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역사 - 신의 탄생과 정신의 모험
카렌 암스트롱 지음, 배국원 외 옮김 / 교양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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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역사

 : 카렌 암스트롱

 : 교양인

읽은기간 : 2023/11/23 -2023/12/28


신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역사에서 신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유명한 책이라고 하더니 꼼꼼하게 역사를 추적해가며 썼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책이 쓰여 있어서 종교인이 읽으면 좀 반감이 갈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시대별로 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알기에 이만한 책이 없을 것 같다. 

작가의 믿음과 신념의 결정체인 책을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여러번 읽으면서 공부해야 할 책이다. 


p47 성서는 우리가 고대 이스라엘 민족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모세의 신 야훼에 대한 충성심으로 결속한 여러 다양한 종족 집단의 연합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p67 서는 이스라엘인들이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전시, 즉 야훼의 능숙한 군사적 보호가 필요한 때에는 계약을 기억했으나 평시에는 옛 관습을 좇아 바알, 아나트, 아세라를 숭배했다.

p74 우리가 흔히 힌두교라고 부르는 종교는 체계를 피하는 데다 한 가지 해석만 적절하다는 배타적 입장을 거부하기에 일반화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파니샤드는 신을 초월하지만 만물 안에 밀접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독특한 신성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p77 신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은 부정되기보다 초월된다. 브라흐만이나 아트만의 경험은 음악이나 시의 경우처럼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예술작품은 창작하고 감상하는 데 지성을 필요로 하지만 순전히 논리적 능력이나 두뇌의 기능을 넘어서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신의 역사에 변함없는 주제가 될 것이다.

p97 예언자는 주로 신의 임재를 대신하는 사람이지만 이 초월적 경험은 불교에서처럼 앎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진다. 예언자는 신비로운 깨달음이 아니라 복종으로 특징지어질 것이었다.

p104 그 계약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며, 따라서 모두가 온당하게 취급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신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해 역사에 개입한 것이었다.

p128 야훼는 유일신이 되었다. 그의 주장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늘 그렇듯 새로운 신학이 성공하는 이유는 합리적으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절망에 빠지는 것을 막고 희망을 고취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p139 한 유대인이 지혜서를 써서 동료 유대인들에게 주변의 유혹적인 그리스 문화에 저항하고 그들의 전통에 충실하라고 경고했다. 참된 지혜를 구성하는 것은 그리스 철학이 아니라 야훼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p147 탄나임은 구전 율법-모세의 율법을 시대에 맞춰 새롭게 해석해 온 것이다-을 성문화한 미슈나를 편찬했다. 이후 아모라임으로 불린 학자들이 미슈나에 주석을 달기 시작ㅎㅆ고, 이를 집대성해 탈무드를 만들었다.

p154 랍비들은 신은 인간이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인간의 육체는 신의 모습이기 때문에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했다. 신이 인간의 기쁨을 위해 선물한 술이나 성관계 등 즐거움을 기피하는 것은 죄가 될 수도 있었다.

p180 로마인의 에토스는 보수적이어서 가부장제 전통과 고대 관습의 권위를 존중했다. 진보란 옛 황금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지, 미래를 향해 겁 없이 행진하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

p215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을 지지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압력 덕분에 공의회 참석 덕분에 공의회 참석자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고, 니케아 신조가 그의 신학적 입장에 근거해 작성되고 공표되었다.

p225 성부, 성자, 성령은 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에네르게이아)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쓰는 용어”일 뿐이다. 하지만 성자, 성부, 성령이라는 용어는 불가해한 실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 옮겨준다는 점에서 상징으로서 가치가 있었다. 인간은 신을 초월자(접근할 수 없는 빛 속에 숨은 성부), 창조자(로고스), 내재자(성령)로 경험해 왔다

p227 그리스 정교도와 러시아 정교드들은 삼위일체를 관조를 통한 종교적 영감의 경험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많은 서방 기독교인은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파도키아 신학자들이 삼위일체의 케리그마적 속성이라고 부른 것만을 고려했기 때문일 수 있다.

p238 아우구스티누스는 서구인들에게 곤혹스러운 유산을 남겼다. 인간성의 만성적 결함을 가르치는 종교는 사람들을 자기 소외에 빠뜨릴 수 있다. 그의 원죄론에서 비롯된 인간 소외는 섹슈얼리티의 폄하, 특히 여성에 대한 폄하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본래 기독교는 여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종교였으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부터 서구 문화에 여성혐오의 경향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p266 아랍어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는 서구인에게 쿠란은 반복적이고 지루해 보인다. 쿠란은 같은 주제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 같다. 그러나 쿠란은 개인이 정독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서 암송을 위한 것이다.

