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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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김새별

 : 청림출판

 : 2022/03/17 - 2022/03/20


나이가 들어서인지 죽음과 관련된 책을 주의깊게 읽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책중에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라는 책이 있었다. 

미국에서 시체처리하는 분의 에세이였는제 나라마다 장례문화가 참 많이 다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은 유품정리사가 쓴 책이다. 

보통 죽음 이후 유품은 유족들이 정리하는 걸로 알았는데 생각보다 유품정리사를 부르는 경우도 많은가보다.

고도사로 인해, 살해당해서, 또는 아무도 정리하기를 원하지 않아서 유품정리사가 투입된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고, 또 이 분들에게 많은 신세를 지면서도 결코 옆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 직업이라고 한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는데 없는듯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죽음 혐오의 모습이 그렇게 나타나나 보다.

웃으며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다보니 저절로 얼굴이 굳어진다.

예전에 축제라는 영화를 봤는데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모든 유가족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다.

그때 사진사가 "누가 죽었나? 좀 웃어요"하는 이야기에 모든 유가족이 웃음을 터뜨리고 사진을 찍었다. 장례를 치르는 게 슬픔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슬픈 죽음은 좀 적었으면 좋겠다. 


p32 언제인가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수습하러 간 날, 머리카락이 긴 것으로 보아 여자로 짐작할 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 앞에서 모두가 코를 막은 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뛰어들어오더니 사체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고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살아있든, 죽었든, 부패했든 아버지에겐 그저 소중한 딸이었던 것이다

p41 누군가는 해야할 일, 결코 기분 나쁘거나 불쾌할 이유가 없는 일. 그러나 누구한테도 환영받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해야 하는 일. 이것이 바로 이 직업의 모순이다

p53 할아버지, 내가 나이도 있고 여기서 살다 보면 저세상에 갈 수도 있는데... 나 여기서 죽어도 돼요? 우리 같은 늙은이는 다들 그렇거든. 이제나 죽을까, 저제나 죽을까 자다가 조용히 죽어야 할 텐데, 그러잖아. 그래서 별 뜻 없이 괜찮다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누가 알았누

p98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던 것일까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나 죽으면 쓸 만한 물건은 가져가라가 아니라 세탁기는 친구, 냉장고는 폐지 할아버지, 소형 가전이랑 겨울옷은 옆집 할머니, 구체적으로 정해 일러놓고 가셨다

p122 외부와 단절된 채 고독하게 죽어가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가지 되었을까. 문제는 있는데 답이 없다. 나로 시작해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p141 아이의 삶은 그의 소관이 아니다. 부모가 없이 때문에 아이가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오산이다. 자신만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부모 없는 아이는 모두 불행하다는 착각이다

p148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 말은 다시 거꾸러 뒤집으면 잘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살고 싶다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p158 고독사는 더 이상 홀로 사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돌봄 서비스 덕분에 노인 고독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젊은이들의 고도사다

p168 친절하고 예의 바른 가족이었다. 가식적인 느낌은 없었다. 다만 여느 유가족들처럼 슬프거나 침통해 보이지는 않았다. 집을 나오는데 마치 이사 청소를 해주고 온 느낌이었다

p171 누구에게도 당신의 이웃이었던 한 젊은이가 죽었다고 알릴 수 없었다. 청년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진 채 현장은 정리되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있지도 않은 개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고, 애도는 커녕 개를 버려 굶어죽게 만든 사람으로 고인을 비난받게 만들었다

p189 혼자 살면서 반찬은 사 먹어도 됐을 텐데 각종 장아찌며 간장, 고추장까지 직접 담가 먹고, 공짜로 얻어왔을 새 옷은 아까워서 꽁꽁 싸매놓고 입어보지도 못했다. 결국 모조리 폐기물 처리장으로 가게 될 것이다

p197 꽤 긴 시간, 아이는 혼자 울었다. 이모가 돌아와 박스를 전해주자 비로소 울음을 그치고 언제 울었냐는 듯 덤덤한 표정이 되었다. 묵묵히 짐을 다시 챙겼다.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혼자 울어야 할까. 언제까지 그 슬픔과 고통을 숨죽여 삼켜야 할까. 그날만 생각하면 엄마 옷에 얼굴을 묻고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p206 아버지는 지병으로 시한부의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편지에는 의례적인 건강상의 안부 인사 정도만 있었다. 아버지는 타국에 있는 딸이 걱정할까 봐 자신의 병을 숨겼던 것이다

