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나를 자유롭게 할 거야 - 벽을 깨고 스스로 빛이 된 예술가
이소영 지음 / 블랙피쉬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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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림이 나를 자유롭게 할거야
작가 : 이소영
출판사 : 블랙피쉬
읽은기간 : 2026/10/18 -2026/10/21


언제나 읽는 즐거움을 주는 이소영님의 신작..

여성화가들의 이야기다.. 거의 대부분 처음 보는 작가들이었다.

역시 여성은 주류에서 벗어나있다..

우리나라 여성화가들로 시작해 전세계에 많은 여성 화가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담백한 필체로 소개하고 있다.

상당수의 화가들이 남편에게 가려지거나 주류의 화가들에게 가려져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

이런 작가들의 손을 통해 작가들이 발굴되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읽어서 즐겁다..


p28 2023년 김윤신은 또 한 번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88세의 나이에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레진던시에 지원한 것이다. 대부분 20-40대의 젊은 작가들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그녀는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낱한시도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고 쓴 그녀의 지원서를 전시장에서 읽은 나는 몇 달가 이 자기소개서가 뇌를 떠나질 않았다.

p34 김윤신은 말한다. “나이 상관없이 그냥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녀에게 90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작품이고, 그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삶의 진실이다.

p43 1927년 만주 안동현 부영사로 재직 중이던 남편 김우영이 유럽 시찰 기회를 얻었다. 나해석은 아이들(당시 세 자녀)을부산 시댁에 맡기고 남편과 함께 세계 일주에 올랐다. 한국 여성 최초의 세계여행이었다

p47 나혜석은 멈추지 않았다. 여자에게도 성욕이 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뿐이라고 말하며 파격적 발언을 이어 나갔다.

p59 193년 풍차 집의 주인이 집을 팔면서 펠턴은 완전히 떠나야 했다. 마치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 서쪽으로 이동한 끝에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 근처의 커시드럴 시티라는 작은 사막 도시에 도착했다. 원래는 잠깐 머물 생각이었지만 펠턴은 결국 30년을 살았다. 도시 이름부터 대성당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에서 그녀는 평생 동안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p64 펠턴의 작품은 더 부드럽고 더 직관적이다. 다른 신비주의 화가들이 때로 격렬하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폭로했다면, 펠턴은 속삭이듯 그 세계로 안내했다. 빛과 색의 미묘한 조화로 내면의 풍경을 펼쳐 보이되, 설명하지 않았다.

p87 힐마가 꿈꾼 사원도 나선형이었다. 관람자가 나선 경로를 따라 걸으며 영적으로 변형되는 공간. 그녀가 상상한 건물은 결코 지어지지 않았지만, 100년 후 구겐하임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우연일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도 신비주의에 관심이 있었고, 구겐하임 최초의 관장 힐라 레비아도 신지학자였다. 추상미술의 영적 뿌리는 구겐하임의 건축 자체에 새겨져 있었다.

p103 베라의 대답은 간단했다. “컴퓨터보다 인간적인 것은 없습니다. 누가 이 기계를 만들었나요? 인간이에요. 누가 지금 이 알고리즘을 쓰고 있나요? 나에요. 누가 1%를 선택했나요? 나에요”

p109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미술 축제인 베니스 베닝날레의 꿈의 우유 전시에 98세의 베라 몰나르가 초대되었는데, 전시 최고령 참가자였다. 그녀의 1970년대와 1980년 플로터 드로잉들이 전시장 벽에 걸렸고, 젋은 예술가들과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 서서 놀랐다. “이게 1970년대 작품이라고?” “플로터로 그렸다고?” “NFT보다 50년이나 앞선 거잖아?”

p121 당신의 그림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단어입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당신은 물감이 아닌 재료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렌틸콩, 분쇄된 레이온, 실, 풀반짝이, 거즈. 당신은 이 과정을 그림을 위한 일종의 의식행위라고 불렀습니다.

