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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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 창비

 : 2021/10/07 - 2021/10/21


미술이야기로 유명한 양정무 선생님의 에세이.

다른 책이나 방송에서 봤을 때도 그렇지만 양정무 선생님의 책은 편안하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려서 정말 그림을 못그렸다. 

미술시간마다 혼났다. 놀다가 그림을 대충 그린다고...

미술실에 가서 왜 귀신같은 석고상을 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앉아서 열심히 그렸었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왜 그런 미술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왜 연필로 그림그리는 걸 데생이라고 하는지도...(자세한 건 직접 책을 읽으시라)

영국, 프랑스에 갈 때마다 박물관에 포로로 잡혀있는 수많은 유물들을 보며 제국주의 한 모습을 보는구나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이 책에도 박물관, 미술관의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미술작품의 저자와 의미, 해석을 넘어서 그 시대를 느끼고 역사를 살펴본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며 이야기로 잘 풀어내는 이야기꾼이 있다는 게 참 좋다.

재미있게 읽었다. 


p18 나폴레옹이 실각하면서 이런 고전미술품들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이를 석고로 복제해 팔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p20 오늘날 고전이라는 용어는 좁게 보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이지만, 크게 보면 기원전 8세기, 즉 호메로스의 그리스 시대에서 시작해 로마제국이 멸망하는 서기 5세기가지의 방대한 시기를 아우르는 역사 용어가 됩니다

p35 이 책 표지에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라고 적어놓았죠. 이 구절은 나도 행복의 당 아르카디아에 있다라는 의미인 동시에 당시 상류층 자제들만이 누리던 이탈리아 여행을 자신도 수행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p45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시대, 나이, 문화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를 표준화, 수치화, 계량화하려는 시도는 현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p51 파르테논 신전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 시선의 한계를 역이용한 거죠. 인간의 눈은 탁월한 신체기관 중 하나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직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지만 우리의 눈은 구형이기 대문에 직선이 세계도 휘어져 들어옵니다

p54 파르테논 신전의 네면에는 총 92개의 메토프가 있는데 각각 네개의 주제로 나뉩니다. 서쪽에는 그리스인과 아마조네스의 사움, 북쪽에는 트로이전쟁, 동쪽에는 올림포스 신과 거신족의 싸움ㅇ, 남쪽에는 라피타이 부족과 켄타우로스의 싸움이 각각 묘사돼 있습니다. 이 싸움들의 공통점은 바로 인간과 반문명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p65 고대 그리스미술에서 보이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다시 말해 그리스 남성 조각들이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그리스미술에 드리워진 신비를 한꺼풀 걷어내면 드러나는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p87 미소를 띤 쿠로스 조각의 상당수가 묘지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같은 미소는 전사자들에 대한 추모, 그리고 그들의 충만했던 삶을 예찬하는 조각적 결과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p94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웃음을 되돌려주었다면 그의 제자인 알렉산드로스대왕에 이르러서는 구체적인 개인의 얼굴이 살아나게 됩니다

p99 빙켈만이나 레싱 모두 라오콘 군상의 표정을 비명이 아니라 신음 정도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고전을 통해 모든 것을 초월한 인간의 고귀한 정신성을 강조하려 했고, 이런 고집 탓에 라오콘 군상은 울고 있어도 울지 않는 모습으로 해석된 셈이죠

p102 프랑스의 랭스 대성당 입구에 자리한 천사상이 대표적인 사례지요. 대천사 가브리엘의 조각상으로, 기쁜 표정으로 성모마리아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p142 진신의 미소에 뒤센의 이름을 붙인 것은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진짜 미소는 입꼬리 근육이 올라가고 이마 근육과 눈 밑 근육이 내려가서 눈꼬리에 주름이 생겨야 한다고 합니다

p155 누가 고전을 중심으로 세기의 명작을 차지하는가는 곧 누가 유럽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하는가의 문제, 즉 유럽 전역에서 권위를 발휘할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벌인 이같은 약탈극은 고전의 지위를 한층 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p167 슬론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구성된 초기 영국박물관은 자연과학의 신비함이나 인간의 진기한 문화를 함께 보여주면서 하나의 소우주를 창조한 셈이었죠

p169 윌리엄 해밀턴도 이 협회 소속이었는데 한마디로 영국의 돈많은 귀족 자제들이나 성공한 평민 자제들이 어울려 노는 클럽이었습니다. 이 한량들의 공통분모는 예술과 술이었던 것 같습니다

p170 세리아 루도는 심각한 문제도 놀면서 풀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너무 골치 아프게 살지 말자는 거죠. 비바 라 비르투는 고상한 취향이여 영원하라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p182 내셔널 갤러리는 1838년 트라팔가 광장에 완공됩니다. 당시 소장품수를 생각하면 필요 이상으로 거대한 규모로 지어졌는데, 이런 대담한 건축적 결정에는 프랑스의 루브르에 뒤지지 않으려는 경쟁심이 작동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p192 마티스의 경우 색채의 변형과 강조를 통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피카소는 형태의 압축에 집중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두 작가 모두 아프리카 원시 조각의 영향을 받아 대범한 생략과 왜곡을 통한 마법적이고도 강렬한 힘을 추구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p197 오래된 과거의 건축물을 현대의 박물관으로 사용할 때는 늘 공간이 이어지지 않는 문제, 관람객의 접근이 어려운 문제 등이 발생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이 뜰 한가운데에 커다란 피라미드를 짓는 혁신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영국의 내셔널갤러리는 상당히 보수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꾀합니다

p209 무엇보다 카의 주장은 역사가 과거의 시점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 의해 얼마든지 재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p213 흑사병은 1347년 겨울 시칠리아에 상륙한 후 곧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1348년 봄부터 피사, 피렌체, 시에나 같은 중부 내륙의 도시들을 차례대로 괴멸시켰고 곧이어 유럽 구석구석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죠

p222 현대인들이 과학과 의료의 언어로 전염병을 설명하지만 중세인들은 종교의 언어로 전염병을 이해했고 신의 벌을 피하기 위해 더욱 절실하게 종교에 매달리게 되었죠

p231 성당 건축을 후원하는 것보다 성당 내부의 그림을 후원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과적이라는 것을 피렌체 사람들은 상인의 도시 출신답게 일찌감치 알아차렸던 것이죠. 소위 말해 '가성비'가 좋았기 때문에 흑사병 이후 제대화에 대한 후원이 집중적으로 늘어났습니다

p241 성 게오르기우스와 성 마르코는 도나텔로의 작품이고 세례자 요한은 기베르티의 잡품입니다. 지금은 도나텔로가 훨씬 유명하지만 기베르티 역시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습니다

p243 프랑스 북부에 작은 베니스로 불리는 콜마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p255 뭉크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뭉크에게 그림이란 눈앞에 놓인 세계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속의 대상과 그것의 느낌을 되살리는 일이었습니다

p258 역사적으로 흑사병은 르네상스로 이어진 반면 스페인 독감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두 갈림길을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에 투영해본다면 우리에게는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장밋빛 세계의 가능성과, 지금보다 더 파괴적인 대재앙의 가능성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p264 예술가들은 완벽함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상적 번민을 에술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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