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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4월
평점 :
제목 : 한국이란 무엇인가
작가 : 김영민
출판사 : 어크로스
읽은기간 : 2026/04/06 -2026/04/11
약간은 비틀어서 글을 쓰는 정치학자 김영민님의 책
비틀었다는 것은 냉소와 야유가 포함되어 있어 읽기에 불편할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읽고 있다.
한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고 하는데 사실 다 현재처럼 읽힌다.
과거도 지금의 문제처럼 읽히고 미래도 지금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런말 해주는 사람도 있고, 국뽕이 차오르게 만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난 그 둘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한쪽에 많이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걸으며-이렇게 말하지만 줏대없는 소시민으로- 잘 살아가봐야지.
p24 삼국유사를 다시 읽어보면 홍익인간이라는 말의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하늘신 환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홍익인간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늘신의 목소리다. 주어가 하늘신임을 생각하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다”라는 말은 더 이상 밋밋하게 들리지 않는다. 하늘신이 하늘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하필 저 아래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관심을 둔다니.
p32 단군신환의 진짜 인간관은 웅녀에게 응축되어 있다. 바로 문명화를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인간, 미래의 새로운 자신을 위해 오랫동안 인내할 수 있는 인간, 변화를 위한 자기 통제를 해내는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
p34 올해 안에 무엇을 기어이 끝내겠다는 결심 같은 건 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학위 논문을 쓰는 학생들에게나 어울린다. 한편 올해가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는 일들은 올해 안에 하려할 것이다.
p63 우리에게는 두 개의 존재가 있으며, 따라서 두 번 죽는다. 평소에 입고 먹고 싸고 말하고 숨쉬던 물리적 존재는 수명이 다하면 죽는다. 그러나 도 하나의 존재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애도하고 계승하고 보내주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누군가 그를 계승하기를 포기하 ㄹ때, 기억하기를 포기할 때, 애도하기를 포기할 때, 마침내 떠나보낼 때 그는 비로소 죽는다.
p73 정조의 말을 통해 그 많은 사찰은 다 나름대로 국가에 필요한 존재들이었기에 남아 있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아무리 이데올로기적으로 억불을 외쳐도 현실적 필요가 있으면 국가와 종교는 공조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새삼 확인할 수 있다.
p92 고독한 답사가를 자처하는 사람이었건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비용을 내가 댈테니 함께 유교랜드에 갑시다. 이 너그러운 제안을 가족도 조교도 모두 거부했다.
p101 서양의 대표적 한국사 연구자였던 제임스 팔레는 1995년 한국적 특수성을 찾아서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주요 논지 중 하나는 노비의 존재야말로 한국사의 특징이라는 것이었다.
p103 한국사에서 노비는 단순히 신분제 때문에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다. 노비는 집단적인 망각과 무시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도 사뭇 흥미롭다. 그토록 많은 노비가 실존했으나 지금은 노비의 자손(을 표방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바로 현대 한국이다.
p118 천황을 숭배하는 조선신궁 앞에서 한국인들은 술판을 벌였고, 제국주의를 찬양하기 위한 박람회에서 한국인 여성 가이드는 한 번에 50전을 받고 볼 뽀뽀를 해주며 돈을 벌었다. 근대적 위생을 선전하기 위해 공중변소를 지어놓았더니 소변기에 올라가 대변을 본 한국인도 있었다.
p137 미셀 푸코에 따르면 법을 어기는 것이 쿠데타가 아니라 법을 초월하는 것이 쿠데타다. 그래서 미셀 푸코는 쿠데타 상황에서 국가이성은 법 자체에 명령한다고 말했다. 법을 어기고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권위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 쿠데타의 본질이다.
p142 소년이 온다는 한국현대사가 낳은 구상도이기 때문이다. 구상도란 인간의 시체가 어떻게 부패해가는지를 두 눈 똑똑히 뜨고 보라고 권하는 그림 장르다.
p149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 죽은 동호의 어린 시절을 엄마는 이렇게 회상한다.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
p179 대학에 온 이상 학생들은 수행서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을 또렷이 응시하는 텍스트를 읽을 것이라고, 김윤식은 믿었다. “그 계기란 도처에서 예감처럼 온다. 군이 창공의 별을 응시할 때 온다. 헤겔을 읽을 때 온다. 무진기행을 읽을 때 온다. 릴케를 읽을 때 온다” 그렇게 읽고 읽다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고독한 자신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김윤식은 단언한다 “이점은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p194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운동 경력을 발판으로 너도나도 정계에 입문하는 상황에서 김장하는 결국 한자리 해먹기 위해서 선행을 한다는 의혹과 싸워야 했다. 그러한 의혹에 대해 김장하는 애써 대꾸하지 않는다. 그는 끝내 정계의 한자리를 하지 않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p211 현장 사진가의 소명은 대상을 핍진하게 보여주면서 그 대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한국 관련 전시의 소명은 눈앞의 한국을 보여주되, 전형적인 한국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왜 그래야 하냐고? 애증의 나라, 한국의 현실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나 “케이팝의 나라”와 같은 상투어로 요약될 수 없을 만큼 뒤틀려 있으니까.
p247 한국 사회의 대표적 특징들, 이를테면 저출산, 부동산 투기, 입시 과열, 수도권 집중이 걱정인가? 그것들 역시 사람들이 잘못하거나 무지몽매해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나름) 합리적 행동이 낳은 현상이다.
p273 월트는 유지 보수의 달인이다. 자기집과 이웃집을 가리지 않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치고 수선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게 한다. 우리 몸에 완전한 컨디션이 없고 우리 집에 고장 없는 날이 드물듯이, 이 세상은 늘 어딘가 낡아가고 삐걱거린다. 보수 우익은 파괴하거나 새로 짓는 사람이 아니라 쉼 없이 수선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