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문 - 단 한 번의 삶, 단 하나의 질문
최태성 지음 / 생각정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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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샐일문

 : 최태성

 : 생각정원

 : 2021/12/13 - 2021/12/16


믿고보는 최태성 선생님의 신작

역사 에세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하며 설명했다.

에세이다 보니 역시 쉽게 읽힌다. 

맨 마지막장의 내용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나도 공감이 됐다.

우리 시대가 마치 모두가 민주화운동을 했던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그당시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매우 소수다.

대부분은 자기 욕심에 따라 살았고 나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가질고 있었을 뿐...

최태성 선생님은 그 미안함을 모든이에게 양질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으로 갚고 있고, 나는 미안함만 갖고 내 욕심대로 살고 있는 것이 다를뿐...

멋진 분의 좋은 책을 잘 읽었다. 


p49 그는 당 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정치 문답을 적어둔 정관정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왕학의 교과서라 칭송받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때를 도모한 것이죠

p64 일본어를 일본인보다 잘하고 오히려 한국어가 어눌한 한국인이라니, 혹시 일본에 매수된 스파이가 아닐까 싶기도 했을 겁니다. 게다가 이봉창은 술과 노래를 좋아해 취하면 일본 노래를 유창하게 부르며 호방하게 놀아 일본 영감이란 별명까지 얻었다고 하니,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p79 현명한 어머니, 어진 아내였던 것은 맞지만 그보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신사임당이 조선시대의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입니다.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가 아닌 신사임당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죠

p102 치열한 연구와 노력의 결과,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주최 books전시회에 직지심체요절을 금속활자본으로 출품했고, 얼마 후 국제 동양학 학자대회에서도 직지심체요절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임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결과 2001년 직지심체요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p121 김산처럼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나 10-20대에 3.1운동을 겪은 사람들을 3.1운동 세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3.1운동 세대인데, 대표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공포에 떨게 만든 의열단 단장 김원봉,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이봉창과 윤봉길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p124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단단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답하죠. 그런 누가 합니까?

p138 서정주는 친일 시를 많이 남긴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그 뛰어난 재능, 놀라운 필력을 우리나라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넣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는 일제를 위해 자신의 붓을 사용한 흔적이 너무나 많은 명백한 반민족 행위자입니다.

p182 김정희는 이상적의 도움으로 끝까지 세상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학문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남긴 것이 그 유명한 세한도인데, 이상적에 대한 김정희의 마음이 세한도에 덧붙인 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p201 세종은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고, 자신이 즉위할 때 천명한 "어짊을 베푸는 것"을 국정의 최대 목표로 삼았습니다

p203 내 벼슬이 정승일 뿐 만백성이 벗 아니겠소. 사죄니 무례니 하는 말은 말고, 앞으로도 함께 재미있게 낚시를 즐깁시다

p224 역사는 단순히 시험을 보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올바른 의식을 갖고 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겁니다

p226 임시 정부가 독립하면 돌려주겠다며 채권을 발행해 국민으로부터 돈을 빌로가 한 것이죠. 하지만 나라의 실체가 없다 보니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했고, 이에 그 채권을 과연 누가 살가 하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채권 대부분을 이민자들이 사들였습니다.

p247 바꾸고 싶은 과거를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직시할 때, 그래서 변화해야 할 부분을 면밀히 파악할 대, 그렇게 변화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정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요.

p284 삼국이 서로 항쟁하던 시기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겨루는 경쟁자들이었을 뿐입니다. 백제 입장에서는 진흥왕이 의리 없는 사람이지만, 신라에는 국익을 챙긴 위대한 왕입니다

p286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p326 우리나라 사람, 그것도 시대를 대표하는 엘리트이자 나라를 다스리던 대신들이 팔아먹은 그 나라의 독립을 위해 타국의 이방인들이 헌신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p381 신채호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이를 토대로 그가 주장한 것이 낭가사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일제에 위축되고 움츠러들었지만, 사실 우리 민족은 본디 밝은 성품, 호연지기를 가졌다는 주장이었지요

p401 두려움과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용기를 내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제가 가진 능력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우리를 위한 시도를 두려워만 해온 제가, 작고 미약하더라도 일단 용기를 내서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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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클래식
김호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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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호정

 : 메이트북스

 : 2021/12/08 - 2021/12/13


내가 회사 다닐때 송무팀(지금의 법무팀)에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래 다니지 않고 퇴사를 했다. 

