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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삼킨 세계사 - 12척 난파선에서 발견한 3500년 세계사 대항해
데이비드 기빈스 지음, 이승훈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7월
평점 :
제목 : 바다가 삼킨 세계사
작가 : 데이비드 기번스
출판사 : 다산초당
읽은기간 : 2026/05/16 -2026/05/25
제목을 봤을때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난파선 세계사라니.. 정말 섹시한 주제 아닌가...
청동기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때 침몰한 배까지 다양한 시대의 난파선이 나온다.
난파선은 건져올린 배도 있지만 대부분은 바닷속에 잠겨 있는 상태에서 유물과 문서분석을 통해 난파선을 연구하게 된다.
물속에 있다보니 유물의 보관상태가 꽤 괜찮고 이로 인해 오래된 과거의 역사가 생생하게 밝혀지는 경우가 꽤 많다.
다만, 유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 연구가가 전문 다이버가 아니다보니 다이버에게 지시를 하고 발굴이 되어 제대로 연구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자는 직적 다이빙을 배워 난파선에 접근하여 더 많은 연구와 성과를 만들어낸다
이 책은 본인이 직접 탐사하거나 연구했던 배들을 중심으로 씌여졌다.
난파선에 대한 자료가 문서로 있는 경우도 많아 풍부한 배경과 공부가 되었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난파선을 통해 오래된 과거의 유물과 뱃길을 추측하는 건 정말 아름답고 섹시하다.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 부럽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올해의 책 후보다.
p24 청동기 시대에 이미 인류가 바다로 항해했음을 알려주는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교역과 통신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 볼 수 있게 되었다.
p32 이 연구가 갖는 함의는 엄청나다. 비커 민족이 브리튼 섬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럽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판자 배인 페리비 보트에서 고도의 목재 접합기법이 사용되었다. 그 증거로 미루어 보아 이 보트 건조술은 청동기시대 브리튼섬 토착민이 발명한 것이라기보다 이민자들이 가져온 것 같다.
p44 청동기시대 교역을 브리튼섬이나 유럽대륙 항해자가 맡았는지를 토론하는 대시 ㄴ이들을 영불해협 모두를 아우르는 공통문하 일부로 볼 수 있다. 교역의 기초를 제공한 사회 네트워크는 상품 수송 이외에도 선물교환, 지참금과 정치적 동맹 같은 다른 요소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p52 울루부룬 난파선은 청동기시대에 찬란한 빛을 비춰주는 두가지 기념비적 발굴과 어깨를 나란히 할 발굴이다. 다른 두 가지 발굴은 1876년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진행한 그리스 미케네 성채 발굴과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진행한 투탕카멘의 무덤 개봉이다. 울루부룬 난파선에서 네페르티티의 금제 스카라베가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이 난파선의 연대는 네베르티티의 생전이나 그직후, 아마도 투탕카멘의 치세로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p71 대단히 흥미롭게도 이 책에서 다루는 인도네시아 연안 벨리통에서 발견된 2000년 후의 난파선에서도 비슷한 황금잔이 발견되었는데 이 잔도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중국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런 잔은 외교 선물이나 교역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76 주석은 그 자체로 귀중한 상품이었을 뿐 아니라 주석을 수송하는 선박은 왕실끼리 교환하는 선물이나 다른 교역용 물품을 같이 수송하기도 했으므로 무역에 전반적 활기를 불어넣었다.
p83 울루부룬 난파선은 무덤에 매장하기 위한 물건이 아니었다. 실제 사용되는 물건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 이 무덤에서 발견된 이집트 왕조의 엄청난 부가 파라오나 파라오의 영생만을 위한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p88 에게해와 동지중해 지역의 청동기시대 말기의 증거는 이 시대가 평화로운 이행이 아닌 폭력과 말살로 끝났음을 보여준다. 문화적 성취를 활짝 꽃피우며 평화롭게 번영하던 세상이 인간의 행위와 자연재해의 합작으로 너무나 금방 무너졌다.
