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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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4/11/15 -2024/11/1


로벨리 책중에서는 제일 읽기가 편했다.

이유가 뭔가 하고 생각해봤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론이라 그런것 같다.

그래서 물리학의 도움보다는 상상력의 도움을 더 많이 받았다. 

물론 양자역학에서 확률함수에 따른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전환과정은 잘 모르겠다. 

그 부분이 수학으로 설명되지 않고 말로만 설명되다보니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의 방향에 구애받지 않는다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화이트홀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과학자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 봐도 흥미로웠다. 

과학은 엄밀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상상력에서부터 출발하는 건 과학도 같은 것 같다. 

어려워서 힘들어하면서도 로벨리 책을 계속 읽는 것을 보면 무언가 끌리는 게 있는것 같다.

다음 책이 기대된다. 화이트홀의 이론이 완성이 되서 나올까?


p16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변하지 않아요. 반등을 일으키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해들을 함께 결합하기만 하면 돼요.

p21 이 방정식은 아주 힘든 작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흔적을 일련의 논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각 논문에 실린 다른 버전의 방정식들은 모두 틀린 것이었습니다. 틀린 것을 발표할 용기가 없다면 아인슈타인이 될 수 없는 것이죠

p31 신비한 휘파람 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은하중심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전에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는 백열 물질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이었습니다. 그 블랙혹은 지구의 궤도 전체만큼이나 크고 질량은 태양의 400만 배에 달합니다.

p32 이제는 그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비판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것이 과학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려는 겁니다.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뭔가를 배운다는 거니까요. 최고의 과학자는 자신의 주장을 자주 철회하는 사람입니다. 아인슈타인처럼 말이죠

p44 이것은 관점에 따른 효과가 아니라, 중력으로 인한 실제 시간 왜곡입니다. 중력이 강한 곳은 중력이 약한 곳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실제로 시간은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속도로 흐릅니다.

p50 갈릴레오의 위대한 저서인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대부분의 페이지는 지구가 돈다는 주장을 펴는 데 할애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지구가 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뿌리 깊은 직관을 무너뜨리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p55 자와 시계로 측정되는 공간과 시간의 기하학이 바로 이 중력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중력장에 대한 방정식은 공간과 시간이 어떻게 휘어지는지 기술합니다. 그래서 중력이란 물체의 영향으로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공간이 휘어지면 시간도 서로에 대해 느려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앞에서 나온 시간의 왜곡은 바로 이런 식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p67 깔때기가 좁아질수록 시공간 왜곡이 심해지죠. 이것이 시간과 공간이 양자 현상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규모인 플랑크 스케일에 도달하면,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위합나흔 양자 현상의 영역에 진입하게 됩니다.

p76 집에 너무 많은 것을 두고 가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쓸 도구가 부족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면 새로운 이해의 길을 찾지 못합니다. 비결 같은 건 없습니다. 시행착오만 있을뿐.

p88 사실 그것은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또 다른 해가 아닙니다. 블랙홀을 기술하는 것과 동일한 해이지만, 시간 변수의 부호를 반대로 쓴 것입니다. 동일한 해를,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본 셈이죠. 화이트홀은 블랙홀을 촬영하고 그 영상을 거꾸로 재생할 때 나타날 모습인 것입니다.

p100 공간이 한 구성에서 다른 구성으로 양자도약하는 현상입니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이러한 종류의 양자도약, 즉 공간의 한 구성에서 다른 구성으로 점프하는 것을 기술합니다.

p106 수학적으로 처리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은, 지평선이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양자도약하는 B영역입니다. 이 전이에 대한 계산은 현재 진행중입니다. 이 계산은 공변 또는 더 화려하게 스핀 거품이라고 불리는 루프 이론의 한 버전을 기반으로 합니다.

p117 우리는 시공간의 기하학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방정식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 방정식이 양자도약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죠. 또한 양자도약의 확률 계산에 착수해야 했습니다.

p127 1974년 스티븐 호킹은 뜻밖의 발견을 합니다. 블랙홀이 열을 방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양자 터널 효과이지만 플랑크 별의 반등보다 더 단순합니다.

p132 오래된 블랙홀은 증발이 많이 되어서 에너지가 별로 없습니다. 호킹 복사 때문에 에너지를 잃었기 때문이죠. 이런 블랙혹도 여전히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논쟁거리입니다.

p138 지평선에 들어간 정보는 신비한 마법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간달프처럼 하얗게 변한 후에야 지평선 밖으로 나옵니다. 스티븐 호킹은 말년에 인생의 블랙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조만간 빠져나오게 될 테니까요. 화이트홀을 통과해 나오는 것이죠

p142 플랑크별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랙홀은 호킹 복사를 방출하면서 에너지를 잃고 작아지며, 별이 다시 화이트홀로 튕겨져 나와도 화이트홀은 처음의 블랙홀 크기만큼 돌아가지 않고 작은 상태로 머뭅니다.

