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미술 이야기 7 -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 미술의 시대가 열리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7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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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처한 미술이야기7

 : 양정무

 : 사회평론

읽은기간 : 2023/03/05 -2023/03/12


믿고 보는 양정무 교수님의 난처한 미술이야기 시리즈

7권을 산지 오래됐지만 이제야 읽었다. 

그동안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너무 늦게 읽었다.. 책에게 미안해진다. 

르네상스 후기가 이 책의 주제다.

르네상스가 얼마나 대단한 시기였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매너리즘 시대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면벌부의 판매라니.. 종교가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런 돈이 모여서 베드로 대성당이라는 걸작이 나왔다는 아이러니도 느끼게 된다. 

신을 모독하는 방법을 통해 신을 찬양하는 작품이 만들어지다니...

인류의 역사는 아이러니와 비틈의 연속이다.

이번에도 멋진 책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p6 미술의 황금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시작해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손에 의해 완성되지만, 1520년 라파엘로의 때 이른 죽음과 함께 일찍 마감됩니다. 길어야 30년 정도 지속된 미술의 시대는 짧은 시간 속에도 놀라운 대작들을 낳으며 동시에 강렬한 미술에 대한 신화까지 만들어냅니다.

p32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은 단기간에 끝나는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본당만 해도 1506년에 시작해 1626년까지 120년이 걸렸고 대성당 앞쪽의 광장을 정비하는 데만 또다시 50년이 걸렸습니다.

p36 로마의 거대한 변화는 15세기 초반 교황 마르티노 5세가 아비뇽에서 로마로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때부터 교황들은 도시를 재건축하는 것이 로마의 권위를 세우고 교회의 권위를 세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로마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p61 카를 5세가 친가만이 아니라 외가 쪽으로부터 상속받은 영지만 대략 70개가 넘으니까요. 이렇게 그는 고대 로마를 능가하는 대제국을 지배하게 됩니다.

p89 이 시기 미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책이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책을 읽거나 책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 넘쳐나죠

p100 결국 교황의 길의 정점에는 미켈란젤로가 있는 셈입니다. 카피톨리노 광장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이 길의 정점에 그의 작품이 자리하는 거지요. 그야말로 위대한 로마를 더 위대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미켈란젤로죠

p129 재밌는 점은 작업 순서에 따라 인물의 모습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초반에 그려진 인물들은 정적인 반면 점차 제대화 쪽에 가까워질수록 미켈란젤로 특유의 큰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p147 브라만테는 재능있고 성격도 좋은 라파엘로를 교황 율리오 2세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교황을 중심에 놓고 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 그리고 라파엘로까지 3명의 작가가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된거죠.

p150 템피에토는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 성당 안에 있는데, 이 성당은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된 곳에 지어졌습니다.

p159 노력하는 천재가 더 무섭다고 하지 않습니까? 라파엘로는 거장 앞에서 좌절하거나 성급히 도전해서 충돌하기보다는,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중 뛰어난 점을 적극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p169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너무나 유명하다 보니 교황 집무실에 이 그림 하나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방의 4면뿐만 아니라 천장에까지 벽화가 들어가 있어요. 결과적으로 라파엘로의 그림으로 가득 찬 방이 교황궁에 모두 4개나 있는 거죠

p194 하이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이 원숙하게 자리 잡는 시기, 예를 들어 최후의 만찬이 만들어진 때부터 시작해서 라파엘로가 사망하는 1520년까지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 르네상스는 대략 30년 정도입니다.

p211 미켈란젤로는 판테온을 연구한 후 지붕 선, 본체, 지붕, 앞면의 건축가가 전부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미켈란젤로는 판테온을 위대한 건물이라고 인정했지만, 동시에 이 건물이 지닌 여러 건축적 구조나 결함의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비판했어요. 이러한 비판 정신이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p223 콜로세움의 아치 크기는 폭이 4.2미터고 높이가 7미터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높이가 7미터면 사람 신장의 세 배가 넘죠. 흥미롭게도 르네상스 이후 로마의 팔라초는 이 콜로세움과 비슷한 크기의 대형아치를 사용합니다.

p249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과일은 육체와 성의 쾌락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어요. 과일을 베어먹었을 때의 달콤함은 육체의 쾌락으로 비유하기 충분하죠

p267 시뇨렐리의 그림에서는 죄인들이 악마와 한 판 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근육질이잖아요. 반면 보스의 그림 속 인물들은 악마의 장난감밖에 안될 정도로 나약해 보이죠

p278 이렇게 순수한 믿음을 이용한 일종의 돈벌이가 공공연하게 벌어졌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면벌부 판매입니다.

p298 성상 파괴 운동의 불길은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신교지역에서 종교미술은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어느정도 종교미술의 역할을 인정한 루터와 달리 칼맹 등 보다 엄격한 교리를 추종했던 지역에서 종교미술은 상당히 제한됐어요.

p315 원작자인 루카스 크라나흐 역시 이 그림의 의미를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1529년부터 20년 이상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렸으니 말이죠. 신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크라나흐의 공이 크답니다.

