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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로 보는 한국사 - 기후가 바꾼 5천 년, 새롭게 읽는 우리 역사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2026년 7월
평점 :
제목 : 기후로 보는 한국사
작가 : 박정재
출판사 : 바다출판사
읽은기간 : 2026/09/28 -2026/10/03
박정재 교수님의 책을 여러권 읽었다.
지리학과 교수님이라 그런지 책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Long term으로 기후가 계속 변하고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대응을 했고, 그로 인해 문명과 문화가 바뀌어왔다는 것.
빅히스토리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 낯설지는 않다.
역사학자들이나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의 소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빅히스토리라는게 큰 변동 사이에 있는 작은 변동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장기적으로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고 이야기했던 케인즈의 말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빙기나 온난화 기간동안 역사와 문화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부분은 흥미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난 학자가 아니니까 빅히스토리에도 공감하고, 미시적 추동이론에도 공감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p16 주기적으로 한랭한 기후가 찾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키며 환경에 적응하고자 했고, 여의치 않을 때는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결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약 5000년 전 이후 지속된 한랭화와 대략 500년을 주기로 반복된 급격한 저온 현상은 홀로세 후반 한반도인들을 추위에 강한 집단으로 단련시켰다.
p25 요하(랴오허) 문명은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사 문명 가운데 하나로 홀로세 중기에 황하 문명 못지않은 문화수준을 자랑했다.
p32 우리 모두 적도 서태평양에서 비롯된 기후 변화가 요하 유역과 한반도, 두 지역 사회의 성쇠를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요하 지역과 한반도가 가까이 있고 양 지역 집단의 문화가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 할 것이다.
p40 3200년 전 즈음에 한반도로 진입한 송국리형 문화 집단과 철기 저온기(2800-2300년 전)의 중반부터 한반도 남부로 이주해 들어온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은 다른 생활양식을 기반으로 한다.
p58 흔리 로마 온난기라 불리는 시대다. 유럽에서는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기원전 27년)이 꽃을 피웠고, 동아시아에서는 전한(기원전 202-기원후 8년)이 한무제의 위업을 발판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한반도 북부에 자리한 위만조선(기원전 194년-기원전 108년) 또한 비록 9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강국의 반열에 올랐고 한반도 남부 사회는 이주 물결이 잦아듦에 따라 비교적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p94 훈족, 서고트족, 반달족 등 당시에 강력함을 풍기던 민족 집단이 모두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중반까지 활발하게 움직였다. 훈족의 이동은 374년에 시작되어 468년까지 이어졌으며, 서고트족의 이동은 376년에서 416년까지 이어졌다. 반달족의 이동은 406년부터 439년까지 계속되었다. 모두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했던 시기와 엇비슷하다. 이때의 기후 변화가 북반기 전역에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와 서유라시아 양 지역 사회에 비슷한 파장을 불러왔음을 알 수 있다.
p113 후환융선은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흑룡강성)의 헤이허시에서 남서부 원난성의 텅충시를 잇는 대각선으로 이 선의 서쪽에는 인구가 적은 반면, 동쪽에는 인구가 밀집해 있다.
p127 3-4세기에 다수의 부여민이 정치적 망명과 생계형 이주를 감행한 것 그리고 수단에서 격렬한 내전이 발생하면서 난민이 급증한 것은 모두 엘리트의 리더십이 부실하여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다. 기후 위기에 리더의 정치력 부재까지 겹칠 때 사회의 갈등과 혼란이 얼마나 커질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p161 1168년 이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현령을 쫓아내고야 마는데, 이 난을 양수라는 인물이 주도했다고 하여 양수의 난이라고 한다. 이후 제주도에서는 수백 년에 걸쳐 섬 주민의 반란이 이어졌다. 1374년 목호의 난부터 1862년과 1898년 제주 민란, 1901년 이재수의 난, 1948년 제주 4.3 사건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민란이 끊이질 않았다.
p173 정말로 큰 폭발은 30년 후 1257년 인도네시아 롬복섬에서 있었다. 이 섬의 사말라스 화산에서 거대한 분출이 일어 최고 50미터 두께의 화산 새설물이 섬의 절반가량을 덮었다. 이 폭발로 적도 태평양에서 무역풍이 약해지고 장주기 엘니뇨가 강화되었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했다.
p192 세차 운동이 이렇게 소빙기의 도래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맞다. 하지만 소빙기의 저온 현상을 가져온 주된 요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태양과 화산이다. 태양 활동이 저조하여 흑점 수가 줄어들 때,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폭발이 잦았을 때, 북반구의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 결과 곤경에 처했던 인간 사회의 사례를 우리는 유물이나 문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p211 경신대기근과 을병대기근으로 조선은 큰 피해를 본 반면, 같은 시기 강희제가 통치하던 청나라는 오히려 번성했다. 양국 간에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이유를 곱씹으면서 정조는 무엇이 왕으로서 추구해야 할 통치방식인지 깨우치지 않았을까? 정조는 재해 예방과 재난 관리를 통해 백성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고자 했다.
p235 1809년 폭발은 가뭄을, 1815년 폭발은 홍수를 불러왔다. 같은 공간임에도 ㅎㅘ산 폭발의 여파는 확연히 달랐다. 폭발한 화산의 위치 혹은 폭발의 ㄱㅠ모가 물 순환의 차이를 가져왔을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그 정확한 인과관계를 알기란 어렵다.
p265 병자년 가뭄(1876년)으로 조선이 힘겨워할 때 산동, 산시, 허난, 허베이 등 중국 북부 지역에서도 1876년에서 1879년까지 최악의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 기근을 정무기황이라 부르는데 1000만 명 이상 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1876년부터 1878년까지 가뭄과 기근이 이어졌다. 남인도 대기근이라 불리는 이때의 식량난으로 굶어 죽은 사람 수만 500만에서 800만 명에 달했다. 중국가 인도의 기근 모두 엘니뇨가 주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p293 여전히 역사학계에서는 여기서 소개한 딥히스토리, 진보 사관, ㅎㅘㄴ경결정론, 인류세 등의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역사학자들이 지나치게 ㄷㅏㄴ순화된 거대 서사에 경계심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 식물, 미생물, 강, 산, 기후, 바다, 돌, 기계 등 이른바 비인간 요소를 인간만큼 비중있게 다뤄야 한다는 방법론적 부담 역시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