p148 몽블랑의 이탈리아 쪽에서 보면 위쪽은 북쪽이고, 몽블랑의 프랑스 쪽에서는 남쪽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도 마찬가지로 사물이 배열되는 방식을 반영합니다.

p156 과거의 초기 불균형이 현재에 과거의 흔적이 있는 이유입니다. 흔적의 형성은 모두 평형을 향한 중간 단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현재에 과거의 흔적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과거의 불균형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기억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는 까닭은 오로지 초기 불균형 때문입니다.

p169 이제 마침내, 시간에 방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사고 자체가 시간의 방향성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불균형의 산물 중 하나인 것입니다.

p180 털과는 달리 전하가 없기 때문에 빛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약한 중력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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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역사의 쓸모 - 합리적이고 품위 있는 선택을 위한 20가지 지혜 역사의 쓸모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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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4/11/09 -2024/11/15


역사의 쓸모 2탄이다. 워낙 유명한 한국사 강사이기에 저자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한국사가 뉴라이트로 인해 수난을 겪고 있는 이때에 이런 책들이 우리가 왜 역사를 알아야하고,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간서치 김득신으로 시작해 우리나라를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사랑했던 미국인 서서평에 이르기까지 역사속에서 두드러졌던, 또는 숨겨졌던 사람들을 통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도전에 반응할 나를 응원해준다.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만드는 자들에게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자랑스런 역사에서는 긍지를, 부끄러운 역사에서는 반면교사를 삼으며 오늘 나에게 던져지는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려고 한다.

좋은 책이다. 


p19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과제가 있었듯 우리 시대에는 우리 시대의 과제가 있어요. 우리는 이 과제를 풀어나가면 됩니다.

p38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충돌이었어요.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일어날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입니다. 사라예보에서의 총성은 하나의 명분이었을 뿐이에요

p61 저는 이런 것이 일종의 지적 유희라고 생각해요. 역사적 배경 지식을 알게 되면 더욱더 몰입하게 되잖아요. 창작자의 의도도 이해되고 감동도 깊어지죠.

p84 김득신은 머리가 그렇게 나빳지만 시는 잘 썼다고 합니다. 당시 왕이었던 효종은 김득신이 쓴 시를 볼 때마다 극찬했어요. 자연을 노래한 시를 읽다 보면 자기가 마치 그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평했어요.

p85 나보다 머리 나쁜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조선의 노둔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너는 못 해라고 한계를 정한 적이 없다. 혹시 당신이 살다가 재주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처럼 한 가지 일에 정성을 다해보아라. 내 시대에 나보다 시를 빨리 쓰는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시험에 빨리 합격한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글을 빨리 배운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나와 같이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p97 제7폭 환어행렬도는 화성을 출발한 행렬이 시흥 행궁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렸는데 정조가 직접 혜경궁 홍씨에게 차와 음식을 올리기 위해서 행렬을 멈춘 순간을 담았어요. 정조가 어머니를 얼마나 정성껏 모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p114 매천야록은 정치와 경제 상황은 물론이고, 저잣거리의 소문까지 담은 중요한 자료에요. 이 책의 마지막에 담긴 사건은 경술국치였습니다. 망국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뒤 황현이 술에 아편을 타서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p145 임사홍과 막내아들 임승재는 연산군을 위해 무엇이든 합니다. 연산군의 사냥에 방해되는 민가는 몽땅 철거하고, 전국 방방곡곡의 미인을 왕에게 바쳤어요. 두 사람이 나타나면 다들 벌벌 떨었다고 해요. 그토록 연산군을 따른 이유는 연산군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p189 그가 펼친 정책들은 16세기라는 시대와 조선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서 고민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생각들이거든요. 만적이 노비의 한계를 벗어나 우리도 장상이 될 수 있다고 외쳤다면, 이지함은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던 성리학의 시대에 양반으로서의 체면을 다 내려놓았어요.

p194 박노해 시인이 쓴 글귀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p215 성공신화를 만드느라 그 뒤에 숨겨진 아픔은 감춰져 버렸죠. 하지만 사실 인간 안중근은 실패와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계획한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자신이 옳다고 믿은 결정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엄청난 비판과 비난을 받았고 극한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죠.

p247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미국의 여성운동가 캐롤 허니쉬가 한 말입니다. 사랑과 결혼, 가정 문제 같은 개인적인 것이 사실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뜻이에요. 모두 개인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p259 최홍종 목사도 아주 대단한 분이에요. 한국의 한센병 환자 이야기를 하려면 이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빈민운동가인데. 한국나병예방협회를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p262 쉴 새 없이 일하던 서서평은 1934년 여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광주는 물론, 제주도까지 돌면서 봉상에 매진한 나머지 지나치게 쇠약해진 거에요. 매일 최소한의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남은 생활비는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던 서서평의 사인은 안타깝게도 영양실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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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한국사 - 진실을 쫓는 역사 독립군 배기성의
배기성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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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4/11/02 -2024/11/09


제목과 다르게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하려면 자랑스럽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사실은 거짓이라든가, 일본의 임나일본부가 사실은 맞는 것이라든가 이래야 불편할텐데, 그런 내용은 사실 없었다.

