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의 파리 - 보부아르, 피츠제럴드, 장 르누아르, 달리와 친구들 1929-1940 예술가들의 파리 4
메리 매콜리프 지음, 최애리 옮김 / 현암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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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랑끝의 파리

 : 메리 매콜리프

 : 현암사

 : 2021/05/23 - 2021/06/03


파리를 중심으로 1870년대부터 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책.

역사책이라고 해야하나? 

이번이 4권째인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시작까지를 기록했다.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길을 잃기 딱 좋은 책이다. 그럼에도 자꾸 읽게 된다.

삽화 하나 없이 500여페이지를 읽는데 글을 잘 써서인지, 아니면 역사가 궁금해서인지 집중해서 읽었다.

책을 읽다보면 2차세계대전이 안일어나는 게 더 이상할만큼 프랑스는 엉망이었다. 

좌파정권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우익들의 테러와 시위, 그리고 언론의 가짜뉴스가 나라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유대인들 때문에 프랑스인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익의 선동이 아주 잘 먹혔다. 대공황때니 이만큼 국민들을 호도할 선동이 없다. 

옆나라 독일의 전체주의를 부러워하며 프랑스도 히틀러같은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익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아시아에 있는 어느 나라가 떠오른다. 

어느 나라나 극우는 나라를 망가뜨리는 데 일등공신이다. 

그런 와중에 예술인들의 처신과 행동을 보며 인간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직원들을 억누르기만한 코코샤넬.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원하며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보며 자기를 더 보고싶어서 저렇게 시위하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자본가들은 생각이 없는건지 없는척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율리시스를 쓴 제임스 죠이스의 파렴치한 행동과 헤밍웨이의 거만한 모습도 책에서는 계속해서 나온다. 이런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대접하고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실비아 비치는 정말 천사다. 실비아 비치가 운영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정말 대단한 서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전쟁이 나자마자 바로 항복해버린 페탱과 끝까지 저항운동을 하는 드골의 모습도 인상깊다. 책을 보면 페탱은 처음부터 끝까지 드골을 방해하고 멀리한다. 역시 지도자가 중요하다.

그외 수많은 인간군상들의 탁월함과 우아함, 그리고 졸렬함을 볼 수 있다.

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다는 데 감사한다.

이런 책은 소장해야 한다. 책장에 여유가 생기면 1권부터 모두 사 모으리라..



p18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대모 노릇을 하던 초기에, 실비아 비치는 아무도 출판하려 하지 않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판함으로써 문학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p22 비치는 "조이스가 얼마나 고생해서 글을 쓰는지 생각하면, 확실히 제값을 못 받기는 한다"라고, 조이스 자신이 전면 지지할 견해에 최대한 양보하면서도, "하지만 그렇다면 그는 다른 종류의 작가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라고 조리있게 덧붙였다

p36 전하는 말에 따르면 엘뤼아르가 갈라를 달리에게 우아하게 양보했다지만 사실상 그는 그 무렵 아름다운 독일 여성 뉘슈를 만나 구애하는 중이었으며, 갈라와 이혼한 후 곧 그녀와 결혼했다

p47 병든 아내와 네 명의 자식, 그리고 돈이 많이 드는 애인까지 두고 있는 데다 러시아 혁명을 피해 그의 신세를 지러 온 무일푼인 친척들을 잔뜩 거느리게 된 그는 실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p65 드골은 드문 총명함뿐 아니라 오만한 태도와 반항적인 기질로 호가 나 있었던 것이다.

