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리커버 에디션)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 성수영

 : 한경 arte

읽은기간 : 2024/04/27 -2024/05/05


미술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화가의 삶과 작품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진다.

여전히 그림을 못 그리지만, 보는 것은 즐거워졌다. 

자주 보고, 작품에 대해 알게되니 궁금한 점은 늘어가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자꾸 읽게 된다. 좋은 선순환이다.

이 책은 작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을 보니 눈에 익숙한 작품이 많은데 작가의 이름은 낯선 사람이 꽤 있다.. 

작가의 삶을 읽어보니 눈물없이 못 읽을 삶도 있고, 부자였다가 가난해진 사람, 끝까지 평탄하게 살던 사람 등 다양한 삶을 알 수 있었다.

상당수의 작가들은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이 가난하게 살다 갔다.

왜 작가가 죽고 나서야 그 진가를 알아보게 되는 것일까?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집에 두고 읽어야 작가들의 이름에 익숙해질 수 있을듯하다. 다만, 이렇게 책을 사모으다 보면 책장이 남아나지 않는다. 

책을 사야할 지 갈등이 들게 하는 책이다. 


p8 이 책은 그림을 작가의 삶과 연관 지어 설명합니다. 그림의 주재료인 작가의 관점, 그리고 그 관점의 원료인 삶을 알게 되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p21 1960년대부터 레이턴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레이턴은 빅토리아 시대의 위대한 영국 화가로, 프레이밍 준은 남반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세기의 명작으로 대접받게 됐습니다. 레이턴의 연인이자 배우였던 딘에 대한 관심도 커졌지요. 이에 따라 둘의 사랑이야기도 재조명받게 됐습니다.

p27 러시아에서 샤갈에게 미술을 가르쳤던 선생님(레온 박스트)은 파리에서 샤갈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의 그림 속 색들이 제각기 노래를 부르는 것 같군”

p38 캐슬린이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던 폐결핵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1882년 캐슬린은 불과 스물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둘이 함께한 시간은 고작 6년.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더라도 반드시 지키고 싶었던 단 하나의 사랑이 그렇게 허무하게 티소를 떠나갔습니다.

p58 모네는 꺾이지 않고 자신의 직감을 끝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훗날 모네는 회고했습니다. “나는 위대한 화가가 아니다. 단지 내가 느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 과정에서 세상의 그림 그리는 규칙들을 자주 잊어버렸을 뿐이다”

p63 10대 시절부터 늘 사이가 좋았던 둘. 하지만 1914년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모네의 아들은 당시 레옹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레옹의 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사용하던 화학물질의 독성 때문에 모네의 아들과 레옹의 딸이 연달아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화학물질의 유독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일로 형제는 서로의 탓을 하며 크게 다퉜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p80 그림을 지나치게 자세히 그리는 남편에게 “다 그릴 필요 없다”고 조언한 게 대표적입니다. “해부학 그림 같아. 그런 종류의 화가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나는 그런 그림은 재미없더라. 카드를 다 보여주지 말고 숨겨” 앤드루는 곧바로 조언을 받아들였고, 덕분에 그의 그림은 더욱 신비로워졌습니다.

p84 헬가 사건은 곧바로 미국 문화계의 최대 스캔들로 떠올랐습니다. 앤드루가 그린 헬가의 그림은 1986년 8월 18일 자 타임과 뉴스위크의 표지를 동시에 장식했습니다. 피카소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1987년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공개돼 전시됐고, 미국 전역의 다른 주요 박물관 여섯 곳을 순회하며 총 백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모았습니다.

p95 당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결혼하면 예술은 종 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구스타브 쿠르베는 유부남은 예술에서 반동이다라고 했으며, 외젠 들라크루아는 당신이 사랑을 한다면 그건 안 좋은 일이야. 상대방이 예쁘다면 최악이지. 예술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죽어버리거든. 예술가는 다른 모든 걸 버리고 작품에만 열정을 가져야 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p112 유언에 따라 그의 인상파컬렉션은 루브르박물관에 기부됐습니다. 관련 업무는 유언에 따라 친구였던 르누아르가 도맡았습니다. 인상파를 극도로 싫어하던 당시 미술계 주류와 박물관 위원회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결국 조건부로 기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지금 루브르 박물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이 됐습니다.