p327 크라나흐의 그림 속 큐피드는 자기 손으로 안대를 벗고 있습니다. 이는 몽매함을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이제는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거죠

p341 1527년 5월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고 이듬해 2월까지 이 도시를 잔인하게 유린하지요

p354 미켈란젤로는 위로 갈수록 벽체를 두껍게 쌓아 그림 앞에 서면 상단에 자리한 인물들이 우리 쪽으로 쏟아지는 듯한 착시 효과를 줍니다. 어쩌면 지구 심판의 날에 벌어진 끔찍한 공포의 사건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단일한 화면에 수많은 인물을 휘몰아치듯 구성하고, 비례까지 역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396 피렌체 시민들은 앞서 피렌체 정치를 좌지우지한 메디치 가문의 독재를 비판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다비드 상 제작을 의뢰하지요 다비드가 거인 골리앗을 무찔렀듯 메디치 가의 독재를 끝내고 자유를 찾았다는 의미를 조각상에 담으려 합니다 .

p415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대부분의 조각상은 신화나 성경, 혹은 역사 속에 등장한 인물들이 주인공이지만 사실은 피렌체 지배자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거죠

p418 메디치 가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떠나서 이런 미술 컬렉션 덕분에 오늘날 피렌체의 예술적 명성이 자리 잡았다는 점은 존중할 만합니다. 한편 우피치 미술관은 소장하고 있는 작품도 귀중하지만 흥미롭게도 건축 자체 역시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어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p421 1510년을 전후로 이들이 이룩한 하이 르네상스 시대의 업적은 후대 미술가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나오는 미술 경향을 매너리즘이라고 하죠. 이런 의미의 매너리즘은 1520년부터 1600년까지 최대 80년의 시기를 가리키는 미술 용어가 됩니다.

p442 여러 신화적 인물과 상징들이 중첩되어 있기에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이를 하나씩 해석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거죠. 누구나 한눈에 다 이해할 수 있는 미술보다는 그리스, 로마 고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유희와 상징으로서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47 바사리 회랑이라고 불리는 건물이지요.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아래쪽 피티 궁전에서 위쪽의 우피치 미술관을 거쳐 팔라초 베키오까지 연결하는 회랑입니다.

p452 이제 광장에는 지배자를 미화하는 노골적인 조각상을 세우고, 지배자의 정원 안에는 극소수에게만 허용된 귀족적인 취향을 반영한 미술품을 채웁니다.

p456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아 놓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보면 대홍수 이후 황폐해진 땅 위로 던진 돌들이 인간으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을 활용해 이런 신화속 이야기를 실제로 구현한 것으로 보여요

p478 다시 만들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적어도 베네치아 건축의 흐름을 바꾼 것은 사실입니다. 신소비노는 베네치아의 건축을 중세 고딕 양식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전환시킨 거죠

p484 티치아노는 1516년부터 이 제대화를 그려서 캉브레 전쟁이 끝난 1518년에 완성합니다. 하늘로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를 그린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볼 수 있지요

p490 풀밭 위의 콘서트는 인물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어떤 이야기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고 평화롭고 신비한 자연의 분위기라는 정서만 남는 거죠. 이전까지는 특정 인물의 초상화나, 신화 혹은 성경 속 이야기의 한 장면을 그려서 전체 서사를 상상케 하는 그림이 많았기에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그림은 새로운 시도였죠

p493 비너스는 애칭으로 일종의 가림막 같은 표현입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그 당시 성적으로 분방한 베네치아 상류층의 문화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누드화의 전형이 된 작품이에요. 여기에 비너스라는 이름을 추가하면서 세속적인 느낌을 신비로움으로 상쇄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p496 티치아노는 이런 베네치아 회화 특유의 빛과 색채의 표현력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으며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추앙받았습니다. 라파엘로처럼 생전에도 사후에도 영광을 누렸죠. 게다가 장수하기까지 했으니 화가로서는 가장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p502 르네상스 시대 군주에게 요구되는 요건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군사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신사의 모습이라는 것을 잘 간파했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연출한 겁니다.

p513 그만큼 종교재판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종의 자유도시였던 베네치아조차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엄격해진 종교미술의 기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던 거죠

p520 당시 베네치아의 미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화가가 베로네세라면 건축에서는 팔라디오를 빼놓을 수 없죠. 그는 방금 보았던 빌라 바르바로 뿐만 아니라 베네토 지역에 대략 22개의 빌라를 설계했습니다.

p526 팔라디오가 남긴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는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입니다.

p531 영국에서 권력을 잡은 휘그당은 바로크 양식이 지나치게 화려하다며 이를 배제하고, 대신 단순하고 합리적인 고전 양식의 팔라디오 건축을 채택합니다.

p534 새로운 건축 양식이 등장해 다른 건축 양식과 경쟁하고, 한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는 데는 단순히 미적인 가치나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작동하지요. 그렇기에 서양미술사에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어떤 양식이 경쟁했고 채택됐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결국에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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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한경arte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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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 나카노 교코

 : 한경arte

읽은기간 : 2023/02/24 -2023/03/04


일본책이 나에게 그리 잘 맞지 않는데 이 책은 좋았다

합스부르크 역사를 그림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물론 너무 간결하다.

대신 그림이 그 빠진 부분을 채워준다. 

의외로 그림이 정말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명화를 이해하고 그 배경을 알 수 있다면 역사를 더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서는 종류가 참 많은데 이런 컨셉도 참 좋은 것 같다. 

브루봉왕가도 나온다고 하니 관심이 간다. 