퇴사이유를 물으니 자기도 법대출신인데 같이 공부했던 친구는 변호사가 되어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자기는 서류 딜리버리만 하고 있는게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다.

결국 사법시험을 보겠다고 퇴사를 했다. 

이후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변호사가 된 친구도 있고, 결국 실패해서 다시 회사에 입사한 친구도 있다. 

같은 전문직의 길을 걷다가 결국 그 길에서 다른 방향으로 턴을 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었던 에피소드다.

이 책은 음악을 전공했지만 음악계로 나가지 않고 음악전문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호정님의 에세이다. 

이분도 이런 느낌을 갖고 있을까? 책을 봐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얼핏얼핏 음악가의 길을 걷지 못한 아쉬움을 느꼈다.(본인은 아닐수도 있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음악 전공자라 그런지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는 귀가 잘 발달된 것 같다. 부럽다.

에세이는 잘썼다 못썼다 평가를 하는 장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만큼 느끼고 공감하는 분야같다.

나도 연주자의 음악을 들으며 이분처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p19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확고해야 한다. 틀린 음은 있어도 괜찮다. 확신없는 음은 없어야 한다

p22 코트로 역시 인기 있는 피아니스트로 연주회마다 화제가 되왔다. 그렇게 틀렸는데도 말이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해석, 꿈꾸는 듯한 소리 때문이다. 무엇보다 틀리면 좀 어때라는 듯 기존의 질서를 뭉개며 나가는 연주법은 해방감까지 준다.

p35 소리는 시간과 함께 날아가버리기 마련이고, 아무리 성실한 연주자라도 그 소리를 다시 잡아서 수정할 수는 없다

p48 나는 이런 때 이른 박수가 4악장 이후 침묵을 깨는 박수보다 낫다고 본다. 최소한 침묵을 방해하지는 않았으므로

p52 연주자가 악보를 놓고 연주하는 일은 '이 곡은 내 곡이 아니고 누군가 작곡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양심적 행동이었다는 뜻이다

p58 느리게 움직이는 선율이 꿋꿋하게 앞으로 헤쳐나가는 '님로드'는 추모할 때 자주 연주되는 앙코르다. 감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한참 지나고 아주 약간 마음을 추슬렀을 정도의 감정이 '님로드'에 들어 있다

p65 우리는 열심히 준비해 잘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나갈 꿈을 꾸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꿈일 뿐이다. 세상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준비되지 않은 우리를 등 떠밀듯 내보내곤 한다

p78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웃어도 된다는 걸 교육받기 전에는 모른다니, 이게 바로 비극이다

p90 대표적인 것이 불멸의 연인이다. 베토벤은 희극적일 정도로 숱하게 여성들에게 거절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의 언니에게 구애했다. 열렬히 구애하다가도 상대방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p97 내가 슈만에 반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대답이 없는 질문을 던진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음악의 아름다움 아래에 수많이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p106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보통 "베토벤의 소나타를 추앙했으나 미치지 못했다"거나 "지나치게 길고 뚜렷한 흐름이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p108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특히 이렇게 말했다 "너무 길어서 잠들 지경이면 어떤가. 깨어나면 천국에 와 있을텐데" 슈베르트의 잊힌 교향곡을 발굴까지 한 슈만은 슈베르트 곡에 대해 "천상에서나 가능한 길이로 되어있다"라고 소개했다

p117 재능만 놓고 보면 멘델스존에 필적할 수 있는 인물은 모차르트 정도가 유일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슈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멘델스존은 19세기의 모차르트였으며 가장 뛰어난 음악가였다. 서로 대비되는 시대를 연결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p122 아무리 봐도 에릭 사티는 19세기 말의 원조 4차원이다

p124 연주 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던지려 노력했다"라고 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연주였다. 레비트는 악보 840장을 경매에 부쳐 코로나19로 무대에 서지 못해 생계가 곤란해진 음악가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p135 기존의 음악 형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리스트의 작법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과시적인 제시, 갑작스러운 도약,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발전 그리고 지극히 서정적인 부분과 지나치게 상업적인 멜로디 말이다.