p271 쿠란은 신의 징표와 메시지를 해독하는 지성이 필요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무슬림은 이성을 버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주의 깊게 그리고 호기심을 푸고 바라봐야 한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훗날 무슬림은 자연과학의 건강한 전통을 세울 수 있엇고, 기독교와 달리 자연과학이 종교를 위협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p289 무슬림은 이슬람 시대의 시작을 무함마드가 탄생한 해나 그가 계시-결국 새로운 것은 없었다-를 처음 받은 해가 아니라 이슬람을 정치적 현실로 만듦으로써 신의 계획을 역사에 구현하기 시작한 히즈라의 해로 본다.

p295 기독교인이 무슬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이상하게 여긴다면, 난해한 신학적 논쟁에 대한 자신들의 열정이 유대인이나 무슬림에게 똑같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p302 우리가 신을 이해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신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인간의 투영일 뿐이다. 신은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초월하며 인간의 기준과 기대에 얽매이지 않는다.

p325 그리스 정교도에게 타보르산의 그리스도가 신화된 인간을 나타낸 것처럼, 붓다가 모든 인류가 이룰 수 있는 깨달음을 구현한 것처럼, 이맘의 인간 본성도 그가 신을 완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변모되었다.

p343 어떤 사람들은 이성보다 더 높은 힘을 지니는데, 알-가잘리는 이를 예언자적 정신이라고 불렀다.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예언자적 정신이 존재함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p363 안셀무스는 언젠가 신조가 이해되기를 바라며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사실 이렇게 번역되어야 한다 “이해할 수 있기 위해 나 자신을 헌신한다”

p368 그러므로 인간이 신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신이 인간 이해의 영역을 초월함을 깨닫고 인간이 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의 마지막 문장을 구술할 때 갑자기 탄식하며 머리를 양손으로 감쌌다는 이야기가 있다. 필경사가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본 것에 비하면 자신이 쓴 모든 것이 지푸라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p401 이 글은 라비아의 유명한 기도문과 유사했다. “오 신이시여, 만일 제가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신을 섬긴다면 차라리 저를 지옥 불에 태워 없애소서. 만일 제가 낙원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당신을 섬긴다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소서. 그러나 만일 제가 오직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을 섬긴다면 당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의 은총을 제게서 거두어 마소서”

p411 신비주의는 유일신 종교에 더 고요한 영성을 도입하고 있었다. 외부의 실제와 충돌하는 대신 신비주의자 내면에서 빛이 나왔다. 사실의 전달은 없었다. 그보다 인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순수한 이미지의 세계’인 알람 알-미탈을 도입함으로써 사람들이 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p417 이븐 알-아라비도 수피즘을 신봉하는 이슬람 신비주의자들과 유사하게 인간의 상상력에 중심을 둔 고도의 개인적 영성 수행에서 출발해 초인격적 신 이해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는 신 이해와 관련해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p452 에스파탸 무슬림은 오랜 세월 유랑 생활을 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몰락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유대인에게 닥친 가장 큰 재앙으로 여기며 슬퍼했다. 에스파냐 유대인의 추방 경험은 그 어느 때보다 유대 종교의식에 깊이 자리 잡았고, 새로운 형태의 카발라와 새로운 신 개념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p455 15세기와 16세기에 세 개의 새로운 무슬림 제국이 창건되었다. 소아시아와 동유럽의 오스만 튀르크, 이란의 사파비, 인도의 무굴. 이러한 새로운 모험은 이슬람 정신이 결코 죽어 간 것이 아니라 재앙과 붕괴 이후에도 무슬림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었음을 보여준다.

p460 아크바르는 자신이 만든 수피 교단인 신성한 유일신교에 헌신했는데, 올바르게 인도된 종교라면 어느 종교에서든 유일신이 자신을 드러낸다는 신념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p478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교서를 내렸다. 이는 16세기와 17세기 유럽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마녀사냥 광풍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공동체를 똑같이 괴롭힌 마녀사냥은 서구 영성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냈다. 이 끔찍한 박해 속에서 수천 명의 남성과 여성이 놀라운 죄를 자백할 때까지 잔혹하게 고문받았다.

