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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서울 사찰 여행 - 조선 불교 이야기 ㅣ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5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5월
평점 :
제목 :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서울 사찰 여행
작가 : 황윤
출판사 : 책읽는고양이
읽은기간 : 2025/08/11 -2025/08/23
우리나라 유물, 유적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황윤님의 2025년 책..
예전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처럼 이야기체로 글이 쓰여져 있어서 읽기 쉽고, 내용도 알차다.
이번 내용은 서울의 사찰이야기다. 그것도 주로 조선시대 사찰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보신각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동했었는지, 봉은사는 어떤 의미인지, 조계사가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해서 알게 됐다.
생각보다 서울의 유적을 내가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가 다르다보니 불화나 부처님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책에서 꽤 자세하게 설명을 해줘서 나중에 부처님을 보러 가게 되면 삼존불이니, 삼세불이니 하는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교와 유교의 충돌속에서도 불교는 조선시대 내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물이 사찰과 불화로 나타난다는 것도 재미있다.
과거 사람들과 대화하며 내가 사는 세상을 돌아볼 수 있어서 역사가 참 좋고 재미있다.
좋은 책이다.
p38 간경도감은 11년간 운영되다 친 불교 기관이라는 비판 속에 성종 2년인 1471년에 문을 닫았는데, 짧은 기간 동안 한문, 한글 불경까지 합쳐 무려 47권 이상의 책을 인쇄 출판하였다.
p51 성리학 근본주의에 빠지면 빠질수록 불교를 더욱 업신여기며 비판하곤 했다. 이와 달리 왕실, 특히 왕실 여성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은 계속 이어졌기에 왕의 입장에서는 난처한 경우가 종종 생겨났다.
p56 정확안 위치는 현재 명동성당이 자리 잡은 장소다. 그러다가 광해군 때 옛 종루 터에 종루를 짓고 종을 다시 옮겨왔으니, 앞서 보신각에서 이야기했듯 이때부터 사실상 보신각종이 된다.
p70 사실 이러한 조선 초 무덤 디자인은 불교가 국교였던 시절 조성된 고려 공민왕의 능을 모범으로 조성된 것으로 세종 시대를 기점으로 유교 의례가 강조됨에 따라 불교식 디자인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p107 이르 ㄹ미루어 보 ㄹ때 연산군 말기부터 중종 초반까지 조선의 분위기는 1960-1970년대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과 유사했던 모양이다. 특히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반달리즘이라는 부분이 동일하다.
p120 18세기 후반부터 사대부들의 불교에 대한 관점은 조선 전기에 비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는 사실.
p132 아미타불이 모셔진 장소는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등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면 사찰 여행 때 큰 도움이 될 듯하다.
p152 하나의 그림 안에 동일한 사람이 여러 번 등장하고 있으니, 이는 시간 순서에 따라 이어지던 여러 사건을 하나의 그림 안으로 묶어 표현한 스토리텔링으로 보인다. 즉 해당 그림은 석가모니 탄생때 벌어지던 여러 일을 묶어 한 폭으로 그려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p209 석가모니 양 옆에 위치한 문수보살은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며 보현보살은 실천을 상징한다. 한마디로 최고의 지혜를 깨닫고 이를 실천해야 함을 의미. 이에 따라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에는 보통 석가모니의 오른편에는 문수보살을, 왼편에는 보현보살을 모신다. 아미타불 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함께하는 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이를 협시보살이라 부른다.
p224 석가모니가 포함되어 삼신불 또는 삼세불이 구성되는데,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하나의 전각 안에 1. 석가모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 삼신불을 모시기도 하고, 또는 2. 아미타불, 석가모니, 약사불 = 삼세불을 모시기도 한다.
p232 미를을 표현한 것으로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이 유명하며, 본인이 미륵이라 주장한 궁예, 고려 말 미륵 신앙에 기댄 이성계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더 자세한 미륵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을 참고하면 좋겠다
p232 흥미로운 부분은 자장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설사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이도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조상에 대한 제사 문화가 남달랐던 조선 시대에 들어와 특별히 더 사랑받는 보살이 되었다는 점이다.
p237 은퇴한 왕실 여성들은 정업원 외에도 궁궐 주변의 궁가에 머물기도 했는대, 예를 들면 의빈궁, 자수궁, 혜빈궁, 신빈궁, 수성궁, 창수궁, 정청궁, 인수궁 등이 그것이다. 선왕의 후궁들이 머문다 하여 격을 높여 궁이라 부른 것인데, 궁궐 법도에 따르면 왕이 죽으면 왕비를 제외한 나머지 후궁들은 궁궐 밖으로 나가 살아야 했기에 이들의 거처가 따로 필요했다.
p249 문정왕후의 400점 불화 조성은 왕실 여성이 지원한 조선 시대 불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p262 견성사는 성종의 능이 조성되자 이번에는 왕릉을 위한 능침사가 되었다. 대군의 원찰에서 왕의 원찰로 격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선릉 동쪽으로 조금 이동한 후 견성상에서 봉은사로 이름이 바뀐다.