p86 르노와 시트로엔의 경쟁은 일찍이 전쟁전, 기어를 발명하며 명성과 돈을 거머쥔 시트로엔이 겁 없이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어 르노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일반 구매자에게 맞추어진 영업 전략을 구사하면서부터 시작된 터였다

p100 그녀는 헤밍웨이가 자신의 진짜 천재성을 저버린 채 섹스와 끔찍한 죽음에 대한 강박에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다

p102 율리시스가 출간된 직후 거트루드는 (엘리스와 함께)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나타나 실비아 비치에게, 비치가 그 짜증 나는 책을 내는 데 기여한 대가로 자신들은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회원에서 탈퇴하고 센강 건너편의 아메리칸 라이브러리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p107 확실히 마리퀴리는 프랑스의 이상적 여성상에는 들어맞지 않았다. 그녀가 직업적 성취에 더하여 피에르 퀴리와 (비극적으로 짧았을망정)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며 총명하고 건강한 두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질시의 표적이 되었다

p124 피카소는 연인을 만나는 문제에 있어 수가 딸리는 적이 없었다

p127 달리는 일상생활에서는 소심했지만 가장 혐오스러운 주제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어 음침하고 위험할 만큼 병적인 것을 묘사했고, 그런 것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p130 대공황의 틀림없는 징조들이 늘어가자 전문가들은 계속하여 인플레이션 위험을 우려하며 금 본위제를 고수하는 한편 독일의 전쟁 배상금 체불에 불만을 터뜨렸고, 정치 스펙트럼의 양쪽 극단에서는 행동주의가 급속히 팽배했다

p132 역사가 유진 웨버가 지적했듯 이런 반유대주의는 "잠재적인 것으로, 도전받지 않을 때는 대체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쑤석여도 불씨는 금방 일어났다"

p138 마리 퀴리가 어느날 저녁 에브와 이야기하던 중 말한 대로였다. "우리는 이상주의에서 힘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건 설령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해도 우리의 꿈과 열망을 높은 곳에 두게 해주니까."

p139 한 친구에 따르면, 조세핀에게는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면도 있었다. 그 여성은 조세핀이 약품과 의복, 식품, 장난감 등을 가지고 파리 빈민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고 전한다

p177 처음에는 파리가 그런 피난처가 되어줄 듯했다. 1933년 말까지 2만 명 이상의 독일인이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왔고, 1930년대말까지는 5만 명이상이 파리를 경유해 다른 나라로 갔다. 1933년부터 매년 8천 명가량이 파리에 정착했는데, 그중 3분의 1은 유대인이었다.

p179 블룸이 옳았다. 데아와 그의 추종자 다수는 순순히 파시즘을 받아들였고,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된 동안 부역자가 되었다

p193 그의 정치 성향이 어떠하든 간에, 1933년 말 살바도르 달리는 붓질 못지않게 자기 홍보에도 대단한 솜씨를 보였다

p216 피의 화요일 이후 2월의 소요들은 좌익의 협력을 촉박했을 뿐 아니라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기폭제로 작용했다.

p218 1995년, 그녀는 남편 피에르와 함께 팡테옹으로 이장되어, 오로지 자신의 업적으로 그 배타적인 안식처에 들어간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그러기까지는 60년 이상이 걸렸지만, 삶에서 그랬듯이 죽음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선구자였다

p221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들은 스트라빈스키 같은 전위적 음악가들을 환영하지 않았으며, 이에 그는 눈치 빠르게 무솔리니에게 더 열광적인 태도를 보였다.

p225 미국에서는 (율리시스의 최근 승소에도 불구하고) 북회귀선이 검열에 걸려 이후 1960년대까지 판매가 금지되지만, 밀러는 사기가 올라갔다.

p229 파리 최고 멋쟁이 그룹이 피의 화요일에 대해 보인 반응은 처음에는 심드렁한 것이었다.

p231 항상 직원들을 엄하게 다루어온 터였다. 급료인상? 노동자의 권리? 2월 6일은 샤넬의 생각을 한층 더 강화해줄 뿐이었다.

p243 의학적인 치료가 소용없으리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이본과 샤를은 오직 사랑과 다정함만이 필요함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p262 역사가 필리프 베르나르와 앙리 뒤비프가 지적하듯이, "[프랑스에서] 실업의 첫 희생자는 하찮게 여겨지던 집단에서 나왔다." 즉 여성과 이민자들, 어느 쪽도 투표권을 갖지 못한 집단이었다.

p273 미슐랭은 시트로엔이 강조하던 대로 디자인, 엔지니어링, 생산 전반에서의 고품질 전략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면에서는 검박하고 엄격하여 인건비를 줄이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직원은 주저 없이 해고했다.