p491 성서를 상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그 신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해진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말 그대로 책임이 있는 신을 상상하는 것은 모순을 초래한다. 성서의 신은 초월적 실재의 상징이 되기를 멈추고 잔혹하고 독재적인 폭군이 된다. 에정설은 그러한 인격화된 신의 한계를 드러낸다

p497 16세기와 17세기에 무신론자라는 말은 논박을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무정부주의자나 공산주의자로 부른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어떤 적이든 무신론자로 부르는 것이 가능했다

p500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카톨릭 교회가 지동설을 비난한 것은 창조자 신에 대한 믿음을 위협해서가 아니라 성서에 나오는 신의 말씀과 모순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p514 본질적으로 비주의적인 이 체험은 파스칼의 신이 이 장에서 고찰한 다른 과학자나 철학자의 신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신은 철학자의 신이 아니라 계시의 신이었다.

p517 기독교인은 삶의 무의미와 절망에 직면하여 신앙을 키우고 신에 관한 감각을 쌓음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할 것이다. 파스칼에게 신은 살아 움직이는 실체였으며, 신앙은 지적 확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막연한 어둠의 심연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 있는 결단이자 윤리 의식을 일깨우는 체험이었다.

p536 스피노자는 유럽의 어떤 종교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서구에서 하나의 추세가 될 자율적이고 비종교적인 이념의 원형이었다. 20세기 초 많은 사람들이 스피노자를 근대성의 영웅으로 존경했는데 그의 상징적 추방과 소외, 비종교적인 구원을 위한 탐색에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p544 웨슬리가 전한 신앙은 거듭남의 체험이 핵심이었다. 그는 이 체험을 끊임없이 인간 영혼 속에 살아 숨 쉬는 신을 경험하는 것이며, 넘치는 감사의 마음으로 신을 사랑하고 온유와 인내의 마음으로 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p550 조지 폭스는 퀘이커교도에게 침묵 속에서 신을 기다릴 것을 가르쳤는데, 그것은 동방 정교회의 헤시카즘 또는 중세 철학자의 부정의 길을 연상시켰다. 삼위일체 신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무너지고 있었다.

p587 내가 비록 무신론자들과 잘 지내지만, 나는 신을 믿습니다. 독미나리를 파슬리로 착각하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신을 믿거나 안 믿거나 하는 문제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디드로는 본질적인 문제를 매우 정확히 짚었다. 신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 속에서만 존재한다.

p592 디드로, 돌바크, 라플라스는 그러한 시도로부터 고개를 돌렸고,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저편 어딘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다른 과학자들과 철학가들이 의기양양하게 신의 죽음을 선언하게 된다.

p608 서방 기독교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인간의 죄와 악, 투쟁과 고통을 강조했는데, 이런 경향은 가령 동방 정교회 신학에서는 낯선 것이었다. 좀 더 낙관적인 인간관을 지녔던 포이어바흐와 오귀스트 콩트 같은 철학자들이 과거 기독교인들에게서 자신감을 빼앗아 갔던 이 같은 신을 제거하고 싶어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p613 아들러에게 신은 (인간이 추구하는) 탁월성을 보여주는 훌륭하고 효과적인 상징이었다. 카를 융의 신은 각 개인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심리적 진실이었다는 점에서 신비주의자의 신과 닮았다

p620 프로이트는 현명하게도 어떤 식으로든 종교를 강제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섹슈얼리티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의 욕구에 해당한다. 종교에 대한 억압은 극심한 성적 억압 못지않게 폭발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p645 미국의 종교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역사 해석에 대한 지적은 매우 의미심장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당대와 비교할 때 흔히 이중 기준을 지니게 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역사적 과정을 이해할 때, 과거는 철저히 상대화해 분석하지만 현재 상황은 절대화해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고는 한다.

p659 순례자는 카바에 도착해 신전이 비어 있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다 “이곳은 너의 종착지가 아니다. 카바는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다” 카바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었으며 신에 대한 모든 인간적 표현을 초월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p674 신비주의자들은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객관적 사실로 보는 대신 존재의 바탕에서 신비롭게 경험되는 주관적 체험이라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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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역사를 품은 여행 - 경주 문화유적 답사 기행의 길잡이
심상섭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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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경주, 역사를 품은 여행

 : 심상섭

 : 책과나무

읽은기간 : 2023/12/20 -2023/12/23


경주는 여러번 갔었는데 남산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이 책의 글과 사진을 보니 후회됐다.

경주 남산을 가지 않으면 경주를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면 안될 것 같다.

사진찍기 좋은 시간대도 알려주고, 또 경주에서 왜 이런 유적이 의미있는지도 배웠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나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돌아다녀야겠다. 

