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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제목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9
작가 : 유홍준
번역 :
출판사 : 창비
읽은날 : 2018/01/05 - 2018/01/16
분류 : 일반
믿고 보는 책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번 장소는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다. 교수님이 서울은 총 4권을 쓰신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첫번째 책에는 종묘, 창덕궁, 창덕궁 후원, 그리고 창경궁이 나온다.
생각해보니 종묘도 창덕궁도 방문한 적이 없다. 그 긴 시간동안 서울에 살면서 경복궁과 창경궁만 수십번 들락날락했던 거다.
책을 통해 미리 본 종묘와 창덕궁은 참 아름다웠다.
죽은자들의 장소인 종묘는 고즈넉하고 엄숙하고 거룩해보였다. 사극에서 항상 듣던 종묘사직을 받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수 있을만큼 절제된 모습이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아이와 함께 꼭 거닐어봐야겠다.
창덕궁은 내가 어릴때 비원으로 불렸다. 버스 정류장 이름이 비원앞이라 잘 기억한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문화유산들이 참 많이 훼손되었구나 하는걸 느낀다.
관람료가 비싸다고 생각해 여긴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많이 후회된다. 외국의 성당이나 성은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었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정궁을 관람료가 비싸다고 안들어가다니...
도슨트에게 설명을 들으며 꼭 여기도 방문해야겠다.
창경궁... 어릴때 소풍가서 김밥먹던 곳.
남의 나라 왕궁에 동물들을 가져다 놓을 생각을 할 정도로 일본이 천박한 나라였나? 나에겐 창경원으로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지만 자츰 궁궐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어서 좋다.
과천 서울대공원과 여의도 윤중로가 창경궁 복원의 결과였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런 소소한 알아감이 내 삶을 참 윤택하게 한다.
유홍준 교수님이 건강하셔야 이 재미있는 책을 계속 내실텐데... 같은 시대에 살고 있어서 참 좋다.
p6 혹 주제가 술이 아니라 학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무튼 이 글의 내용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다는 뜻이다
p16 궁궐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죽음의 공간이자 영혼을 위한 공간이다
P23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절감하게 된 것 중 하나는 평범한 작품은 그 작품의 유래를 따지게 하지만, 명작은 거기서 받은 감동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예술 본질의 물음에로 이끈다는 것이다.
P31 경덕왕은 경주에 불국사와 석굴암을 세웠고, 태종은 창덕궁을 건립하고 경복궁에 경회루를 조성했으며 종묘의 형식을 완성했으니 두 분이 우리 문화유산 창조에 이룬 공은 실로 크고도 크다
P34 그때도 지금처럼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테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역사적 사례나 논리적 근거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했던 것이다
P46 평면으로 보면 대칭이지만 입면으로 보면 비대칭을 이룬다
P62 나라를 다스리면서 백성을 구제하는 경국제민의 법전이 경국대전이라면 예와 악에 의해 백성을 교화하는 예약 정립의 예전이 국조오례의였다
P71 오늘날의 종묘제례는 국가의식이 아니라 세계무형유산으로서 간소화되어 행해지기 때문에 행상 당일 아침 경복궁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어가와 제관의 행렬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영녕전에서 제향하고 오후에 본 행사로 정전에서 제향을 치른다
P80 꼭 그렇게 시작해서 꼭 그렇게 끝나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곡은 바로 ‘그래서’ 좋다
P87 본래 왕가의 희생으로는 소,양,돼지 3생을 쓰고, 사대부는 양과 돼지 2생을 쓰며, 민가에서는 돼지 하나만 쓴다. 그래서 지금도 민간의 제사때 돼지머리를 바치는 전통이 남아있다
P89 제례를 위한 부속 건물인 향대청, 재궁, 전사청은 곁에두고 신도를 따라 정전으로 곧장 들어가야 종묘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P97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자그마치 5개의 궁궐이 있다.
