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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4 - 중세 문명과 미술 : 지상에 천국을 훔쳐오다 ㅣ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4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7년 6월
평점 :
제목 :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4
작가 : 양정무
번역 :
출판사 : 사회평론
읽은날 : 2018/03/11 - 2018/03/16
분류 : 일반
중세시대 미술이야기가 펼쳐지는 4권...
흔히 중세는 암흑시대라고 이야기한다. 오직 신만 이야기하는 시대였고, 모든 것이 억압된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세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들어보면 결코 중세는 암흑시대가 아니었다.
중세가 시작되던 시절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비롯한 종족간의 이동으로 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았고, 이를 정비하며 나타난 봉건제와 기독교는 중세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리고 이런 안정을 바탕으로 로마네스크와 고딕이라는 양식이 발달한다. 특히 고딕양식은 당시의 시대정신과 잘 맞아서 멋진 건축물들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에 대한 집중은 더욱 강해졌고, 이로 인해 인간을 아름답게 모사했던 미술양식은 인간에 대한 한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를 두고 미술의 후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현대 미술을 봐도 과연 잘그렸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서사를 보며 해석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중세의 미술의 의의를 잘 표현하고 있다.
고딕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우고 볼 수 있었다. 르네상스는 어떻게 설명할지 기대가 된다.
p19 유럽은 점차 안정을 찾아나가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서기 1000년부터는 오늘날 유럽의 기초를 닦았다고 할만큼 놀라운 발전을 차근차근 이뤄냅니다
p28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황이 직접 씌워주는 왕관은 신이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겨졌거든요
P79 유럽에 가서 오래된 교회와 마주치면 반드시 입구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성당이나 입구의 조각은 '여기서부터 하느님의 세계가 열린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주거든요
p85 수도사들은 클로이스터 안에 있는 넓은 뜰을 바라보며 답답함도 해소하고 명상에 잠길수도 있었겠죠
p125 더 이상 세상의 중심도, 완벽한 아름다움의 상징도 아니게 된 인간의 신체를 공들여 새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p128 언뜻 보면 초라하고 유치하게 보이는 청동문 조각에 이렇게 중세 기독교 미술의 의미와 목적이 담겨있으니까요
p161 이들은 해양민족 특유의 개방성을 강점으로 삼아 일종의 다문화, 다민족주의를 구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p177 바이와 테피스트리는 노르만족의 영국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안에는 헤이스팅스 전투뿐 아니라 윌리엄이 영국의 지배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p194 보통 첨투아치, 늑골궁륭, 공중부벽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고딕건축이라고 합니다
p234 산마르코 대성당 안에는 비잔티움 제국에서 약탈해 온 여러 보물들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산 마리코 대성당을 십자군 전쟁으로 얻은 '전리품의 전시장'이라고 냉소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자도 있어요
p325 어떤 방식을 쓰든지 당시에는 만들 수 있는 유리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유리 조각을 납 테두리 사이에 끼워 이어 나간다음 철제프레임 속에 넣어 고정시켰습니다
p333 사실 하늘의 별을 무작정 바라보면 얼마나 무질서해 보입니까? 하지만 천문학과 천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의 눈에는 철저히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보이겠죠
P361 이렇게 다리를 어긋나게 한 자세를 미술에서는 콘트라포스토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확실히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p364 세계적인 중세학자 움베르토 에코에게 유럽의 미술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주저없이 우타라고 답했다네요
p368 이전 시대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성당에 들어가보면 장식이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한겨울처럼 메마르고 건조한 느낌이 들어요. 반면 고딕성당은 이런 다양한 조각덕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풍요로운 세계로 다가옵니다.
P398 욕망의 끝은 보통 파멸입니다. 사실 중세 고딕 성당도 한없이 높아지다가 엄청난 역사적 시련에 봉착하게 됩니다. 초고층 건물의 저주는 중세 한복판에서도 벌어졌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