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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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 정세랑

 : 웅진지식하우스

 : 2021/10/04 - 2021/10/08


환경이나 자연친화적인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여행 에세이였다.

정세랑님은 사실 이름만 들어봤지 책을 읽은 건 처음이다.

소설을 읽지 않는 나에게 소설가는 이름만 익숙하지 책은 모두들 낯설다.

어릴때는 몸이 아파 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했고, 출판사에 취직하고 나서는 직업과 글쓰는 일을 병행하느라 바빠서 못 다녔고, 전업작가가 되고 나서부터야 비로소 여행다운 여행을 한 것 같았다. 

이 책은 저자가 친구따라 강남간, 아니 친구따라 뉴욕가고 오사카 간 이야기에 우연히 당첨된 비행기 티켓으로 런던을 갔던 이야기, 남자친구이자 인생의 반려자와 아헨에 갔던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여러 이유로 가게 됐지만, 여행 패턴은 매우 비슷하다. 

현지인처럼 살아본 이야기와 눈에 잘 띄지 않는 현대 미술관 방문하기, 그리고 친구와 함께 방문한 다양한 음식점과 샵들...

소소한 여행의 맛을 즐기는 이야기가 곳곳에 나온다. 여행에세이답게 사진과 글을 통해 골목길 구석구석 상상하게 한다.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어디도 돌아다니지 못하다보니 이런 책으로 대리만족을 하게 된다. 

조만간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보며...


p15 얼마 전에는 할리우드의 배우 캐머런 보이스가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뇌전증으로 인한 수면 중 발작으로 사망했다. 할리우드의 배우라서 알려진 것이지, 비슷한 죽음은 지구 곳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p22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 같은 파이프형이라면, 창작물이 안에 고일 때 괴롭고 내보내야 머릿속의 압력이 낮아진다면 당신도 창작을 해야 한다. 그 압력을 무시해서 고장 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p32 그렇게 큰 도시를,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자마자 맨 처음으로 때려 부수는 도시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니 정말 매력있는 곳임이 틀림없다

p106 스타워즈 시리즈 7,8,9편을 만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전 세계적으로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며,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안노 히데아키가 오랫동안 상처를 받아왔다는 것을 들으며 서브컬쳐계의 가학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간다

p115 시간이 지나 출판사 직원이 되어 뉴욕의 작가들이 끊임없이 그날 그 사건에 대해 쓰는 작품들을 읽게 되었다.

p116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공동체가 죽음을 똑바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으면... 죽은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억을 단단히 굳히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국 망가지고 만다.

p121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뭐든 직접 판단해야 하나 보다.규모가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앟은데 걷는 내내 해옵ㄱ해졌다

p135 W는 잘 웃고 감정의 진폭이 적은 성격에, 열등감도 없고 꼬인 데도 없었다. 머릿속의 회로가 건강하게 직선적인 W와 지내는 것은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p159 북소리에 깨어나는 것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그것이 축제의 북소리라는 것을 눈뜨는 순간 깨달았다.

p179 K는 마시지 마시오라고 경고문이 붙어 있는 온천물을 자꾸 마셔보라고 해서, '독일인들은 원칙을 잘 지킨다'는 선입견을 곧바로 깨주었다.

p192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한 군데로 꼽히는 셀렉시즈 모디니카넌에 가본 게 큰 소득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유명한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는데 7백 년 된 성당을 개조해 꾸민 내부가 잊히질 않는다.

p206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건너고 나면 자전거들이 천천히 출발하는 셈인데 그 시간 차의 적절함이 근사했다.

p220 어떤 군인이 전쟁터에서도 벨기에산 레이스로 치장하고 있다는 묘사가 있으면 그가 사치스럽고 허영이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p227 어디까지가 당사자의 선택이고 어디서부터가 집단적 압력의 결과일지, 존중에서 비롯된 문화상대주의가 폭력에 대한 방관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지점을 어떻게 짚어낼지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p239 자유를 가진 성인의 만족감에 가까웠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게 어디든 찾아가서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당시에 내심 뿌듯했었다.

p285 함께 살 때 C는 겐지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읽어주거나 설명해주곤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즐거웠다. 인물이 5백 명 쯤 나오는 천 년 전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요즘 사람들이 읽기에는 뜨악한 부분도 많지만, 그때의 사람들도 이야기를 사랑했다는게 이상한 친밀감을 만든다

p302 원룸보다 오피스텔이 안전한 줄 알았는데 왜 그렇지 않은지 계속 의아했는데, 훗날 오피스텔 성매매 현장의 한복판에 집을 빌렸던 것을 깨달았다.

p307 초콜릿 먹어. 나도 너무 힘들어서 초콜릿 먹었던 기억이 나. 정말 하나 먹어야겠다. 초콜릿을 먹고 나니 쓰나미가 왔었지

p334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갔을 때도, 폐장 직전 조명 쇼에서 첨밀밀이 울려 퍼지자 아시아인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찡한 얼굴을 했다. 어디에서 온 아시아인이든 첨밀밀에는 울컥해버리는 것이다.

p353 좀 이상한 고백인데, 죽은 작가들과 서점 순위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내심 즐겁다. 2020년에는 페스트를 쓴 알베르 카뮈,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메이 올컷과 접전이었다

p358 런던의 지명들이 익숙해지고나니, 소설 속에서 마차가 달리거나 택시가 달릴 때 동선을 그려볼 수 있어서 몰입에 도움이 되었다

p373 완벽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고 작품 안팎의 논란도 늘 있지만, 해리 포터를 읽고 자란 이들이 더 관용적이고 폭력에 반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p380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책을 읽는 아이, 나빠질 수 있는데도 선한 의지를 가진 아이를 향한 사랑이 느껴져서 뭉클해지는 바람에 약간 울었다

p384 즉흥적인 것처럼 성실하게 연출된 거리 공연들은 스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일 테고,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일 터여서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을 즐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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