p212 근데 참 희한한 게 봄만 되면 이 집 꽃들이 활짝활짝 잘도 피더라고.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는데 심어줬다고 곧잘 펴. 마당이 다 환했다니까. 꽃이 사람보다 낫지. 자식들은 애비도 나 몰라라, 죽어나가도 모르는 데 말이야

p218 아니 죽은 사람 집 청소하러 다니느 사람이 그것도 못해? 못 하겠으면 밖에 내다 버리든지, 아님 직접 데려다 키우든지. 고인에게는 소중한 가족이었지만 남에게는 버려도 되는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다

p225 장례지도사로 일할 때도 겪어본 일이었다. 무연고자인 줄로만 알았으나 유가족을 찾게 되어 연락을 취하면 가족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한다. 인수를 거부당한 시신은 의학해부용으로 쓰이거나 화장된다. 고인도 같은 경로를 거칠 것이다. 끝내 가족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p230 현장에서 나온 가구나 집기, 쓰레기 등은 즉시 폐기물 업체에 처분한다. 사무실로 가지고 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는 물론이고, 사무실이나 차량조차 근처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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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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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이지환

 : 부키

 : 2022/03/10 - 2022/03/17


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교보문고의 SAM에서 책이 남아서 선택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동원해서 역사적 인물의 죽음과 고통의 원인을 파헤친다.

가우디가 왜 구부정한 모습으로 걸어다니는지, 도스토옙스키는 왜 도박에 빠졌는지, 모차르트와 니체의 사망, 정신병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찾아가본다.

실제 의학계에서는 어떻게 판단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그렇게 그럴듯한데 왜 학계의 정설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든다. 

퀴리부인이 라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동안 그는 온몸에 방사능을 쪼이며 스스로를 죽여가게 된다. 

당시에도 방사능이 위험할 거라는 생각을 한 것 같긴 한데, 지금 생각하는 만큼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하긴, 예뻐지기 위해 비소와 수은을 쓰다 수은중독으로 죽은 귀족들이 그렇게 많았었다고 하니...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과학적 사실과 기술적 진보도 아직 우리가 모를뿐 수많은 위험요인들에 노출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때는 석면에 고기구워먹었다.. 고기가 잘 익어서.)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7% 조선 시대 진단에 초점을 맞추면 ‘세종은 성병에 걸린 왕’이 되지만, 증상에 집중하면 ‘세종은 대장균 때문에 고생한 왕’이 된다.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진단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이 느끼는 통증은 같다

14% 학장은 가우디에게 졸업장을 주며 말했다. “건축가 타이틀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멍청이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평가할 일이다”

18% 독실한 가우디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신의 뜻이고, 빛은 신의 축복이라 믿었다. 이를 아름답게 드러내고자 시시각각 색이 변하도록 성당을 설계한다.

20%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에 빠진 이유는 간질 발작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간질 발작 환자였고 발작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그를 괴롭혔다

24% 막 성인 이 된 이들에게 클럽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 없다. 이들은 잔뜩 술을 먹고 헐떡이며 춤을 추다가 생애 처음으로 발작해 병원에 실려오곤 한다. 음악에 빠져 잠을 거르고, 독한 술을 마시며, 번쩍거리는 화면에 취해, 숨이 가쁠 때까지 뛰어노는 EDM 축제는 발작을 유발하는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27% 유년부터 천재적 색깔을 보이며 최고의 재능을 뽐내던 음악가 모차르트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어떤 음악가라 할지라도 그를 뛰어넘기 어렵다

29%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와 각별했고 외도를 꿈꾸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애틋한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 내용이 꽤 관능적이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의 편지를 엮어 출판하려고 했으나 출간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일부 내용을 순화해야만 했다. 검열을 했음에도 “당신을 생각하면서 발기했다” 등의 내용이 남아있다

