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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 고궁에서 장인까지, 아주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
서헌강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7월
평점 :
제목 : 오늘도 나는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작가 : 서헌강
출판사 : 다산초당
읽은기간 : 2026/10/14 -2026/10/18
유물사진작가가 있는줄 몰랐다.
당연히 전문분야기 때문에 유물이나 유적을 찍는 분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런 분의 책을 읽은건 이번이 처음이다.
얼마전에 악보위원의 책을 읽었었는데 전문분야에 계신 분들이 책을 내니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된다.
여러 이야기가 재미있었지만 세계에 흩어져있는 유물들을 사진찍는 이야기는 정말 감동이었다.
지금 보고 사진을 찍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물을 혼자 보며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가슴아픈 일인지 알게 됐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우리 유물들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하고 싶어도 누군가 서명과 날짜를 잘라버려서 출처를 알 수 없어 못오는 작품들도 꽤 있다고 한다. 유물을 훔쳐다 판 인간들이 꼭 고통속에 살기를 저주한다.
이런 분들 덕에 유물과 유적의 보지 못하던 부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고 읽어야 할 책도 참 많다..
p5 일일시호일(날마다 좋은 날). 운문이 말한 일일시호일의 의미는 폭풍우가 몰아치면 그 비바람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볕이 들면 그 따스함을 만끽하는 절대적 긍정이다. 과거의 실패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일상의 고통을 껴안으면서도 그 안에 깃든 평온과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삶속에서 비로소 좋은 날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p36 조선 왕조가 경복궁을 창건한 해는 1395년이다. 자금성이 완공된 1420년보다 한 세대는 더 앞서서 지어졌다. 게다가 궁궐의 정원으로서 북악산, 인왕산과 조화를 이루며 오늘날에도 도심 속 현대인과 정서를 교감하는 경복궁과 달리 자금성은 오로지 건축물만 있어 현대에도 지극히 배타적인 공간이다.
p86 횃불을 피워 올린 듯한 거대한 붉은빛 하늘이 봉수대 위로 펼쳐지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을 만한 일출은 1년에 고작 열 번 남짓이다. 게다가 전날 비가 내려 공기에 어느 정도 습기가 있는 상태여야 다음 날 이른 새벽 일출 때 유난히 붉게 물든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
p125 제사 준비를 마친 종갓집 어르신들은 대청에 모여 있다가 시간에 맞추어 신주를 모셔놓은 사당으로 이동한다. 사당에서 제청(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지 옆에 마련한 대청)으로 신주를 모셔 오는 출주와 참배하는 참신 사이에 제사의 주요 절차들이 마무리된다. 이후 신주를 보내 드리는 사신과 가장 마지막 절차인 음복(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는 것)에 이르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이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다.
p213 그동안 국외 조사를 위해 출장을 떠날 때마다 아내는 일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나를 보고 또 징용 가느냐며 우스갯소리로 놀리고는 했지만, 아마 이 정도로 강도 높은 작업이었을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고달픈 일을 20년 넘게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 해외에서 만나는 모든 유물과의 만남은 대부분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기 때문이다.
p229 사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이다. 그렇다면 시선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삶의 경험과 감정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고유한 관점과 철학이다. 시선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 본다.
p239 나는 문화유산의 고루하고 빛바랜 느낌만 전하고 싶지 않다. 디테일에 숨은 화려함을 강조하거나 때로는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했을 생동감과 재미를 부각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 문화유산이 지닌 숨은 이야기를 끄집어내 재탄생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나는 시선이 지닌 이 힘을 포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p273 나는 벗어날 수 없을 이 아름다운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한창기 사장님의 창간사는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나라를 남에게 빼앗긴 시절에도 이 땅의 흙 내음과 겨레의 얼을 잊지 않았던 예술이 있었습니다. 해방이 되고서 오늘에 이르는 사이에 속된 바깥바람이 일고 상업주의가 번졌을망정 이 땅과 이 시대의 아들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엿한 예술인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