올해의 책으로 꼽을 수 있는 책이다. 


p15 962년 오토 1세의 대관식으로 시작된 이 제국은 독일국 왕이 자동으로 로마 교회의 승인하에 황제가 되는 구조였으며, 언젠가 전 이탈리아를 영유해 고대 로마제국을 재현하려는 실현 불가능한 꿈 그 자체였다.

p21 루돌프 1세는 이 전투로 보헤미아를 손안에 넣고 곧이어 오스트리아 일대도 자신의 영지로 삼았으며, 스위스 산속에서 오스트리아로 본거지를 옮겼다.

p27 이 용맹무쌍하 ㄴ기사는 독일 최초의 르네상스인이었으며, 인문주의자와 에술가들을 비호하고 스스로도 시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빈 소년합창단의 바탕이 된 궁정 예배당 소년 성가대를 창설한 사람도 막시밀리안 1세였다.

p37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p46 확실히 에스파냐 왕족 역사상 최고의 여주인공을 뽑는다면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후원한 이사벨 여왕보다 아무런 정치적 업적 없이 그저 내부에서 무너져간 후아나 쪽일 것이다.

p53 실권을 쥔 아버지 페르난도는 29세의 후아나를 토르데시야스궁전에 유폐했다. 하기야 정무를 볼 능력이 없는 후아나에게는 그렇게 마음 불편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후아나는 시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채 75세의 장수를 누렸다.

p63 프랑수아는 서명하고 풀려나자마자 그런 조약 따위 지킬 리 있냐며 돌변했고, 교황이 프랑수아를 지지하자 분노한 카를은 로마에 병사를 보낸다. 이것이 악명 높은 로마 약탈이다. 급료를 받지못한 용병들이 사령관의 전사를 계기로 학살, 방화, 강간, 강탈 등 온갖 만행으 ㄹ저지르며 시가지를 파괴하는 바람에 로마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들 정도였다.

p95 엘 그레코는 그 전설을 250년 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안 일어난 기적인 것처럼 그려냈다.

p101 펠리페는 회화를 보는 날카로운 안목으로 유명했고, 오늘날 프라도미술관에 장식된 티니아노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많은 걸작은 그가 정성껏 수집한 것들이다.

p106 펠리페 4세의 가장 큰 공은 아직 햇병아리였던 젊은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실력을 알아보고 궁정화가로 등용해 극진히 대우했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p128 성에 틀어박힌 루돌프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오로지 덕질에만 매진했다. 그래서 루돌프 2세는 오랫동안 무능하기만 한 괴짜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들어 루돌프에 대한 평가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괴이하긴 하지만 그 시대 최고의 지성을 겸비한 교양인이자 학문과 예술의 비호자로 인정받고 있다.

p146 프리드리히 2세는 선전포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3만의 군대를 오스트리아령 슐레지엔으로 보냈다. 근대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범죄라고 단언한 후세의 역사가도 있을 정도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 잔인무도한 짓이었다.

p151 숙적인 두 사람은 성격 면에서는 한쪽은 파격적, 한쪽은 모범적 그 자체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예리한 정치 능력과 냉철한 행동력은 매우 닮았다.

p154 만약 9녀가 젊어서 죽지 않고 순조롭게 나폴리의 왕비가 되었다면 프랑스 왕비는 재능이 가장 뛰어났던 카롤리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앙투아네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작은 나라의 왕비가 되어 의외로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혁명도 어쩌면… 그야말로 덧없는 역사의 만약이다.

p160 그 안도감 때문에 비록 딸의 상대가 될 왕태자가 평범하고 외모도 흐릿하며 도저히 왕의 그릇은 아니라는 정보가 들어와도, 지금껏 책을 한 권도 끝까지 읽어본 적 없고 놀기 좋아하며 생각이 얕은 막내딸이 강대국의 왕비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어도, 모두 사소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p165 총희는 단순한 애첩이 아니라 왕의 여러 상대 중에서 선택받은 단 한명이며, 궁전에서 왕비보다 넓은 거실을 차지하고 특별 행사 때마다 궁정의 화려함을 독점하는 존재였다. 그 대신 정책이 실패하거나 적자가 쌓이면 “총희가 정치에 간섭했기 때문이다”, “총희가 사치를 부렸기 때문이다” 하는 모든 증오를 떠안아야 했다.

p185 가능한 한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합의해 작은 나폴레옹은 합스부르크의 고귀한 죄수로, 다시 말해 거의 감금당하다시피 했다.

p192 오스트리아가 낳은 히틀러라는 이름의 괴물이 독일로 이주해서 그 나라의 총통이 되어 신성로마제국의 제3제국 건설을 외치며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것이다. 그는 이미 프랑스를 지배하에 두었는데, 회유책을 위해 라이히슈타트 공작의 유해를 프랑스로 옮겼다.

p198 프란츠 요제프는 어머니 조피와 돌아온 메테르니히를 정치 고문으로 삼아 신중하고 근면하게 제국을 운영하며 재위 68년이라는 놀라운 장기 정권을 유지했다. 이는 프란츠 요제프였기에 가능했던 일로,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잘되지 않았을 것이다.

p202 황비가 된 이상 개인을 죽이고 제국의 안정을 가장 우선하지 않으면 혼돈의 유럽을 넘어설 수 없었다. 조피는 멋부리기와 놀이를 우선하는 며느리에게 자각심을 심어주려고 필사적이었다.

p212 프란츠 요제프는 어려운 정무를 처리할 때마다 어머니 조피에게 의지했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애인이자 여배우인 카타리나 슈라트에게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아왔다. 이 불행한 부부는 부부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45년에 걸쳐 끝끝내 확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p222 나폴레옹 3세의 비정함으로 인해 막시밀리안이 얼마나 대책없는 낙관주의자였는지 까발려졌다. 냉정한 어머니 조피의 의견을 듣지 않고 실현 불가능한 꿈에 빠져든 결과가 이것이었다. 결국 이름뿐인 황제 부부는 궁지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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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 세계사 - 사진으로 시대를 읽는다 온 세상이 교과서 시리즈 8
이성호 외 지음 / 해냄에듀(단행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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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컷 세계사

 : 이성호

 : 해냄에듀

읽은기간 : 2023/02/14 -2023/02/23


이런 특색있는 책이 좋다.