p140 유학길에 오를 때만 해도 그는 서양 음악의 선진적 기법을 한국에 이식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예악은 동양의 기법을 서양에 이식하고 또한 서양에서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동양의 철학을 소개하며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p151 나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전 인류가 위기에 있기 때문에 예술과 음악이 필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신호다. 우리가 당분간은 서로 떨어져 있으니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사이먼 래틀)

p165 살면서 한 번도 기계적인 원칙을 가진 적이 없었어요. 그때그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자기 마음에 따라 길을 걸어도 세계의 음악계와 청중은 그를 원한다. 그의 건반이 서로 부딪치며 돌진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마르타 아르헤리치)

p171 보첼리 음성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자연스러움이다 힘을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노래한다. 과장 혹은 과도한 노력 없이 그저 자기 목소리로 노래할 뿐이다

p178 60년 동안 1년에 수십 회씩 무대에 오른 사람이, 악기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씨름했을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다른 나라의 역사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아시아의 나라별로 다른 불규, 건축, 언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p181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그리고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 손열음의 연주는 언제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 모든 음이 제자리를 찾아 정확히 들어가고, 음악은 추진력 있게 앞으로 흘러나간다

p189 딱 떨어지는 박자와 정해진 기준에서 미묘하게 어긋나는 쇼팽식 표현을 조성진은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표현했다.

p195 무대 뒤에서 만나 "희한하게 쇼팽에서 화음이 제일 먼저 들렸어요"라고 하자 "그럼. 쇼팽은 화음이야. 멜로디가 아니고"라며 크고 두꺼운 손을 펼쳐 보였다

p204 밤의 여왕을 녹음한 음반도 냈고, 지금도 들을 수 있다. 못 들어줄 수준이고 코미디에 가깝다. 본인도 알았겠지만 끝까지 집착했다. 희한한 것은 이 소프라노의 팬이 지금도 많다는 점이다. 영화로도 나왔지만, 플로렌스의 이름은 '계속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는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p210 듣기에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음악을 쓴 의도와 동기가 흥미로워 음악을 듣게 된다.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에 귀와 마음이 지릿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 뇌 한쪽이 뻐근해지는 경험은 할 수 있다

p215 연주 방향을 미리 구상하고, 단원들에게 그 뜻을 건네고, 음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다. 무대의 모습은 아주 작은 부분일 따름이다. 지휘자에 따라 같은 작품의 연주시간이 10분 이상 차이 나는 것만 봐도 안다

p234 노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악기는 배워야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악기 연주의 수준이 올라가면 결국 노래를 우러러본다. 노래는 이렇게 음악가들이 우러러보는 궁극의 음악이다. 사람 목소리같이 들렸다는 말은 악기 연주자들에게 최고 찬사다

p239 모차르트 음악은 단조일 필요가 없다. 장조 소나타에 수많은 부분이 단조보다도 어둡고 비극적이다. 이런 특징은 모차르트의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두드러진다

p254 부모는 파니에게는 "네 동생에게는 음악이 생업이고 너에게는 취미지 않느냐"고 했다. 피아노 연탄, 삼중주, 가곡을 숲하게 써내려갔지만 죽기 2년 전에야 처음으로 출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63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통찰은 이 마지막 작품에 와서 더욱 정확해진다. 그는 "모차르트는 어린아이에게 쉽고 연주자에게는 어렵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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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6 - 베르디․바그너, 역사를 바꾼 오페라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6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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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처한 클래식수업6

 : 민은기

 : 사회평론

 : 2021/12/01 - 2021/12/07


시리즈로 계속 읽고 있는 책..

강의형으로 쓰여있어 두께에 비해 빠르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이번 주제는 오페라고, 주인공은 베르디와 바그너다.

학교다닐때 아리아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노래 부르라고 하면 아리아를 불러 분위기를 쎄하고 만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 들은 아리아들이 정말 유명했던 노래들이었다. 

아마 그 친구는 오페라계의 유행가를 불렀던 건데 무식한 나는 그걸 알아보지 못했던 것.

베르디 오페라와 아리아는 워낙 유명해서 광고로도 나오고, 라디오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바그너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의 가슴을 뛰게하는 음악이라서 그런지 영화음악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너무나 멋진 음악을 만든 두 사람이지만, 베르디는 나에게 사랑을 받고, 바그너는 나에게 저주를 받는다.

