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알고 싶다 : 고전의 전당 편 - 고난을 넘어 환희로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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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이 알고싶다- 고전의 전당

 : 안인모

 : 위즈덤하우스

 : 2022/11/06 - 2022/11/14


팟캐스트에서 알게 되서 꾸준히 듣고 있는 안인모님의 두번째 책.

비발디, 모차르트 등 워낙 유명한 작곡가들이라 대부분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책으로 에피소드를 읽고, 추천하는 음악들을 듣는 맛이 있다.

작곡가들을 알면 알수록 괴짜들도 많고 특이한 성격인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천재들은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다. 

클래식 작곡가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어보니 개론서는 대부분 아는 이야기이지만, 조금만 어려운 책을 잡으면 난이도가 쭉 올라간다.

그 중간을 찾기가 어렵다. 어쩌면 그 중간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음악가가 아니라 음악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추천음악이 맘에 든다. 


p10 천재 모차르트는 취향과 스타일이 분명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보다 못한 범재들의 연주를 대놓고 비웃었죠. 물론 그는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평도 받았지요

p20 피에타에서 나와 자유인이 된 비발디는 최초의 협주곡집 조화의 영감을 출판하고, 베니스를 방문한 투스카니의 페르디난드 메디치 대공에게 헌정합니다

p36 비발디는 안나와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어요. 분명한 건, 안나가 비발디에게 크나큰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는 점이에요

p41 빈의 성 슈테판 성당에서 열린 비발디의 장례식은 음악마저 연주되지 않는, 가장 저렴한 형식으로 치러집니다. 많게는 한 해 5만 두카트를 벌던 비발디의 장례를 치르는 데 들어간 돈은 종소리 비용을 포함해 12굴데 49크로이처로, 이는 극빈자의 장례식을 치르는 수준이었어요

p51 밖에서는 수모와 멸시를 받던 그도 집에서는 수많은 아이의 자상한 아버지였어요. 그의 음악에는 신께 드리는 감사와 그가 감내해야 하는 책무가 질서정연하게 흐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외로움이 함께 들려옵니다.

p54 자기주장이 강한 바흐는 직장에서도 성질을 억누르지 못하고 크고 작은 마찰음을 냈어요. 특히 그가 참지 못했던 건 음악적 완성도였어요

p56 바흐가 휴가를 너무 오래 다녀온 죄를 포함해 예배 때 오르간을 너무 오래 연주한 죄, 장식음을 너무 현란하게 써서 교인들을 혼란스럽게 한 죄 등 정말 말도 안되는 억지 죄목이 즐비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죄목은 젊은 여성을 오르간 연주석에 데리고 있던 죄입니다

p60 바흐는 종교음악보다는 주로 궁정에서 귀족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연주하는 음악, 즉 협주곡이나 실내악곡, 소나타 등 기악 연주곡을 작곡해요. 최고의 환경에서 탄생한 바흐의 음악은 밝고 가벼우며 찬란하기까지 합니다. 현재 연주 무대에서 단골로 연주되는 바흐의 대표적인 기악곡 중 특히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작품들은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합니다.

p64 안나는 왕성한 대식가였던 바흐를 위해 주방에서도 바빴어요. 바흐는 화초가꾸기를 좋아하는 안나를 위해 꽃이나 새를 선물하며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자상한 남편이었지요. 그는 야무지게 자신을 뒷바라지해주는 안나를 위해 사랑을 담은 노래를 작곡하고 작은 악보집을 만들어줍니다.

p72 커피를 너무나 사랑했던 바흐는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큰 커피 하우스인 카페 짐머만에서 10여 년간 콜레기움 무지쿰을 이끌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을 합니다. 짐머만은 바흐에게 공연 장소와 여러 악기를 제공했고,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은 바흐의 공연을 볼 수 있었지요

p74 바흐의 오랜 집념과 전략적 노력이 이뤄낸 결과였지요. 비록 명예직이었지만, 바흐는 왕이 고용한 왕의 작곡가로서 라이프치히 윗선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귀한 몸이 됩니다

p79 라이프치히로 돌아온 바흐는 두 달 후, 왕이 준 주제를 기반으로 푸가 형식의 다성음악곡집인 음악의 헌정을 출판해요. 바흐가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 세심하게 넣은 여러 수수께끼와 암호들, 그리고 바흐만의 놀라운 재치와 유머로 가득한 훌륭한 곡이지요