대부분 조금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던 이야기들이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에 속아서 별점을 좀 낮게 주었다. 

역사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어서 읽어도 좋고, 통사로 읽어도 좋다.

무언가 내 삶에 깨달음이 있는 영역이라 역사책을 읽는 게 좋은 것 같다..

즐거웠다. 


p29 수나라는 300만 명 이상 동원한 AD 612년의 대전쟁에서 무려라 하나를 빼앗아 가지고 돌아왔다. 얼핏 보면 매우 초라한 성적표지만, 길게 보면 다르다. 이는 고구려로부터 석탄 화력을 빼앗아 버림으로써 수나라 다음에 올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결국 패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구려는 612년에 무려라를 빼앗긴 후, 56년 동안 무려 5번의 대전쟁을 겪을 후에 멸망한다.

p46 발해와 당나라의 관계는 견원지간이었다. 앞서 고선지 장군 등 무예에 능한 사람들을 따로 1만 명이나 형성해 저 멀리 서역에 원정 보낸 것도, 또한 약 4만 명 정도 되는 백제, 고구려 유민들을 저 멀리 사천성이나 운남성에 내려보낸 것도, 모두 신흥국 발해, 즉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과 연합하지 못하게 하려는 당나라의 치밀한 작전이었다.

p63 동북 9성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쯤인가? 9개의 군진을 설치했다면 어디 어디가 9성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 역사학계는 아직도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현재 동북 9성의 소재지 대부분이 우리의 적대 국가인 북한 땅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자학 사관이다. 우리 역사를 항상 과소평가하고, 삼국 통일 이후의 우리 역사는 중국 땅을 조금이라도 침범해서는 안되며, 특히 근현대 이후로는 과거의 역사라 할지라도 한반도 안에서 조용하고 얌전하게 있어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 때문이다.

p79 후일 19세기 초엽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은, 조선 땅에서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 흑산도에서 글공부한다는 사람조차 주자 성리학을 놓고 공부한다는 소리에 “주자는 정말 힘이 세구나”라고 자조 섞이 비평을 내놓을 정도로, 조선에서는 주자 성리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관직에 나갈 수도 없었고, 사문난적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p90 선조가 즉위한 직후, 이이는 33세의 한창 젊은 청류 선배로서,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내놓는다. ‘정병 10만 양병설’이다. 군사를 양성하는 데 그 윤원형의 재산을 쓰자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전하, 윤원형의 재산이 왕실로 귀속되어야 한다. 신하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같은 논쟁은 지금 하등의 쓸모가 없는 논쟁이옵니다. 이로써 정병을 양성하여, 유사시를 대비한다 하면, 전국의 인구조사를 다시 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유랑민들을 다시 세금을 내게 하는 양민으로 돌릴 수 있사옵고, 또한 나라의 제조업을 무기로 만드는 공업으로 할 수 있어 조선의 문약함을 돌볼 수 있나이다.”

p102 1593년과 1594년의 머리글자를 딴 계갑 대기근. 1592년에 전쟁으로 전국의 농토가 황폐화되니 농사를 하나도 짓지 못하고,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유랑민이 되니 어찌 흉년이 들지 않겠는가! 도제찰사 오리 이원익의 불길한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져 1593-1594년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최악의 대기근에 시달렸다.

p109 남해 바다를 지킬 수 있는 장수는 이순신 제독 말고는 없사옵니다. 원균은 빼고 말하시옵소서.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따. 2대 199의 대결이었다. 2는 오리 이원익과 좌찬성 정탁 그리고 나머지는 국왕을 포함한 문무백관 전체이다.

p122 이원익은 붕당을 정말 싫어했다. 그의 스승 율곡 이이와 비슷했따. 그렇지만 붕당으로 굳이 치자면, 남인에 속했다 한다. 실은 이원익 정승은 특정 붕당 모임에 나간 적도, 자신이 남인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 싶다. 그런데, 자신의 필생의 업적인 대동법의 완수를 승계해야 한다는 목적의식하에 후계자를 찾을 때에, 그는 김육을 강력히 천거했다.

p146 이 영조라는 임금은 진정한 사이코패스였다. 이제부터 또다시 그의 광기가 시작된다. 약 60여 명의 소론 학자들이 참형을 당했다. 양명학자 이광사는 이에 연루되어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다. 그의 아내는 두 아들과 어리디어린 아기 딸을 남겨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p152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전통주의 종류는 영조의 뻘짓거리 한 방에 크게 줄었고, 추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1916년 조선총독부의 주세령에 따라 소규모 양조장은 모두 없어졌다.