p109 몇 개에는 로마의 표식이 있었고 포에니어 명문이 새겨진 것도 하나 있었다. 이 명문에는 카르타고를 비롯한 북아프리카-동지중해 지역에서 숭배되던 최고 신 바알이 등장한다. “바알의 분노를 담아 이 충각이 적선을 향하기를. 우리는 바알의 힘으로 일발필중할 것이며 가운데 있는 적의 방패를 타격할 것이다.
p122 기원전 6세기의 전 소크라테스 철학자들은 주로 자연계에 관심을 가졌지만, 페리클레스 시대에 들어 후대 철학자들은 정치와 국가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며 인간계로 초점을 바꿨다. 플라톤은 철학계에 일어난 이런 전환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p132 세베루스 황제의 치세에 최대로 확장한 로마제국은 메소포타미아, 사하라부터 브리튼섬 북부까지, 그리고 로마인이 갈 수 있던 라인-다뉴브강 국경까지 수백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차지했다.
p145 실제 관찰보다 철학적 사고에 더 바탕을 둔 4대 체액이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처럼 철학과 의학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p213 페르시아만의 바스라에서 시작해 중국 광저우를 잇는 항로는 바스쿠 다가마가 1498년에 인도에 도달해 유럽 선박과 동방을 연결하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이용된 가장 긴 항로였다. 아랍에서 출발한 9세기 난파선이 인도네시아 벨리퉁섬에서 발견되면서 우리는 당시의 교역과 리처드 버턴이 그렇게 매료된 동방 세게를 아주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p214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난파선 중 하나인 벨리퉁 난파선은 해양 실크로드의 형성기 동안 아바스 왕조 페르시아와 중국 당 왕조 사이에 교역이 있었다는 증거다.
p229 아랍 작가들의 스리위자야 묘사는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이야기처럼 약간 비현실적 분위기마저 풍긴다. 마치 이들도 자신이 쓰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믿지 못했던 것 같다.
p243 예술적 표현과 감성은 사람이 살고 직업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당시에 관리가 되려면 반드시 시 쓰기 능력을 갖춰야 했다. 시서화 삼절의 관계는 난파선에서 발견된 사발에도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p250 793년 그날 린디스판섬에서 일어난 일의 실체는 유적에서 발견된 이른바 둠즈데이 비라는 9세기의 묘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비석의 한 면에는 천상의 십자가 앞에 절하는 사람이, 다른 한 면에는 칼과 도끼를 휘두르는 전산 일곱 명이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의 공포를 자아낸 것은 바로 피레네 드라칸, 즉 용머리 모양 선수에 핏빛의 붉은 줄무늬 돛을 올리고 바다에서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바이킹의 배였다.
p261 바이킹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흘수선이 낮은 롱십일 이용해 발트해, 흑해와 카스피해를 잇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볼가강, 돈강, 드네프르강, 드니에스트르강과 같은 여러 지류를 능숙하게 항해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되어진다.
p298 하갑판에 있던 사람들은 물이 들어차는 동안 통로로 빠져나오려 애쓰다가 그물 아래 갇혀버렸을 것이다. 이것은 중세 해전이 남긴 비극적인 잔재다. 근접전을 위해 바짝 붙은 적선에 대항하는 데 그물은 좋은 수단이었을 테지만, 장거리 포격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p307 잔해에서 발견된 식단 관련 증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점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의 면면을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영국의 세력이 지리적으로 점점 확대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다음 세기의 식민지 개척과 제국 건설로 이어지는 전환점에 해당한다.
