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8 한국 직장인들이 과중한 업무의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면, 아랍인들은 물담배 하나로 해결한다
p23 이집트인들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 작은 마을에서 직접 술을 담가 마신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p33 이집트 고대 왕국은 2500년이나 그 명맥을 유지했기에, 역사학자들은 왕종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크게 초기왕조-고왕국-중간기-중왕국-중간기-신왕국-중간기-말기왕조 시대로 나누었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왕, 즉 파라오들을 위한 무덤이었는데 대부분이 고왕국 시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p36 고대 이집트인들은 오시리스 신과 이시스 여신이 기적적으로 아들 호루스를 잉태하게 됐고, 호루스가 이집트 왕국을 다스리는 파라오로 환생한다고 여겼다. 고대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굳게 믿어졌던 이러한 신화는 파라오들이 자신을 신격화하는 좋은 도구가 되어 주었다
p46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드리아에 외국인이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에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p56 성 세르기우스 바쿠스 교회는 한국인 순례객들 사이에서 예수 피난교회라고도 불린다
p72 1943년 12월 1일, '한국 독립'조항이 카이로 선언에 포함되어 발표되었다. "미국, 영국, 중국은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을 자주독립케 할 것을 결의한다"
p80 아랍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극도의 차별은 오히려 7세기 이슬람 교리를 통해 개선됐다
p88 저 친구는 아예 처음부터 방언만 공부했어. 그러니 너보다 읽고 쓰는 능력은 떨어져도 의사소통 능력은 더 뛰어날 수 밖에. "목적에 따라 공부 방법도 다른 거군요" "그렇지. 저 사람은 당장 병원에서 환자들을 다루어야 하니까 실생활에서 쓰는 사투리를 배운거야"
p96 이방인인 나의 권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홧김에 가짜 죄목으로 나를 경찰에 넘겨 버릴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안타깝지만 예멘은 그런 나라였다. 법이 통하지 않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
p101 아랍인은 기쁨, 슬픔, 분노 등 마음속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청자의 가슴에 도달시키려 한다. 부끄러움이나 거리낌이 없다.
p112 중동 지역은 지리적으로 워낙 광대한 데다 도시-사막 간 교역도 잦았다. 낙타로 이동하면 도로로 인한 지리적 제약이 사라지므로 중동의 대규모 교역에 훨씬 적합했다.
p116 모든 생각과 자연 현상을 말로 표현하기를 좋아했던 그들은 사막에서 낙타의 걸음걸이에 맞춰서 시를 읊기도 했다. 이렇게 낙타 걸음의 리듬에서 영감을 받아 형성된 아랍 시의 운율을 라자즈라고 한다.
p141 무함마드는 인간이다. 그는 알라의 계시를 전하는 메신저일뿐 본인이 직접 기적을 행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알라가 무함마드를 통해 보여 준 얼마 안 되는 기적이기에 이 사건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p149 우리 아랍인들은 반대로 생각하고 있어. 아랍 사회는 이슬람을 통해 상호 투쟁 시대에서 상호 협력 시대로 접어들었지
p154 학문적 성과를 위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큰 그림으로 보자면 결국 그들의 활동은 유럽 강대국의 중동 식민 지배라는 틀안에서 이루어진 일들이야
p158 파이살 1세아 로렌스는 아랍 군대의 희생을 통해 영국이 중동을 지배할 수 잇도록 도와준 셈이었다. 아랍인들과 2년간 우정을 나누었던 로렌스도 결론적으로 보면 영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전략에 이용된 희생자였다.
p164 모든 사람은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반면에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눈을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다. 바로 내가 낮에 꿈을 꾼 자였다.
p170 압둘아지즈는 어린 시절에 이미 사막에서 전투 기술과 생존기술을 터득했다. 전사의 기질을 타고난 그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p176 파이살은 6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종교 지도자인 외조부 압둘라 알 앗 셰이크의 경건한 가정에서 자라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는 외조부로부터 기도, 금식, 이슬람규율,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다 "항상 친절하고, 신중하고, 약속을 저버리지 말고, 관대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며,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멀을 적게 하고, 비열하지도 말고 시기하지도 마라"
p194 이븐 칼둔은 한 국가나 문명을 일으켜 세운 가문은 보통 1대서 시작되어 4대에서 종말에 이른다고 보았다. 특히 3대부터는 경험이 아닌 학습을 통해 전 세대의 것들을 모방하기 때문에 이전 세대에 비해 뒤쳐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p217 테러를 피하는 최선책은 외출과 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이었기에 주이라크대사관의 직원들은 출퇴근 개념이 아예 없었다.
p228 1920년, 영국은 이라크라는 국가를 만들어 주고는 1932년 이라트 국민의 분열을 방치한 채 이라크 땅을 떠났다. 그때의 결정이 지금 이라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p240 늪지대는 보통 두 강의 유속이 느려짐에 따라 형성되는 충적평야에 있는데, 두 강의 지류에서 흘러나온 물이 늪지대를 덮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줄이 되어 준다.
p246 750년, 아바스 가문을 이어 온 자손들은 이라크 중부 쿠파 지역을 점령하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아바스 왕조를 세웠다. 이후 이들은 광대한 이슬람제국을 약 500년간 다스리게 된다
p251 1258년 1월, 몽골군은 바그다드에서 칼리파군을 물리치고 40일간 약탈, 방화, 살육을 저지르며 바그다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후 이슬람 세계의 중심축은 카이로와 이스탄불로 옮겨 갔다. 바그다드는 옛 영광의 빛을 잃은 채 하나의 평범한 도시로 남게 됐다
p271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민족과 종교도 따지지 않았던 그는 비잔틴 황제에게 사람을 보내 수학 연구 자료들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했던 "학문은 멀리 중국에까지 가서라도 구할지어다"라는 말을 알만수르는 몸소 실천했다
p275 그들이 1000년 전에 존재했던 아랍 학자들을 롤모델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지난 수백 년간 이슬람 세계에서 그러한 천재 학자들이 배출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p291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많은 사람이 왜라는 질문을 되뇌며 원인을 분석하려 한다. 그러나 아랍 세계에서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가끔은 법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다
p308 우리는 백 년을 살 수는 없지만, 백 년간 지속될 무엇인가를 창조해 낼 수는 있다. 미래는 그것을 상상하고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자에게 있다
p313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는 이런 과거의 유산과 전통이야말로 아랍에미리트의 정체성을 완성시켜 주며 두바이 미래 비전의 밑거름이 되는 정신적 유산이라고 믿고 있다
p319 그들에게는 자신의 사적인 시간을 즉흥적으로 또 기꺼이 할애하는 유연성이 있다
p323 괴로운 일이 잇어도 좋은 때가 올 때까지 체념하라
p333 1971년 아부다비 부족들은 혹독한 추억만을 선사했던 열사의 땅에 다른 여섯 토후국과 함께 아랍에미리트연합이라는 국가를 세웠다. 석유 수익을 종잣돈 삼아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룩한 아람에미리트는 건국 이후 반세기 만에 중동에서 가장 활기차고 역동적인 경제 허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