p178 우리에게 알려진 판소리 여섯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는 1840년대에서 1850년대 사이에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신재효가 개작, 정리한 것이다. 창작한 것은 아니고, 옛부터 전해 내려오던 판소리라는 장르를 네 가지 장르(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로 4대 법례를 마련한 음악 이론가라고 하면 맞겠다. 그러니까 이 판소리 장르는 서양 음악으로 치자면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보다도 훨씬 현대 음악이다

p191 조선의 19세기를 돌이킬 때 가장 아까운 3명이 있다. 최시형, 전봉준, 김대건이다. 앞의 2명은 동학의 인재이고, 뒤의 1명은 서학의 인재이다. 이 셋을 끌어안지 못해서 조선은 망했다. 조선의 세도 정치 및 후진 역사성은 이 셋의 번득이는 천재성을 끝끝내 포용하지 못하고 모두 교수형 아니면 참형으로 다스렸던 것이다.

p196 탐보라 화산이 터졌다. 1812년부터 조금씩 인도네시아 숨바와섬에서 이상 조짐을 보이던 탐보라 화산이 드디어 터졌다. 1815년의 일이었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지역에서 폭발 소리가 감지될 만큼 엄청난 분화였다. 발리섬과 그 옆의 룸복섬 그리고 그 옆에 숨바와섬에 있는 탐보라 화산이었다. 숨바와섬에 있던 1만 2,000명이 폭발 7일 만에 사망하고, 8만 명이 1년 안에 모두 죽었따. 무려 9만 2,000명이 직접적인 피해로 죽었다.

p201 정한론. 1870년을 전후해 우리나라에 전달되었던 일본의 대륙 침략 계획이다. 사쓰마 번의 사이고 다카모리에 의해 처음 주창되었떤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쓰마 번과 함께 1868년 메이지 유신은 각 현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것을 일본이라고 하는 하나의 나라로 합친 것이다.

p208 바우덕이는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벼슬을 받은 것이다. 정3품 이상은 당상관이다. 바우덕이가 얼마나 뛰어난 예능 실력으로, 당시 경복궁 중건 노역자들에게 노동 의지를 불태우게 해주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p214 이하영은 철도 노선을 놓기 위해서는 대규모 출자가 이루어져야 함을 계속 이야기했고, 이에 금융왕 JP 모건이 눈치 빠르게 근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느 ㄴ정동교회 바로 건너편에 한국 지점을 설치했다. 그리고 미국 자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차부터 개설했다.

p217 태화관에 오지 않은 민족 대표 4명이 더 있다는 것을 손병희의 진술로 확보했다. 인감도장만 맡기고 오지 않은 것이다. 평안북도의 길선주 장로, 평안북도의 유여대 장로, 김병조 목사, 정춘수 목사 등은 모두 각자의 곳에서 더욱 열심히 만세를 부르고 그 현장에는 가지 않는 대신 인감도장을 보내, 독립선언서에 도장은 총 33개가 찍혔다.

p219 요리 만드는 사람이 그 요리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11월 18일 아침 소식을 듣고 까무러쳤다. 그 중명전 회의장이 바로 대한제국을 망하게 만든 을사늑약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자신이 만든 요리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순간 양 손목을 자르고 싶었다는 안순환의 회고. 그러니 1919년 3월 1일의 민족적 거사에 안순환은 손병희를 붙들고 그날의 오욕을 씻게 해 달라고, 민족지도자 대표 33인에게 제가 정성껏 만든 요리를 대접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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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미술관 - 그림 속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우다
김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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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유하는 미술관

 : 김선지

 : 알에이치코리아

읽은기간 : 2024/10/26 -2024/11/01


이런 책이 참 좋다. 

특별한 주제를 따라 엮어나가는 책.. 역사에 따라 그림이 엮어나가는 책은 오랜만이다. 

단순한 화파나 작가가 아니라 역사를 중심으로 그 역사를 설명하는 그림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저자의 이름이 낯이 익어서 살펴보니 그림과 천문학을 엮어서 쓴 책이 있었다..

그 책도 재미있었는데 이 책도 재미있다.. 