p278 사르트르가 침체되어 있는 것보다야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으나, 어떻든 불만스러운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사르트르는 훗날 "내 노이로제의 깊은 원인은 재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일종의 정체성 위기였다"라고 회고했다

p286 히틀러가 라인란트로 군대를 이동시키고 있다는 소식에 불안해하면서도,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독일과 싸우기보다 자기 재산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노동자들은 독일의 공격에 분개하면서도 나서서 무기를 들 뜻은 없었다.

p291 르노 못지않게 그녀도 자기 직원들이 그렇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애를 먹었다. 훗날 폴 모랑에게 당시의 일을 털어놓으며, 샤넬은 직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를 더 자주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말했다.

p296 애국주의라는 측면에서도 스포츠 일반이 아직 정치화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1936년 하계 올림픽은 그 모든 것을 바꿔놓았으니, 독일 정부가 은밀히 뒷돈을 대어 선전 영화로 기획한 리펜슈탈의 올림피아에서부터 경기 내내 드리워져 있던 국가 간 경쟁의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p300 결국 스페인 공화국 지지자들이 지적했듯이, 스페인 공화국을 돕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진행 중인 내전에 강력히 개입하는 셈이 되었다

p304 겔혼은 정치적 행동주의자로 곤경에 처한 자들의 복지에 열정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헤밍웨이에게서 동지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p306 그런 여정에서 "우리 눈이 차츰 뜨이기 시작했다"고 지드는 훗날 회고했으며, 귀국 직후에는 친구 케슬러 백작에게 "지성의 자유는 독일에서보다 러시아에서 한층 더 끔찍한 탄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 괴롭힘을 참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p311 아버지 르누아르는 노년에 자본주의 자체보다 기계화에 반대했으며, 어린 쥘리 마네(베르트 모리조의 딸)에게 기계화의 병폐를 설명하면서 양말공장의 예를 들기도 했었다.

p320 비치는 여전히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앙드레 지드 같은 헌신적인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따름이었다.

p326 사실 살랑그로는 적에게 생포되었고, 명예롭게 처신했으며, 독일군에 억류되어 혹독한 고생을 했다는 것이 군사 위원회에 의해 규명되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그를 사냥했고, 신문을 탐독하는 악착같은 독자들은 군사 위원회의 판결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p334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거만한 태도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그를 별로 환영하지 않았다.

p346 하지만 사단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처럼 끄덕없이 버텼고, 자기 연대에는 "항상 더"라는 그다운 구호를 내걸었다.

p352 그 무렵 스페인에는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하나는 공화파와 프랑코 세력 간의 전쟁으로 공화파의 패색이 완연했다.

p354 장 르누아르가 부모 노릇을 하는 방식은 분명 비인습적이었지만 아이에게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알랭은 자기 몫의 방황을 할 만큼 한 다음, 나중에는 하버드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UC 버클리에서 유명한 중세 영문학교수가 되었으니 말이다.

p361 그의 장례식에는 앙드레 지드를 비롯한 충실한 벗들이 참석했지만, 그가 오래 세월 후원했던 예술가들-특히 아리스티드 마욜-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드는 "교회에서도, 운구차를 따라 묘지로 가면서도, 케슬러가 평생 그토록 너그럽게 도와주었던 화가며 조각가들을 전혀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라고 썼다

p366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오랜 적이었으니, "블룸보다는 차라리 히틀러"라는 생각이었다.

p395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 자기 방어를 위해 이름을 모두 암호로 바꿔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꿋꿋이 계속해나갔다. "우리는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다른 영국인들은 그런 일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우익에서는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하고, 좌익에서는 '우리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데?'라고 할 뿐이었다"

p400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이 프랑스의 승리로 마무리된 덕분에 다 잘 풀린 듯 여겨지지만, 사실상 그 승리는 피투성이 난타전에서 프랑스가 좀 더 오래 버틴 데 지나지 않았다.

p406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시대의 게임의 법칙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시대의 피가로의 결혼과도 같다. 세련되고 무심하고 퇴폐적인 문명의 초상이다.