33% 고열을 유발하는 세균성 감기의 유행,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독특한 부종, 뭍에서도 물속에 있는 것처럼 헐떡이게 되는 숨, 유난히 높은 사망률, 연구 팀은 이를 종합해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모차르트는 연쇄 구균 감염 후 사구체신염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41% 유전자가 섞일 기회가 적은 나라는 기형아 출산이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아이슬란드다. 인구가 적고 외국인 유입도 낮아 몇다리만 건너면 친인척이다. 때문에 아이슬란드 젊은이는 데이트 신청 전에 친족 관계를 계산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기도 한다

46% 니체는 스위스에도 바그너 모임을 만들고자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대중들의 형편없는 심미안에 실망한다. 어떻게 바그너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니체는 무지한 대중들을 꾸짖는 <독일인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쓴다. 오락음악을 찾는 싸구려 취향에서 벗어나 품격높은 바그너의 위대한 사업에 후원으로써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이다

51%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제목 그대로 인상적인 쓰레기다. 오히려 그림이 걸린 벽지가 더 고풍스럽다. 차라리 벽지에 대해 감상평을 쓰고싶다라는 비평 글에 대해 모네는 유쾌하게 대꾸했다. “인상적인 쓰레기라니, 멋진 표현인데? 오늘부터 우리는 인상파다”

52% 모네의 자유로운 천성과 천재성, 든든한 동료, 철학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 물감 튜브의 발명과 카메라의 출현이 어우러져 새로운 화풍이 탄생했다. 인상파의 태동이다

61% 어린 날의 비극 덕분에 형성된 프리다의 성격은 아이러니하게도 멕시코 특유의 블랙 코미디 정서와 적절히 배합되어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66% 둘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디에고는 프리다는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교양 없는 여인과 밤을 보내고 창녀촌에서 흥정하는 게 자신의 위신을 깎아 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혼하자며 화를 내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굴복할 줄 알았나? 나는 오히려 다시 이혼하자고 했다고 말한다.

73% 만약 우라늄의 형태가 변했을 때 방사느 세기도 바뀐다면, 방사능은 우라늄 원자의 성질이 아니라 분자의 성질일지 모른다. 마리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전기 전도성을 측정했다. 결과는 놀랍고 명쾌했다. 우라늄은 형태와 온도가 어떻든 같은 수준의 방사선 에너지를 방출했다. 유레카! 방사능은 우라늄 원자의 성질임이 틀림없다

88% 동양은 오래전부터 하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별을 관측했다. 별의 움직임은 곧 신의 말씀이고 천문학은 주술과 괘를 같이했다. 관측 기술은 정교해졌다. 고려 시대의 천체 관측 보고서 천문지에는 별똥별이 87회나 기록되어 있다. 놀랍게도 같은 시기 서양의 천체 기록에는 별똥별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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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함께 산책을 -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여행하는 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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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체와 함께 산책을

 : 시라토리 하루이코

 : 다산초당

 : 2022/03/08 - 2022/03/10


니체에 대한 내용이 아닌것 같은데 왜 제목에 니체가 들어가지?

과거 유명했던 작가들의 산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나 할까.. 

책제목만 봤을 때는 니체가 산책을 통해서 얻었던 영감이나 그의 생애에 대한 책일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좀 당황했다.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가벼워서 에세이 읽는 느낌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니라 몰입이 되지는 않았다. 



9% 영원회귀는 그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순간이 앞으로도 똑같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철학개념이다

20% 니체는 자연에서 찾아낸 세 가지를 사랑했는대, 바로 광대함, 고요함, 햇빛이었다

25% 보름달 빛을 받으며 로마를 거니는 아름다움은 실제로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다. 도시의 모든 것이 빛과 그림자와 커다란 덩어리에 삼켜지고, 가장 크고 가장 일반적인 형상만이 눈앞에 나타난다

29% 릴케는 저서 말테의 수기에서도 시는 사실 체험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체험은 보통 사람이 평소에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집중할 때, 어떤 계기로 지금까지의 세속적인 사고와 습성을 무의식중에 버렸을 때 만나는 체험이다

36% 프롬은 존재의 기술에서 마인드풀니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국내에는 마음챙김이라는 번역어로 두루 알려졌다) 마인트풀니스는 산스크리트어를 영어로 충실하게 번역한 단어인데, 집중 또는 선정(한마음으로 사물을 생각해 아믕이 하나의 경지에 머물러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을 의미한다. 비즈니스업계에서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마인드풀니스 개념과는 다르다