이런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해피해피.. 


p6 김선지 작가의 사유하는 미술관은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역사라는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저자는 그림이 색채로 표현되고 눈으로 감상하는 역사책이라고 말한다.

p9 이 책은 역사를 핵심 주제로 하여 여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본 그림 역사책이다. 왕정 시대 국가의 구심점이었던 왕과 비, 성과 사랑, 음식 문화, 신앙과 종교, 힘과 권력, 그리고 근대 사회 명암의 역사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았다.

p34 유럽인은 휘렘을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비틀린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녀의 이미지는 신비하고 이국적인 동방의 여왕, 하렘의 팜파탈로 고착되었다. 그녀가 지성과 의지, 인내와 결단력 덕분에 정치적 암투가 치열한 오스만 제국의 하렘에서 살아남과 종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은 간과했다.

p51 결국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낸 메리 1세는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반은 비극과 불안, 종교적 독선으로 얼룩졌지만 적어도 반은 용기와 통찰력을 가졌던 지도자로 기억되어야 하지 않을까

p84 후에 책임 추궁당할 것을 염려한 나폴레옹은 연출된 드라마를 그림으로 그리게 한다. 고국으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이 성공했다고 거짓 선전했다. 사람들은 그가 군대의 절반과 함대 전체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믿었다.

p92 옥타비아누스는 정적 안토니우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로마 남성을 유혹하는 악마로 만들어야 했다. 그는 로마인들이 안토니우스를 이방인의 유혹에 빠져 조국을 배신한 사람, 클레오파트라를 로마인 아내에게서 남편을 빼앗아 간 사악한 요부로 생각하기를 바랐다.

p108 진실의 입은 간음, 위증과 같은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판결하기 위한 일종의 중세식 거짓말 탐지기였다. 이 관행은 아내의 간통을 확인하기 위해 종종 이루어졌을 뿐 남성이 이런 식으로 시험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p128 그녀는 위엄있는 여왕보다는 현대의 할리우드 셀럽에 가까웠다. 어머니인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가 서신을 통해 딸에게 끊임없이 잔소를 할 정도로 왕비답게 처신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p147 그녀는 시간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이 드는 일과 타협하지 못했따. 올도이니는 1900년 만국 박람회에서 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제목의 사진 전시회를 열어 자신의 사진들을 선보이는 꿈을 꾸었지만 이루지 못한 채 1899년 62살의 나이로 외롭게 죽었다. 살아 있을 때도 악명이 높았지만 죽었을 때도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따. 신문들은 그녀의 부고 기사에 허영심과 오만에 가득찬 나르시스트가 사망했다고 썼다.

p157 카트린은 프랑스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 패션, 요리를 소개했다. 그녀는 결혼할 때 궁정 하인, 예술가, 음악가, 무용수, 자수 장인, 드레스 제작자, 헤어 스타일리스트, 향수 제조업자, 요리사, 제빵사 등 많은 측근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이들을 통해 화장술, 헤어피스 가발, 염료, 고급 속옷, 식탁보, 자수 및 고급 손수건 등을 전파했따. 발레를 들어오고 최초의 향수 판매점을 열기도 했다.

p177 오스만 제국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에 이르기까지 커피하우스는 새로운 정신의 물결에 영감을 주는 장소, 뛰어난 지성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따. 사람들은 갓 내린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담소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p200 대항해 이후 경쟁적으로 식민지 개척에 몰두한 유럽 국가들은 아메리카에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건설했다. 이때부터 설탕을 생산하기 위한 노예 노동의 참혹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p211 네델란드 정물화와 먹스타그램 간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들 정물화는 입맛을 당기는 음식들을 자랑하는 동시에 독특한 삶의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바니타스 정물화인 것이다.

p222 전염병은 중세 예술에도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회화, 목판화, 조각 등은 이전보다 더욱 사실적인 표현으로 향했고, 거의 한결같이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

p236 그의 접시 위의 뱀이나 개구리, 물고기 등의 생물들은 마치 살아 있는 실물처럼 피부 조직이 세밀하고 정교하다. 이렇게 세세한 피부 조직까지 캐스트를 떠내려면 엄청난 인내와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팔리시의 양식은 그의 사후에도 많은 추종자들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졌다.

p246 이들의 금식은 거룩한 거식증으로 높이 추앙받았으며, 일부는 성녀로 추대되었다. 육체적 쾌락의 포기가 남녀 모두에게 요구되긴 했지만 특히 죄의 무게가 더 무거운 여성의 경우 몸을 혹사하는 금식 고행까지 하도록 내몰렸다.

p261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문맹의 평신도가 아니라 박식한 엘리트층을 위해 설계되었다. 지식층 관중만이 그가 의도한 인문학적 은유와 암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카론과 미노스에 대한 언급이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 근육질 그리스도의 모습이 헬레니즘 시대 조각품 아폴로 벨베데레를 인용했다는 점을 이해했다.

p263 중세 유럽은 흔히 야만의 시대, 문명의 암흑기로 간주된다. 많은 사람들이 마녀 사냥 혹은 마녀 재판도 중세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마녀사냥은 중세 말기인 14-15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중세보다는 과학 혁명의 시대라는 17세기경 가장 극심하게 일어났다.