p411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음을 납득시켰다. 만일 히틀러에 맞서 무기를 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모든 프랑스인이 히틀러를 위하여 무기를 들어야 하리라고 말이다. 그것은 결국 정치적 참여를 피할 길이 없다는 뜻이라고. 그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정치에서 발을 빼는 것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말이다.

p417 피카소는 그림 전부를 안전하게 보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아예 손을 놓아버리고 보르도 근처 바닷가 휴양지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마리-테레즈 발테르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합류했는데, 당시 애인이던 도라 마르도 함께였다.

p434 한 나라의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고서 불명예스러운 대기 상태와 방어 작전에 묶어두는 데는 크나큰 위험이 있다

p443 "우리는 너희를 포로로 잡을 시간이 없다"라고, 독일인들은 질풍처럼 달려가며 경멸 어린 음성으로 내뱉었다.

p456 파리로 돌아온 달리는 지도를 펴놓고 나치를 피하는 동시에 '미식의 즐거움'도 뉠 수 있을 행선지를 궁리했다.

p462 의회는 즉시 해산되었으며, 피에르 라발을 측근에 둔 페탱은 "인간의 타고난 평등이라는 거짓된 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체제는 "사회적 위계질서"를 받아들일 것임을 약속함으로써 귄위주의적이고 반의회적인 내셔널리스트들에게 호소했다.

p469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미국에서 행한 연설 중 "우리는 대가를 불문한 평화란 도무지 평화가 아님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했던 에브 퀴리는 잠시 파리에 돌아와 가족과 작별한 후 (그들은 남기를 택했다) 즉시 출발, 독일 전투기들의 빗발치는 포화 속에 화물선을 타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p478 파리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 후 그중 많은 사람들, 특히 코코 샤넬과 장-콕토에게는 부역혐의가 묵직하게 걸리게 된다

p485 비치의 사랑하는 서점은 미국의 참전과 때를 같이하여 문을 닫았다. "내 국정의 유대인들과의 친분 때문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나치의 눈밖에 나게 되었다"라고 그녀는 훗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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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티의 플랜B -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의 비밀
나희선(도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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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티의 플랜B

 : 나희선

 : 웅진지식하우스

 : 2021/05/13 - 2021/05/31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유튜브에서 어마어마하게 유명하다는 도티의 책.

좋은 학교를 다닌걸 보니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고, 그에 못지 않게 오락이나 덕질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우연찮게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었다고 한다.

운도 따랐고, 그전에 덕질하며 배웠던 영상편집기술로 빠르게 크리에이터로서 입지를 잡았다고 한다.

뭔가를 배웠는데 쓸데 없는 건 없다는걸 다시금 느낀다. 

나는 부모님에게 혼나가면서 공부하고, 대학가고, 회사다니는 월급장이로 살아가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 해서 길이 없는건 아니다.

우리 애는 또 우리 애의 길이 있다. 나는 지원할 뿐 끌고가지 말자. 



4% 플랜B는 플랜A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차선책이 아니라 플랜A와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며 다양성이다

39% 내가 생각해도 참 지나치다 싶지만 그게 내 덕질방식이었다. 덕후 유전자라도 있는 건지 나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비롯해 항상 뭔가에 푹 빠져 덕질을 했다

48% 편집을 할 때는 콘텐츠의 호흡을 잘 생각해야 한다. 편집은 컷 편집이 반 이상이다. 콘텐츠의 분량을 어떤 호흡으로 조절할지, 콘텐츠의 호흡이 어떤 특징을 취할지는 컷 편집을 하면서 감을 익혀야 한다

56% 성실함은 엄청난 재능을 뛰어넘는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바로 익숙함이다

58% 예를 들어 15분짜리 영상의 이탈률 그래프를 검토할 때, 6분대에서 7분대로 넘어가면서 그래프가 잠깐 내려갔다면 사람들이 그 지점에서 지루함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62% 크리에이터는 누군가의 시간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69% 본업에 충실하면서 내 히스토리를 남기고 싶다거나 취미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적극 권장한다