대충 아는 건 좀 있는데 제대로 아는것, 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모른다..

반성한다. 

내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p5 삼국유사에는 경주 남산을 두고 사사성장 탑탑안행이라고 표현했는데, ‘절 집의 불빛은 별빛처럼 빛나고, 탑들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서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찰과 탑이 많다는 이야기다

p22 아들 출산과 관련해서 이 불상의 뒷면에도 비밀이 숨어 있다. 이 불상은 뒤에서 보면 남근석을 연상케 한다. 우리 옛 여인들은 아들 낳기를 소원하면서 남근석에서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불상은 아들 출산을 도와주는 부처인 안산불이라고도 한다.

p37 저녁이 되면 이요당과 못가에 조명이 들어온다. 이때 연못에 비친 이요당의 반영은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그래서 요즘은 야경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p44 경주 남산에는 147곳의 절터에 불상 129구, 석탑 99기, 석등 22기 등 무수히 많은 유물들이 산재해 있다. 그중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국보 1점과 보물 16점 그리고 사적 15개소가 있다. 남산에 있는 수많은 문화재 중에서 유일한 국보가 바로 칠불암 마애불상군이다.

p54 사실 이 보살상은 수십 길 낭떠러지 위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져 있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발아래의 구름무늬와 잘 어우러져 마치 보살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p56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에는 일출 때 사진 촬영을 많이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일출 사진뿐만 아니라 색다른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겨울철 오후에 해가 넘어가면 보살상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그때 보살상에 부분적으로 빛이 들어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p75 문무왕때 선덕여왕릉 아래에 사천왕사가 건립되면서 그 예언이 맞아떨어졌다. 불교에서 사천왕이 다스리는 사천왕천 위가 도리천이기 때문이다.

p85 결국 이런 경쟁이 두 가문 사이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자, 1730년 경주부윤이었던 김시형이 나서서 박씨 가문과 타협하게 되었다. 그 결과 경주 남산에 있는 왕릉급 무덤 중에서 동남산 지역은 모두 김씨 왕릉으로, 오릉과 서남산 지역은 박씨 왕릉으로 비정하게 되었다.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편의적으로 무덤의 주인을 지정한 셈이다. 이처럼 확실한 근거없이 주변 상황과 비교해서 지정하는 것을 비정이라고 한다.

p97 석가모니불은 현생의 중생들을 고통 속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님이며, 아미타불은 중생이 죽었을 때 극락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이시다. 따라서 선각육존불은 현생과 내세가 연결되고 있음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p110 금오신화는 주로 남녀 ㄴ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단편소설을 묶은 일종의 소설집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으로 5편이지만, 처음에는 이보다 더 많은 소설이 실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p123 사실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큰바위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큰 바위가 숭배의 대상이었던 상태에서 마애불이 새겨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처를 새겨 놓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바위 속에 있던 부처를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고 찾아낸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p135 왕은 살짝 비꼬듯이 “스님은 어디 가서 왕과 같이 제사를 지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폐하도 다른 사람에게 진신석가를 봤다고 말하지 마시오” 하면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때 12살 어린 효소왕이 깜짝 놀라 신하들을 시켜 스님을 찾아가게 했다. 스님이 사라진 곳으로 따라가 보니, 비파바위 위에 지팡이와 발우만 놓고 바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p146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온화하면서도 부드럽고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아름다움 때문에 신라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손꼽힌다. 중앙의 본존불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손 모양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또 발은 귀엽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p194 진평왕은 재위 기간이 54년으로 신라 왕 중에서 박혁거세 다음으로 왕위에 오래 머물렀던 왕이다. 진평왕의 큰 딸은 선덕여왕이며, 둘째 달 천명공주는 무열왕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셋째 딸은 백제 무왕과 결혼한 선화공주이다.

p200 이 탑은 국보로 지정될 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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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H. 로렌스 유럽사 이야기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채희석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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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사 이야기

 : D.H 로렌스

 : 페이퍼로드

읽은기간 : 2023/09/03 -2023/12/14


통속소설을 쓰던 양반이 이렇게 멋지게 유럽사 이야기를 쓴다는게 좀 신기하다.

유럽사의 통사로 읽는 재미가 있다. 

20세기에 살던 영국의 글쟁이는 자신들 유럽의 역사를 어떻게 보는지 알수 있다. 곰브리치 세계사와는 또 다른 읽는 맛이 느껴진다. 