p292 17세기 정물화에서 노예가 다른 물건과 함께 주인의 소유물로 그려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p304 후원자 앙리 2세가 마상창시합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사망한 후 그는 와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소유물이 된다. 그녀는 페트루스를 다시 동물의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p309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겉모습을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아이들에게 정신의 추함과 육체의 추함을 분별하고 마음과 영혼의 광채를 보도록 가르친다. 현실에서는 이 교훈이 얼마나 공허하고 위선적인가

p317 인디언 공주를 쓴 제임스 넬슨 바커 같은 극작가들은 미국인이 공유하는 신화를 만들어 초라한 식민지 개척자들의 나라가 하나로 통합되기를 열망했다. 그들은 연극을 통해 감동적이 위대한 미국의 서사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과 싸우는 영웅적인 식민지 개척자들의 이야기나 식민지 정복자를 포용하고 돕는 포카혼타스의 고귀한 야만인 신화가 그것이다.

p339 르누아르의 보트놀이 일행의 오찬은 목가적인 야외 식사의 매력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이 늘 그렇듯이 생생하고 채도가 높은 색채가 도드라지며, 사람들 사이의 따뜻하고 친밀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p357 산업 혁명 시대의 대기 오염이 없었다면 터너와 모네의 그림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현대 추상화로 가는 첫 단추를 끼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산업 혁명이 미술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자못 크다. 물론 대기 오염이 전적으로 미술사의 방향을 결정했다는 건 아니지만 화가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p373 화가들은 덩치를 부각하기 위해 몸통은 과장된 크기로 그렸고, 다리는 작고 가늘게 표현했는데 결과적으로 약하고 왜소한 다리가 어마어마한 몸집을 지탱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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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8 - 바로크 문명과 미술 : 시선의 대축제, 막이 오르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8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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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처한 미술이야기8

 : 양정무

 : 사회평론

읽은기간 : 2024/10/18 -2024/10/26


무척 오랜만에 시리즈가 업데이트되었다. 

쓰기가 어려웠을까? 아니면 바빴을까?

책이 나오기가 무섭게 바로 주문해서 읽었다. 이번 시리즈는 바로크시대다.

보통 르네상스를 많이 보고, 그 다음으로는 인상주의를 보곤 했는데, 바로크의 화려한 모습을 보니 또 새롭다. 

내가 알고있던 카라바조나 고야.. 이런 화가들이 다 바로크시대 화가들이었구나..

역시 미술에 관심이 없다보니 이런 기초적인 내용도 잘 몰랐다. 

바로크의 화려한 미술을 이탈리아, 북유럽, 스페인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는 르네상스에서 바로 인상주의로 가지 않고 바로크의 화려함도 느끼게 될 것 같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결국 아는만큼 보게되는 것 같다. 

누군가 더 자세하게 잘 설명해주면 남은 내 인생에서 미술을 보는 눈도 높아지고 삶도 풍성해질 것 같다.. 좋다.. 


p7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함께 유럽 근대 미술의 양대 산맥입니다. 르네상스가 고전적 균형과 안정적 조화를 강조했다면 바로크는 탈고전적 화려함과 빠른 움직임을 강조합니다

p21 그럴 수 있습니다. 너무 높은 톤으로 다가가면 도리어 상대방이 당황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크 미술이 그렇습니다. 좋게 보면 환상적이지만, 자칫하면 표현이 너무 과도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바로크 미술을 절제를 모르는 과장된 미술이라고 비판하거나, 심지어 조롱하는 학자도 꽤 많습니다.

p58 종교개혁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하고, 정확히 10년 뒤인 1527년에 또 하나의 엄청난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로마의 약탈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1년 넘게 점령하며 도시를 잔인하게 약탈한 사건이죠. 고대부터 로마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몇 차례 함락된 적이 있지만, 이때 입은 피해는 너무나 크고 광범위했습니다. 로마 주민 대부분이 죽거나 피난을 떠나는 바람에 로마는 한동안 유령 도시나 다름없었습니다

p68 하루를 48시간처럼 바쁘게 살았던 성 카를로는 무너진 카톨릭의 위상을 바로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성 카를로의 인기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p100 카라바조는 이 그림에서도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들의 표현에 집중합니다. 무엇보다 탁자 위의 카펫, 모자의 깃털, 옷의 질감 표현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고급스러워 인상적입니다. 더욱이 왼쪽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 이런 디테일을 강하게 비추면서 그림자가 돋보입니다. 덕분에 그림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명확하게 다가오죠

p120 지금까지의 미술에서 성인들은 높은 신분의 위인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종교화의 공식을 뒤집고 성경 속 인물을 평범하게 그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p125 카라바조가 성인을 빈민의 모습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이 점은 성경의 맥락과 같죠. 예수 그리스도도 평생 가난하게 살며 백성들과 함께했으니까요. 카라바조의 그림을 좋아했던 후원자들은 카라바조의 그림이 가장 낮은 자의 자세로 빈민들의 세계를 존중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p151 진격의 미술학교는 도메니키노, 귀도 레니, 구에르치노 같은 뛰어난 화가를 배출했습니다. 제자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이른보 볼로냐 화파가 탄생합니다. 결과적으로 카라치 형제의 아카데미는 당대 최고의 화가 양성소이자 미술 교육 기관이었습니다. 나아가 이탈리아 최초의 본격적인 미술학교였습니다.