40% 질문을 받으면 대답해야 한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면 그에 응해야 한다. 이 일상적인 생활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쓴 책이 바로 그의 대표작 나와너다

45% 선과 깨달음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명확하게 이해시키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다이세쓰는 냉난자지를 강조했는데 ‘차가운지 따뜻한지는 직접 마셔봐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53% 도겐은 세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를 배열해 세상이 되느니라... 나를 배열해 내가 그것을 보느니라

55% 이것은 바로 진인의 삶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아첨하지 마라. 남이 고마워하길 바라지도 마라 / 선뜻 무언가를 남에게 베풀어라.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아낌없이 줘라 /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보시다 / 나에게도 베풀어라 / 마음을 주고, 목숨을 주는 것도 보시다 / 다른 사람에게 자상하게 말하라 / 나만 특별해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타인과 너무 다르면 안 된다. 남이 하는 것도 하라 / 사람을 싫어하거나 귀찮아하지 마라 / 모든 일을 온화한 표정으로 마주하라

77% 정적 속에 앉아 홀로 식사하며 음식을 맛본다. 식기를 씻고 그저 앉는다. 저물어가는 하늘에서 새들이 훌훌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흔들리는 검은 구름 사이로 달이 나오는 광경을 바라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마치 영원을 산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 자체가 평소와는 전혀 다르다

89% 모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이 중요한 발언은 역시 깨달음과 관련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나는 오로지 그곳에 보이는 하나의 현상을 거의 완벽하게 붙잡으려고 애썼습니다. 왜냐하면 현상이란 반드시 실재와 깊이 관계되어 있으니까요. 알려지지 않은 실재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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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보다 1 - 선사.고조선.삼국 한국사를 보다 1
박찬영.정호일 지음 / 리베르스쿨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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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를 보다1

 : 박찬영

 : 리베르스쿨

 : 2022/03/07 - 2022/03/12


사진이 많아서 역사 유물들을 많이 보여줘서 좋다.

역사이야기, 특히 고대사는 유적이 발견될 때마다 내용이 바뀌기 때문에 꾸준하게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단적인 예로 내가 어릴때는 장군총이 광개토태왕의 묘로 추정됐었는데 광개토태왕의 묘가 발견되어 발굴중이기 때문에 장군총은 장수왕의 묘로 추정되고 있다.

그외에도 금동대향로의 발견으로 백제의 문화수준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참고서로도 좋고 일반인들의 교양쌓기로도 좋다.

나는 환단고기때문에 상고사에서 국뽕이 잔뜩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책에서 고대사의 국뽕의 느낌을 조금 받다 보니 그런 부분은 아무 이유없이 의심하게 되고 경계하게 된다.

그런 것만 빼면 화보도 많고 설명도 쉬워 추천할만한 한국사책이다. 


p30 작물을 재배하기 전이었지만 인간은 고기잡이를 하면서 비로소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구석기인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수렵이나 채집 활동을 했다면 신석기인은 점차 한곳에 정착하면서 짐승을 돌보거나 농사를 지었지요

p56 단군 조선이 아사달에서 건국됐지만 평양성, 백악산 아사달, 장당경 등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어요. 즉, 수도를 옮기면서 단군 조선의 세력을 확대한 것이지요

p61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돌도끼나 괭이, 나무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개간해 곡식을 심었어요. 가을에는 반달 돌칼로 이삭을 잘라 추수하는 등 농경을 더욱 발전시켰지요. 농업은 주로 조, 보리, 콩, 수수 등 밭농사가 중심이었지만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도 지었답니다.

p81 랴오허 문명의 흥산 문화는 중원의 양사오 문화와 교류를 시작했고, 이어 산둥 반도 일대 량주 문화, 다원커우 문화가 중원과 교류했어요.

p94 치우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구려족의 우두머리로서 헌원과 전쟁을 벌였지요. 전투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중국에서는 전쟁의 신이나 병기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했지요

p126 왕검성은 함락됐지만 한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전쟁에 참여한 한의 장수 대부분이 처벌을 받았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어요.