85% 잠시 멈추는 용기를 내는 것이 무조건 참고 일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1% 오랫동안 채널은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수익은 따라오는 것일 뿐, 채널을 운영하는 동기가 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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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아는 척하기 - 난생 처음 공부하는 철학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데이브 로빈슨 지음, 주디 그로브스 그림, 양영철 옮김, 이병창 감수 / 팬덤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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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사 아는척 하기

 : 데이브 로빈슨

 : 팬덤북스

 : 2021/05/13 - 2021/05/28


재미있고 쉽게 읽도록 그림도 많이 넣고, 장난기 넘치는 글도 포함되어 있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삽화가 읽는걸 방해하는 느낌..

더구나 전자책으로 읽다보니 삽화와 삽화문구가 더 읽기 힘들었다.

가볍게 한번씩 서양 철학을 터치한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될듯..



4% 최초의 진정한 철학자들은, 기원전 6세기에 현재 터키 해안의 이주민 도시 밀레투스에 살았던 괴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10%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했는데, 이는 객관적인 진실은 없고 제한적인 인간의 믿음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4%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을 이용해 형이상학적 진리를 확립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항상 불가능한 모순을 낳는지 보여준다

46% 역사란 항상,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고 주장하는 서로 다른 역동적 개념들 간의 투쟁이다

52% 삶은 기독교에서처럼 종말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긍정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53% 실존적인 삶은 믿음의 도약을 통해 헌신적인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의미했다

60% 밀은 자유론에서 소수자의 사상과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관용ㅇㄹ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1% 소로는 자신의 세금이 멕시코와의 전쟁에 쓰이고 조예제도를 강화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믿었기 대문에, 지불을 거부하고 하룻밤동안 감옥에 들어갔다

78% 평범한 언어를 모호하지 않게 하려면 논리적인 형태로 세분화되어야 한다

86% 이 모든 성공에는 눈이 멀어 과학에 대한 과도한 숭배는, 과학이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인 과학만능주의의 먹이가 되기 쉽다

87% 칼 포퍼는 반증 가능성 원리가 과학적 절차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로 과학 이론은 항상 잠정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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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 그리스 : 고전학자와 함께 둘러보는 신화와 역사의 고향
강대진 지음 / 도도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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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랜드투어 그리스

 : 강대진

 : 도도네

 : 2021/05/17 - 2021/05/22


그리스라는 나라가 그렇다.

막상 가서 보니 돌기둥 외에는 볼 게 없던데, 신화도 그렇고 책에서 배운 것도 그렇고 서양문명의 원류라고 하니 동경의 대상이 된다. 

수천년 전에 만들어놓은 돌기둥을 보면서 선조들의 생각을 읽어내기엔 내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 

여행 책자에 소개된 내용과 예전에 읽었던 그리스로마신화, 그리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지식으로 그리스를 대충 돌아다니게 된다.

이 책은 나처럼 대충 돌아다니는 사람을 장소에 붙잡아놓고 강의하는 책이다.

마치 답사여행을 하듯 아테네 지역, 펠로폰테소스 지역, 그리스 북부, 미케네 섬을 비롯한 에게해지역을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한다.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어느 건물을 지나면 무엇이 나오고, 남쪽으로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저 유물은 왜 중요한지, 여기서는 뭘 봐야 하는지 등등...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꾼은 아니다. 

나처럼 대충 놀면서 공부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소화하기가 버겁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에 야한(?) 이야기도 좀 섞어서 해주면 더 집중해서 들으련만 너무 열심히 공부를 시킨다.

그리스라는 역사적 장소에 와서 판서를 잔뜩한 기분이다. 

대신, 책을 들고 다니며 지역과 유물을 맞춰보는 재미는 쏠쏠할 것 같다.