p160 액자뿐 아니라 주변 건축 구조물과 장식까지 전부 그려 넣은 겁니다. 이렇게 건축 요소를 그림으로 구현해 관람자의 시선을 속이는 기법은 ‘과드라투라’라고 부릅니다.

p171 체라시 예배당은 1600년 교황의 재무관이었던 티베리오 체라시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체라시는 자신이 묻힐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당시 잘 나가던 두 화가, 안니발레와 카라바조에게 그림을 주문합니다. 이렇게 예배당 중앙 제대 위에는 안니발레 카라치의 그림이, 양옆에는 카라바조의 그림이 자리하게 됩니다.

p179 안니발레의 파르네세 갤러리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라파엘로의 스탄차와 함께 로마에서 반드시 봐야 할 3대 프레스코와로 손꼽힙니다. 그러나 천장화가 있는 팔라초 파르네세가 현재 프랑스 대사관으로 쓰이고 있어서 막상 관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p186 화면 네 귀퉁이에는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 포교 활동을 새겼습니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에서의 포교 활동을 카톨릭 복장을 한 여인의 모습으로 의인화한 겁니다.

p189 당시에는 돔이 있어야 제대로 된 성당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당을 지으려는데 돔을 지을 만큼의 건축비는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돔을 그려 넣은 거죠. 돔은 성당 옆 건물의 채광을 막으면서 주변의 민원을 받기도 했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단 가짜 돔을 그려 놓고 후에 제대로 된 진짜 돔을 지으려 했지만, 계획이 흐지부지되면서 지금까지 가짜 돔이 자리 잡은 겁니다.

p210 왼쪽의 시피오네 추기경은 멍한 표정입니다. 어디를 응시하는지 분명하지 않아요. 반면 오른쪽은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압권인데요. 무슨 이야기를 막 하려는 듯 입을 살짝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당시 사람들은 스피킹 라이크니스, 즉 말을 거는 듯하다고 평가하는데 곧 베르니니의 초상 조각의 특징입니다.

p213 베르니니는 두 개의 어마어마한 종탑을 대성당에 세우려고 했어요. 그러나 지반이 약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한 채 거대한 구조물을 짓다 보니 왼쪽 종탑에 균열이 가고 말았습니다. 대성당 전체가 모조리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1646년 종탑을 자체 철거했습니다.

p230 사실 바로크를 연극적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 수식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 성테레사의 황홀입니다. 베르니니는 예배당 중심에 있는 제대를 무대로 여기고 여기에 성 테레사가 영적 체험을 겪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p243 보로미니의 경우 타원형을 사용하면서도 실험을 통해 그 모양을 독창적인 형태로 변형시켜 움직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베르니니는 순수한 타원형의 형태를 고수해 정적이며 담백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p288 정물화의 발전 과정에서 아르트센이 그린 푸줏간은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다뤄집니다. 사물들이 화면 전면에 당당하게 배치되어 초기 정물화로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림 크기도 상당히 커서 높이 1.15미터, 폭 1.68미터입니다.

p308 무엇보다 이런 그림과 드링이 그려질 무렵 아트베르펜은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루벤스가 한군인을 직접 마주치지 않았더라도 각종 기록을 통해 한국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었따고 짐작할 수 있죠

p326 이 결정은 네델란드의 경제 번영에 신의 한수가 됩니다. 유럽 곳곳에서 신아을 억압받던 이들이 종교적 관용을 허용한 네델란드 공화국으로 모여들었으니까요. 이렇게 네델란드로 모여든 종교적 난민의 숫자는 수십만에 이르렀습니다

p334 빌럼 1세는 최강을 자랑하던 스페인 군대에 맞서 싸워 북부7주를 독립의 길로 인도합니다. 오늘날 그는 네델란드 국가에 나올 정도로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습니다. 빌럼 1세의 가문 오라너는 영어로 하면 오렌지입니다. 네델란드를 상징하는 오렌지색이 바로 오라너 가문에서 비롯한 겁니다.

p345 3차 영란전쟁에서 네델란드는 바다에서 영국, 육지에서는 프랑스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웁니다. 최종적으로 네델란드가 승리했지만 계속된 대규모 전쟁으로 네델란드의 국력은 점점 기울게 됩니다. 결국 18세기 들어 해상 권력을 영국에 넘기면서 네델란드의 황금기도 끝을 맞이합니다.