p287 금표가 세워지자 에전처럼 유생들리 사찰로 마음대로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것을 막게되었으며, 금표 내 모든 물자를 왕실의 재산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사찰과 왕실 간 상부상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p291 마륵대불 뒤편의 언덕쪽에서 코엑스를 바라보면 사찰과 코엑스 주변 건물이 함께하는 엄청난 뷰가 등장한다.
p303 1593년에는 사명대사를 당상관으로, 1594년에는 정3품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로, 1602년에는 종2품 하계 가선대부 및 동지중추부사로 증진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1605년 종2품 가의대부에 이르게 된다.
p305 조선 불교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호국 불교의 이미지로 다시 한 번 부활하였다. 그동안 매번 불교와 승려는 나라에 쓸모없는 존재라며 비판하던 유학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쾌거이기도 했다.
p310 이 판전은 김정희가 죽기 불과 사흘 전에 쓴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사실. 유배 생활이 완전히 마무리된 1852년부터 과천에서 지내던 그는 이 당시 아예 승복을 입은 채 봉은사를 다녔다고 하는데, 젊을 때부터 유달리 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나 힘든 유배생활을 거치며 말년에는 더욱 깊은 종교인이 된 듯하다.
p316 사실상 판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근현대 것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만일 임진왜란 때 피해를 받지 않았다면 봉은사에 얼마나 수준 높은 옛 작품들이 많이 있었을까 종종 상상해본다.
p332 이 일을 기점으로 정조의 옥불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식어버렸는지 어떠한 기록에도 더이상 관련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별다른 효험이 없는 불상으로 여겨지며 무관심 속에 사라진 모양이다.
p338 제목이 관음32응신도인 이유는 앞서 보았듯이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이 부처님부터 집금강신까지 총 32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p342 제목은 수월관음보살도로 이때 달=영원불면한 불법, 물=불성을 뜻한다. 마치 하늘에 떠 모든 곳을 비추는 달처럼 불법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고 있으니, 마음을 맑게 하여 자신의 불성을 깨닫는다면 맑은 물에 달이 비추듯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진리를 관세음보살이 알려주고 있는 장면이라 하겠다.
p363 참고로 불교 5대 명절은 석가모니 탄생일(음력 4월 8일), 석가모니 출가일(음력 2월 8일), 석가모니 깨달은 날(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 열반일(음력 2월 15일), 백중(음력 7월 15일)이다.
p380 이러한 인식은 동시대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덕분에 우란분재 또한 점차적으로 지장신앙과도 연결되기에 이른다. 지옥에 빠진 이들을 구원하는 지장보살이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시점이 된 것이다.
p384 지장보살은 이전에 이야기했듯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내려와 새로운 부처가 될 때까지 석거모니를 대신하여 여러 죄를 짓고 지옥의 고통을 받는 이들을 해탈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p390 사실 창빈 안씨의 묘가 현충원에 있는 이유는 이곳 현충원 영역의 대부분이 본래 창빈 안씨의 묘 영역이기 때문이다 즉 창빈 안씨 묘 영역에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현충원을 조성했기에 지금까지도 창빈 안씨의 묘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이 주변 땅의 원주인이니까
p397 우리가 전에 방문했던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흥천사는 명부적 이름을 지닌 건물 안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그 주위로 사후세계를 관리하는 10명의 왕과 지옥 관리들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p400 뛰어나고 영험한 지장보살이란 무슨 의미일까? 이는 곧 49재를 마친 직후 가족의 꿈에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너무나 평온하고 기분 좋아 보이는 경험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p410 달마사 도착 후 한강뷰를 바라본다. 기와지붕 사이로 펼쳐지는 한국 전통건축의 미와 현대 건축이 어우러져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낸다. 여의도가 지척이라 63빌딩을 포함한 여러 높은 빌딩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걸. 특히 요즘 들어 서울에서는 한강뷰를 최고로 꼽던데, 그렇게 보면 최고의 한강뷰를 지닌 사찰이 아닐까 싶다
p421 한때 보천교의 중심 건물로 지어졌던 건물이 조계사 대웅전이라 하겠다.
p432 만일 조계사에 영산전이 만들어진다면 한정된 부지 내 건물뿐만 아니라 그안에 조성할 부처님 제자인 십육나한 조각과 불화까지 조성해야 하니 엄청난 불사가 필요하겠구나. 이렇듯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기에 쉽게 진도가 가가지 않는 듯하다
p436 이렇듯 조계사의 역사는 아직 채 100년이 안되었기 때문에 대웅전에서 만날 수 있는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근현대에 조성된 모습이다.
p439 감로도는 당대 풍속이 가장 아래 부분에 그려진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근대인 1939년에 그려진 흥천사 감로도에는 양복을 입은 사람이나 스케이트를 즐기는 모습, 도로 공사, 자동차, 코끼리가 등장하는 서커스, 근현대 전쟁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