역시 역사책은 여러 버전을 읽어봐야 한다. 내용이 방대하고 책도 길어서 휴가때 여유있게 몰입해서 읽으면 더 나을 것 같은 책이다.


p10 우리는 사실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능력, 즉 사실에 순서와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으로서의 역사적 능력을 너무 확신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작업은 역사-과학일 수도 있는-의 잡일에 불과하다. 진정한 역사는 참된 예술, 다시 말해 허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 진실된 예술이다.

p32 수석 아우구스투스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소아시아와 이집트, 그리스 및 지금은 터키로 알려진 지역을 맡았다. 터키는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역사가 오래된 곳이었다. 막시미아누스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통치했으며, 갈레리우스는 다뉴브 강의 방어와 발칸 반도 통치를 맡았다. 또 콘스탄티우스는 갈리아와 스페인, 영국을 관장하면서 동시에 라인 강과 스코틀랜드 장성 방위를 책임졌다.

p55 로마의 시민들은 유대인의 성물들을 보고도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민사상에 찌든 유대인의 광적인 자만심에 이미 혐오감을 품고 있던 이들에게 성물은 그저 보기에 좋은 보물 그 이상은 아니었다.

p72 로마 정부는 항상 모든 일에 공정하려 했다. 하지만 재판을 내릴 행정관들조차 기독교도들을 싫어했다. 그들이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그들이 정부를 적대하기 때문이었다.

p84 로마제국의 힘이 미치지 않는 저 너머에는 위대한 생명력의 원철이라고 할 무리들이 둘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세력은 스키타이족이라고도 불리는 타타르족으로, 이들은 크림 반도에서 중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살았다. 말타기에 능하고 성질이 사나우며 피부가 검은 아시아계 인종인 유목민들로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이들보다 로마에 좀 더 가까이 있던 종족은 발트 해 주변에 살았으며, 이들이 게르만족의 모체가 되었다.

p93 자유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게르만족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거나 다른 사람의 통제를 받는 일을 견디지 못했다. 그들에게 족장은 전쟁에서 그들을 인도하는 사람이었고, 가장 용감한 전사들 중에서 선발된 사람이었다.

p108 로마제국이 내부적으로 파멸하고 있는 동안 외부에서도 불길한 사건이 일어났다. 375년은 세계 역사에서 분기점으로 기록되는데, 이것은 광활한 미지의 아시아 대륙에서 훈족이 등장해 불가강을 건너 유럽으로 쳐들어온 해였기 때문이다.

p117 알라리크는 자신의 위대한 적수가 수치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어리석은 호노리우스 황제와 교활하게 협상을 하는 척해서 라벤나가 조용히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틈을 이용해 고트족 군대를 이끌고 플라미니우스 가도를 따라 곧장 로마로 쳐들어갔다.

p121 415년에 알라리크를 이어 왕이 된 아타울푸스는 로마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개선시킨 후, 서고트군을 이끌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파괴를 일삼는 반달족을 쫓아내기로 결심했다. 원정은 성공했다. 그는 야만적인 반달족을 대파하고 북부 스페인에 왕국을 세웠으며,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정했다.

p128 우리가 언급하지 않은 위대한 야만족이 하나 있는데, 이들의 이름은 고대 세계전역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앞에서 375년은 세계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 해가 바로 훈족이 볼가 강을 넘어온 해였다.

p141 만약 452년에 아틸라가 마른 강 인근의 카탈루냐 평원에서 일어난 살롱 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더라면, 유럽은 타르타르족의 통치 아래 들어갔거나 적어도 신의 회초리한테 아주 끔찍스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p143 항구 주변의 땅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사막이었다. 아필레이아 시와 인근 마을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얕은 바다 주변의 늪지대와 섬으로 숨어 들어가서 초라한 오두막을 짓고는 생선과 조개 따위를 먹고 살았다. 이것이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다 위의 도시, 베네치아가 형성되는 최초의 시작이 되었다

p160 갈리아에서 카이사르는 300만 명의 갈리아인과 싸웠다고 전해진다. 그 중 100만 명은 죽었고, 100만 명은 노예가 되었으며, 나머지 100만 명은 자유인으로 남았다.

p178 전투는 프랑크군에게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엇다. 미친 듯이 흥분한 상태로 전쟁을 치르다가 자신이 전쟁에 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클로비스는 갑자기 집에 있는 왕비를 생가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만약 클로틸드의 신이 자기에게 승리를 준다면 그녀의 신앙을 받아들이겠노라고 외쳤다. 그는 순간적으로 새로운 기운을 얻어 돌진해서 적군을 휩쓸었고 전쟁은 판도가 바뀌었다. 알레마니군은 극심하게 패주하고 말았다.