p358 그림의 대상이 일상적인 소재에서 점점 사치품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16세기에는 소시민의 소박한 삶을 나타내는 정물화가 대부분이었다면 17세기에 들어서 정물화는 부유층의 고급스러운 삶을 우아하게 보여줍니다.

p365 만개한 해바라기 사이로 병들어 시든 꽃이 눈에 띕니다. 삶을 예찬하는 동시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네델란드 정물화의 전통이 반 고흐같은 19세기 인상주의 화가에까지 이어진 셈이죠. 반 고흐 역시 네델란드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찍부터 전통적인 네델란드 정물화의 특성을 알았을 겁니다.

p393 두 그림이 보여주는 직업 화가의 양면은 오늘날 미술계에서도 낯선 일이 아닙니다. 성공 혹은 실패에 따라 화가가 겪는 삶의 명암이 달라지니까요. 이 시기는 미술시장 성행부터 직업 화가의 숙명까지, 오늘날 미술계의 예고편인 셈입니다.

p405 학교풍경을 담은 얀 스테인은 한국에서 특이한 별명으로 불립니다. 바로 네델란드의 김홍도인데요. 얀 스테인이 그린 또 다른 마을 학교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으 거에요

p429 루벤스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웅적인 신체로 잡아냈다면 렘브란트는 한 인간의 고결한 희생으로 표현했습니다. 두 그림은 크기도 꽤 차이가 납니다. 루벤스의 원래 그림은 높이 4.2미터, 폭 3.2미터로 웅장하지만, 렘브란트의 종교화는 개인의 묵상이나 교육자료로 그려 그리 크지 않아요. 높이 90센티미터, 폭 60센티미터로 아담하죠

p461 페르메이르는 거창한 사건이나 유명한 장소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잔잔히 담아냈습니다. 페르메이르가 포착한 평화로운 일상은 네델란드의 군사적, 경제적 번영 덕분이었는데요.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정지된 고요함은 조국의 번영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p469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미술은 진리의 영속성을 추구하고, 바로크 미술은 진리의 순간성에 주목한다고 합니다. 두 그림 속에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대조적 세계관이 잘 배어있다고 할까요

p496 아래의 톨레도 제대화는 화려하지만 복잡해 보이고, 엘 에스코리알 제대화는 잘 정돈된 느낌입니다. 엘 에스코리알 제대화 중앙에는 로렌스 성인의 순교 장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펠레그리노 티발디라는 화가의 작품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티치아노의 작품이 걸릴 예정이었습니다.

p501 1556년 카를로스 1세는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펠리페 2세는 스페인에 머물며 방대한 제국을 통치하고, 엘 에스코리알까지 기획합니다. 따라서 스페인 미술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면 펠리페 2세를 기준으로 삼는 게 맞을 겁니다.

p524 지상과 천상을 극적으로 표현하면서도 하늘로 올라가는 영혼을 통해 그림의 중심까지 잘 잡은 덕분입니다. 당시 스페인이 요구했던 카톨릭 신비주의 가치관과 회화적 효과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낸 결과입니다.

p547 펠리페 3세 시대의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은 1605년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출판입니다. 소설이 상징하는 부조리함과 엉뚱함이야말로 당시 스페인의 시대적 분위기였습니다.

p562 이 그림을 볼 때 채색도 눈여겨봐야 해요.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대상의 윤곽선을 정확히 그린 뒤 색을 칠합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붓으로 대충 물감을 뭉갠 듯 보입니다. 자유로우면서도 거친 붓놀림으로 형태를 대략적으로 그린 겁니다. 그런데 뒤로 두세 걸음 물러나서 보면 화려한 레이스 소매와 빛나는 금발이 눈에 들어옵니다. 춤추는 듯한 터치로 그림 곳곳에 정교하게 빛과 색을 녹인 선이 아닌 색채와 빛으로 형태를 만든 겁니다.

p574 다른 화가들은 몰라도 무리요만큼은 충실하게 지켰습니다. 앞의 왼쪽 작품에서 보듯이 성모를 흰색과 파란색 옷으로 표현하고, 천사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성모를 파체코의 가이드라인을 적절히 참고해 그렸죠.

p582 스페인 제대화 설계의 기본은 바닥에서부터 위까지 가득 채우는 겁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 울트라 바로크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왕들의 제대화의 폭은 13미터, 높이는 25미터입니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건축가 헤로니모 데 발바스가 설계해서 1718년~1737년 사이에 제작됩니다.

p591 포도주 석 잔을 내왔는데 지난번에 마신 것보다 맛이 더 좋았다. 나는 연거푸 두 잔을 마셨을 뿐인데도 많이 취하였다. 입에 들어갈 때는 상쾌하고 목으로 넘어갈 때는 부드러워 그 맛을 형언할 수 없었다. 선인의 음료라 하더라도 이보다 낫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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