세계사를 사진으로 설명하다니...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과 간결하게 그 시대를 설명하는 이야기라는 컨셉은 초보자나 청소년들에게 많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컷 한국사보다 한 컷 세계사를 먼저 읽었는데 한 컷 한국사도 재미있을 것 같다. 

시간날 때 한 번 씩 넘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확실히 시대가 변해서인지 그림 또는 사진이 들어가야 책이 풍성해지는 것 같다. 


p15 현생 인류는 단 하나의 종 호모 사피엔스만 존재한다.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인류가 멸종하고 하나의 종만 살아남은 것이다. 이는 앞으로의 생존과 진화에서 매우 불리하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진화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별종들을 차별하지 않고 소중히 보듬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p23 길가메시는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돌판에 새기고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사랑하는 것이 행복을 누리는 비결임을 신화는 말하고 있다.

p25 문제는 범람기(8-11월)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점이다. 피라미드 공사는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졌고, 일거리가 없는 농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피라미드 공사는 가혹한 노동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은 돈벌이기도 하였다

p27 예전에는 아리아인의 침입으로 모헨조다로가 멸망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경 파괴에 주목하고 있다. 인구가 늘면서 집을 짓고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벽돌을 구워야 했는데, 땔감을 얻기 위해 인근 숲을 망가뜨리다 보니 홍수나 가뭄에 취약해졌다. 또한 계속되는 하천 제방 공사로 인더스강의 바닥이 올라와 결국 멸망하였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확장과 개발이 결국 모헨조다로를 죽은 자의 언덕으로 만든 셈이다.

p39 완적과 유령은 모두 위진 남북조 시대 죽립칠현에 속한 인물들이다. 대나무 숲에 숨어 상식에서 벗어난 기행을 일삼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술에 귀의하는 삶을 살았던 7명의 현인, 이들을 죽립칠현이라고 부른다.

p41 대운하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베이징은 초원길로, 장안은 비단길로, 항저우는 바닷길로 다시 연결되어, 중국이 동아시아 교역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되도록 도왔다. 대운하는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교역의 중심지를 연결하는 대동맥으로 기능하였던 것이다.

p45 돌궐 장수 톤유쿠크는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기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이처럼 유목 민족에게 이동 생활은 그들의 정체성과도 같았다.

p69 서양의 사정을 알아볼 정보원이 필요하였던 에도 바쿠후는 나가사키 항구에 인공섬을 건설한 후, 네델란드 상관을 지어 이곳에서만 제한적으로 교역하게 하였다. 이 인공섬이 바로 데지마이다.

p85 아바스 왕조는 탈라스 전투에서 이겨 당의 서진을 저지하고 동서 교역의 중계자 위치를 지켜냈지만, 우마이야 왕조처럼 이슬람 세계 전체를 하나로 다스리지는 못하였다. 우마이야 왕조의 후손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왕조를 재건하여 자신이 진짜 킬리프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p87 넓어진 이슬람 제국 곳곳의 무슬림들이 메카로 오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요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막이나 초원 지대에서 방향과 시간을 알려면 하늘의 별을 봐야 했다. 이에 따라 지리학과 천문학이 자연스레 발달하였다.

p89 이들은 막강한 전투력으로 망치라는 별명을 얻었던 프랑크 왕국의 카룰로스 마르텔에게 크게 패하였다. 카롤루스 마르테른 이슬람 군대를 저지한 공으로 크리스트교 세계의 구원자가 되었고, 그 명성은 아들 피핀 3세, 손자 카롤루스 대제에게까지 이어졌다.

p105 힌두교에서는 수많은 신을 섬기지만, 그중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를 가장 중시한다. 특히 비슈누는 세상의 질서가 무너질 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세상을 유지하는데, 힌두교는 석가모니도 비슈누의 여러 모습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p109 무굴 제국의 포용성은 아버지 샤자한을 쫓아내고 황제가 된 아우랑제브 때 사라졌다. 그는 정복전쟁으로 무굴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지만, 인두세를 부활하고 개종을 강요하였다. 이런 억압 정책은 그의 사후 무굴 제국이 분열하는 계기가 되었다.

p123 로마인들은 길은 직선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산에 터널을 뚫기도 하고, 골짜기에 높은 다리를 놓기도 하였다. 도로 양옆으로 배수로를 만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과실수를 심어 그늘과 비상식량까지 마련하였다. 로마인이 만든 도로의 길이는 3세기말까지 약 80,000km에 이르렀다.

p127 황후의 확고한 태도에 정신을 차린 유스티니아누스는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였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가 되찾았던 옛 로마 제국의 영광은 그의 죽음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탈리아는 다시 이민족의 손에 넘어갔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영토를 빼앗았다.