p191 샤를마뉴는 여러 면에서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프랑스어로 받을 수 있는 교육은 모두 받았다. 훌륭한 건물이나 다리, 길도 많이 건설했고, 농업을 장려해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막았다. 그는 신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세상에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동시대 사람들 중 오직 하룬 알 라시드만이 그와 비교될 수 있었다.

p196 987년에 칼롤링거 왕조가 끝나자, 프랑스 공작 위그 카페가 자신이 프랑스 왕임을 선포했다. 이것은 그가 여전히 독립적으로 남아 있던 모든 공작들과 백작들을 이끄는 전쟁 사령관이자 지도자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위그 카페와 함께 진정한 프랑스 왕국이 시작되었다.

p246 가엾은 알렉시우스 황제는 투르크인들에 대항하기 위해 로마의 기독교 세계에 도움을 호소했다가 이제는 무섭고 파괴적인 우군이 줄을 지어 떼거리로 몰려와 영토를 짓밟는다는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p258 십자군은 사흘 동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했다. 피가 기독교도들의 발목까지 차올랐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예배당 안에 갇혔다가 불에 타 죽었다. 칼에 찔려 죽은 이슬람교도의 수는 70,000명에 이르렀다.

p295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들은 다른 수도사들과 달랐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의 격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무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갖지 않고, 인류에게 사랑을 준다는 전제 하에서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돕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p302 두 명의 교황이 생겨난 셈이었다. 우르바누스는 로마에서, 클레멘스는 아비뇽에서 교황청을 열었다. 하나의 교회 안에 두 파벌의 추기경들이 생겼고 교회의 행정부서도 둘로 나누어졌다. 이로 인해 유럽은 둘로 분열되었는데, 이 사건을 대분열(서방 교회의 분열)이라고 부른다.

p307 그들은 후스에게 화형을 선고했다. 1415년 7월 6일 고결한 심성을 가진 후스는 콘스탄츠의 시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황제 지기스문트는, 자신이 약속한 안전은 여행의 안전을 뜻한 것이며 콘스탄츠에서의 이단자 처형재판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p321 아마도 유럽의 역사 2,000년 동안 가장 놀라운 세기는 15세기였다. 이시기에는 이전 어느 시기에도 없던 위대한 화가, 시인, 건축가, 조각가, 과학자, 학자들이 존재했다. 이시기 사람들은 민감하고 예민하며, 열정과 상상력이 넘쳤으며,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었다.

p324 15세기 이후 국경이 고정된 경계선으로 정착될 때까지, 유럽은 하나로 통일된 교회의 영역이었다.

p332 단테의 위대한 시와 페트라르카의 시는 진정한 근대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테프라르카의 친구들은 하찮은 이탈리아 말로 시를 써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고 그를 질책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라틴어로 감정을 표현한 글은 모두 잊혔지만, 당시에는 무시당했던 이탈리아어로 쓴 시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읽혀지고 있다

p365 투르크군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 그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다른 여러 가지 분규들 때문에 황제는 개신교도들과 대치할 입장이 못 되었다. 황제는 이후 12년간이나 종교 개혁가들을 다룰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 사이 종교 개혁가들은 독일 안에서 대단히 강력한 세력을 다져나갈 시간을 벌었다

p387 그러나 루이 14세의 긴 통치는 재앙과 악평으로 끝을 맺었다. 오만한 군주는 예외 없이 전쟁을 일으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 든다. 그러지 못하면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p401 프랑스를 혁명의 도가니로 돌고 간 것은 사람들의 고통이 과도해서 아니었다. 물론 불가피하게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혁명의 원인이 된 것은, 눈부신 과거가 있었으나 그것은 사라졌고, 이제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염원만 남아 있다는 정신적 분노였다. 그것은 자신들의 삶이 어리석음과 낭비를 지탱하기 위해서 이용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였다.

p423 실제 정부의 운영은 루이 14세 시절과 마찬가지로 교육받은 부유한 시민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위치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혈통 대신 돈이 통치를 하게 된 것이 변화의 전부였다.