아무래도 그 삶이 문제이기 때문.

저자는 상당히 미화해가면서 쓰긴 했지만 인종차별주의자인데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도 떳떳했던 바그너를 보면, 수많은 민간인들을 총칼로 죽이고 대통령이 되고 이후에도 사과없이 호의호식하다 죽은 전두환을 생각나게 한다.

이정도로 저주받을 인간에게 신은 엄청난 재능을 듬뿍 부어주어 온 세상 사람들을 유혹할만한 음악들을 만들어내게 했다. 참 아이러니다.

반면 베르디는 정말 좋은 품성을 가졌다. 

음악만 아름다운게 아니라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서도 큰 역할을 한 베르디. 

이런 두 사람이 한 시대를 살았다니... 19세기는 정말 다채로웠던 시대다. 



p20 저는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 화려한 장식들은 파리 시민들이 얼마나 오페라를 귀하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겠죠

p37 이렇게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까지 세명의 벨칸토 작곡가는 각자 다른 개성으로 오페라의 아리아를 일반적인 가곡과는 전혀 다른 경지로 만들었습니다.

p53 베르디는 작품에 사람들이 원하는 열정과 위로를 담았고 이탈리아 전체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빵을 주듯이 먹여주었다. 그의 음악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달콤하고 풍부한 맛을 지닌 음식 같은 생명의 원천이었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였죠

p69 바그너의 어머니는 재혼 시점에 이미 바그너의 동생을 임신 중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여러 정황을 고려했을 때 가이어가 바그너의 친부가 아니냐고 추측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가이어가 어린 바그너를 유독 아꼈기 때문에 그 추측이 더 힘을 얻었죠

p82 바그너가 어려서부터 돈만 생기면 책을 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p120 스피넷을 고쳐주러 수리 기사가 왔다가 꼬마 베르디의 연주 솜씨에 놀라 수리비를 받지 않고 작성한 명세표 같은 쪽지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p140 우리나라에서도 합창을 많이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독재 정권에서 합창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제가 어렸을 때는 동네마다 합창 대회가 열리곤 했죠. 사람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하는 데에는 합창만 한 게 없습니다. 하나 된 구호에 음악의 힘을 더한 거니까요

p156 바그너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구원받아요. 바로 그 점이 현대에 들어서 크게 비판받는 거고요

p186 바쿠닌은 유럽에서 일어난 혁명 대부분에 개입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 인사였어요. 마르크스의 라이벌이었다고 평가될 정도죠. 원래 러시아 귀족 출신인 바쿠닌은 베를린에서 독일 철학을 공부하다가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p203 바그너는 인간이 충족되지 않는 욕망에 의해서만 자극받는다는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음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무한 선율로 구현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음악이 바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거예요

p212 피아베와 베르디는 정말 잘 맞는 콤비가 됐습니다.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피아베는 완벽주의자 베르디가 계속 대본을 고쳐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몇 번이라도 다시 써줬어요. 두사람은 이후 20년 동안 함께 작업했습니다

p236 1848년 1월 이탈리아반도의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투쟁은 전 유럽으로 퍼져 2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시민들이 루이 필리프를 몰아냈고 3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페르디난트 1세가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p264 바그너는 마틸데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면서 대본을 바로 마틸데에게 보여주었죠. 마틸데는 매우 감동해 흐느껴 울었다고 해요. 그러고는 답례로 시 몇 편을 지어 바그너에게 선물합니다. 바그너는 그 시에 노래를 붙여 앞서 들려드린 베젠동크 가곡을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베젠동크 가곡 중 온실에서와 꿈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2막과 3막에도 등장해요

p273 불협화음 자체가 불안함을 주는 게 아니라 그 불협화음이 안정적인 협화음으로 이어지며 해결되지 않아 불안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트리스탄 코드 다음 라 음으로 가서 협화음을 만들었다면 이 불안이 해소될 수 있었을텐데 바그너는 이 다음 곧바로 라#음으로 넘어가요

p275 우리로서는 서로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그 속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죠. 어쨋든 바그너에게 사람들을 현혹할 만한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건 분명합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오토 베젠동크는 누구보다 바그너의 재능을 잘 알았던 열렬한 후원자이기도 했고요