p129 800년 12월 25일,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서 교황 레오 3세는 카롤루스의 머리 위에 서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 주었다. 오래전 사라진 서로마 황제가 다시 탄생한 순간이었다.

p139 위기에서 벗어나자 샤를 7세는 생각을 바꾸었다. 잔 다르크가 수도 파리를 되찾기 위해 전투에 나섰을 때, 샤를 7세는 오히려 공격을 중단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였다. 아무런 도움 없이 전투에 나선 잔 다르크는 포로로 잡혀 영국에 넘겨졌지만,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구하지 않았다.

p149 위그노가 왕이 될 수는 없다며 카톨릭 측이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앙리가 카톨릭으로 개종하겠다고 발표하자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나바르의 앙리는 앙리 4세로 즉위하였다. 앙리 4세는 1598년 낭트 칙령을 발표해 위그노에게 예배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p155 이 선언의 배경에는 1791년 국민 의회가 새롭게 만든 헌법이 있었다. 새 헌법은 여성의 권리를 매우 제한하였다. 특히 가난한 여성의 정치적 권리는 남성 시민과 비교할 수 없이 낮았다. 이러한 불평등에 반발하여 올랭프 드 구주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p165 산업 혁명 이후 등장한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고 나섰고, 1838년에 21세 이상의 모든 남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라는 차티스트 운동을 전개하였다.

p169 미국 국립 공원은 눈물의 길이라는 역사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9개 주에 걸쳐 뻗어 있는 이 길은 고향을 강제로 떠나야 했던 체로키 원주민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p183 이토록 정의롭지 못하며, 수치스러운 전쟁으 ㄴ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말도 나왔지만, 이후 표결에서 아홉 표 차로 에산안이 통과되었고, 영국은 전쟁을 개시하였다.

p189 의화단은 외세 없는 세상을 꿈꿨지만, 도리어 열강의 중국 간섭을 더욱더 심화시켰다. 청 정부 역시 의화단을 통해 서양에 대항하려 하였지만, 열강에게 여러 이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의화단 사건은 10년 후에 일어날 신해혁명을 부채질한 건 아니었을까?

p197 일본에서 근대 일본의 사상적 선구자로 칭송받는 요시다 쇼인은 “일본이 열강에 잃은 것을 마회하려면 훗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차지하고 조선과 만주를 침략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지인에게 보냈다.

p203 인도 북부에 있는 잔시 지역의 영왕 락쉬미바이가 이끄는 저항군의 반영 항쟁은 인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전국 전신망과 앞선 무기를 갖춘 영국군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세포이 항쟁은 2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넘어 여러 계층이 힘을 합해 외세의 지배에 맞선 경험은 이후 인도의 민족 운동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p229 애국심으로 가득한 남성들은 꽃장식을 한 열차에 올라타 줄줄이 전선으로 떠났고, 공장에는 여성들이 투입되어 밤낮으로 무기를 생산하였다. 전례 없이 거대해진 전쟁의 규모와 강도를 지탱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힘을 동원하는 총력전이 펼쳐진 것이다.

p239 평생을 바쳐 장애인, 여성, 노동자 등 소외된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내던 헬렌 켈러는 자국 내의 불평등과 착취 구조에 무관심해 온 미국 정부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전쟁에 가담하려는 진짜 이유를 꿰뚫고 있었다.

p247 1919년 2월 19일, 프랑스 파리의 외곽에 있는 베르샤유 궁전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의 뒤처리를 위한 승전국들의 파리 강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파리의 다른 한편에서는 15개국 57명의 대표가 참여한 가운데 듀 보이스를 의장으로 하는 제1회 범아프리카 의회가 열렸다.

p255 난센은 “난민을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값진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국제 사회를 끊임없이 설득하였다.

p263 나치당원이었던 란트페서는 이 당시 어떻게 전체주의의 최면으로부터 깨어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독일 전체주의에서 극도로 혐오하고 탄압하던 유대인이기 때문이었다.

p265 더 큰 인정을 받고픈 욕망은 어린이들을 독재자의 눈과 귀로 만들었고, 유대인을 숨겨준 자신의 친부모까지 고발하게 하였다. 어른이 되어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었던 어린이들이 역설적이게도, 전체주의 체제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

p267 조선의용대와 타이완 의용대는 활동 지역이 달랐지만, 서로 긴밀하게 교류하는 돈독한 사이였다. 1939년 10월 10일 조선 의용대 창립 1주년 기념식장에 타이완 의용대가 보낸 축하 현수막이 걸렸고, 1940년 3월 1일 조선 의용대의 기념행사에는 리요우팡이 참석하였다. 조선 의용대는 타이완 의용대에게, 3.1 소년단은 타이완 소년단에게 각각 비단으로 만든 깃발 한 폭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p269 저자 프란시스 골튼은 바람직한 혈동이 덜 바람직한 혈통보다 더욱 신속하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도모하는 과학이라는 용어로 우생학을 규정하였다. 골튼은 19세기 말 영국에서 탄생한 이 사이비 과학이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 학살로 이어질 거라 생각하였을까?

p283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이 실요주의 정책으로 인기를 얻자, 마오쩌둥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이 사회주의가 아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격앙된 젊은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때부터 10년간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광풍의 정치 운동이 전개되었다.

