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는 순간 - 안희연의 여행 2005~2025
안희연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줍는순간

 : 안희연

 : 난다

읽은기간 : 2025/07/06 -2025/07/10


안희연님은 알쓸신잡에서 처음 봤다. 

시란 사람들에게 고통을 일깨우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책을 골라서 읽었다. 시집이 아니라 기행문이라는 게 함정..

본인의 20년 여행를 모아 쓴 책이라고 한다. 

시인이 보는 여행장소와 느낌은 일반인이 내가 보고 느끼는 것과 확실히 달랐다. 

직접 찍었다는 사진의 뷰도 내가 찍었던 사진과 달랐다. 

그 다름을 표현하기에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양이 너무나 적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느낄 수 밖에.. 

느낌은 찰나에 지나가고 다시 복귀할 수 없어서 서글프다. 

느낌을 저장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풍성한 삶일텐데.. 

어쩌면 저장할 수 없어서 더 찬란하고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반면 시인은 그 느낌과 찰나의 감정을 시어로 담는다. 그래서 시를 읽나보다.

시인의 여행을 훔쳐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이런 기행문 좀 써야 할텐데...


p20 과거의 장면을 읽고 쓰면서 우리는 남은 날들을 채워갑니다. 때론 과거의 문장 한가운데에 취소 선을 긋고 새 문장을 적어넣으며 시간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실패했다가도 돌아오고 멀어졌다가도 가까워지는 과정을 여행이라 부르면서요

p36 모든 이별에는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남겨지고 버려지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등은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이를 악물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p42 그는 앨범을 가지고 돌아왔다. 선물이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값을 치르겠다고 했지만 그는 한사코 만류하며 “여행자의 행운!”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행자의 행운… 곱씹을수록 달콤해지는 말이었다.

p99 바람이 분다. 살라야겠다는 시구로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던 시인. 그때것 그의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저 구절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110 그녀는 1965년 1월 10일에 죽었고 나는 지금 그 겨울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여름에 도착해 있지만 우리가 다른 장소에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p121 내게 페소아는 다른 존재가 되는 일에 열심인 사람이었고 자유분방하고 천진난만한 심성을 지닌 작가였다.

p129 이 이상한 느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의 작품을 흝어가던 중에 사쿤탈라를 만났다. 로뎅과 자신의 사랑을 조각한 것이라던 사쿤탈라 앞에 서는 순간 정수리 위로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무릎이 꺾이는 느낌이었다

p144 그후로도 나는 수 년간 보들레를 원망해야 했으나(아내 내가 파리까지 가서 간청했건만 또 나를 떨어뜨렸단 말이냐!) 이제는 안다. 그가 나를 단련시켰던 것임을. 그에게 편지를 건네고 꼬박 육 년 뒤, 나는 정말 시인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언어의 주술적인 힘을 믿는다.

p155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삼십세)고 했던가. 그렇게 참담한 기분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무쪼록 마음이 이상했다.

p170 그대 거기가 아닌 지금 여기 생생하게 다가오는 가슴 저린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무기력함을 느꼈다.

p193 여주인공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기라도 하면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고 갑자기 스크린 앞으로 달려나가 춤을 췄다. 주인공들이 노래라도 부르기 시작하면 무려 떼창, 그렇다. 떼창을 하는 것이다.

p211 절의 예법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 내게 “그간 여행하며 절집에 많이 다녔다면서 겉만 보고 다녔습니까. 그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구하는지를 봐야히죠” 하셨고, 옷을 얇게 입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보시곤 “그러게 왜 옷을 얇게 입습니까. 몸이 아프면 잘 돌봐주고, 옷도 입혀주고, 때 되면 밥도 먹여주고, 약도 먹여주셔야지요. 자동차를 잘 굴려야 길을 가지 않겠습니까, 애기 보살” 하셨다.

p241 사랑이 한 사람을 두 눈 속에 담는 일이라면 페와는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을 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은 만년설이었고 그에겐 눈꺼풀이 없으므로 눈을 감을 수조차 없었다.

p266 그렇게 나는 두번째 삶을 시작했다. 단순하고 순진했던 믿음을 깨부수고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믿음을 받아안았다. 달라질 게 없는 이곳에서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이 시를 쓰고 삼시 세끼 밥을 먹는다. 이 삶의 성공 여부 역시 알 수 없다. 오히려 더 허무하고 무기력할까봐 두렵다. 그렇지만 이런 건 어떨까. 믿음이 거세된 믿음, 무가치한 것을 쌓아 만든 견고한 성벽

p269 글 쓰는 거 힘들지? 원래 생각의 초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장들은 대개 거칠고 성길 때가 많아. 그렇더라도 쓰는 행위 자체에 제동을 걸어선 안돼. 일단 한두 방울쯤 그냥 흘려보내는 마음으로 쓰는 거야. 그러다보면 필요한 문장들이 도착하는 순간도 오겠지.

p280 우리는 왜 예술을 하는 걸까. 세상 모든 창작물은 고정불변의 무엇이 아니라 일종의 가건물, 조립식 컨테이너, 철거 비계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부수고 쌓는 전 과정이 노래이고 춤이다. 그러니 미래를 가진 사람들이여, 무엇이 되지 않으면 어떠한가. 의미는 그다음 문제다. 일단 노래하라, 계수나무 바람에 흔들리듯이.

p315 시간이 흘러 이제 그런 여행은 예전만큼 즐겁지도 가능하지도 않게 되었다. 너무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한 탓에 웬만한 장면에는 감동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