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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조선여행 : 전국 편 - 지식 가이드와 떠나는 팔도강산 역사 투어 ㅣ 한국사 여행 2
트래블레이블 외 지음, 이도남 감수 / 노트앤노트 / 2026년 1월
평점 :
제목 : 당일치기 조선여행 : 전국편
작가 : 트래블레이블
출판사 : 노트앤노트
읽은기간 : 2026/05/09 -2026/05/12
예전에 서울편을 읽고 재미있어서 전국편을 추가로 읽었다.
결과는? 역시 재미있었다.
테마가 있는 여행이라 더 재미있다. 다만, 책에서 스토리로 읽는 여행지와 실제 추천하는 여행지가 약간 다르다. 아마 유적이나 유물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전국편이라 전국의 이곳저곳을 보여주는데 경주나 수원처럼 잘 알려진 곳도 있지만 대전이나 제주처럼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지역도 있었다.
새로운 곳을 배우니 배우는 기쁨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의 모진 역사를 알게 되니 마음이 아리고 슬프다.
식민지 역사는 읽어도 읽어도 힘들다.. 그당시를 살아내신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모두가 고생이다. 그런일 없기를...
전국편을 봐서는 좀 더 많은 지역을 다루는 후속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p28 방화수류정은 용두바위 위에 지은 각루입니다 정조는 각루 아래 용연과 용두바위를 보고 상서로운 바위의 모습이 우연은 아닐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용머리를 한 용두바위에 뿔을 선물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용의 뿔과 비슷한 형태인 십자각 지붕이 탄생했지요.
p44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겪을 때는 영혼 숭배자이다.
p48 광희문은 저승길의 첫 번째 관문이자 이승과 작별하는 마지막 장소였습니다. 먼 길 떠나는 망자의 평안을 바라는 유가족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무녀를 불러 노제를 치르곤 했습니다.
p58 세습무는 자신이 속한 고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사제이자 굿을 책임지는 일종의 행사 전문가였는데요. 고을의 사당, 신당 등을 관리한다는 의미로 고을(골)과 당이 더해진 당골, 당골네, 단골 등으로 불렀습니다. 지역 사회에 굿이 필요할 때면 사람들은 지역 행사 전문가인 단골집을 찾아갔겠죠? 때마다 세습무를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단골손님이라는 표현이 파생되었습니다.
p76 기대승이 사단과 칠정은 각각 이와 기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며 이황의 주장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며 일단락되었으니까요. 8년간 두 수취인 사이를 부단히 오간 편지는 그 시절을 살았던 선비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p104 허초희는 어릴 적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시에 재능을 보였는데, 오빠 하곡 허봉은 그의 시가 더욱 깊어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손곡 이달을 스승으로 소개해주고, 명나라를 다녀올 때 귀한 시집을 구해다 선물하기도 했지요.
p115 1957년 일본에서 발행된 잡지 공예에 공예적 회화란 글을 기고하는데,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게 구전되는 그림이라 정의하여 민화라 명명했죠
p157 1888년 개항장에는 국내 최초로 영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약식 호텔, 대불 호텔이 그랜드 오픈을 맞이합니다. 일본인 거류지에 위치한 대불 호텔은 일본인 사업가가 건립해 외국인 선교사, 외교관, 상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지요.
p180 친일 인사들이 서촌에 터를 잡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서촌을 두르고 있는 인왕산은 기세가 강하고 양의 기운이 넘쳐 엎드려 수도를 지키는 호랑이 형상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왕기가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권력자들도 탐내던 땅이었지요.
p186 김가진이 떠난 후 백운장은 요정이 되었다가 광복 후 부통령 관저로 쓰였고, 1962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매입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각석과 석조물이 전부지만, 이곳에 맑은 삶을 살았던 이가 있었음은 바위에 남은 그의 글씨처럼 선명히 우리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p206 400여 명의 환자와 함께 경성에 나타난 최홍종을 본 일제 총독은 크게 놀랍니다. 그제야 지금껏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태도를 바꾸어 나병 환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일본군의 휴양지였던 소록도가 한센병, 즉 나병 환자를 치료하는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알려지게 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p226 박태준은 1924년 자신의 모교인 계성학교로 돌아오 ㅏ합창부와 악대부를 지도했습니다. 또한 어릴 때 함게했던 대구제일교회 합창단의 지휘자로 활동하며 그곳에서 일곱 살어린 후배 윤복진을 만납니다. 음악을 매개로 친구가 된 그들은 첫 동요곡집인 중중떼떼중을 시작으로 양양범버궁, 도라오는 배까지 총 3권의 책을 무영당을 통해 발간합니다.
p233 이상화는 벗어날 수 없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격렬한 울분과 저항을 시에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개벽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억눌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를 본 일제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개벽은 작두로 썰리고 강제 폐간되었습니다.
p271 눈부신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이나 최상위 계층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한껏 공들여 만든 금관이었으니 얼마나 화려했을까요. 이 고분은 사상 최초로 금관이출토되면서 금관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p283 고려시대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경주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사성장 탑탑안해”, 절과 절이 하늘의 별처럼 많고, 탑과 탑이 기러기처럼 줄을 잇는다는 뜻입니다. 신라는 이 땅이 곧 부처가 계신 곳이라는 불국토 사상을 믿으며 경주 일대에만 100여 개의 사찰을 지었다고 합니다.
p310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은 대전에서 보기 드물게 원형이 잘 보존된 근대 건축물로, 1930년대 일본에서 유행하던 관공서 건축 양식으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자는 시즈오카현 청사 본관과 외형이 유사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p319 대전 골령골 산골짜기에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가로 30m에 달하는 집단 매장지가 조성된 것입니다. 1950년 6월과 7월 사이, 20여 일 동안 수감자들은 골령골로 줄줄이 끌려갔습니다. 미결수부터 정치사범, 과거 좌익에 뜻을 뒀다가 전향한 이들까지 최소 1800여 명의 비명이 그 골짜기를 휘감았습니다. 좌우의 이념이 대립하던 시대, 학살자는 다름 아닌 정부와 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