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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 문명과 문명의 대화, 개정판 ㅣ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1
작가 : 전국역사교사모임
출판사 : 휴머니스트
읽은날 : 2021/07/20 - 2021/07/31
부럽다.
내가 학교다닐 때는 이런 종류의 책이 없었다. 오직 교과서만 세계사를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였다.
요즘엔 정말 다양하게 세계사를 공부할 수 있는 책들이 많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서 그런지 깊이가 있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중간중간 여성의 지위와 처한 환경등에 대한 짧은 토막상식등이 있어 세계사에서 많이 나타나지 않은 여성들에 대한 내용도 배울 수 있다.
나름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세계사는 분량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아는 내용이 적다보니 당연한 결과다.
새로운 유적이 발굴되고 이론이 소개되면서 세계사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역사를 알아간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p32 라에톨리 발자국 1978년 인류학자인 리키 부부가 남아프리카의 올두바이 계곡, 라에톨리라는 곳에서 두 발로 걸어다닌 원시 인류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p59 이 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하여 다리우스 1세는 여러 제도를 시행하였다. 우선 전국을 20여 개의 속주로 나누어 총독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왕의 귀, 왕의 눈으로 불린 감찰관을 보내 총독들의 정치를 감시하였다
p61 페르시아는 여러 민족의 종교를 인정해 주었지만, 자신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p81 기원전 221년, 여러 국가로 나뉘어 치열하게 경쟁하던 중국은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국가 체제를 정비한 진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p83 무제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가 사상을 국가 통치의 원리로 삼았다
p95 사산 왕조는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을 외치며 서쪽으로는 로마 제국, 동쪽으로는 쿠샨 왕조와 대립하였다. 샤푸르 1세는 인더스강까지 쳐들어가 북인도의 쿠샨 왕조를 눌렀고, 로마와도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p102 마지막 정통 칼리프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시아파를 만들고 우마이야 왕종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
p104 아바스 왕조가 이슬람 세계를 모두 다스린 시기는 거의 없었다. 이베리아반도에는 살아남은 우마이야의 왕자 라흐만 1세가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웠고, 시아파는 북아프리카에 파티마 왕조를 세워 독립하였다
p107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가 바로 바그다드였다. 바그다드의 시장에서는 중국의 자기와 비단, 종이, 먹, 인도에서 온 향신료와 염료도 구할 수 있었다. 또 중앙아시아에서 온 루비와 유리,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온 모피와 사냥용 매, 아프리카에서 온 상아와 황금도 구할 수 있었다
p109 이슬람 의학은 17세기까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특이 이븐 시나는 이슬람 의학을 상징하는 인물로 근대 유럽에서까지 의상의 왕으로 불렸다
p133 1095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클레르몽,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새로이 이슬람 세계의 주인이 된 셀주크 튀르크족을 성지 예루살렘에서 몰아내자고 호소하였다. 그의 연설은 이내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신다"라는 사람들의 환호에 파묻혔다
p238 오스만 제국은 세 대륙, 20개 민족, 6,0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리며, 이슬람의 정신으로 페르시아의 전통과 튀르크의 기질, 아라비아의 솜씨를 버무려 거대한 문화를 발달시켰다
p260 유카탄반도에서 엘살바도르에 이르는 남쪽 지역에서는 정연한 문자 체계를 만들고 종교적인 관심에서 고도의 천문학과 수학을 발전시켰던 마야 문명이, 북쪽에 위치한 멕시코 중부 고원에서는 대도시 테오티우아칸등이 있었다.
p276 눈부신 산업 혁명의 종자돈은 바로 대서양을 수놓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희생 위에서 쌓인 것이었다
p298 신과 교회의 권위, 절대 왕권의 억압이라는 답답한 사회 현실에 분노한 유럽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 볼테르 같은 지식인들의 눈에는 공자와 유교의 도덕 정치가 목마르게 찾던 이상적인 정치 철학으로 보였다
p313 우리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다른 세계와 만나왔다. 8세기에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유행한 귀족의 장식품이 이슬람의 바그다드와 당의 장안을 거쳐 신라의 금성으로 전해지는 데에는 6개월이면 충분하였다.