p130 부여, 고죽, 고구려, 예, 맥, 추, 진번, 낙랑, 임둔, 현도, 숙신, 청구, 양이, 양주, 발, 유, 옥저, 기자 조선, 진, 비류, 행인, 해두, 개마, 구다, 조나, 주나, 한, 삼한 등은 모두 단군 조선의 거수국이라고 합니다.

p133 낙랑은 고구려 대무신왕 때 멸망했는데, 삼국사기에는 300여 년이 지난 미천왕 때 멸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대무신왕 때의 낙랑은 단군 조선의 거수국 가운데 하나이고, 미천왕 때의 낙랑은 한사군 가운데 하나였다고 봐야 해요

p159 삼한의 지배자 중에서 큰 세력을 형성한 자를 신지, 작은 세력을 형성한 자를 읍차라고 불렀어요

p186 고구려의 고분 양식은 초기에는 돌무지무덤이 주를 이루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었어요. 돌무지무덤은 시신 또는 석곽 위에 돌을 정밀하게 쌓아 올려 만든 무덤입니다. 그래서 적석총이라고도 하지요.

p188 삼족오에는 고구려의 통합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삼족오 또는 세발 까마귀는 단군 조선과 고구려 뿐만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의 신으로 널리 숭배받았던 전설의 새예요. 삼족오를 숭배하는 지역은 곰 토템 지역과 대부분 일치하지요. 랴오허 문명의 주축인 흥산 문화 유적지에도 삼족오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p192 고구려에는 신라의 화랑과 유사한 조의선인이 있었어요. 조의선인이란 검은색의 조복을 입은 선인이란 뜻입니다. 조의선인은 선비 제도라는 특별한 교육체계에 의해 양성되는 인재로서, 어린 나이에 선발돼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을 통해 심신의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을파소, 을지문덕, 강이식, 양만춘, 연개소문 등이 조의선인 출신이에요

p207 광개토호태왕의 업적은 무엇일까요? 일일이 열거하자면 굉장히 많지만 그 업적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단군 조선을 계승해 고구려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려고 했던 정신이예요

p221 중화 문명의 세계관은 황제가 하늘을 대신해서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황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이 국력이 강해지면 주변국을 지배하기 위해 침략 전쟁을 벌인 이유가 바로 이 세계관 때문이랍니다.

p268 4세기에는 아직기가 일본의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쳤고,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가르쳤습니다. 아직기는 근초고왕의 명으로 두 필의 말을 일본의 왕에게 선사한 후 말을 기르는 일을 맡았다고 해요. 일본 왕은 아직기가 경서에 능한 것을 알아보고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노리사치계는 성왕의 명으로 불경과 불상을 일본에 전했어요

p302 후기 신라 이후에 후고구려, 후백제 등이 다시 일어섰고, 고려 시대엔 묘청의 난을 계기로 서경천도론과 삼한 정통론이 맞서기도 했습니다.

p308 신라의 건국 신화는 단군 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과 해양 세력과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어요.

p324 고구려에서는 귀족이 제가 회의를 통해 수상인 대대로를 선출했지요. 또한 백제에는 수상인 상좌평을 투표로 선거했다는 정사암 회의가 전해지고 있어요

p341 풍류의 연원은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는데, 그 가르침 속에는 이미 유불선 3교가 포함돼 있다. 안으로는 부모에 효도하고 밖으로는 나라에 충성하니 이는 공자의 가르침과 같고, 매사에 무위로 대하며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과 같고, 악한 일들을 행하지 않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석가의 가르침과 같다라고 기록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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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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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 도읍지 이야기

 : 이유진

 : 메디치 미디어

 : 2022/02/20 - 2022/03/07


재미있게 읽었다.

장안의 화제라고 아직까지 이야기되는 시안을 비롯하여, 뤄양, 카이펑, 항저우, 베이징 등 중국의 여섯 수도의 역사를 배웠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각 도시를 수도로 삼았던 왕조들이 정리되어 있어 중국사에 대한 이해도 높힐 수 있었다. 

각 도시의 지리를 잘 모르다 보니 글로만 읽어서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다. 그건 내가 지식이 짧아서 그런것이지 책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수도를 대상으로 이렇게 책을 써도 꽤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수도라는게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 배경도 있고, 그로 인해 어떻게 발전하고 멸망하게 되었는지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테니까...