p139 놀라운 것은 스테판이 어머니의 연인인 모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그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현재 남아 있는 모스의 사진 대부분이 바로 1930년대에 스테판이 촬영한 것들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이고 열린 가족 관계였다.

p162 무르나우에서 뮌터의 에술은 폭발적으로 꽃피웠다. 그녀는 하루에 다섯 점의 유화 습작을 완성하기도 했다. 동료 화가 야블렌스키, 마리 안네 베레프킨과 함께 야외에서 작업하며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고 영감을 주고받았다.

p174 뮌터의 진정한 유산은 연애사가 아니다. 그녀는 청기사파의 창립멤버였고 바이에른 민속 예술을 현대 회화에 접목한 선구자였으며, 나치의 박해 속에서 20세기 초 가장 중요한 미술 운동의 유산을 지켜냈다. 무엇보다 60년이 넘는 그림 작업 동안 일관되게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발전시킨 독립적인 예술가였다.

p199 남동생 토비가 새로운 생활을 제안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 그의 캠브리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자는 것이었다. 하이드 파크의 어두운 응접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젊은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들어왔고, 여자들이 그들과 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빅토리아 시대가 금지한 것,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지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고든 스퀘어 46번지의 거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졌다.

p204 버네사는 그 위계를 거부했다. 의자에 앉는 것도, 컵을 드는 것도, 방에 들어서는 것도 미적 경험이 될 수 있다면… 왜 캔버스만 예술인가? 캔버스를 넘어 삶의 모든 표면으로 예술을 확장시키는 것. 이것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버네사가 세계를 배치하는 방식 그 자체였다.

p233 약혼할 때 그가 내게 준 <약혼 정물>도 함께 기증했다. 이제 그 그림은 미술관에 걸려 있다. 내 작품은 기증하지 않았다. 기증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다.

p245 디에고는 끊임없이 외도했다. 여배우, 모델, 조수, 심지어 프리다의 여동생 크리스티나까지. 프리다는 복수하듯 자신도 연애를 했다. 남자와도, 여자와도. 망명한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이사부 노구치… 결국 1939년 두 사람은 이혼했다. 서로를 가장 깊은 사랑한 두사람은 서로를 가장 깊이 상처 입혔다.

p250 VIVA LA VIDA(삶이여 만세) 죽기 8일 전에 완성한 그림이었다.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았던 여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삶이여 만세라니.

p264 1940년대에 전설적인 화상 다니엘 앙리 킨바일러는 이 사실을 증언했다. “비양심적인 자들이 마리아 블랑사르의 서명을 지우고 후안 그리스의 이름을 넣었다” 해서는 안 될 비도덕적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당시 미술 시장이 여성 화가를 대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p304 헬렌의 자화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독이 만든 걸작이라고 요약하기엔 그 말은 너무 매끈하다. 고독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네 살 때 계단에서 떨어져 평생 다리를 절뚝 거린 것,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것, 40년을 시골에서 어머니와 둘이 산 것,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 것, 전쟁 때문에 타국의 호텔 방에서 혼자 죽어 간것. 모든 것은 선택한 고독이 아니라 주어진 고독이었다.

p313 에레라는 그림을 팔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시장에 맞출 필요도, 유행을 따를 필요도, 누군가를 기쁘게 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내 작품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있었습니다”

p320 무시당하는 것은 일종의 자유입니다. 105세에 그녀는 말했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기쁘게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해방된 기분이었죠” 그보다 몇 해 앞서 그녀는 이렇게도 말한 적 있다 .”유명해지면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같은 것을 다시 하고 싶어집니다. 아무도 내가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있었어요”

p336 1941년 출간된 첫 책 <클리 위크>는 원주민 마을에서의 경험을 담은 21편의 짧은 이야기 모음집이었다. 유클루릿에서 처음 만난 원주민들, 토템 폴을 그리러 다니던 여행들, 버려진 마을에서의 밤들, 책은 성공했고 그해 캐나다 총독 문학상을 수상했다. 69세의 나이에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인정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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