p442 1795년 3차이자 마지막이 된 폴란드 분할이 실시되었다.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각각 자신들의 몫을 챙기고서는 폴란드라는 이름이 유럽의 지도 위에 다시는 등장하지 않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p476 이탈리아에는 마치니와 가리발디 같은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열정에 가득 찬 이상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작게 분열된 나라들을 합쳐 통일된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과 결심으로 가슴을 채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와 바로우르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p487 다음날 가리발디는 아쉬움을 남긴 채 카프레라 섬에 있는 농장으로 갔다. 가난했던 사람답게 가난을 택한 것이었다. 왕과 그의 일행은 가리발디가 떠난 것을 섭섭해 하지 않았다. 결국 가리발디같은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그들 계급의 특권에 위협이 되며 왕가라는 몸에 박힌 가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p494 로마제국 다음에는 신성로마제국이 일어났는데, 이 제국은 바르바로사와 프리드리히 2세 때 전성기를 맞았으나 나폴레옹의 등장과 함께 다시 사라졌다. 교황청은 신성로마제국과 함께 대등하게 공존했지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에 의해 교황들을 바티칸의 좁은 경계선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p511 의회는 파리 시민들을 저지하기로 의결했다. 전쟁에서 막 돌아온 군대를 이끌고 티에르가 앞장서서 파리로 진구해 들어갔다. 프랑스 군대가 프랑스의 수도로 행군해서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직 파리에서 철수하지 않은 독일 군대는 두 패로 갈라진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참담한 싸움을 지켜보았다.

p514 생산적 노동자대중에 의해 통치되는, 그리고 모두가 물질적으로 평등한 위대한 통일유럽은, 한 사람의 위대한 선택된 인물, 거대한 전쟁을 이끌면서 폭넓은 평화를 다룰 수 있는 영웅의 주변에서 뭉치지 않는 한, 오래 지속되고 굳건하게 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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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바다 - 명화에 담긴 101가지 바다 화가가 사랑한 시리즈
정우철 지음 / 오후의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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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가 사랑한 바다

 : 정우철

 : 오후의 서재

읽은기간 : 2023/12/16 -2023/12/18


이런 재미있는 주제가 있는 책이 좋다.

그림.. 그중에서 바다를 주제로 한 그림이라니.. 

참신하다. 

표지뿐만이 아니라 내용도, 그림들도 청량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바다를 거니는 느낌이다. 

물론 어두운 바다도 있긴 하지만 파란 바다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바다는 내게 그런 곳이다. 

바다를 닮은 음악.. 이런 책은 없나.. ^^

글보다는 그림을 느껴야 하는 책이다


p17 나의 유일한 야망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아 할 그대로 해석하는 정직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p18 마음껏 상상할 자유는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 그의 그림에는 쓸쓸한 풍경 속 고독에 익숙해져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p34 그는 바다의 색상인 푸른색을 사랑했습니다. 누군가 뒤퍼의 청량한 푸른색을 보고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마치 눈으로 포카리스웨트를 마신 것 같다”. 참으로 공감되는 표현입니다.

p53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강한 바닷바람에 캔버스가 날아가기도 했고, 모래가 튀기도 했죠. 하지만 그마저도 모네에겐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모네의 해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래가 붙어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p75 우리가 그 감정에 더욱 깊이 동화되는 것은 프리드리히만의 작품 속 특이점 때문입니다. 주로 뒷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인물들은 매우 독특한 구도입니다.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뒷모습은, 마치 우리도 그림 속 인물과 함께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p127 위대한 일은 일련의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p160 그토록 바다 그림을 많이 남긴 화가인데, 그는 왜 자신의 작품을 미완성의 바다라 했을까요? 이반 아이바좀스키는 부와 명예를 얻은 화가였지만 놀랍게도 스스로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작품이 완성되면 언제나 결점이 보였고, 다음 작품은 더 잘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평생의 위로였다고 그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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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유럽의 도시 - 4가지 키워드로 읽는 유럽의 36개 도시
이주희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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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사랑한 유럽의 도시

 : 이주희

 : 믹스커피

읽은기간 : 2023/12/14 -2023/12/16


출장을 오고가면서 다 읽었다. 유럽이라는 곳은 언제 봐도 즐겁다..

