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길, 개정판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소명

작가 : 오스 기니스

번역 : 

출판사 : IVP

읽은날 : 2018/03/01 - 2018/03/31

분류 : 종교


내가 살아가는, 그리고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책이다.

신이 내게 부여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내용이 어렵지는 않은데 생각보다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 아무래도 내 생활을 돌아보면서 읽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생활에서 신이 내게 부여한 소명을 완수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하루하루를 너무 가볍게 사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루에 한장씩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면 좋을 듯한 책이다. 

다시 읽어도 역시 좋다. 좋은 책은 여러번 읽게 만든다.


p19 인류역사상 있었던 수많은 문명중 현대 서구문명은 인생의 목적에 관해 합의된 대답이 없는 최초의 문명이기 때문이다 

p20 우리 창조주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존재이유'이며, 인간의 존재 목적의 가장 고상한 근원이다 

p29 많은 경우 그들은 탐구자가 아니라 표류자인데, 이들은 포스트모던시대의 대중매체와 대형 쇼핑센터를 배회하는 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p36 우리가 집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곳에서 줄곧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가 부르셨기 때문이며, 그분의 임재야말로 집을 진정한 집으로 만든다 

p49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즉 '무엇을 원하는가?'하는 점이다 

p58 윌버포스의 끈기로 말하자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거의 50년을 지칠 줄 모르고 달려갔을 정도였다 

p59 1788년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 길을 공적인 길이며, 내가 일할 곳은 이 세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함께 어울려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섭리에 따라 맡겨졌다고 생각했더 그 직책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p62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누군가(하나님)에게 부름받은 것이지, 무엇(어머니 역할이나 정치나 교직)이나 어디(도시 빈민가나 몽골)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p65 활동적인 삶은 필요에 의해 하는 이등급의 삶으로 묘사되었으며, 관조적인 삶은 자유로 특징지어지는 삶으로 그려졌다 

P73 현대의 일이는 의미가 부족하다. 의미는 소명의식에서 나온다 

p78 부르시는 분이 없다면 소명도 없다. 단지 일만 있을 뿐이다 

p85 소명은 "당신의 존재는 당신이 하는 일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당신의 존재에 걸맞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p87 코튼은 직업선택의 기준으로 세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 기준에 따르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소명이 되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뿐 아니라 공공선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둘째는 우리가 그 일에 재능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p92 선지자적 비판의 목적은 회복에 있지 해산에 있지 않았다 

p104 신, 세계, 인간, 정의, 자유, 공동체, 돈, 기타 수많은 이슈에 대해 이론상 다른 견해로 시작된 것이 나중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형성하고 전혀 다른 삶(과 죽음)의 방식을 낳았다 

p116 다트리히 본회퍼가 주장했든시 "제자의 반응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순종의 행위다" 

p117 우리는 처음 제자가 되었을 때는 마치 예수님에 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신선한 기쁨으로 여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확신이 약해진다. 그분은 앞서 가고 계시며 그분의 표정은 낯설게 느껴진다 

p126 내가 그 사람을 존경한다면 그의 의견에 신경을 쓰겠지요. 그러나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p153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때 (하나님만 제외하고는) 우리가 행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책임성에 대한 시험이다 

p160 그 때는 저녁식사 시간이었고, 그들은 내 앞에 서 있었으며, 우리는 모두 배고팠습니다. 음식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구요. 당신들은 무슨 의미로 '용서'라든가 '정중한' 같은 바보 같은 말을 하시는 건가요? 

p166 신약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 서로 다른 교회들이 있다기보다는 하나의 교회가 여러 장소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p176 1,500년이 지난 후 에라스무스는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당신의 타락한 시대에 대해 이렇게 상기시켰다. "터키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자 한다면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p184 우리는 방랑자가 아니라 여행자다 

p184 당신은 이 두 사람에게 나타난 결과만을 비교해서 기독교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두 경우 각각에서 어떤 원재료를 가지고 일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p193 저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이 되었을 사람이 가는군요 

p209 질투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명한 정의에 따르면 "다른 이가 잘 되는 것에 대해 슬퍼하는 것"이다 

p210 질투는 '남들이 즐기는 것을 왜 나는 즐기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내가 즐길 수 없는 것을 왜 남들이 즐겨야 하는가?'라는 고압적인 물음으로 끝난다 

p218 세계 경제의 이슈들은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이슈가 외형적으로 무시된 것이다 

p223 미술가 들라크루아는 금융재벌인 제임스 로스차일드에게 거지 그림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의 얼굴이 '배고픈 표정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P228 "실제로 날마다 ㄴ내가 현재 하는 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지만 저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현재 하는 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한 명도 없으리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p237 그는 파스칼을 연상시키는 말투로 "현대인의 비극은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아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자체에 대해 점점 관심이 없어지는데 있다" 

p250 그들은 초자연적인 실재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상은 무신론자다 

p253 고독은 구체적인 장소이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홀로 있는 것이지 외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p262 예수님은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삶 전체의 주님이시다. 그분의 소명에 응답하는 것은 설교 뿐 아니라 고기잡이의 세계에서도 물가뿐 아니라 호수 깊은 곳에까지 미친다 

p282 어떻게 그들이 감히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운운하는가? 그들은 글쟁이로서의 나의 사명을 탈취해서 단지 내 이름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전혀 소명도 재능도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도록 요청하고 있으니 말이다 

P289 한낮에 꿈꾸는 사람은 위험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실제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p311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지만 거름 쇠스랑을 손에 든 남자, 오물통을 든 여자도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 

p313 매일 24시간동안 성도답게 사는것, 제자로서 단조로운 일을 해 내는 것, 예수님의 제자로서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고, 무시된 존재로서 사는 데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하다 

p324 유대인을 선택하시다니 얼마나 이상한 하나님인가 

p336 어린아이, 바보, 어릿광대, 백치, 실없는 사람 등 많은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그 모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동시에 미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p353 시대정신, 그것을 알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p370 내가 기꺼이 좀 더 살고싶고, 이 땅위에서 기쁘게 당신과 좀 더 살기 원한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소.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새로운 과업이 필요하오. 하나님이 나를 만든신 목적, 곧 그 과업은 완성되었소 

p380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이름은 그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생각이 표현된 것임에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