P108 달 월자에 받침 대자를 썼으니 그곳에 서면 달빛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듯 하늘이 열린다는 뜻일 것이다
P117 돈화문에서 인정전에 이르는 길은 이처럼 가역자로 꺾였다가 다시 니은 자로 꺾이는 동선이다. 바로 이 점이 창덕궁 궁궐 배치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P127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P142 궁궐을 관람할 때면 대개 건물의 생김새를 일별하며 지나가게 마련이지만, 답사라면 그 건물에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P174 산자락을 등지고 집을 앉히다 보면 건물 뒤쪽은 자연히 비탈로 남는데, 여기에 꽃계단을 만들어 사태도 막고 꽃밭도 가꾼 슬기롭고도 자연스러운 정원 형식이다
P180 이런 명문을 쓰고 싶으면 이런 마음과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니 글쓰기의 어려움은 문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바름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p195 낙선재는 모양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문기있는 선비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할만한 사랑스런 집이다
p212 황세손 이구의 장례식으로 조선왕조의 적통은 그렇게 끊어졌다
p217 우리 원림에서는 자연경관을 빌려오는 차경정도가 아니라 자연경관 자체가 정원의 뼈대를 이룬다
p230 프랑스 건축가 로랑 살로몽이 한국의 건축은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그냥 얹혀있는 느낌"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점을 말한 것이다
P253 정조 사후 규장각은 그대로 존속했지만 예전같은 기능은 하지 못하고 그저 왕실 도서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운영할 줄 모르면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p270 공부방은 북향으로 앉혀야 광선이 현란하지 않아 차분한 분위기를 주기 때문에 독서처로는 손색이 없다
p279 헌종이 사대부의 사랑채를 본떠 세운 낙선재가 선비집 사랑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양반가의 저택으로 지은 연경당이 있음으로써 창덕궁은 완벽한 전통 한옥종합전시장이 되었다
p293 우리나라 정원에서 정자가 갖는 의미는 정말로 크다. 어쩌면 정자는 정원의 얼굴이다
p306 노 대통령은 깎두기를 씻어 동치미를 담그는 도중 임기가 끝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세상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조가 그러했듯이
p328 내가 이런 조망을 제공해준 서울대 병원에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더니 답사객인 한 인생 상수가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 "오히려 서울대 병원이 이런 조망을 제공해준 창경궁에 감사해야지"
p329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으로 말할것 같으면, 임란 후 광해군 8년에 지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5대 궁궐의 정전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p336 홍화문 앞은 백성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이었기 때문에 임금과 백성이 만나는 광장으로도 사용되었다
p346 창경궁은 법궁이 아니어서 왕이 오래 머무는 일이 없기 때문에 형식을 형식대로 갖추되 편리함은 편리함대로 추구한 결과다
p348 경찰은 문정전에 불을 지른 채종기라는 노인을 체포해 문화재 방화범으로 검찰에 넘겨 재판에 회부했다. 노인은 정부의 재개발 보상금에 불만을 품고 방화한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나이가 많고 '피해가 경미하다'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채종기가 또 2008년 2월 11일에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그가 바로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이다.
P365 창경궁은 한마디로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많은 왕과 왕세자가 여기서 태어났고 많은 왕비와 왕대비가 여기서 세상을 떠났다
P398 가로줄을 따라가면 절기가 보이고 세로줄을 따라가면 시각이 보인다. 이 영침은 남극과 북극을 일직선으로 긋는 방향에 놓여있기 때문에 서울의 동경(127.5도)에 정확히 맞는 시각을 알려준다
P410 창경원 시절에 일제가 심어놓은 벚나무들은 동물원을 철거하고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모두 여의도로 옮겨심어 오늘날 윤중로가 벚꽃길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P412 패전을 앞둔 1945년 7월 25일, 창경원 동물원 회계과장은 전 직원을 모아놓고 도쿄로부터 지령이 떨어졌다며 "미군이 창경원을 폭격하면 맹수가 우리에서 뛰쳐나올 수 있으니 사람을 해칠만한 동물을 모두 죽이라"면서 "동물들의 먹이에 몰래 넣어두라"며 극약을 나눠줬다. 코끼리,사자,호랑이,뱀,악어 21종 38마리가 그렇게 독살됐다. 동물들이 죽던날 밤, 창경원에는 맹수들의 스산한 울부짖음이 밤새도록 가득했고 동물원 직원들도 모두 따라 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