p118 40대에 들어 그는 본격적으로 빛과 색채의 실험을 시작합니다.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가 태어나기 수십 년도 전에 인상주의와 추상화로 발을 내디딘 겁니다. 하지만 너무 일렀던 걸까요. 그림에는 병에 걸려서 앞을 제대로 못보는 노인이 본 장면 같다. 무미건조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p134 전 세계 언론들이 수백 개에 달하는 부고 기사를 썼고, 그 내용 대부분은 위인전에 가까운 칭찬이었습니다. 당시 기사들을 읽다보면 “이렇게 착하고 친절하고 헌신적인 사람이 어디 있어? 세상을 떠났다고 너무 칭찬만 한 것 가니야?”라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지만, 어던 편지나 기록에서도 그의 인품에 대한 기록은 오직 칭찬뿐입니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

p140 초현실주의에 대한 사랑조차도 아내에 대한 사랑에는 못미쳤습니다. 초현실주의자 모임의 대표 격인 앙드로 브르통이 모임에서 조르제트의 십자가 목걸이에 대해 “낡은 질서와 부르주아의 상징이니 당장 치워달라”고 모욕적인 말투로 요구하자 마그리트는 조르제트의 손을 잡고 나와버렸고, 초현실주의자 모임에서도 탈퇴했습니다. 마그리트는 말했습니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남자는 얼마나 행복한다”

p142 마그리트의 유명한 작품 이미지의 배반에는 담배 파이프가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밑에 쓰여 있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그린 그림일 뿐이다. 이런 뜻입니다. 단순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숨겨진 뜻은 좀 더 심오합니다. 파이프를 아무리 잘 그려도 그건 파이르 그림일 뿐, 파이프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말은 말이고 그림은 그림일 뿐, 아무리 잘 쓰고 그려봤자 대상의 본질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p152 마네는 끊임없이 살롱의 문을 두드리며 정면 돌파를 고집했습니다.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배경, 사회 주류의 인정을 갈구하는 성격 때문이었지요. 안타깝게도 이런 시도는 마네가 필요 이상으로 미술계의 집중적인 조롱과 비난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p158 남들은 전설이라고 추켜세우지만, 아내 수잔과 아들 레옹에게 마네는 그저 형편없는 가장일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레옹은 마네의 성을 이어받지 않고 사생아 시절 성을 고수했거든요. 마네의 아내와 아들은 마네가 남긴 그림을 정리하고 기록을 남겼지만, 이는 그저 작품을 현금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p159 은퇴 뒤 그는 노르망디에서 말년을 보냈고, 1927년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레옹의 이런 평범하고 소박한 은둔자 같은 삶은, 화려하게 살다 죽어서 전설이 된 아버지와 정확히 반대입니다.

p166 하지만 묀스테드는 그러지 못했씁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오늘날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장인이 만들어낸 공예품에 가까운 취급을 받습니다.

p169 이런 맥락에서 묀스테드의 작품에는 다른 위대한 명화들에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자연은 아름답고 나는 그걸 잘 그려놨잖아. 어때, 멋지지?”하는 듯한 친근함과 편안함이 있습니다.

p175 그의 작품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움직임은 다소 가장돼 있고 원근법과 단축법도 독특하지만, 그래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빛을 비추는 실험을 직접하며 공부해서 그런지 명암 대비는 다소 불안정한 느낌을 주지만, 강렬하고 신비롭습니다.

p176 티치아노는 서른 살이나 어린 틴토레토가 뭐가 그리 맘에 안 들었는지 틈만 나면 틴토레토의 욕을 하고 뒤로 손을 써서 일감 수주를 방해했습니다. 틴토레토가 티치아노에 대해 항상 좋은 말만 했던 걸 감안하면 졸렬하지요.

p181 그들은 틴토레토가 그린 천국과 성서 속 장면들을 올려다봤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지금 삶이 힘들지만,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 나도 복을 받을 거야’ 끊임없는 견제와 배척을 견디며 화가가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건 바로 이런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틴토레토라는 이름은 그렇게 전설이 됐습니다.

p184 대자연이야말로 세상의 섭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평범한 사물에서도 우주의 원리와 신의 존재를 떠올리던 그에게는 풍경화야말로 진정한 예술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여기서 한 걸을 더 나아갔습니다. 자신의 마음속 여러 풍경을 섞어 재구성한 겁니다. 대자연이 품고 있는 위대함과 무한성을 최대한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지요. 안개와 어둠, 빛에 대한 특유의 섬세한 묘사는 이런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p191 그의 삶에는 수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느루아르는 집요할 정도로 행복한 그림만을 그렸고, 행복의 화가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르누아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p193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르누아르는 1866년 일곱 살 연하의 그림 모델인 리즈 트레오와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랑이 담겨서였을까요. 르누아르가 그녀를 모델로 그린 작품들은 르누아르의 젊은 시절 그림 중에서도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p201 밥을 굶을 때도, 세상이 그의 작품에 돌을 던질 때도, 딸과 생이별했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거나 자신의 곁을 떠날 때도, 격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도 오직 행복만을 그렸습니다. 르누아르의 손이 붓을 건드리는 모든 순간마다 어김없이 캔버스에는 화사한 행복이 피어났습니다.

