈 미술관, 그리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곳곳에서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다작 덕분이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를 우아하게 그린 그림이 있다면 한 번쯤 비제 르브룅의 작품이 아닐까 살펴보자

p79 앵그르 작품의 아름다움은 유려한 선에 있다. 이 작품에서도 여인의 몸에 명암을 좀 덜 넣고 전반적으로 밝게 만들고, 반면 배경은 전체적으로 어둡게 만들어 여인의 몸을 타고 흐르는 곡선을 강조했따.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p85 그는 자신에 없는 루소의 순수함을 높이 사며 작업실로 초청하여 루소의 밤이라는 행사를 열어 주기도 했다. 지나치게 순수한 루소를 놀려 주려는 심보도 있었건만 64세의 루소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아주 기뻐했고, 젊은 작가들의 친구가 되었다.

p95 밀레는 프랑스보다는 미국에서 더 인기가 많았다. 프랑스 혁명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 프랑스 귀족들은 밀레의 작품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농민화 속에 계급 타도의 의도가 잠재되어 있다고 의심한 것이다. 반면 개척 정신이 중요했던 신생 국가 미국에서는 작품에 나타난 근면 성실한 삶을 모범으로 삼고자 했다.

p99 쇠라는 인상주의 미술가들이 여러 물감을 혼합해서 칠해 화면이 탁해지는 것을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각의 원색 점을 화면 위에 찍은 것이다.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어 바르면 색이 탁해지지만, 화면에 원색을 찍은 후 멀리서 보면 인간의 눈 위에서 색들이 섞이게 되어 순수한 채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07 이탈리아의 미술이 신화와 종교를, 프랑스는 역사를 주로 담았다면 영국은 유독 인물이 대세를 이뤘다.

p116 섬세한 세부 모사에 비해 인물으 인체 비례나 공간감은 조금 어색한데, 균형과 조화를 중시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과 달리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긴 북구 르네상스의 특징이다.

p127 비너스의 방탕한 품행을 소개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자세한 줄거리는 점차 잊혀졌다. 아름다움과 사랑의 신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나아가 성모 마리아에 비견할 수준으로 신분도 상승했다. 비너스를 주제로 한 다양한 그림과 조각이 탄생한 이유다

p130 사랑은 이처럼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건 아닐까? 한평생 신화를 연구한 조지프 캠벨은 ‘우리가 계획한 삶을 기꺼이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를 기다리는 삶을 맞이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의 신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p133 지금 이 작품들은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내셔널 갤러리의 작품은 새벽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를, 우피치 미술관의 작품은 한낮의 전투가 한참 무르익은 시기,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은 승리를 맞이한 저녁을 표현했다.

p139 화가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잠시 피렌체와 우르비노 등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르 ㄹ다녀오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래서 작품 속에는 고향에 대한 사랑을 담아 예수 세례의 순간이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산세폴크로에서 일어난 일처럼 그렸다.

p145 그림에서 에로스를 지워 버린다면 방 안에 누워 있는 요즘 여자처럼 보일 정도다. 바로 그 점이 남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신화 속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여신 혹은 먼 과거의 어느 귀족 부인이 아니라 만져보고 싶은 현실 속의 어떤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p167 에드워드 호퍼는 주로 도시를 그린 작가로 생전에도 꽤나 인기 있는 편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인기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소수의 마니아층에 알려진 작가였는데, 그의 작품을 패러디한 광고가 인기를 끌면서 대중들에게도 더욱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p178 신분의 변화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일까. 드가는 당대의 사회 계급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의 작품이 무대 위의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무대에 서기 위해 준비하는 소녀들의 연습 과정을 많이 그린 것도 그 때문이다.

p183 무용수와 시인의 사랑을 연결시키는 감초 같은 역할을 맡은 난쟁이 화가가 실은 툴루즈 로트레크를 모델로 만든 인물이다. 중절모를 쓰고 동그란 안경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모습이 로트레크의 사진과 아주 비슷하다.

p187 피사로는 도시의 풍경이라는 주제를 여러 번 반복해서 그렸다. 모네가 루앙 대성당을 날씨에 따라 다르게 20여 점의 연작으로 그렸던 것을 연상시킨다. 봄날 아침, 오후 햇살, 밤의 풍경 등이 있다.

p201 납작하게 펴진 우유갑을 보고 이것이 원래는 우유를 담을 수 있는 입체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피카소의 그림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 늘 우유갑으로 보였던 부피가 있는 상자를 평평하게 뜯어 놓은 것과 같아서다

p205 그림 대신에 그가 택한 건 색종이를 오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형태와 색은 단순화되었고,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효과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마티스가 말년에 몰두한 색종이 오리기 작품의 결정판이자, 공간 설치로 나아간 작품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p208 작품을 정리하기 위해선 리디아의 도움이 필수였기에 그녀를 다시 불러들였는데, 리디아는 자존심을 접고 존경하는 화가 선생님을 위해 돌아와 마무리까지 해주었다.