p287 1964년 통킹만에서 미국 전함이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았다는 구실로 미국의 군사 개입이 본격화되었다. 미국은 이 전쟁에 50여만 명을 파병하였고, 무기와 물자에서 북베트남을 압도하였다. 한국도 미국을 도와 32만 명을 파병하였다.

p289 68운동은 젊은이들이 기성 권위에 저항하며 공동체 정신을 강조한 운동이었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 흑인, 제3 세계 민중이 점차 전면에 드러났고, 이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가 68 운동의 기본 정신이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과 인종 차별, 성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구호에서 드러나듯이 부모 세대가 하지 말라고 한 것들에 대한 저항도 활발하였다.

p291 1963년 8월 28일, 20만 명이 넘는 흑인들이 인종 차별 철폐를 외치며 워싱턴까지 행진하였다. 이날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내 아이들 네 명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이라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1968년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살당하였다.

p295 회의 마지막 날 참석자들은 지구는 하나라는 제목으로 인간 환경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이후 제1차 유엔 인간 환경회의가 열린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로 지정되었다.

p299 사고가 일어날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 30km 이내는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고, 수십만 명의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p299 201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악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체르노빌에서는 모든 것 후의 삶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없는 물건, 사람 없는 풍경… 목적지 없는 길, 목적지 없는 전선… 또 생각해보면 이것은 과거일까, 미래일까?”라는 독백 인터뷰를 하였다.

p307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여러 가지 규제를 없애는 것을 지향하였다. 또한 사회 복지 예산을 줄이고, 수도, 전기, 가스 등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기관들을 민영화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자본, 노동 등이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이동하였다.

p313 매주 금요일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남녀노소가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2018년 8월 매주 금요일에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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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 그림의 침묵을 깨우는 인문학자의 미술독법, 개정증보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안현배 지음 / 어바웃어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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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 안현배

 : 어바운어북

읽은기간 : 2023/02/05 -2023/02/10


특별한 책은 아니다. 

미술관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다. 아는 작품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쉽고 재미있다. 

초보자인 나의 눈높이에 맞는다. 

이런 책들을 들고 다니면서 작품을 보면 감상이 훨씬 풍부해질 것 같다.

책은 새로운 걸 알려주거나, 재미있으면 된다.. 


p25 이탈리아가 나폴레옹에게 정복됐을 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프랑스정부를 위해서 조각을 해야 했던 카노바는, 그의 재능에 감탄해서 파리로 옮겨오라는 나폴레옹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카노바는 “나를 가르친 모든 것은 이탈리아에 있다”며, 죽을때까지 고국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p37 예술적 재능이 차고 넘칠 만큼 풍요로웠던 비제-르 브룅이 음지에서 더 이상 불행을 겪지 않도록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녀의 뒤에서 평화롭고 안정적인 곳으로 이끌어주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p102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피렌체와 양대 산맥을 이뤘던 곳이 바로 베네치아입니다. 이 두 도시는 마치 라이벌 같은 경쟁 관계에 있었어요. 피렌체가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3대 천재 예술가를 배출했다면, 티치아노, 틴토레토, 그리고 베로네제가 베네치아 출신이었습니다.

p122 들라크루아는 역사가와 증인들이 전한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하려 애썼다. 오스만 튀르크 병사에 의해 납치되는 젊은 여인과 이미 죽은 어미의 젖을 빠는 아기의 모습, 그 밖에도 망연자실한 인물들은 당시 유럽 언론에 전해져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키오스 섬 참상의 일부분이다.

p127 제리코는 세상의 불의에 맞서 화가가 해야 할 일은 역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메두사 호의 뗏목은 화가 제리코가, 비열한 정부에 보낸 경고의 그림입니다.

p130 세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리처도 3세에서 영국 왕실의 역사 중 가장 참혹한 에피소드 가운데 한 장면을 사람들에게 환기시켰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죽은 뒤 그의 두 아들이 런던탑에 갇혀 있다가 삼촌인 라처드 3세의 명령으로 목이 졸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p168 하드리아누스의 흉상은 로마풍의 조각에서 조금 벗어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를 닮고 싶은 하드리아누스 본인의 욕망이 작품에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p181 고대 로마제국 시대 이후 수백 년이 흘러 또 다른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19세기경, 유럽인들은 식민지 문화재의 도굴과 약탈을 일삼았는데, 그때 유럽 여인도 처음 발굴됩니다.

p184 1830년 7월 2일 당시 프랑스의 왕 샤를 10세는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명령을 발표한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혼란을 막겠다고 내린 이 결정은,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계속되는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p200 신화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장치를 장식화하는 데 능했던 루벤스에게 이런 장면을 꾸미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림 속에 천사를 등장시켜 여왕의 대관식을 더욱 화려하게 묘사합니다.

p204 이 그림의 제목 오달리스크는 정확한 고증 없이 그저 자기들이 사는 곳보다 동쪽이면 오린엔탈하다는 형용사를 붙이던 당시, 아랍 세계의 문화는 상당히 관능적이고, 더 나아가 퇴폐적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던 사회 분위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p233 아마도 에바 프리마 판도라는 프랑스 미술에서 최초의 누드화로 추정된다. 길게 누운 육체에서 우리는 차갑고 창백한 피부색을 마주하게 된다. 성경의 이브를 그리면서 동시에 판도라라는 장치를 넣은 것은, 그림 속 여인이 세상의 모든 악을 상징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p271 보티첼리의 미인을 그려내는 솜씨는 이미 비너스의 탄생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바르디니가 빌라 레미의 벽에서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보티첼리의 작품임을 확신했던 건 바로 이 여신들 때문 아니었을까요?