p79 바흐의 손에 들려 있는 악보는 당시 작곡중이던 14개의 카논이에요. 바흐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었지만, 쾌활하고 호탕했고, 음식을 사랑하는 미식가이자 또 대식가였어요. 애지중지하던 맥주와 담배만큼은 최고급을 지향할 정도로 자신의 기호에 있어서 주관이 확실했지요

p114 그에게 자선의 개념을 심어준 사람은 바로 젊은 시절 할레 대학에서 헨델을 가르쳤던 아우구스트 교수에요. 할레 대학을 세우고 고아원과 빈자 학교를 창설한 사람이지요.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고 입힌 헨델의 메시아는 기독교 신자만을 위한 교회 음악이 아닌 모든 인류를 위한 음악이었어요

p123 일찍이 출세해 화려하게 살던 헨델은 인생 말년에 쓴맛을 본 뒤 종교음악에 집중하며 자선을 실천해요. 바흐는 죽자마자 잊혔다가 훗날 부활했지만, 헨델의 이름과 그의 음악은 운좋게도 늘 기억되었고 언제나 무대 위에 있었어요

p134 메타스타지오는 친구이자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인 포르포라에게 하이든을 소개해줘요. 스타 카스트라토인 파리넬리의 스승인 포르포라는 런던에서 헨델과 라이벌로 경쟁할 정도로, 대단한 음악가였어요

p143 무엇보다도 하이든을 힘들게 한 건 마리아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녀는 하이든의 음악 활동을 지지해주기는커녕, 일부러 하이든의 악보를 머리카락 마는 롤로 쓰거나 빵을 구울 때 사용합니다. 아무리 부인이라 해도 하이든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p146 귀족이 자신의 사비를 들여 치료비를 지원하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어요. 공작의 이러한 자비와 선행은 하이든을 비롯한 궁정 하인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그들의 소속감과 충성심을 드높이는 계기가 됩니다

p156 하이든은 음악 비즈니스 외에도 런던에서 만난 다양하고 개성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처음 맞닥뜨린 여러 신기한 광경 등에 대해 꼼꼼히 기록해둡니다. 이 기록물은 런던 노트라 불려요

p161 그는 이미 런던에서 큰돈을 벌며 커다란 영예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섬기는 주인에 대한 충성과 감사의 마음을 잊은 건 아니었어요

p165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하이든은 악보의 시작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라고, 끝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이라고 써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그는 힘들때마다 묵주기도를 올렸고, 평생에 걸쳐 많은 미사곡을 작곡합니다.

p179 모차르트는 고향 잘츠부르크를 싫어했고, 결국 잘츠부르크의 품에서 뛰쳐나와요. 한 사람의 음악 천재가 나고 죽기까지, 신의 손길과 인간의 운명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 설킨 이야기는 오직 음악으로만 풀어낼 수 있습니다

p185 모차르트는 친구와 놀기는 커텽 그저 어른들 사이에서 특히 아버지의 울타리 안에서 음악가로만 존재했어요. 여행지에 여행지로 이동하면서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할 유년 시전의 즐거움이나 친구와의 우정 같은 것은 그냥 지나쳐버렸지요

p200 결혼 후 4년간, 모차르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에 집중하면서 피아노 협주곡들을 쏟아내요. 그가 작곡한 총 27곡의 <피아노협주곡> 중 무려 11공이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합니다

p203 잘츠부르크의 생물학적 아버지 레오폴트가 모차르트에게 재능을 주었지만 그를 옭아맨 반면, 빈의 사회적 아버지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재능을 인정하고 지지해준 은인이었지요. 모차르트는 하이든을 파파라고 부르며 함께 연주했던 6곡의 현악4중주를 그에게 헌정해요(’하이든 4중주’)

p210 모차르트의 장기는 단연코 벼락치기입니다. 그것도 마감 10분 전에 곡을 완성하는 특기가 있었죠

p212 모차르트의 음악은 시민 계급을 대변해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빈의 청중은 그저 불편해하며 등을 돌리고 말아요. 빈은 유행이 긍방금방 바뀌는, 아주 센서티브한 도니까요

p218 연속된 실패로 수렁헤 빠져버린 모차르트는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밤의 유혹으로 채웁니다. 도박과 여자, 그리고 술을 즐기는 모차르트의 구멍 난 주머니는 주인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었어요