p334 리골레토에서부터 라 트라비아타에 이르기까지 베르디의 작품이 광대, 집시, 성매매 여성 등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거대한 신화를 만들려고 한 바그너와 비교가 되는 지점이니까요

p352 니스는 샤르데냐 왕가의 근거지였어요. 그런 니스를 내주고 군사 원조를 받았다는 점에서 통일을 향한 에마누엘레 2세의 의지가 엄청나게 강했다는 걸 알 수 있죠

p360 가리발디는 이후 모든 국가 요직을 사양하고 공화국이라는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어요. 만약 가리발디가 없었다면 지금가지도 이탈리아는 통일되지 않은 채 두 개의 국가로 남아 있었을지도 몰라요. 이게 아직까지도 가리발디가 이탈리아 사람에게 존경 받는 이유지요

p413 그동안 베르디가 만들었던 오페라들은 선율이 감미롭고 이야기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작품이었죠. 이번에도 관객들은 그런 걸 기대했는데 작품이 예상과 달랐던 겁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냥 베르디적이지 않다고만 한 게 아니라, 왜 이렇게 바그너적이냐고 불평했다는 거예요

p417 이집트 문물에 대해 당대 프랑스인들이 가졌던 태도는 확실히 모순적이라 할 수 있죠.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이집트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오늘날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이집트 전시관을 꽉 채우고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p427 거장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남의 생각을 기꺼이 수용한 베르디에게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남들에게 따라쟁이라고 조롱당할 걸 알면서도 유연하게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p449 니벨룽의 반지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는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복수입니다. 그건 바그너의 인생관이기도 했죠. 절대로 잊지 않는 것

p454 바그너는 반지 동기를 뒤집어서 저주의 동기를 만든 겁니다. 앞으로 나올 모든 저주가 결국 반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거예요

p482 이로써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지 못하게 된 여신들은 이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며 무대에서 쓸쓸하게 퇴장합니다. 지금부터 세계의 운명은 인간의 손에 달린 것이죠

p506 1882년 2회를 맞은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파르지팔이 공개되자 지나치게 종교적인 분위기에 난색을 표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파르지팔이 아무리 경건한 척 성직자 복장을 하고 있어도 성적 충동에 대한 찬가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죠

p530 팔스타프는 희극이지만 생각 없이 웃기기만 한 작품은 아니에요. 무대 표현과 음악의 구성도 아주 훌륭한 데다 인간이 남몰래 품고 있는 비밀과 욕망을 드러내는 대사들도 있습니다.

p553 뮤지컬의 발상지이자 20세기 뮤지컬의 발전을 주도했던 곳은 뉴욕이에요.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뉴욕에 수많은 뮤지컬 전용 극장들이 앞다퉈 생겨나며 하나의 거리를 이루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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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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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계의 미술사

 : 서배스찬 스미

 : 앵글북스

 : 2021/11/08 - 2021/12/04


좋은 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겐 너무 어렵고 잘 안맞았다.

같은 시대의 라이벌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는 2명의 예술가를 묶어서 전기를 쓴 것 같다.

그런데 잘 넘어가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미술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긴시간동안 읽을 분량은 아닌것 같은데 이상하게 책이 잘 안넘어갔다.

그나마 처음에 나오는 모네와 드가, 피카소와 마티스는 좀 읽으만 했는데 폴락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미술에 관심많은 사람들은 재미있을 것 같다. 

역시 미술은 어렵다. 



p37 당시 마네는 완전히 새로운 욕망과 생동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도발적으로 아이러니한 면모를 띠었으며 장난스럽게 짜 맞추는 방식을 보이곤 했다

p40 인상파 그룹에 속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조혼을 피했고, 나중에 결국 결혼한다 해도 대개는 상대가 몇 년간 관계를 지속해온 정부였으며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 뒤였다

p41 마네가 점차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의 외양을 어떻게든 획득하려는 것처럼 보였다면-그는 자기 그림에서 위트가 번뜩이는 간결성이 드러나길 원했다- 드가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진지해지기 위해 장애물을 극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했던 것 같다

p44 마네는 동료 예술가들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친구인 앙리 팡탱라투르에 따르면 마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언제가 긍정적으로 보았다"

