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미술관 - 마침내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이 된다 아무튼 시리즈 80
이유리 지음 / 제철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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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튼 미술관

 : 이유리

 : 제철소 

읽은기간 : 2026/02/15 -2026/02/17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얼마전 '아무튼 리코더'를 읽었다. 책을 읽고 간단한 독후감을 기록했는데 이 책의 저자 남편분이 댓글을 달았다. 

자신의 배우자가 새로 책을 냈는데 읽어주면 좋겠다고.. 읽기 위해 사놓은 책들이 있어서 게속 못읽고 있다가 이번 설 연휴때 드디어 읽었다. (이래서 연휴가 좋다^^)

책이 나온다는 것은 저자가 무엇인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내 생각을 바꾸든가, 내가 반박하고 싶게 만드든가, 뭔가 다른 생각을 하게 하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아무튼...' 시리즈는 저자의 생각을 알기가 편해서 좋다. 

저자인 이유리님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미술관에 대한 책을 쓸 만큼 할 이야기가 많았다. 

저자가 과거에 오르세 미술관을 거닐때 나도 그 즈음에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았다.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품을 봤는데 누구는 작가가 되었고, 누구는 회사에서 엑셀과 씨름하고 있다. 감동의 농도도 다르고, 생각의 깊이도 다르고, 영혼의 흔들림도 다르다는 뜻이다. 

미술관이 주는 공간감과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도 재미있었고, 도발적인 작품도 미술관에 들어와 체제순응적인 작품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섬세한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지점은 나처럼 둔한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단지, 이렇게 책으로 상상해볼뿐.. 

그래서 책이 좋다. 남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재미있었다. 


p20 나는 화가들이 덧없는 삶 너머의 희망을 엿보며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p32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너는 정말 불편해라며 지적하던 손가락을 나 자신에게 돌려 그런데 나는 이게 왜 불편할까?라고 자문해보는 거죠

p47 미술관은 단순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예술작품의 정신을 잘 담아내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빚어낸 그릇에 가깝다.

p50 내가 갔을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차에, 작가 노트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저는 스펙터클한 미술관을 보러 갔는데, 정작 보게 된 것은 스펙터클한 군중이었습니다.

p58 1979년 이탈리아의 정신의학자 그라치엘라 마게리니는 이러한 경험을 한 여행객 100여 명을 조사해 이 현상에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명칭은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이 1817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기절 직전까지 갔던 일화에서 유래했다.

p64 미술관으로 가는 시간은 작품을 매개로 밀려오는 내 감정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락의 여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작품이 내 견고한 세계를 깨뜨려줄 순간을, 그리하여 내 차가운 심장을 덥혀주기를. 온몸의 감각을 활짝 열어둔 채, 나만의 작은 노란 벽면을 만날 때까지

p80 예술이란 그 시대의 권위, 제도, 가치관애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응답했는지 알 수 있는 흔적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정신사도 일별할 수 있는 셈이다

p89 박지원 작가는 산책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넉넉함을 느낀다는 자족이라는 말이 스스로의 발을 뜻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라고 썼다.

p121 미술관에서 뭔가를 사는 행위는 미술관에서 얻은 감수성을 현실로 환원하는 시도다. 그러니 죄책감 따위 가지지 말지어다.

p129 미술관에 가면 우리는 종종 헐벗은 여성, 장애인을 희화화한 그림,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엣 작품을 만난다. 지금 우리 눈에는 차별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그려졌던 당대에는 누구도 문제의식을 갖지 ㅇ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p136 그렇게나 뾰족했던 올랭피아도 오르세에 입성하자 완전히 무장해제되었고, 뱅크시의 날카로운 조롱 역시 미술관이라는 청정지대에 들어서는 순간 체제가 부여한 권위에 흡수되었듯이 말이다. 오죽하면 미술관이 예술가를 사랑하는 방식은 박제사가 사슴을 사랑하는 방식과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을까

p168 한국전쟁중이던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그는 곧 다시 만나서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자며 약속 중이다. 여백에는 애끓는 그리움을 담아 아내와 아이들을 한꺼번에 부둥켜안은 모습도 그려 넣었다. 당시의 그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는 안다. 그는 결국 아이들이 다 큰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둘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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