p238 백작은 다양한 교육을 받지 못한 베토벤에게 본 대학의 문학과 철학 강의를 청강할 것을 권해요. 덕분에 베토벤은 부족했던 인문학적 이념과 철학적 사상을 메꿔갑니다. 그는 칸트의 계몽 사상과 실러의 철학에 깊이 감동받아요

p243 모차르트의 이름을 업은 작품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쉽게 드러낼 수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모차르트의 선율을 너무나 사랑했어요. 베토벤은 미망인인 콘스탄체가 주최한 모차르트의 서거 4주년 콘서트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연주해요

p246 베토벤에게는 누구를 만나든 결국은 사이가 틀어지게 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어요

p252 그리고 부활한 그의 음악에는 큰 변화가 생깁니다. 곡의 길이가 눈에 띄게 길어지고, 규모가 큰 대작들이 쏟아져요. 전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걸까요? 베토벤은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정신과 파격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선보입니다

p253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롤랑은 베토벤이 고난을 딛고 일어나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담아낸 명작들을 탄생시킨 이 시기를 걸작의 숲이라고 칭합니다. 소나타 발트슈타인, 템페스트, 열정, 오페라 피델리오, 크로이처 소나타, 교향곡3,4,5,6,7,8번, 현악 4중주 라주모프스키, 피아노협주곡 4,5번, 바이올린 협주곡, 3중 협주곡 등이 걸작의 숲에 해당돼요

p256 음악가가 누군가의 취향에 맞추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예술성에 기반을 두고 창작 활동을 한 것도 베토벤이 주도한 경향이에요

p263 베토벤에게는 마음까지 통하는 친구 같은 후원자가 있었으니 바로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막내인 루돌프 대공이에요. 베토벤보다 열여덟 살 어린 대공은 열다섯 살 때부터 베토벤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며 베토벤을 따르고 후원을 자처합니다

p269 클래식 역사에서 흔한 음악가와 귀족 딸의 사랑은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습니다. 신분을 넘어선 사랑은 집안의 반대로, 또는 베토벤의 귓병 때문에,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잘될 수 없었어요. 게다가 여인의 수가 많다는 것은 베토벤의 평균 연애 기간이 짧다는 방증이죠. 놀라운 건 슬픈 이별의 순간에도 이미 또 다른 존재가 곧장 나타났다는 거예요

p271 피아노와 함께 진화한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노의 구약성서인 평균율 클라이버 곡집에 이어 피아노의 신약성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p284 베토벤은 성격도 급하고, 자신이 지정한 연주템포도 굉장히 빨랐지만, 작곡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느렸거든요. 심지어 미처 완성하지 못한 부분은 무대 위에서 즉흥 연주로 채워 넣을 정도였어요

p288 베토벤의 유명한 초상화 속,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악보는 무려 4년 만에 완성한 심오한 걸작 장엄미사입니다. 놀랍게도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이 곡을 구입해요. 또 2개의 큰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와요. 바로 런던 필하모닉협회가 베토벤이 4년 전 작곡하다가 중단한 교향곡 9번 합창에 비용을 지불하기로 합니다. 베토벤은 이제 교향곡을 작곡하는 데 전력을 다합니다. 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갈리친 왕자가 베토벤의 3개 현악 4중주를 사들여요. 물론 작품 가격은 베토벤이 직정 정했지요

p291 이즈음 베토벤은 현악 4중주를 자기 내면의 거울로 삼고 계속해서 작곡해 나갑니다. 베토벤의 깊은 성찰을 담은 마지막 현악 4중주곡들은 오래도록 두고 들어야 그가 하고자 했던 내면의 말들을 들을 수 있어요

p294 베토벤의 여러 모순된 행보들은 양날의 칼이 되어 그를 고통스럽게 해요. 베토벤은 자신이 원하던 여성과의 사랑이나 연금을 받는 안정된 직장 등을 죽을 때까지 갖지 못합니다.

p308 파가니니는 보케리니의 기타 5중주에서 영감을 받은 기타 4중주곡을 포함해 기타 독주곡과 36개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등 수많은 기타곡을 작곡합니다

p311 그는 기술적으로도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화려하지만 난해해서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은 연주 기법을 고안하거나 발전시켰어요

p318 지금까지도 악마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그를 마케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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