재미있는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3% 중국이 세계 중심이자 최고라는 중화사상은 중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그들에게 각인된 일종의 컬쳐코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건국 이후 30년과 개혁개방 이후 30년을 지나온 중국이 이제 새로운 30년을 펼쳐가고 있다. 지난 두 단계 30년의 모토가 각각 계급투쟁과 경제발전이었다면, 향후 30년의 모토는 위대한 중화의 재현이다

4%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로 꼽히는 시안은 역대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한 곳이기도 한다. 서주, 진, 한은 물론 수, 당 등 13개 왕조가 이곳에 도읍했다

6% 주왕과 달기는 주지육림의 주인공이다

13% 군막에서 계책을 짜내 천 리 바깥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일은 내가 장량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위로하며 군량을 보급하고 운송로가 차단되지 ㅇ낳도록 하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여 이기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인재인데, 나는 그들을 쓸 줄 알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천하를 얻게 된 까닭이다. 항우는 범증 한 사람도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나에게 사로잡힌 까닭이다

18% 소릉에서 영원히 이세민과 함께해야 할 여섯 준마는 죄다 제자리에 있다. 지금 소릉에 있는 육준 석각은 복제품이다. 각각의 무게가 2.5톤이나 되는 이 석각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여섯 준마 가운데 삽로자와 권모과는 1914년 미국으로 반출되어 현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나머지 넷 역시 해외로 반출될 위기를 겪을 뒤 1918년 산시성도서관에서 보관되다가 1949년 비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0% 실제 역사에서 현장이 태종의 부름을 받고 낙양으로 간 때가 정관 19년 2월이고, 태종이 고구려로 쳐들어간 때도 2월이다. 태종이 현장을 만난 뒤 바로 침략 전쟁에 나섰던 것이다. 춘추시대 공자도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지 못했듯 현장도 그러했다. 왕은 그들을 존중하는 척했을 뿐 그들의 진심에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24% 최악의 폭군이 걸왕과 주왕을 자신과 비교하라는 태종의 위협 앞에서도 장현소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정말로 건원전을 수축한다면 걸왕이나 주왕과 마찬가지라고 직간했다. 결국 태종은 건원전 건립을 포기했고 장현소에게 비단을 하사했다. 태종과 장현소의 일화는 태종이 신화의 간언을 얼마나 잘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27% 낙갈발과 홍화공주는 양주로 이주했다. 낙갈발은 고토 수복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당나라에 계속 지원을 청했다. 드디어 함형 원년(670년)에 고종은 설인귀에게 1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토번을 치게 했다. 결과는 당나라 군대의 대패였다. 잠깐 덧붙이면, 당나라와 토번의 이 대비천 전투가 신라에는 천우신조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신라마저 직할지로 삼으려 했다. 바로 이때 토번 덕에 신라와의 전투를 준비하던 설인귀가 대군을 이끌고 서역으로 이동함으로써 신라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0% 지위 높은 어떤 이가 젊고 잘생긴 과거 합격자를 점찍어 억지로 집까지 오게 한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젊은이에게 귀인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나에게 아주 괜찮은 딸이 있다네. 자네와 짝을 맺어주고 싶은데 어떠한가?” “가난하고 미천한 제가 높은 집안에 의지할 수 있게 되면 실로 행운이지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집사람과 아이랑 의논해봐야 하는데 어떠신지요?”

32% 당나라는 견우, 직녀 신앙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당 현종은 칠석을 중시해서 1000척(약 30미터)에 달하는 아주 높고 큰 걸교루를 궁중에 세워놓고 칠석이면 이곳에서 즐기며 밤을 새웠다고 한다. 칠석날을 위한 누각이 걸교루다. 궁중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뜰에 누각을 세우고 등과 꽃과 채색 끈으로 장식해 걸교루로 삼았다

33% 평안남도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408)에도 견우와 직녀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 때 그 지역 사람들도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믿었기에 무덤에 그런 하늘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전설 속에 담긴 인간 삶의 원형에 많은 이가 공감했기에 이야기가 확산되고 여러 지역에서 공유했을 것이다.