p314 이 궁수의 존재는 헨리 8세의 군대에 먼곳에서 온 용병도 포함되어 있었고, 아프리카 계통의 사람이 튜더시대 잉글랜드에 도착하고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p328 수천 개의 반짝이는 청동 옷핀. 그것이 바로 이 난파선에 멀리언 핀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였다. 이 핀들은 1667년 가을에 암스테르담에서 선적되어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향하던 어마어마한 화물 중 일부였다. 나는 산토 크리스토 디 카스텔로호를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p362 램브란트의 만년 걸작이자 그가 1669년에 사망하기 얼마 전에 완성한 2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이 있다. 이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겨진 것의 의미에 대해 수많은 추측이 이어졌다.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과 그림은 이들이 미완성으로 남을 때, 완성되었을 때보다 더 큰 찬사를 받는다”라는 로마 시대의 대 플리니우스의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의 이탈리아 미술사가 바사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많은 화가는 일종의 불타오르는 영감에 인도받기라도 한 것처럼, 상당한 대담함을 발휘하며 자신의 첫 스케치를 훌륭하게 완성한다. 그러나 마무리 과정에서 이 대담함은 사라진다”
p377 로열 앤 갤리호의 이야기는 대중을 매료시켰다. 항해사가 배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도박, 바람의 방향과 함께 변하는 변덕스러운 운명, 지휘고하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 죽음… 질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일고 운명의 장난이 변덕스럽고 잔인하게 느껴지던 그 시절, 언론은 이 난파 사고를 몇 년 동안 열심히 보도했다.
p404 노예 무역상과 해적은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을 것이고, 린호와 로열 앤 갤리호의 장병은 자신들이 성장하는 배경이 되어준 기독교적 가치에 반하는 무역을 보호하고 있다는 데 환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p412 노예무역과 이단심문의 공포를 보면서 우리는 계몽시대가 철학적, 창조적 꽃이 피어난 시대였지만 극단적 인종차별과 종교적 편견의 시대이기도 했다는 점을 다시 깨닫는다. 프란시스코 가족은 포르투갈 유대인도 이단심문의 마수에서 벗어나 살 수 있던 해양 세계는 고향인 유럽대륙보다 포용적이며 관대했다.
p417 유니카는 남편뿐 아니라 해군 자원병인 아들 존까지 “리저드 암초에서 익사”로 잃었다. 해군성에 낸 청원에 따르면 “생계 수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가장 불행한 환경에 처하게 된” 유니카는 국왕에게 연금을 신청했지만 각하당했다. 적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의 유족만 연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p424 1984년에 연구를 위해 시신일 발굴되면서,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곳에 보존되었던 이들의 얼굴이 공개되었고, 그 이미지는 곧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탐험대가 그해 겨울에 버린 깡통 수백 개가 아직도 현장에 있었다.
p430 테러호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난파선 중에서 침몰 전의 모습을 설명할 때 고고학적 증거보다 문헌 증거를 더 많이 이용하는 첫번째 배이자 기술 도면 및 적재 목록이 남은 첫 번째 배이기도 하다. 테러혼 잔해의 발견은 고고학이 새로운 사실을 찾는 근원으로서뿐 아니라 상상력과 감정 발현의 촉진제로도 기능한다는 것을다시 생각하게 한다.
p433 미국의 농제는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으니 프랭클린 원정대가 구려졌던 시대에 영국이 쌓은 상당부분의 자본은 노예착취를 통한 것이었다. 영국 선박으로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노예를 수송했던 18세기의 악명 높은 삼각무역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생계를 의지하고 있었다.
p487 게어소파호의 잔해에는 마지막 순간의 충격과 공포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했으나 침몰까지 고작 몇 분 전의 모습이 사진처럼 생생히 보존되어서 격침되기 전의 모습을 떠올리는 데 상상력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p501 갑판원 27명 중 18명이 산드윕섬, 그중 여덟 명이 만트방가 마을 출신이었다. 그리고 기관원 29명 중 27명이 파틱차리에서 왔고 그중 16명이 박타푸르와 이웃 마을 다르마푸르 출신이었다. 배 한 척이 침몰하면 작은 공동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p510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영국 선적 선박 3500척, 그리스 선적 선박 930척, 미국 선적 730척, 노르웨이 선적 690척, 네델란드 선적 260척뿐 아니라 이들을 호위하던 수많은 연합군 함선이 격침되었다. 반면에 독일은 유보트 785척을 잃었고 이 중 다스는 승조원 전원과 같이 침몰했다. 이 숫자는 바다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