언제쯤 그리스를 다시 가보려나... 



p16 아크로폴리스라는 단어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원뜻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란 말로, 대개 그 도시의 내부 요생이다.

p22 디오뉘소스 극장을 보려면 아크로폴리스 위로 올라가서 파르테논 신전의 남쪽 면에서 벼랑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언덕에서 내려온 후 남동쪽으로 가서 따로 둘러보아야 한다.

p27 거룩한 신전을 파괴한 동방인의 무지막지한 행태를 두고 조셉 캠벨 같은 학자는 거듭거듭 비난하지만,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은 희랍 쪽이었다고 여러차례 지적하고 있다

p31 아테네 니케 신전이 이렇게 많이 손상된 이유는 17세기 후반에 터키 사람들이 베네치아의 공격을 막기 위해 이 신전을 허물어서 프로퓔라이아 앞에 방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p43 신화에는 여러 판본이 있는 법이니, 어느 하나만 옳다고 주장할 게 아니다

p50 프로퓔라이아 건물의 서글픈 역사를 잠깐 보았는데, 에렉테이온의 운명은 그보다 더 기구하다. 터키 지배 때 고급 관리의 하렘으로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종교적 공간이던 곳이 외국 지배자에게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장소로 변하다니!

p69 튀르크인들은 이 신전을 호약 창고로 이용하고 있었고, 아크로폴리스 먼 서쪽의 언덕을 차지하고 있던 베네치아의 모로시니가 대포로 이 신전을 타격하면서, 2천 년 이상 거의 멀쩡하게 서 있던 고대의 경이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p98 파르테논만 해도 기둥 수가 8x17인데, 이 건물은 가로 방향으로 기둥 두개만큼 더한 8X19에다 동서쪽 입구 앞에 기둥 8개씩을 가로로 덧붙인 형국이었으니, 옛 사람들이 이 계획을 거의 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p104 지금은 매우 현대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사실은 이자리가 2천4백년 정도 된 경기장 자리다

p111 ㅜ미케나이 문명의 대표적 유물은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사실 트로이아 전쟁은 기원전 13세기 또는 12세기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유물은 그보다 3백 년 쯤 전 것이니 아가멤논의 초상일 수는 없다)을 비롯해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여러 기물들이다.

p113 상고시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쿠로스라고 알려진 젊은이 조각상이다

p122 여기까지 우리는 박물관 네 개(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아고라 박물관, 케라메이코스 박물관 등)을 꼽았다. 그 밖에 뷔잔티온-그리스도교 박물관에 가면- 다른 것도 있지만-아이기나에서 출토된 투조 오르페우스상이 있다.

p138 그곳에 가면 여행객이 예상치 못한 유물을 만나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집트 신상들이 거기 모셔져 있다.

p140 기록에 따르면 마라톤 경기의 기원은 전 부대 완전 군장 구보 사건인 셈이다.

p149 1959년에 수도 매설 작업 중에 한꺼번에 발견된 것으로 각기 피레우스 아테네, 피레우스 아르테미스, 피레우스 아폴론이라고 알려져 있다

p169 역사적으로 이 섬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점은 이곳이 미노아 문명(또는 미노스 문명)의 근거지였다는 점, 그리고 신화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리아드네와 함께 도망쳤다는 것이다.

p246 코린토스 유적지는 다소 심심하단 인상을 주는데, 입구에 있는 아폴론 신전 기둥들 말고는 땅 위에 서 있는게 거의 없어서다

p249 코린토스는 아테나이처럼 문화가 번성했던 나라도 아니고, 스파르타처럼 군사력으로 유명했던 나라도 아니었다. 그저 양쪽에 항구를 끼고 지협의 목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상업적 번영을 누렸던 도시이다.

p260 현대 경기 중에는 완전무장 달리기가 가장 볼 만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적인 분장을 하고 출전하기 때문이다.

p265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유물은 돼지 이빨 투구이다. 이것 역시 일리아스에 언급되는 물건인데,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크레테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황소 머리 모양 뿔잔도 여기서 발굴된 것이 있다. 지금 여기 언급된 유물들은 모두 아테나이 굴립고고학박물관에 있어서, 약간 어려움이 있다.