34% 장안에서는 이국의 패션과 오락과 예술이 유행했다. 외래 문물에 개방적이었던 만큼 조로아스커터교, 마니교, 경교(네스토리우스교) 등 다양한 종교가 유입되었고, 외국인이 밀집해 거주하던 서시 주변에는 다양한 종교 사원이 세워졌다. 페르시아 상인은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사원에서 예배를 드렸고, 시리아에서 온 이들은 경교 사원에서 예배를 드렸다

36% 모든 도시는 자신의 상징물을 지닌다. 베이징에 천안문이 있다면 시안에는 종루가 있다고 할 정도로 종루는 시안의 상징이다

41% 공자가 평생 흠모하여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 바로 주공이다. 질서와 조화로 대변되는 주나라의 예악제도는 훗날 유가의 예악사상으로 이어져 수천년간 중국의 정신을 지배했으니, 주공은 중국을 만든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뤄양을 찾게 되면 주공 사당을 잊지말고 둘러보자

44% 관우의 머리가 묻힌 곳이 바로 뤄양의 관림이다. 중국 역사상 무덥에 림이라는 말이 적용된 사람은 공자와 관우 두 명뿐이다. 공자가 묻힌 공림, 관우가 묻힌 관림, 그들의 역사적 비중이 무덤 호칭에 반영된 것이다

46% 프리스트는 반양중동뿐 아니라 반양남동,연화동, 봉선사, 고양동의 유물 역시 비열한 방식으로 손에 넣어 미국으로 가져갔다. 그와 추악한 계약을 맺었던 웨빈은 용문석굴의 유물을 일본인에게도 팔아넘겼다. 그렇게 그는 국보를 팔아넘기고 큰 돈을 벌었다

47% 봉선사 주불인 노사나불은 크기부터 사람을 앞도한다. 17.14미터 높이의 좌상에 머리 높이는 5미터, 귀의 길이만도 1.9미터나 된다. 노사나불을 비롯해 가벗과 아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두 천왕과 두 역사로 이루어진 봉선사 조각은 당나라의 위대한 시대적 상징으로 칭해진다

48% 엘긴 마블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선 떼어낸 조각들을 이렇게 부른다. 19세기 초, 오스만튀르크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토머스 브루스 엘긴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에서 파로테논신전 조각을 영국으로 가져갔다. 수많은 조각물이 원래 자리에서 떼내지면서 파괴되었고 운반되면서 유실되었다. 영국박물관 듀빈갤러리를 채우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들은 바로 이런 약탈의 결과물이다. 듀빈갤러리에 있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강의 신 일리소스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는 얼굴이 없다. 다름 아닌 약탈의 흔적이다.

52% 북망산에는 빈 땅이 없으니 죄다 뤄양 사람들의 옛 무덤이로구나라는 시구처럼, 우리에게 북망산으로 익숙한 이곳에는 역대 왕조 왕후장상의 무덤이 수두룩하다. 나당연합군에 멸망당한 뒤 당나라로 끌려간 백제 의자왕도 이곳 망상에 묻혔다

54% 정저우의 황하박물관에 소장된 민국도구합용기사비는 국민당이 1946년의 제방 복구를 기념하려고 만든 것이다. 비문에 적힌 제국안란이라는 글귀는 장제스 친필인데 나라를 구하고 물길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비문의 기록에 다르면 일본군이 폭파해 화위안커우 제방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진실이 이렇게 엄폐, 왜곡되었고국민당이 타이완으로 퇴각한 이후 수십 년 동안 타이완에서는 이 일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었다

54% 카이펑의 지층 단면은 수천 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가자 ㅇ아래족에는 전국시대 대량성이 있고, 그 위로 역대 도시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시대별 도시가 묻힌 깊이는 다음과 같다. 전국시대 위나라(12-14미터), 당나라(10-12미터), 북송(8-10미터), 금나라(6미터), 명나라(5-6미터), 청나라(3미터) 성루성 즉 이렇게 도시 위에 도시가 포개진 상황은 바로 황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황하의 범람과 그에 따른 재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57% 종이 , 인쇄술, 화약, 나침반을 형상화함으로써 세계 4대 발명품을 탄생시킨 중국의 문화를 전세계에 자랑하지 않았던가. 4대 발명품 가운데 인쇄술, 화약, 나침반은 바로 송나라때 실용화되었다