p295 들라크루아와 쇼팽은 미술과 음악에서 낭만주의 정신을 게승한 대표적인 에술가로 꼽힙니다. 낭만주의는 말 그대로 인간의 감성과 무한한 상상력을 강조하는 문예사조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유럽 문화를 지배합니다.

p300 아르침볼도의 봄에는 기괴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뭔가가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이 그림에 보낸 오마주가 이를 방증한다.

p307 바로크 미술의 거장 카라바조에게서 드러나는 격렬한 명암 대비와 빛을 사용한 무대장치 같은 화면연출은, 시몽 부에를 포함해 동시대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프랑스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기법이었습니다.

p314 야사에 따르면, 이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의 모델은 그 당시 라파엘로가 짝사랑하던 아름다운 정원사 아가씨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 그림이 종종 아름다운 정원사라고 불리는 것이다

p328 루브르의 네델란드관 한쪽 벽에 걸린 이 그림은 말 그대로 파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상화 위주로 전시된 이 방에 느닷없이 도살된 소를 그린 그림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네델란드 대표화가 렘브란트 작품입니다.

p334 플랑드르 화가들의 그림을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이 지역의 산업적 특성이 배어있습니다. 이를테면, 이곳에서 발달한 정밀한 세공업과 직조업처럼 그림도 매우 섬세하고 정확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마치 실을 짜고 장식을 하듯 화면에 작은 여백까지도 놔두지 않고 채워넣었습니다.

p361 루브르의 설명대로 그림 속 카스틸리오네의 표정과 눈빛, 얼굴의 각도 등에서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라파엘로는 모나리자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살펴 자신의 작품에 벤치마킹했습니다.

p380 왕족이나 귀족의 초상화에는 옷차림이나 소품에서 허세가 담기기 마련입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화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당시 화려했던 로코코 미술은 그런 풍조를 반영합니다. 모리스는 가진 자들의 허세를 그리는 게 싫었던 모양입니다.

p412 프랑스 고전파와 낭만파 화가들이 그린 대형 회화 작품들은 루브르가 자랑하는 컬렉션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목록으로 꼽힙니다. 다비드, 앵그르, 들라크루아, 제리코 등의 작품이 루브르의 넓고 화려한 방을 차지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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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필요한 시간 - 빅뱅에서 다중우주로 가는 초광속 · 초밀착 길 안내서
궤도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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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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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3/01/31 -2023/02/08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많이 어렵지 않고 교약을 쌓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과학분야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어려운 내용이 점점 많아지는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라 좋았다.

어렵긴 하지만 새로운 과학적 연구가 나올수록 세상은 더 발전하는 것 같다.

과거에 함몰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열심을 다하자..


p28 창의성은 기억에서 온다. 이 논문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세계 10대 과학 성과로 선정되었고, 훗날 수십만 장의 기보를 집어넣은 알파고는 저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우 창의적인 수를 두게 되었다

p30 우리가 인공지능의 승리를 습관적으로 경험하다가 어느새 과정에 대한 이해없이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된다면, 아주 작은 프로그램 오류에서 시작된 부당한 지시마저 곧이곧대로 수행할지도 모른다. 핵미사일을 도심 한복판에 떨어뜨리는 일이라도 말이다.

p43 앨런 튜링은 24시간마다 바뀌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를 풀어내 조국을 지켜냈고, 무려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전쟁과 무관해 보이기만 했던 한 수학자의 피나는 노력이 연합군에게 소중한 승리를 선사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튜링의 암호 해독 시스템은 한동안 완벽히 기밀로 유지되었지만, 튜링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는 현대 컴퓨터 과학의 시초로 자리를 잡았다

p49 지금의 컴퓨터는 0과 1로 계산하고 있지만,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정보의 상태는 0과 1, 오직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0이면서도 동시에 1인 중첩 상태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양자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가 탄생했다

p58 특수 상대성이론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이며, 일반 상대성이론은 중력의 크기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p66 뇌의 기능과 관련해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는 상태를 가장 포괄적으로 일컫는 개념이 치매이며, 뇌세포가 퇴화하는 알츠하이머병은 그중 하나인 가장 흔한 형태의 치매라고 볼 수 있다

p66 퇴화하는 알츠하이머병은 그중 하나인 가장 흔한 형태의 치매라고 볼 수 있다

p68 시냅스가 복잡하게 연결될수록 기억이 단단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수녀들의 시냅스는 정말 무시무시하게 복잡한 연결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녀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며 뇌를 관리해 왔다. 기억을 하나의 시냅스에만 저장하지 않고 새로운 시냅스를 계속 연결해 가며, 알츠하이머병으로 일부 연결이 끊어져도 나머지 시냅스로 마치 벤치의 후보선수들처럼 뛰쳐나가 그 자리를 채워준 것이다.