p274 아르고스를 포함하는 펠로폰네소스 지역은 십자군 전쟁 이후에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서 뷔잔티온과 베네치아, 오토만제국 등의 요새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

p280 이렇게 신화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도시에 실제로 가보면 놀랍게도 거의 아무 유적이 없다. 젊은이들이 성년식을 올렸다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다소간 초라한 기초를 보이고 있는 게 전부다

p318 지금 이 작품에 닭이 그려진 것은 가뉘메데스가 제우스에게 그정 술 따르는 시동 역할만 한게 아니라, 그의 애인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p319 한 가지만 더 짚고 가자면, 이곳과 델포이 박물관 소장품들은 종교 성지에 속한 것이어서 그런지 작품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아테나이 국립고고학박물관의 경우 생활용품이 많이 끼어 있어서 다소 투박하다 싶은 것들도 꽤 되지만, 여기 있는 것들은 거의가 명품 수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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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안병억 지음 / 페이퍼로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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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작가 : 안병억

출판사 : 페이퍼로드

읽은날 : 2021/05/10 - 2021/05/20


이게 시리즈인것 같다. '하룻밤에 읽는 ~~'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시리즈가 있는데 뜻밖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가 있어서 읽어봤다.

한국사에 이어 세계사도 나오려나보다.

가볍게 교양으로 읽기에 참 좋다

내용은 개론 수준이지만 전체적으로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대륙만큼은 아니지만 켈트족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이 이 땅에서 전쟁도 하고 화목하게 함께 살면서 민족을 이룬걸 알게 됐다. 물론 지역적으로 다수 민족이 있어 독립요구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 잘 관리하며 영국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변방의 섬나라가 스페인이나 네델란드, 프랑스를 누르고 세계 최강의 국가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잔인함과 가혹한 모습 뿐만 아니라 처세에 능하고 기회를 잘 포착했다는 생각도 든다.

거문도 점거를 빼면 우리나라를 침략한 적도 없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적도 없지만 영국역사에 나오는 식민통치 모습은 결코 인권국가의 모습은 아니다. 

우방이란 없다. 단지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우호를 다질 뿐...

영국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p9 영국은 이처럼 대륙과 다름, 그리고 역사적 연속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p16 브리튼 섬에 살던 원주민 켈트족은 유럽대륙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2010년에 유전학자들은 이들이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대평원에서 이주했음을 밝혀냈다

p24 런던 의사당 앞 웨스트민스터 다리 옆에는 보아디케아의 동상이 있다. 앞발을 힘껏 박차고 하늘로 치솟는 두 마리의 말에 올라탄 여왕의 모습이다

p52 대규모로 바다를 건너온 앵글로색슨족은 잉글랜드 전역을 피로 물들이며 그곳에 거주 중이던 켈트족과 싸웠다

p64 솔즈베리 서약은 막강한 왕권을 보여주는 한 예다. 윌리엄은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약 1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솔즈베리에 왕궁을 세웠다. 그리고 1086년 8월 1일, 수많은 귀족과 소작인들을 이곳에 모이게 했다. 170명의 귀족, 그리고 소작인들이 모여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대 충성을 맹세했다. 영국 역사에서 이런 규모로 왕에게 충성을 서약한 적은 없다

p84 중세 왕권이 매우 막강하던 시기에 몇 차례의 내란을 거쳐 마침내 귀족들이 중심이 되어 왕권을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p101 봉건제 붕괴를 가속화한 것은 1347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에 퍼진 흑사병이었다

p114 38년 치세 동안 헨리 8세는 영국 사회 곳곳에 여러 흔적을 남겼다. 트리니티컬리지도 그가 남긴 자취 중 하나다

p118 헨리 8세는 6명의 왕비 가운데 2명을 처형했고, 심복이었던 토머스 크롬웰과 같은 대신을 처형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은 잔혹한 군주였다

p136 당시 의회는 젠트리가 주도했다.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으로 세습 귀족이 많이 죽으면서 귀족들의 세력이 점차 줄어들었다

p147 권리장전은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p150 자연상태와 같은 무정부상태보다는 최악의 독재자 통치가 더 낫다고 그는 봤다