p202 르누아르의 사후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숨겨둔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고인의 뜻과 명예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를 비밀에 부치기로 했습니다. 르누아르의 아들 장이 1958년 출판한 아버지의 전기에도 이 사실을 빠져 있습니다. 르누아르가 리즈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는 사실은 2002년 한 편지가 발견되면서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p214 지금도 앙소르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것들은 1880~1895년, 한창 어려웠던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작품입니다. 이 시기 이후 앙소르의 작품 대부분은 초기 작품의 재탕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p237 부모님의 불화,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조금 뒤틀린 애정, 신체적인 장애, 그 속에서도 빛나는 눈과 섬세한 손, 비운의 천재 화가를 만들 재료는 이렇게 모두 갖춰졌습니다.

p243 그녀와 친했던 로트레크는 그 모습을 담은 그림과 포스터를 여러 장 그렸습니다. 하지만 결코 예쁘게 그려주지는 않았습니다. 완성된 그림에 충격을 받은 길베르가 애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발 그렇게 못생긴 모습으로 그리지 말아주세요. 제발요. 당신이 보내준 스케치를 보고 많은 사람이 비명을 질렀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든 뒤 길베르는 자서전을 통해 로트레크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p259 형은 확실히 같이 살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본 빈센트의 재능과 예술적인 감성, 독창성은 독보적이었습니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형은 천재야’ 그는 여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형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야. 몇 년만 더 있으면 형은 틀림없이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p274 페이메이르의 그림에 나오는 집들은 모두 완벽하게 정리돼 있고, 조용합니다. 그림을 사 갈만한 부유한 고객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어지러운 마음을 고용한 그림으로 승화한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p280 평범한 일상 속에도 위대함은 숨어 있다. 생업과 열 명 넘는 아이들의 육아, 집안일 등이 뒤섞인 번잡한 일과 속에서 생활인 페이메이르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위대함의 본질을 포착해 자신의 그림에 완벽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일상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영원불멸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p284 초상화를 그리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앙투아네트와 르 브룅은 동갑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말도 잘 통했습니다. 둘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 금새 가족처럼 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르 브룅이 바닥에 실로 떨어뜨린 붓을 앙투아네트가 몸소 주워주는 일도 있었고 초상화를 그리다 쉬는 시간에 둘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니까요

p299 아마도 루소의 이런 거짓말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비참한 현실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었을 겁니다. 자신이 지어낸 말을 스스로 믿는 어린아이처럼 루소 역시 자신의 거짓말을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건 루소가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치 않았다는 겁니다.

p302 이를 통해 루소의 삶과 작품을 접한 예술가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그림은 처음 본다. 단순하다. 이국적이다. 어린아이 같다. 아무튼 이상하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이들은 그 이상한 매력의 비밀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p305 이 대책 없는 알코올중독자의 이름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의 삶은 술과 마약에 찌들어 있었고, 방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흥청망청 사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던 20세기초 프랑스 파리에서도 그는 방종한 생활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p317 정작 그림을 그린 화가 자신은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 그림은 농민을 그린 거야. 매일매일 땀 흘려 일하는, 초라하지만 위대한 사람들 말이야. 정치 싸움에 낄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하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마다 자기 멋대로 내린 결론에 그림을 꿰맞출 뿐이었죠. 1857년의 프랑스는 그렇게 좌우로 갈라져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곳이었습니다.

p327 밀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인 봄만 봐도 밀레의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환한 빛과 무지개. 이를 통해 밀레는 “비 오는 날을 견디로 나면 언젠가 인생의 봄날이 온다”는 위로를 전하려 했던 게 아닐까요

p333 인상주의 작품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좋지 않아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슬레가 할 줄 아는 것은 이때까지 그려온 풍경화를 계속 그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최승자 시인은 썼습니다. 당시 서른 즈음이었던 시슬레의 상황도 그러했습니다.

p337 세상을 떠난 뒤에는 대접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동료 화가들보다는 명성이 뒤떨어지고 연구도 많지 않은 편입니다. 강렬한 색채 대신 옅은 색을 쓴 화풍, 극적인 장관 대신 소박한 시골과 마을 풍경을 그렸다는 점 때문에 임팩트가 덜하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