p76 인과관계를 찾아내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는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고 조합하는 전전두엽이 꿈을 꾸는 도중에는 거의 작동하지 않기에 발생한다. 그런데도 아세틸콜린의 연상 작용으로 뒤죽박죽 떠오른 장면들이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면서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깨고 나면 도대체 이게 무슨 개꿈인지 정신이 없지만, 깨기 직전까지도 꿈속에서는 그럴듯하다고 여기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85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은 우리의 뇌가 위급한 순간에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신묘한 방안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장한 모든 경험을 하나씩 꺼내 살펴봐야 한다

p98 개미지옥이 되어버린다.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는 어쩌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 될지도 모르는 우주 구성의 근본적인 발견을 덤덤한 어조로 풀어냈다.

p132 19세기 뉴턴이라 불리던 영국의 과학자 맥스웰은 당시 별개로 나누어져 있던 전기와 자기를 하나로 통합해 설명할 수 있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이게 바로 전자기파를 다루는 맥스웰 방정식이다

p134 누가 어디서 관측하든, 빛은 늘 일정한 속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으로 바뀌는 것이 바로 상대성이론이다

p137 멈추어 있는 소년이 보는 빛은 소녀와 함께 달리고 있기 때문에 더 긴 거리를 이동하게 된다. 빛이 이동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속력이 나오는데, 빛의 속력은 일정하니 소년이 잰 시간은 소녀보다 길어지게 된다.

p140 카르노가 증명한 건, 열이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할 때 일을 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반드시 외력이 작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열역학 제2법칙의 위대한 발견이었다.

p142 주어진 공간 안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가 작다면 엔트로피가 낮다고 표현하며, 반대일 경우 엔트로피가 크다고 한다

p151 책이든 신발이든, 일단 블랙홀로 들어갔다가 나오면 정보를 잃는다. 블랙홀은 무한한 우주의 역사에서 어느 순간 완전히 증발해 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블랙홀은 양자 정보를 빨아먹고, 호킹 복사를 통해 정보를 상실한 녀석들을 꾸준히 토해내다가 유유히 퇴장한다. 정보를 지워버리는 구간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주는 전부 정보를 통해 기술되기 때문에 정보는 곧 우주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되면 우리가 아는 우주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p157 축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 올리버 칸보다 훌륭한 수문장인 전자가 원자 주위를 철통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부딪히는 모든 것을 특유의 반발력으로 튕겨낸다. 어떤 것도 전자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내부가 비었다는 사실을 결코 인지할 수 없다

p158 보지 않으면 파동이지만, 보는 순간 입자가 된다. 본다는 것은 결국 광자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부딪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관측 또는 측정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관측이라는 행위, 상호작용이 양자 세게에서는 너무나 강한 충격이라, 전자는 파동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입자로 붕괴되어 버린다.

p167 배심원들이 집중해서 보고 있는 마지막 순간에 프리네의 옷을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벗겨버린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녀의 알몸이 드러나자 순식간에 장내의 모든 이들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히페리데스는 조용히 한마디 거들었다. “이로록 아름다운 여인을 누가 벌한단 말인가?” 마침내 그녀는 오직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로 무죄가 된다. 측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로 받아들여야만 하며, 완벽한 그녀 앞에서 고작 인간이 만들어 낸 법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 특별한 광경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은 것이 장 레옹 제롬의 그림이다.

p172 모두지 믿기 힘들었던 양자역학 역시,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해석을 반증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실험을 통해 이런 반증 아이디어가 틀렸다는 게 확인되면서 과학 이론으로 정립된 것이다

p177 디오판토스는 숫자 대신 문자를 써서 방정식을 게산하는 대수학에 몰두했다. 훗날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힌다. “신의 축복으로 태어난 그는 인생의 6분의 1을 소년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인생의 12분의 1이 지난 뒤에는 얼굴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했고, 다시 7분의 1이 지난뒤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했다. 결혼 후 5년 만에 귀한 아들을 얻었지만, 가엾은 아들은 아버지 수명의 반밖에 살지 못했다. 깊은 슬픔에 빠진 그는 그로부터 4년간 정수론에 몰입했다가 일생을 마쳤다.

p183 와일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이후 새 문제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밀레니엄 7대 난제로, 수학자들은 유일하게 증명된 푸앵카레 정리를 제외한 나머지 6개의 난제에 여전히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하고 있다

p190 자연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점을 잇는 길이가 최소인 선이며, 진공 속의 빛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완벽한 직선을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곡률을 구할 때, 우주배경복사라는 빛을 이용하며, 쉽지 않은 차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멈추지 않고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다

p194 그 추측이 담긴 수식을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명확하게 끊어지는 부분이 없이 하나로 연결된, 닫혀 있고 무한하게 뻗어나가지 않는 세상의 다양한 형태는 당구공과 위상동형이다. 역시 어렵다

p196 우리는 이 어려운 난제의 증명이 끝나버린 것에 낙담했다. 그리고 위상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증면한 것에 낙담했다. 심지어 처음에는 증명 내용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것에도 낙담했다

p200 과학자가 자연을 연구하는 이유는 쓸모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이다. 만약 자연이 연구할 가치가 없다면, 우리의 인생 또한 살 가치가 없을 것이다

p205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굴암 내부에는 본존불상을 둘러싼 돔 형태의 천장이 있는데, 동심원을 그리며 서로 맞물려 쌓인 돌들의 간격은 놀라울 정도로 오차없이 일정하다. 원주율로 원의 둘레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p217 과학에서 유일한 실패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상태이며, 혹시라도 실패한 과학자들이라고 불릴 만한 역사의 영웅들조차 새로운 통로를 열기 위해 힘차게 벽을 두드렸던 개척자들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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