p154 윌리엄 3세의 즉위부터 영국이 1815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프로이센 등과 힘을 합쳐 나폴레옹전쟁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영국과 프랑스 간 종종 벌어진 전쟁을 제2의 백년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p160 영국이 프랑스와의 계속되는 전쟁에서 안정적으로 값싸게 군비를 조달할 수 있었던 것도 번창한 상공업과 주식회사의 성장덕분이었다

p176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왕위 계승권 허용을 놓고 벌어진 전쟁이다

p179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을 종결한 아헨조약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8년간의 휴전시간을 주었을 뿐이다. 1756년 유럽대륙과 인도식민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7년전쟁이 발발했다

p203 아메리카ㅗ 운송되는 과정에서 병에 걸려 죽는 노예가 약 3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p205 영국 안에서 노예무역 폐지는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다. 주로 기독교 인도주의자들이 노예무역 폐지를 요구했다

p211 강희제부터 건륭제까지 시기를 중국에서는 강건성세라 부르며 태평성대중 하나로 간주한다

p225 이집트는 로제타스톤을, 그리스는 엘긴대리석을 반환해달라고 영국에게 끈질기게 요구해왔으나 영국은 매번 거부했다. 양국이 소장품을 제대로 보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p227 프랑스의 루브르, 러시아의 에르미티슈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다. 박물관은 8백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보유중이다. 이가운데 1퍼센트에 불과한 8만점 정도만이 전시중이다

p230 유럽대륙에서 강대국이 성장해 세력 균형을 깨트려 영궁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저지하는 게 영국 외교의 기본 방침이었다

p255 콥든-슈발리에 조약 체결 후 영국과 프랑스의 교역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p267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펼쳐지는 역사의 현장을 지키며 학자, 실천가, 혁명가로서 삶을 마감했다

p270 영국의 지배계급은 너무 늦지 않게 노동자에게 양보를 하여 이들이 급진적인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었다. 이런 개혁 덕분에 영국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제한적인 영향만 미쳤을 뿐이다

p282 FTA 체결 후 국가 간 교역은 늘어나지만 분배는 자동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 시장개방으로 더 큰 피해를 입는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말이다. 170여 년 전 영국에서도 이런 견해가 나왔다. 밀의 혜안이 놀랍다

p287 대승을 거둔 영국군은 1842년 중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홍콩의 할양과 광동, 아모이 등 5개 항구의 개항, 영사관 설치, 재산피해 배상 등 매우 불평등한 조약이다

p287 1856년 시작된 2차 아편전쟁에서도 영국은 압승을 거두어 중국과 텐진조약(1858), 베이징조약(1860)을 체결했다

p292 키플링은 영국이 인도 등 각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신이 부여한 책무"이듯 미국에게도 문명화라는 백인의 부담을 질 것을 촉구한다. 당시 상당수 지식인들이 지녔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다

p298 1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살해한 투르크조차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영국의 동맹국이 되었다. 그때나 현재나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p312 영국군은 퇴각하면서 적에게 넘어갈 수 있는 모든 것-토지와 건물 등-에 불지르는 초토화 작전을 실행했고 보어인 민간인을 질병이 들끓는 강제수용소로 몰아넣었다

p321 통일 후 비스마르크 정부는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고 보호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뒤늦게 산업혁명을 시작하는 후발주자의 따라잡기 전략이다

p340 파리강화조약 참가자들은 앞으로 유럽이 어떻게 살아갈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유럽의 생존방식에 관심이 없었다

p350 영국은 대공황 극복책으로 식민지 및 자치령으로 파은드화 블록을 구성하고 제국특혜관세 제도를 운영할 수 있었다

p362 복지국가의 기틀을 허문 보수당의 총리 대처조차 플레멘트 애들리의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p365 현재 영연방은 영국을 포함해 54개 국가로 구성된 느슨한 조직이다. 국제협력과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인권 발전을 촉진하고자 한다. 아직도 호주와 캐나다 등 16개국은 엘리자베스 영왕을 공식 수반으로 인정한다

p405 경제위기의 와중에 취약층의 복지를 삭감한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외부인에게 책임을 돌렸다

p414 영국이 외교정책에서 아주 자주 미국을 드러내놓고 지지하기에 미국의 푸들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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