나도 이런 책 쓰고 싶다.. 


p23 1991년 크로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를 주축으로 한 유고연방군은 무력을 앞세워 무차별적인 공격을 자행한다. 20세기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p31 암스테르담은 다름을 받아들이고 새로움을 수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마약을 팔고, 운하를 따라 홍등가가 합법적으로 운영되며, 동성 간의 결혼과 안락사를 허용한다.

p51 순교한 지 500주년이 되는 1915년, 구시가지 광장에 청동 기념비가 들어서며 후스의 불길이 되살아난다. 중세 종교개혁자는 20세기로 넘어와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p63 석호에 나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모래를 쌓아 벽돌을 올려누른다. 그리고 돌을 깔아 바닥을 만들고 나서 건물을 안정적으로 올린다. 섬과 섬은 다리로 연결했고 수많은 운하가 도시를 이어주는 길이 되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바다 위에 인공 섬들이 세워진 것이다.

p87 우리가 지금 건축사라는 칭호를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미친놈에게 주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가우디가 건축학교를 졸업할 때 학장으로부터 건네받은 문장이다.

p113 대리석과 화강암이 지탱하는 건물에 거대한 유리가 얹혀진 오페라하우스는 노르웨이의 대자연을 한껏 머금고 있다. 피오르가 보이는 항만의 중심에 자리하다 보니, 멀리서 보면 해안가에 떠 있는 빙하를 땅에 얹힌 듯 디자인되었다.

p120 어쩌면 그림은 절망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신만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보이는 걸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걸 그린다”라는 뭉크를 알 것도 같다. 뭉크는 본 것, 즉 기억을 그렸다.

p123 운명을 뜻하는 파두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창법과 기타 반주, 그리고 숙명론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노랫말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가족을 향한 깊은 애정, 고단한 운명이 진득하게 배어있다. 그래서 파두를 듣고 있노라면 그토록 애잔하고 구슬플 수가 없다.

p135 이슬람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과거의 모습은 잊히지 않고 언덕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이 가장 아름답다. 해 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드는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개를 돌리면 빛조차 없는 동굴마을 사크로몬테가 더 을씨년스럽게 다가온다.

p142 자물쇠 수리공이었던 피터 헨라인이 태엽을 이용한 휴대용 시계를 발명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가 세상에 나왔고, 꼭 달걀과 비슷해 뉘른베르크의 달걀이라 불렸다.

p150 책의 화형식이 있던 그날의 역사를 매장도서관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매장도서관은 이유도 없이 잿더미가 되어야만 했던 책들의 무덤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덤 옆에는 기념비가 책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 책을 태우는 건 시작일 뿐이다. 결국에는 사람도 불태울 것이다”

p160 괴테는 56년의 긴 세월을 행정가로서, 문학가로서, 그리고 재상으로서 바이마르와 함께 했다. 무엇보다 괴테는 바이마르의 품격을 한껏 드높였다. 그의 명성에 힘입어 수많은 지식인이 바이마르로 돌려들었고, 독일 고전주의의 꽃을 찬란하게 피웠다. 그 중심에는 괴테가 35년간 관장으로 재직한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이 있었다.

p174 안타깝게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아드몬트 수도원 도서관에도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수도사들을 추방하고, 수도원의 귀중한 자료들을 정치범 수용소로 옮겨버렸다. 아드몬트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가지 못했던 것. 그렇게 지식의 보고는 폐허로 남겨진다.

p180 책읽는 공간에서의 소음이 자칫 거슬릴 수도 있지만, 그 누구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유리창 한쪽 벽면에 주차된 유모차들의 귀여운 행렬에 미소를 짓는 것처럼. 오디는 모두를 반겼고,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줬다.

p184 아기자기한 램스 콘딧 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서점이 나온다. 잊힌 여성 작가들의 책을 모아 놓은 페르세포네 북스가 바로 그곳. 그리스 신화에서 창조적인 여성으로 그려진 페르세포네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어졌다.

p194 이 도시는 무의미한 경쟁 대신 협동과 연대를 선택했다. 마트 농산물, 건축, 택시 노동자 등 다양한 영역의 협동조합이 도시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지역민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연대의 가지를 촘촘히 뻗어 나간 것이다.

p205 라파엘레는 고민 끝에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특별한 피자를 만들어 올린다. 빨간색의 토마토와 흰색의 모짜렐라, 초록색의 바질을 얹어 이탈리아 국기를 표현한 피자를 바쳤고, 마르게리타 왕비는 크게 기뻐한다. 그 후 왕비의 이름을 따 부르게 된 피자가 바로 나폴리를 대표하는 마르게리타 피자다

p220 로마의 교황 우르바누스 6세에게 최종 허가를 받아내며, 1386년 대학교가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교회 대분열로 인해, 하이델베르크는 독일 최초의 대학교가 들어서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p241 여행은 고생, 고통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travail에서 기원한다. 예나 지금이나 집나가면 고생이란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었나보다. 고생은 여러모로 복합적이지만, 그만큼 달콤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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