p92 이 충격적인 사건은 피카소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사건의 여운은 피카소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제르멘느와 연인이 되면서 그 증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파리에 온 피카소는 카사헤마스의 침대에서 제르멘느와 잠을 자고, 카사헤마스가 사용했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p96 결과적으로 봤을 때, 거트루드의 초상화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쏟은 것이 피카소로서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거트루드는 후에 피카소의가장 막강한 후원자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p131 오늘날 우리는 피카소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느낌에 익숙해 있다. 그림이 전하는 불협화음은 우리를 더이상 놀라게 하지 않는다

p136 그 아프리카 미술을 피카소에게 소개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마티스는 자신이 발견했던 것을 피카소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기 작품에 끌어다 쓸 거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p152 드쿠닝의 어두운 어린 시절과 그 후 돌연 미국으로 떠난 이야기는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가 언젠가 언급했던 "미국 역사의 기본토대를 이루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비슷하다

p172 "저는 지금 이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태 미국에 와서 본 작품 중 가장 흥미로운 그림이에요. 이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p174 감미롭지만 정신을 흐트리는 사교계로 플록을 끌어들인 구겐하임은 그를 유혹하고 나섰다.(구겐하임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육체적 욕구를 푸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결과는 어색한 원나잇 스탠드로 끝났고 플록은 또 한바탕 미친 듯이 술을 퍼마시게 되었다

p183 드쿠닝은 전통적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직접적이고 건강하며 심지어 격정적인 감정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회화 양식을 제시해주었다

p191 플록은 자신에게 찾아온 성공과 그에 따른 엄청난 변화에 도취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적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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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 듣는 세계사 - 영국인 저널리스트의 배꼽 잡는 국가(國歌) 여행기
알렉스 마셜 지음, 박미준 옮김 / 틈새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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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국가로 듣는 세계사

 : 알렉스 마셜

 : 틈새

 : 2021/11/18 - 2021/11/30


국가를 통해 세계사를 쓰다니...

이런 책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유럽뿐만이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서아시아등 다양한 나라의 국가를 수집하고 작곡가, 작사가를 추적하여 글을 썼다.

세계사라고 하기엔 너무 지엽적이지만 각 나라의 현대사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가 몰디브와 한때 같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됐다.

많은 나라의 국가가 혁명을 끼고 만들어져서인지 과격하다.

그리고 그 과격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국가는 정말 얌전하다. 국민성은 그렇지 않은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주제라서 즐겁게 읽었다.

재미있다. 



p11 올드 랭 사인보다 한국적인 음악도 아니다. 안익태는 독일에서 활동했으므로 그의 음악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작곡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p11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국가, 즉 국민들이 진심을 담아 부르고 다른 나라들도 부러워하는 국가는 사실 그 나라의 민요에 기반한 국가이거나 술자리 노래다. 또는 위기의 순간에 만들어져 거리에서 불린 저잣거리의 노래다.

p26 내셔널리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국가는 만들어지자마자 정치도구화됐고, 통합하는 만큼이나 분열을 일으켰으며, 일상적인 만큼이나 논쟁적이 됐다

p44 이 노래는 혁명의 상징이어야 해요. 프랑스 혁명은 전 세계에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전하기 위한 거였잖아요. 이 노래도 혁명의 일부였고, 내용도 그 이상에 관한 거죠

p65 사람들은 루제의 노래를 원했지 루제를 원하지는 않았다. 루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국가 작곡가들은 자신이 만든 노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할 운명인 걸까?

p81 모든 프랑스인들은 마르세유에서 올라온 몇백 명의 젊은이가 그날의 공격을 이끌었다고 알고 있다. 용감하고 대담하게 그들의 왕을 끌어내렸다고. 그 일을 하면서 그들이 부른 노래가 있다고. 그들이 왕을 끌어내린 적이 없다는 사실, 그다음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p101 국가에는 찬송가형, 행진곡형, 팡파르형, 서사시형이 있다. 그런데 네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p157 영국인이 너무 괴롭혀서 완전히 돌아섰죠.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요. 영국 지휘관들은 대체로 귀족 출신이 많았거든요. 자기네 국민들도 깔보는데 미국인한테는 오죽했겠어요.