p219 야망이 있는 작가라면, 시대의 유행에 흔들리지 ㅇ낳고 한결같이 나만의 길을 간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것임을 알 것이다. 그 어느 미술 사조에도 들지 않았으면서, 야수파, 입체파, 오르피즘, 초현실주의, 심지의 샤갈의 그림과는 정반대 스타일인 몬드리안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작가들과 교류를 나눈 샤갈의 특별함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낭만, 상상력 덕분이었다.

p228 그는 많은 사진을 남긴 관종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수염을 길러 좌우로 가지런히 모은 후 양 끝을 하늘을 향해 꼬부라뜨린 게 아주 인상적인데 스페인 최고의 작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따라한 것이다.

p232 플로의 작품은 지금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른 작품들처럼 그 자체로 어떤 상징이나 의미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미술사의 문맥 속에서 의미를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p234 모네가 루앙 대성당을 20여 점의 연작으로 그렸을 때, 빛에 따라 볼 때마다 달라지는 주관적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워홀의 경우는 완전히 반대다. 우리는 매우 주관적적이고 개성적인 선택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대량 생산 시대의 현대 산업 사회는 고작 어떤 맛을 고를까 정도의 수동적인 자율성만을 남겨 놓을 뿐이다.

p244 우피치 미술관에서 곡 만나야 할 화가를 한 명 꼽으라면 그건 바로 보티첼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체를 해부하며 인체의 비례와 근육을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보티첼리는 다소 고전적이다.

p260 카라바조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어린 소년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숨 담그는 법을 알려 주었지만 술 취한 그를 반기는 곳은 많지 않았다.

p281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루벤스의 다른 작품 삼미신도 바로 이 파리스의 심판을 연상시키는데, 작가들은 점차 여자 세 명만을 따로 떼어내어 아름다운 여인이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 매력, 미모, 창조력 혹은 사랑, 신중함, 아름다움 등을 나타내는 도상으로 발전시켰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본 보티첼리가 그린 봄에도 삼미신이 등장한다.

p291 여러 장소에 흩어져 있는데, 시대 순서대로 크게 나누어 설명하자면 젊은 시절 궁정화가로 선발되기 위해 그렸던 예쁜 그림들, 궁정화가가 되어 그린 인물화, 그리고 말년에 그린 어둡고 침침한 그림들이다. 초기 작품과 말기 작품을 놓고 보면 과연 한 작가가 그린 작품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다

p303 이탈리아의 3대 거장이 구도와 비례로 승부수를 뒀다면, 북유럽의 3대 세밀화 작가인 얀 반 에이크, 홀바인, 뒤러는 누가 더 꼼꼼한가를 두고 겨뤘다

p311 19세기 근대 미술가들은 엘 그레코를 아싸의 선조로 모셨다. 특히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릴 때, 엘 그레코의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에 나오는 벌거벗은 여인 무리를 참고했다고 한다

p317 프라 안젤리코는 천사와 같은 수도사라는 뜻으로 온화한 그의 성품에 맞춰 붙여진 별명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본명 귀도 디 피에로보다 더 유명한 이름이 되었다. 그는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건물 내부에 그의 작품 다수가 보존되어 있다.

p346 네델란드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작가의 작품을 나치에 팔아넘겼다고 판 메이헤린이란 작가를 처벌하기도 했다. 그런데 메이헤린이 실은 그 작품들이 모두 자기가 그린 위작이라고 말하며 베르메르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베르메르에 대한 추적과 재평가는 영화까지 나오면서 이제는 아예 신드롬이라 할 지경에 이르렀다

p346 그건 바로 베르메르의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상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몰입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기 때문일 것이다.

p371 아두아르 마네가 그린 아스파라거스는 코르테의 작품과 정말 비슷하다. 마네의 이 그림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작은 아스파라거스 그림을 사가면서 작가는 8백 프랑을 불렀는데 컬렉터가 후하게 1천 프랑을 보내자,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가 떨어져 있었다며 마네가 고마움에 그림을 하나 더 그려서 보냈다는 이야기다.

p416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여 드디어 1962년 암스르담 반 고흐 미술관이 고흐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미술관을 짓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후, 1973년 반 고흐의 전문 미술관이 완성되자 빈센트 빌럼 반 고흐는 83세의 나이로 미술관 개관식의 테이프를 자르게 된다. 아몬드 나무가 전달한 사랑이 피운 꽃이었다

p426 이 작품은 고흐가 죽기 전 그의 죽음을 예고하며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이 작품을 그린 후에 7점을 더 그렸다고 한다.

p441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타히티는 그의 예상과 달리 이미 유럽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기에 타히티섬에서 억지로 민속적인 것들을 찾아다녔다. 마을 여인들에게 전통 의복을 입히거나 벗겨서 원시인처럼 그렸다. 하지만 그런 내막을 알 길이 없는 파리에서 그의 전략은 제대로 먹혔고 드디어 작품이 팔려나가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p448 렘브란트는 마치 위대한 영화감독처럼 각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빛과 어두움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만의 장기이다. 한 발 떨어져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큰아들, 뒷모습으로 감정을 대신하는 둘째 아들, 아버지의 커다란 두 손, 인생의 막바지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의 모든 기량을 이 작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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