67% 하이난의 소수민족인 리족과 더불어 지냈고 하층민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리쩌허우 말대로, “소식은 끊임없이 자아를 위로하며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하고 만족하는 낙관의 정서를 지닌 사람이었다. 철종이 죽은 뒤에야 유배에서 풀린 소식은 북쪽으로 돌아가던 중 창저우에서 세상을 떴다. 이대가 1101년, 그의 나이 예순다섯이었다

69% 호설암의 성공와 몰락은 정경유착의 전형이다. “장사를 하려면 기댈 사람이 있어야만 하니, 권력이 있으면 이익도 있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좌종당이라는 권력에 기대어 비상했던 호설암, 결국 그는 이홍장이라는 권력 때문에 날개 없이 추락했다.

72% 육화탑은 천재 또는 인재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 하지만 늘 재건, 보수되며 그 자리를 지켰다. 970년에 처으 ㅁ세워졌던 육화탑이 지금도 육화탑으로 존재하는 것은 탑을 지켜온 많은 이들 덕분이다. 지담 스님의 청동좌상은 바로 그들의 노력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리라

73% 명나라 우겸은 몽골의 공격으로부터 베이징을 수호했다. 그보다 300년 전 남송의 악비는 여진족의 금나라와 맞서 싸웠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무고하게 죽임을 당했다.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이건만 모반죄를 씌워 죽게 한 것이다

75% 난징이 무더운 도시 10위권 밖이긴 하지만 여름철 매우 무더운 도시임은 분명하다. 창장 연안에 자리한 충칭, 우한, 난징이 화로처럼 무더운 데는 아열대 고기압의 영향 외에도 지리적 영향이 크다

76%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외국과 체결하게 된 첫 번째 불평등 조약은 난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난징조약 이후 난징은 줄곧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관통하는 곳이다

80%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 해도 그저 여러 첩 중 하나일 뿐이고 여의치 않으면 내쳐질 수도 있는 존재, 그게 바로 기녀의 운명이었다

83% 쑨원의 유해를 증산릉에 안장하는 봉안대전이 거행된 1929년 6월 1일 정오를 기해 전국의 교통이 3분 동안 멈추었고 전 국민이 3분동안 애도를 표했다. 국부에 대한 최고 예를 표한 것이다. 이후 수많은 이가 사후에 증산릉 곁에 묻히길 바랐다. 장제스 역시 중산릉 서쪽에 자기 묏자리를 봐둔 적이 있다. 만약 훗날 벌어졌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승리했다면 장제스는 바로 그곳에 묻혔을 것이다

84% 9층 유리탑은 난징을 방문했던 유럽 여행자들에 의해 중세시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힐만큼 예술성이 뛰어났다. 대보은사 유리탑에 대해 ‘큰 규모였다’, ‘뛰어났다’라고 과거형으로 서술한 이유는 그것이 이미 파괴되었기 대문이다. 1856년 벌어진 태평천국의 내분으로 그토록 아름다운 탑이 파괴된 것이다.

89% 천안문 성루에 걸린 초상화는 중국의 정치 지형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개국대전 이후 마오쩌둥 초상화는 해마다 5월 1일 노동절과 10월 1일 국경절에 맞춰 열흘가량 천안문 성루에 걸렸다. 마오쩌둥 초상화가 지금처럼 1년 내내 걸리게 된 건 1966년 8월부터다. 바로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가 이루어진 문화대혁명 기간이었다

94% 건륭제가 조지 3세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천조는 물산이 풍부하여 없는 것이 없으며, 만국을 다스리는 천조는 일시동인(모두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어짊을 베풀다)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94% 약탈로 끝이 아니었다. 연합군 요구대로 포로는 석방되었다. 하지만 포로 몇 명이 이미 죽은 것과 포로들이 학대를 받았다는 것을 빌미로 연합군은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게다가 원한을 씻는다는 명분으로 원명원을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10월 18일, 원명원은 불길에 휩싸였다

97% 현재 유교는 중국에서 가장 거대한 지적 힘으로 작용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중국문화의 주체적 정체성을 담보해주고, 시장경제화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해결해주고,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국민 통합을 이뤄낼 열쇠를 유교에서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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