p159 성조기의 첫구절은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실은 반쯤 진행된 전투에 대한 묘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p196 그저 그 남자들이 그곳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그들이 있는 곳을 비켜서 벚나무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가능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일본적 태도를 이보다 잘 입증하는 예가 있을까

p202 노조의 설립 목표 중 하나가 바로 국가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그들에게 월급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노조가 설립되고 나서 기미가요는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다

p204 이탈리아와 독일은 파시스트 정권에서 쓰던 공식 음악을 다시는 연주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p211 오늘날 도포로자와의 학생들은 기미가요를 부른다. 한 교사는 이제 학생들은 역사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교사들은 국가가 연주되면 기립해요. 직장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p242 그 노래 가사를 쓴 사람이 바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 있는 국가 지도자 중 자기 나라의 국가 가사를 쓴 유일한 사람이다

p253 소련에서 정치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실적 수정을 위해 누구에게 뇌물을 줄지 정확히 아는 게 다른 기술만큼이나 중요했다. 물론 상당한 운도 따랐다

p265 내가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대다수는 나자르바에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불편해 보였다.

p293 남작이 뭘하고 말하건, 리히텐슈타인은 영국이 직접 통치하지 않았던 나라 중에서 '신이여 여왕 폐하를 구하소서'를 국가로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다

p305 최초의 진정한 국가가 전혀 국가적이지 않았다는 이 아이러니는 많은 역사학자도 지적한 바 있다

p358 내가 그에게 보스니아의 국가에 어떤 가사가 붙으면 좋을지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왜 우리는 아직 여기 살고 있는거지? 우린 진짜 멍청한가 봐

p394 이집트 최초의 국가는 1952년 이집트 혁명 이전에 불렸던 노래인데, 혁명을 통해 친영파였던 왕실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p429 모든 국가 작곡가들, 심지어 사예드 다르위시처럼 이름난 작곡가조차도 자신의 노래와 달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거의 잊혀져 가는 걸까?

p438 하지만 남아공의 국가가 특별한 이유는 이 노래가 그저 두곡의 혼합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가사가 다섯 개 언어로 만들어져 있어서, 남아공의 모든 사람이 서로의 문화에 어떻게든 참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p445 1952년 아프리카 국민 회의가 아파르트헤이트법을 어기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최초로 전개했을 때도 이 노래는 거기에 있었다. 사람들은 감옥에 실려 가는 수레 위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1957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있었던 버스 보이콧 기간 때도 사람들은 매일 일과를 마치고 이 노래를 불렀다

p457 나라의 미래에 대한 협상 과정에서, 국가로 남아프리카의 외침을 계속 연주하되, 끝나면 즉시 주여 아프리카를 구하소서를 연주하고, 이어서 바로 그 노래의 세소토어 버전인 모레나 볼로카까지 연주하기로 협의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세 곡 묶음 국가였다.

p493 대포 8대와 마주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총독은 즉시 요구에 응했다. 고작 몇 안 되는 인력으로 단 한 발의 사격도 없이 독립을 성취했다는 사실은 스페인이 이 나라를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오지로 취급했는지 잘 보여준다.

p503 전투뿐만 아니라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한 사람도 많았다. 남은 인구는 약 15만 명에 불과했다. 파라과이는 성인 남성 인구의 90퍼센트를 잃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 영토의 4분의 1을 빼앗아 갔다. 파라과이는 공화국과 죽음 중 거의 죽음 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p522 다른 남미 국가를 만든 작곡가들 도한 테발리와 같은 오페라의 광팬이었다. 브라질의 국가를 작곡한 프란시스코 마누엘 다 실바는 브라질에 오페라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다. 볼리비아와 콜롬비아의 국가는 이탈리아인이 작곡했다. 에콰도르의 국가를 만든 프랑스인은 애초에 오페라단과 함께 여행하다가 남미에 오게 됐다.

p550 서유럽, 발칸, 북미,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북아시아, 중동, 이슬람권, 아프리카, 남미 등 영국인의 시야를 통해 본 오늘날의 세계를, 각국의 국가가 만들어지고 불린 역사적 맥락을 곁들여 우리말로 풀어내는 작업은 애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골치가 아팠다

p550 미국 국가는 영국과 전쟁하다가 만들어진 노래이고, 일본의 국가는 영국인이 작곡했으며, 이집트의 국가와 남아프리카 국가는 영국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으 ㄴ노래이고, 리히텐슈타인의 국가는 심지어 영국 국가와 같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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